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60)
제 666화
167화. 테마르의 다섯 번째 무덤(5)
이후부터 두 사람은 함께 무언가를 찾는 평범한 남매들처럼 아공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룬티아는 지친 상태인지라 걸음이 빠르지 못했으나, 이성이 돌아온 후부터 아공간 안에 남은 ‘다른 기운’을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된 상태였다.
[광기에 빠져 있을 때는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은 정신이 돌아와서인지, 아공간 속에 존재하는 혼돈과 다른 기운이 보다 뚜렷이 느껴지는구나. 아마 아공간이 부서진 이유도 있을 테지.]룬티아가 말하는 다른 기운이란 마력을 뜻했다.
진은 감각을 끌어올려도 룬티아처럼 그 마력을 느낄 수 없었다. 혼기가 너무 짙기 때문이었다.
룬티아의 도움 없이 혼자 찾아야 했다면, 진으로서는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히스터가 많이 다친 상태입니까?”
[그래, 미안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군.]“누님께서 제정신으로 그런 게 아닙니다. 목숨만 붙어있다면 어떻게든 회복은 시킬 수 있을 겁니다.”
[걱정되는 건, 아까 내가 미쳐있을 때 말했듯이 그녀가 혼돈을 받아들인 경우다. 그게 아니라면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쳤어. 내 검에 흉부가 꿰뚫렸으니…….]“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가 처음 본 마법엔 혼기가 없었습니다. 기록 마법을 펼쳐둔 게 부상을 당하기 이전 시점이어도, 히스터가 혼돈에 물들었다면 마법이 변형되거나 사라졌어야 할 겁니다. 누님의 잘못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넌 너였어도 유모를 외면하지 못했을 거라 말했지만, 너라면…… 너라면 분명 나보다 나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아닙니다. 그보다, 예언자가 무덤에서 파들러 경을 꺼내기 위함이었다면, 누님이 처음 여길 들어온 건 히스터를 추적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군요. 밖을 지키던 기사들로부터 이 머리칼을 얻고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히스터는 무덤 추적 과정에 기사들과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다. 아마 그때 머리칼을 얻은 것 같군. 나는 로닐 지플이 그녀를 놓친 다음 이후 파들러 경을 대신하게 되었지.]로닐이 발레리아를 놓친 그날 룬티아는 아직 혼돈에 잠식된 상태도 아니었으며, 파들러를 대신해 아공간의 주인이 되기도 전이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룬티아는 히스터를 추적하던 게 아니라, 테마르의 무덤을 찾다가 자연스레 발레리아와 동선이 겹쳤을 뿐이었다.
오히려 수년간 이어진 룬티아의 수색에서 이득을 본 쪽은 발레리아였다.
룬티아의 탐색을 엿보며 무덤이 칼드란 설원에 있다는 결정적인 단서를 얻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테마르의 무덤을 찾는 인원과, 히스터를 추적하는 인원이 나뉘어있던 것 같군요. 누님은 전자였고.”
[그럴 것이다. 아공간에 오기 전, 난 히스터를 죽이거나 생포하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없다. 흑기사나 흑검회의 1진에게 그런 명령이 내려졌으리라고 짐작하기는 했다만.]룬티아가 무덤에서 발레리아를 공격한 건 순전히 그녀가 혼돈의 광기에 잠식되어 끓어오르는 살욕을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내려진 명령이 아니라.
진은 이제야 상황이 이해되고 있었다.
발레리아가 티칸에 어떤 연락조차 남기지 못하고 급히 무덤으로 들어온 이유를 말이다.
‘로사와 예언자는 룬티아 누님이 발레리아를 추적하는 걸 꺼리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누님은 아공간의 주인으로 만들 계획이었으니, 괜한 반감이 늘지 않도록 무덤만 찾게 한 것이군.’
이를테면 로사와 예언자는 룬티아와 진 사이의 유대감을 인지하고 있다.
특히 로사는 진의 가주 선언 이후 바뀐 룬티아를 보며, 그녀가 언제든 진과 한패가 될 수 있다고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니 로사로서는 룬티아를 최대한 이용한 후 무덤에 묶어버리는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파들러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 순수하고 강인한 영혼을 소유한 인물이 몇 없기도 했고 말이다.
만일 루나가 검의 정원에 있었다면, 그리고 그녀에게 리샴 같은 약점이 있었다면. 로사는 주저 없이 루나를 이용해 파들러를 꺼냈을 것이다.
아공간과 인세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때문에 진은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고 있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룬티아가 부서진 몸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룬티아는 진이 무덤을 나가면 당분간 혼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혼돈의 광기에 빠진 채, 이 고독하고 끔찍한 공간 속에 홀로 남아있어야 했다.
진이 다시 그녀를 찾아올 수 있는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가 없다.
혼돈 정화기가 완전 잠식을 해결할 수 있게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도 알 수 없으며, 오늘 이후 로사가 칼드란 설원의 경계를 강화할 가능성도 높았다.
걷는 동안 진은 누이에게 그간 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룬티아는 라프라로사에서 겪은 일들을 들을 땐 부럽고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렸고, 돌아온 진이 겪은 사건들을 들을 땐 무거운 얼굴이 되었다.
[그랬구나, 파들러 경과도 싸움을…… 혼돈에 잠식된 이들을 상대할 때마다 네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상상이 되질 않아. 론 경과 파들러 경, 그리고 지금 나를 상대할 때도 끔찍했을 테지, 마음이.]“물론 괴롭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누님과 우애 좋은 남매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듯, 파들러 경도 제가 다시 본래대로 돌려놓을 겁니다. 돌아가신 론 경과 함께 끝내 혼돈을 이겨냈던 것처럼.”
“저 역시 누님에게 먼저 다가간 적이 없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 둘 다 가주 선언 이후 마음속으로는 서로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런 낯간지러운 기분도 오랜만이군. 그런데…… 생각해보니, 여길 들어오는 수단이 헤도라는 기사의 검이었다고 하지 않았느냐.]“맞습니다.”
[일리나 역시 나와 파들러 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한 가지 물건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건 네가 열쇠처럼 사용한 검과 달리 일회성 소모품인 모양이었어. 한 개밖에 없다고 못을 박지는 않았으나, 그런 느낌으로 설명했었다.]“아마 헤도의 검도, 예언자가 누님과 파들러 경에게 사용한 물건도 모두 옛 룬칸델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저의 경우는 영기로 헤도의 검과 상호 작용을 한 거고, 누님은 예언자가 혼돈으로 물건과 상호 작용을 하도록 만들었겠죠.”
[왜 지플의 괴물 집사가 그런 물건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군.]“자신도 그 검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지플 또한 검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보다 특별하게 관리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히스터도 옛 룬칸델과 관련이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던 것인가? 그녀가 마력 외에 다른 힘을 사용하지는 않았는데.]발레리아는 도대체 어떻게 이 무덤으로 들어설 수 있었나.
진도 줄곧 그게 의문이었다.
‘나와 예언자의 경우로 미루어보면 옛 룬칸델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라 할지라도, 영기나 혼돈을 사용할 수 없으면 무덤에 진입하는 건 불가할 확률이 높다. 혹, 내가 줬던 솔더렛의 기록 장치들이 열쇠가 되었던 건가.’
발레리아에게 직접 듣기 전엔 알 수 없었다.
룬티아의 걸음이 전보다 빨라지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기력을 되찾은 게 아니라, 진이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듯 그녀 역시 1초라도 더 빨리 히스터를 찾아주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
[가까워진 것 같구나…… 아공간을 통해 전해지는 이질적인 느낌이 더 짙어지고 있다.]룬티아가 저 멀리 한 허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곳이다. 힘을 냈지만…… 더는 걸을 수 없겠어, 나는.]아공간과 연결이 해제된 상태에서 그녀는 몸을 회복할 수 없다.
룬티아의 두 다리는 이제 완전히 석상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가보아라, 막내.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나와 아공간을 다시 연결하지는 말고…… 그 즉시 너를 공격할 테니.]“알겠습니다, 누님.”
룬티아가 가리킨 지점으로 다가갈수록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쳐댔다.
이제는 진도 룬티아처럼 발레리아의 마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마력은 곧 꺼질 것 같은 맥처럼 한없이 희미하고 불안정한 상태였다.
“발레리아.”
이내 걸음을 멈춘 진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나 어떤 반응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진은 몇 차례 그녀를 더 불러보다가, 눈을 감고 감각과 영기를 끌어올렸다.
걷는 동안 영기를 조금 회복한 덕에, 영검 1식을 딱 한 번은 펼칠 수 있었다.
그걸로 직접 아공간을 베어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공간을 벨 때 발레리아가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흘러나오는 희미한 마력을 읽으며 깊이를 가늠했다.
얼마 안 가 진은 거리를 잡을 수 있었고, 그대로 영검을 휘둘렀다.
스억-!
공간이 열렸다.
[안 돼!]룬티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묘인족 네루의 것이다.
“네루 님……!?”
설마 공간 너머에서 네루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네루는 짧은 두 팔을 활짝 펼친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무언가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 정말, 진 룬칸델이야?]진은 대답하는 것도 잊은 채 네루가 지키고 있던 뒤편의 사람을 쳐다보았다.
관 같은 얼음에 갇혀 있는, 발레리아 히스터를.
룬티아의 말대로 발레리아의 가슴 한가운데 커다란 검은 상처가 보였다.
“발레리아!”
진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자 네루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 발레리아는 지금 스스로를 봉인한 상태야. 상처가 너무 깊어서,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어.]살아 있다.
마력이 남아 있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나, 직접 두 눈으로 발레리아를 확인하니 목구멍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었다.
“그럼, 네루 님은 지금까지 계속 발레리아와 함께 있던 겁니까?”
[응,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룬티아 룬칸델은 이 사실을 몰라. 룬티아 룬칸델은? 혹시 저 뒤에 있는 사람이……?]“설명하기엔 깁니다. 일단 어서 나가도록 하죠, 네루 님. 마력을 보아하니 봉인이 얼마 못 버틸 것 같습니다.”
[응, 밖으로 나가는 길은 이미 만들어뒀어. 발레리아가 움직일 수 없으니 나가지 못하고 있던 거야.]네루가 품에서 고양이 신의 발톱을 꺼냈다.
그건 과거 완타라모 숲에서 묘인족들이 발레리아 덕에 아꼈던 물건이었다.
네루가 즉시 발톱을 이용해 아공간을 빠져나가는 문을 열려고 하자, 진은 뒤돌아 룬티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서 가라는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가주 선언 이후 첫 만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누님.’
‘다녀와, 막내.’
아공간을 빠져나가는 문이 열렸고, 룬티아는 한동안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우두커니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