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64)
제 666화
169화. 원수의 성지로(3)
“그대가 들은 그대로요, 로닐 경. 지플의 성지에서 히스터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하였지.”
진이 천연덕스레 대꾸하자 로닐의 미간이 좁혀졌다.
지난 회담에서는 그가 이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카둔과 옥타비아는 기가 막힌 듯 눈동자만 끔뻑였다.
설마 임시 동맹들을 윽박지르러 찾아온 이 순간에, 이토록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다.
“진 경, 지금 듣는 귀가 많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꺼내도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그리 대단한 비밀인 줄 몰랐군. 킨젤로의 단장께서 대수롭지 않게 알려준 탓에.”
로닐이 오르갈을 노려보았다. 오르갈은 간신히 일어난 채 미안하다는 듯 손을 젓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진은 그사이 자신과 카시미르를 제외한 모든 동료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했고, 킨젤로 쪽도 오르갈과 제피린만이 자리에 남았다.
“오르갈 경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셨습니까?”
[컥, 커걱…….]“내 주인께서는 더 이상 말하기 어려운 상태이니 제가 대신 답변을 드리도록 하죠, 지플 여러분.”
제피린이 오르갈을 업으며 말했다.
“우선, 지플 측은 흥분하지 말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진 경이 또 너무 앞뒤 없이 민감한 내용을 꺼낸 탓에 짜증이 난 건 이해하지만.”
“짜증? 그 정도일 것 같나?”
옥타비아가 말을 끊자, 제피린의 눈에 대뜸 살의가 번졌다.
“말을 끊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경고라는 걸 미리 말해두도록 하죠. 내 주인은 당신들이 그곳을 성지라 부르기 이전부터 그 존재를 알고 계셨고, 한때는 그곳의 관리자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곳은 주인이 힘을 잃었을 때, 당신들이 갖게 된 것이죠.”
“그러니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것입니까?”
로닐의 목소리가 다시 차분해졌다.
그건 로닐이라는 인물이 대단한 평정심을 가진 덕이나, 진은 그게 전부는 아니리라 생각했다.
‘성지를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찾아온 건 아닌 모양이군.’
옥타비아와 카둔은 몰라도, 로닐은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어쩌면, 불쾌한 기색을 드러낸 것도 다 계산된 일일지도 몰랐다.
“그건 아닙니다. 공공의 적을 처치한 후, 힘으로 다시 빼앗을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 그곳은 명백히 지플의 소유입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을 말할 권리조차 없다는 식으로 대하는 건 참기 어렵군요.”
“참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악마룡?”
“화룡 트라칼니스의 후계자께서는 그게 궁금하신 모양인데, 그렇다면 계속 해보세요.”
‘트라칼니스’라는 이름이 나오자 대번에 카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트라칼니스를 네가 어찌 알고 있는 것이냐……!”
“꽤 만족스럽던 한 끼 식사였으니 기억하고 있죠.”
평소의 카둔이라면 이 대목에 제피린을 죽일 기세로 격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화룡 트라칼니스는, 카둔 이전 화룡들의 왕이었던 존재이자 쉬누의 가장 완벽한 피조물이었다.
그럼에도 트라칼니스에 대해선 세상에 아무런 역사가 남아 있지 않고, 카둔 본인조차 평소 집중하지 않으면 그의 이름조차 떠올리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트라칼니스의 죽음은, 화신 쉬누와 화룡들 최대의 ‘치욕’이었기 때문이었다.
트라칼니스의 역사를 지운 건 그 치욕을 덮으려던 쉬누와 옛 지플의 의지인 것이다.
‘설마 트라칼니스를 죽인 게…… 저 악마룡이란 말인가?’
제피린은 카둔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마 카둔 님께서 생각하는 바가 맞을 겁니다. 믿기 어렵다면, 카둔 님의 신에게 한번 직접 물어보도록 하세요. 쉬누가 그 기억을 복원해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카둔이 먼저 제피린의 시선을 피했다.
트라칼니스가 죽는 순간이 떠올랐거나, 그에 대한 어떤 두려운 기억이 떠오른 것은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떨쳐내기 어려운 공포가 스멀스멀 카둔의 내면을 잠식하고 있었다.
-나는 최전성기의 당신을 상대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다지 두렵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이 나를 잘 모르는 건, 그때의 내가 당신과 싸울 수 없었기 때문일 뿐.
진은 과거 흑왕산채에서 제피린의 정체가 처음 밝혀진 날, 그녀가 무라칸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카둔이 단박에 꼬리를 내려……?’
병 걸린 샌님처럼 업혀 있는 오르갈이나, 지금껏 보여준 제피린의 모습만 미루어봐서는 쉬이 그들의 전성기를 상상할 수 없었다.
다만 쉬누를 모욕하듯 말하는데도 카둔이 찌그러진 건 분명했다.
카둔의 이런 반응에 가장 충격받고 있는 건 옥타비아였다. 카둔이 물러났으니, 그녀로서도 더는 제피린에게 분노를 드러낼 수 없었다.
“대충 카둔 님의 궁금증은 해결된 것 같군요.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까요?”
제피린이 눈짓으로 진을 가리켰다.
“……괜히 분위기가 나빠졌군. 우선, 이럴 의도로 꺼낸 이야기가 아니었으니 양측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겠소.”
“진 경이 지플의 체면을 세워주네요, 중요한 문제죠.”
“계속 그렇게 빈정거릴 생각이면 오르갈을 깨워라, 제피린. 신경전이나 하자고 모인 게 아닐 텐데.”
“이래서 인간은 별로라니까요. 생이 짧아서 그런가 겁들이 없다고요, 하여간.”
“로닐 경.”
“말씀하십시오, 진 경.”
“히스터의 생존은 우리가 공공의 적을 처치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오. 정 지플의 성지를 개방하기가 어렵다면, 누메루스의 눈물이라도 구해주시오.”
“누메루스의 눈물에 이라도, 라는 말을 붙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누메루스의 눈물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선 히스터를 살펴보도록 하죠.”
의식을 잃은 발레리아를 지플에게 보여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진은 죄를 짓는 기분이었으나,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그녀의 생김새는 이미 지플에 노출되었으니 기를 쓰고 숨길 이유도 없었다.
병실로 가 발레리아를 살펴본 지플 측 수뇌들은 저마다 탄식을 내뱉거나 이마를 짚었다.
이미 알고 있던 정보임에도 눈으로 직접 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왜 눈물부터 말씀하셨는지 알겠군요. 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맞습니다. 봉인은 진 경이 유지하고 있던 겁니까?”
“대단하시군요. 지플에도 이런 봉인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겁니다.”
“어떻게 하겠소? 성지 개방이 불가하고, 눈물도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난 히스터를 지플에 노출시켰으니 손해이긴 하나, 묻어두고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겠소.”
성지를 개방해주지 않을 거면 당장 나가라는 이야기였다.
“이건 우리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진 경.”
“이쪽과 킨젤로는 매번 그 자리에서 즉시 판단할 수 있는 결정권자들이 회담에 참여하고 있소.”
“알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돌아가서 아버지께 이 사실을 알리고 답변을 받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대하겠소.”
“비록 임시 동맹 전체를 위해, 더 정확히는 각자의 욕망을 위해 모두가 히스터를 살리려는 것이지만. 아마 이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기는 할 겁니다, 진 경.”
지플의 수뇌들이 다시 티칸으로 돌아온 건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다음이었다.
이번엔 카둔과 옥타비아도 없이, 로닐 혼자 수행원 몇만 데리고 찾아왔다.
“아버지께서도 성지 개방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히스터를 성지로 데려오는 걸 허하겠다 하셨습니다.”
“요구사항이 무엇이오?”
“첫째, 성지에 들어오는 건 히스터 일인에만 한한다. 둘째, 이번 일에 대한 보상으로 각 동맹은 혼돈 정화와 제어에 대한 내용 일부를 지플 측에 공유한다. 이는 반드시 아즈 밀 계약자의 입회가 수반되어야 한다.”
“거부하오.”
진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단칼에 거절했다.
“음…… 그렇다면 히스터를 살릴 수 없습니다.”
“나는 오르갈에게 완전마력체가 당신들의 성지에 가면 일종의 마력 흔적이 남는다고 들었소. 그 흔적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지플은 상당히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도 했지. 그 연구가 추후 동맹이 해체된 후 우리 측에 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지는 모르는 일이오.”
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히스터가 다친 것으로 누가 가장 큰 이득을 얻소? 지플이오. 우린 히스터를 살리는 게 전부지만, 지플은 연구까지 할 수 있지. 그러니 더 욕심부리지 않았으면 하오. 이번에 결렬되면, 히스터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없던 걸로 하겠소. 얕은 수를 부리지 말라는 뜻이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도 없이, 성지를 개방하도록 하겠습니다만, 성지의 위치 노출을 막기 위해 감각을 최대한 차단한 채로 이동하는 건 동의해주셔야 합니다. 또한, 진 경과 히스터에게 다른 호위는 없었으면 합니다.”
요구사항은 로닐이 그냥 던져본 말일 뿐이었다. 가문 원로들의 의견을 받아서 말이다.
로닐은 그들의 의견을 탐탁지 않아 했었다.
“그 정도는 이해하오. 출발은 언제가 좋겠소?”
“괜찮다면, 바로 가시도록 하죠.”
* * *
진은 코젝에 탑승한 후부터 창이 없는 선실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봉인된 발레리아를 꼭 붙잡은 채 가만히 비행함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비행함이 목적지에 다다른 것은,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다음이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 경.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비행함을 나오자마자 진은 이곳이 어느 거대한 건축물의 내부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과거 소타 사막에서 본 건조장보다도 큰 규모였다.
로닐의 안내는 두 시간 정도였다. 건물 내의 한 문에 다다르자, 로닐이 걸음을 멈추었다.
“제가 안내해드릴 수 있는 영역은 여기까지입니다. 이후로는 저도 접근할 수 없는지라, 다른 사람이 도움을 드릴 겁니다.”
문 너머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지플은 딱 두 명뿐이었다.
한 사람은 가주, 켈리악 지플이고, 두 번째는.
“그대가 진 룬칸델인가.”
차기 가주, 베라딘 지플이었다.
베라딘이 저쪽에서부터 진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약 3년 만에 만난 적지의 친구는, 언제나처럼 명랑하게 인사하는 대신 건조한 목소리를 냈다.
“따라와라, 성지로 안내하겠다.”
문 너머로 앞서 걷는 베라딘의 뒷모습이 한없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베라딘의 허리춤에, 검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