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83)
제 666화
174화. 베일의 착각(4)
* * *
함선 람의 선실.
[어차피 죽어도 죽지 않을 목숨, 나를 어째서 구한 것이오?]담담한 듯 들렸으나, 파들러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섞여 있었다.
본래 그는 방금 베일의 손아귀에 목이 터졌어야 했다. 파들러의 말처럼 그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으나, 원한이 깊은 상대로부터 원치 않게 물러났다는 사실이 그를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1차 검의 정원 총공격 당시처럼 다시 한 번 원귀처럼 싸웠다면, 파들러는 목이 없어진 채로도 한동안 싸움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경의 육체와 영혼을 재구성하는 건 내게도 조금은 힘이 소요되는 일입니다. 무의미한 일에 낭비하고 싶지 않더군요.]로사도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그 속에는 멸시와 조롱이 담겨 있었다. 약자를 향한 멸시, 쓸모없는 자를 향한 조롱.
그녀는 지금 검의 정원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인물을 그렇게 보았다.
흉신으로의 개화가 완전히 끝나면, 그나마 조금 유용하다고 여기는 몇조차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될 터였다.
‘과거 시론이 우리를 보던 시선이 이러했을 테지.’
그저 자신이 서 있는 땅을 조금 덜 적적하고 공허하게 만들어주는 미물들, 언제든 손가락으로 꾹 누르거나 입김을 부는 것만으로도 몰살할 수도 있는.
지금의 로사에게는 가문의 일원들이 거의 그렇게 보였다. 파들러는 개중 그나마 나은 미물에 속했으나, 늘 맡긴 일을 실패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미물과 다르지 않았다.
영묘에 남은 파들러 같은 이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로사는 자신이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는데,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녀를 자극하는 건 오로지 막내, 진뿐이었다. 그녀는 오직 진을 생각하거나, 진을 볼 때만 조소가 아닌 진짜 웃음을 머금었다.
바로 몇 분 전에 파들러를 소환하는 동안, 그의 눈을 통해 진을 보며 웃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소.] [아…… 그러십니까?]로사는 파들러를 짓누를까 고민하다가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공포와 힘에 굴복하지 않아서 종종 로사를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룬칸델을 향한 경의 원한이 내 생각보다 그리 깊지 않은 모양이군요. 그간 내가 보아온 복수귀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아남아 상대를 찌르려 하였지…… 경처럼 그저 아무렇게나 끝나도 좋다는 듯 발광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노예가 아니오, 로사 룬칸델. 그건 내가 알아서 정하오.] [그래요, 경은 나의 노예가 아닙니다. 나로 말미암아 현세에 존재하게 된 과거의 찌꺼기일 뿐. 내 노예가 되기엔 쓸모가 부족합니다.]파들러는 로사의 모욕적인 말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우스운 듯 비소를 머금었다.
[말 한번 잘 하셨소. 사실 그대에게 찌꺼기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을 터, 어째서 나를 소멸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오?] [그건 경과 같은 이유입니다.]파들러가 한 번 더 웃었다.
[필요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그와 눈을 맞추는 로사.
[그렇지요. 경의 복수가 알고 보니 사실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듯이, 나도 내 힘이 이토록 빠르게 안정되어 갈 줄 몰랐을 뿐이지.]파들러의 복수가 끝났다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내가 바라는 건 룬칸델의 부흥이 아니라 타락과 파멸이오. 테마르의 후손, 그대의 어머니. 로사 룬칸델이 택한 이 힘은 결국 룬칸델을 나락에 빠뜨릴 테지.]
진과 처음으로 싸운 당시 했던 말처럼, 파들러는 룬칸델의 멸망만을 원했다.
처음 인세에 나오게 되었을 때부터 그에겐 오로지 룬칸델을 향한 맹목적인 증오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때문에 일리나는 그의 정신을 무너뜨리거나, 세뇌하는 등의 특별한 조치를 취할 필요조차 없었다. 대신 그때의 일리나는 추후 파들러를 통해 로사를 견제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 싸움 이후 흉신으로 개화한 로사를 본 순간, 파들러는 자신의 목적이 이미 달성되었음을 깨달았다.
애초에 검의 정원은 더 이상 룬칸델이라 부를 수 없는 땅이 되었고, 종내에 다다르면 결국 그녀는 이조차 스스로 파멸시키고 세상 전체를 집어삼킬 테니까.
일리나 역시 파들러를 통해 로사를 견제하려는 계획은 의미를 잃었다. 파들러 같은 강자 몇이 더해진다 하더라도, 룬칸델 내부에서 그녀를 견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된 것이다.
또한 견제할 필요가 없어지기도 했다. 흉신이 된 그녀는 자연스레 온 세상을 절망으로 물들여가고 있으니.
[그렇다면 힘을 회수한 다음 나를 소멸시키면 될 일이잖소? 왜 피차 번거로운 짓거리를 하는지 모르겠군.]로사가 대답하려는 찰나, 일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파들러 경, 많이 지치신 모양이군요. 인세에 다시 나오시고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구차하게 존재하게 된 몸과 영혼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모양입니다.”
[일리나.]“하지만 파들러 경, 이제 가주는 인간이 아니라 신입니다. 경의 존재 여부는 오로지 가주의 손에 달렸고, 제가 아는 바…… 대부분의 신들은 필멸자들의 운명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답니다.”
[운명, 갑자기 무슨 소리요?]“운명을 완수한 자들만이 소멸의 안식을 취할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경의 복수가 정말로 끝났다면, 가주께선 경이 바라지 않더라도 경을 단숨에 소멸시켰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경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파들러가 일리나를 노려보았다.
“과거 십대기사로 만인의 추앙을 받던 분이, 복수를 모두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서만 끝내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요? 아주 조금이라도, 스스로 행한 것이 있어야 쉴 자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마침 경이 그토록 증오하는 인물도 깨어났고 말이죠…….”
[베일을 말하는 것인가?]“예, 베일 룬칸델. 또 다른 신의 찌꺼기로 추정되는 그자를 직접 없애도록 하세요. 그렇게 하면, 경이 운명을 완성하기 위해 몸부림친 사실을 높이 사 가주께서 안식을 선사하실 겁니다.”
파들러는 한동안 대답이 없다가, 밖으로 나가려는 듯 몸을 돌렸다.
[……어차피 베일도 로사 경의 앞에 서는 순간 나와 다르지 않은 처지가 될 터. 가주, 혼자서 이미 세상을 끝낼 준비가 된 그대가 굳이 이딴 쓸데없는 짓을 하는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소.]“경이 가주의 뜻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나는 찌꺼기이니, 일단은 한 번 더 그대의 놀이에 동참하도록 하겠소.]그가 선실을 빠져나가자 일리나가 로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주제넘은 짓이었다면 죄송합니다, 가주님. 끝까지 빈정대고 나가는군요. 잃을 것도, 특별한 욕망도 없는 이들은 이래서 문제입니다. 무능한 주제에 욕심이 많은 것보다는 낫습니다만.”
[파들러 경의 말대로다. 경을 그냥 소멸시킬까 고민하던 찰나에 네가 가로막았군.]“아까워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너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네 행동은 건방졌으나, 그 의도가 이전처럼 날 능멸하기 위함이 아니니 넘어가겠다.]“헤아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경은 물론이고, 인간들의 운명을 존중하지 않는다. 막내만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지. 하지만 오늘 일로 만일 경이 나와 막내의 이야기에 무엇 하나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때는 포상도 내려주마. 내 생각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겠지.]일리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반드시 그리 될 것입니다. 저는 이후 어머니가 깨어나시더라도, 가주님의 가장 충실한 종으로 남을 겁니다…….”
[내일쯤 2기수를 데려와라. 지난 실패에 대한 벌을 내리겠다고 전하고.]“알겠습니다.”
* * *
한편 바멀 연합은 해저에서 전투가 끝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레 파들러가 사라졌기 때문인지, 베일은 온 하늘에 자신의 금빛 기운을 퍼뜨리며 잔뜩 분노한 기색을 드러냈다.
로사가 다시 람으로 불러들인 건 파들러 한 사람뿐이다.
[이 하찮은 놈들, 파들러가 도망친 곳을 말해라!]남은 혼돈룡과 흑선, 기사들, 그리고 라이오넬과 스탐은 고스란히 베일의 진노를 감당해야 했다.
[아니면 네놈들도 도망을 쳐, 본거지를 모조리 박살내주마. 어디냐, 룬칸델의 성이냐?]이미 라이오넬과 스탐은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파들러를 구하려고 무리하게 거리를 내줬다가 베일의 기운에 온몸이 찢어졌으니까.
‘로사가 파들러 경만 구한 이유가 뭐지? 다른 이들을 전부 다시 소환하는 일에 사용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 것 같은데.’
로사가 파들러의 눈을 통해 해저를 내려다보았을 때, 진은 그로부터 일순 로사의 힘을 느꼈다.
과연 신이라 불릴 만큼 무한한 힘이 순간적으로 자신을 짓누른 것이다.
‘……나머지는 구할 필요조차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로사에겐 파들러 이하의 존재는 그야말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로사는, 자신보다 더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이미 휴페스터 바깥으로 직접 운신할 수만 있다면 며칠 내로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으리라 확신이 들 지경.
절대로 깨부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벽이 이 바다 너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
발레리아가 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돌아보니 동료들 모두가 걱정스러운 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파들러가 사라진 직후부터, 진은 저도 모르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은 잠시 동료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로사가 더 강해졌어. 굳이 지금 파들러를 구한 이유도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동료들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로사와 결전을 치르게 될 날이 오르갈이 예상한 것보다 빨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때, 어쩌면 로사는 파들러 같은 인물들조차 신경을 쓰지 않고 혼자 모두를 감당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괴물과 달리, 홀로 싸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지. 우선 저 망나니 같은 옛 십대기사를 진정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오, 진 씨. 저 녀석한테 이제 그만 멈추라고 말할까요?”
진이 산드라에게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알아서 멈출 거다. 널 해하려는 이들이 모두 죽었으니. 다만 경이 진실을 직시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겠지.”
스릉!
진이 다시 검을 뽑았다.
“그러니 너는 베일 경에게 나를 처리해달라고 얘기해줘. 나를 제외한 나머지 동료들에게 피해가 생기는 순간, 두 번 다시 베일 경을 보지 않겠다고 협박도 해주고.”
“그러다 진 씨가 잘못되면!?”
“베일 경이 동료들을 절대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 채로만 싸운다면, 그럴 일은 절대로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