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84)
제 666화
175화. 금제(1)
베일이 깨어난 해저는 이제 일종의 방공호가 되었다.
“헤도! 이러다 사흘을 넘기겠어. 진 씨가 잘못되면 어쩌지?”
산드라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헤도는 묵묵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베일이라는 정체불명의 신적 존재와 진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늘은 1803년 4월 24일.
진과 베일의 전투는 벌써 이틀하고도 한나절이 넘도록 결판이 나지 않고 있었다. 싸움이 이토록 길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심지어 진과 베일은 해저가 아니라 해면을 무대로 골랐다. 함께 온 이들은 공간적 제약 때문에 당연히 베일이 우세하리라 여겼으나, 진은 마검사라는 특성을 살려 전투를 길게 끌어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 씨 부탁을 듣지 않았을 텐데. 아, 저 베일이란 놈 이제 내 명령도 안 들어! 멈추라고 몇 번이나 소리쳤는데.”
“……안 듣는 게 아니라 들리지 않는 걸 겁니다. 묘지 거인들이 보호막을 이리 두텁게 쳐놓았으니. 저쪽에 가서 세수라도 하고 오시지요, 잠시라도 주무시든가. 눈이 벌겋다 못해 곧 터질 수도 있을 듯 보입니다.”
헤도의 말에 묘지 거인들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저에 형성된 여러 건물들은 대부분 베일을 위한 제단 같은 것이었으나 어느 종교 시설들처럼 화장실과 세면장도 존재했다. 덕분에 해저에 남은 이들은 그리 불편치 않게 싸움을 구경하는 중이고 말이다.
물론 몸이 불편하지 않을 뿐, 마음은 다들 심란했다. 바멀 연합은 진이 다칠까 봐 노심초사했고, 헤도는 전투가 끝난 이후의 상황을 그려보기만 해도 속이 썩었다.
그러나 심란한 와중에도 해저에 있는 이들은 종종 넋을 잃고 있었다. 진과 베일의 전투가 저도 모르게 몰입이 될 만큼 훌륭한 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헤도는 무인으로서 감탄하고 있었다.
‘12기수가 가진 격 때문인가? 혼돈룡들을 허공에서 터뜨리던 베일의 권능은 단 한 번도 발현되지 않았다……. 베일은 사납게 싸우는 반면, 12기수는 상대보다 자신의 벽을 깨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
그런 싸움이 가능한 상대였나, 의문이 들었으나 헤도의 눈에 분명 진은 싸움이 아니라 수련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창-!
진이 딛고 있던 얼어붙은 해수가 깨지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바닷물을 얼리고 있던 건 진의 마력이었는데, 그는 이틀 내내 이런 식으로 디딜 땅을 형성하며 싸우고 있었다.
앞서 파들러 무리가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빠르게 수세에 몰린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풍경은 싸움을 인간과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두 신적인 존재의 대결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끈질기기는. 하지만 이제 끝이 보이지? 네가 끝장나면, 사라와 나는 멀리 떠날 것이다…….]“미친놈.”
진이 새로 형성한 빙판에 서며 말했다.
그는 처음과 달리 더 이상 베일을 존중하지 않았다. 싸우며 종종 검과 더불어 말을 섞어본바, 베일은 자신의 존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였다.
그저 사라를 향한 광적인 집착이 전부일 뿐인 전前 십대기사일 뿐이었다.
사라가 전사한 후엔 폭주하며 세상을 파괴해 십대기사에서 추방되었고, 아마 그런 이유로 이 해저에 봉인되었을 게 분명한 불명예스러운 존재.
심지어 천 년 만에 깨어나고도 현실을 부정하며 산드라를 사라로 인식하고 있으니, 진은 베일을 존중하지 않는 걸 넘어 혐오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쉬 꺾이지 않는 놈이라는 건 인정해주마, 그러니 사라가 너를 좋아하는 것이겠지. 그녀는 예전부터 그런 인간들을 좋아해 왔으니. 하지만 그 지친 몸으로 이제 어쩔 테냐?]진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싸워왔으나 전투가 그토록 길었으니 작은 부상들과 체력 저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 베일은 지금도 처음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아공간의 룬티아가 그랬던 것처럼, 베일은 무한에 가까운 권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지간한 부상은 즉시 회복하기 일쑤였으며, 사람이라면 반드시 치명적이었을 상처조차 몇 분 내로 원복되어 왔다.
룬티아 때처럼 무한한 힘의 원천을 끊어버릴 수도 없다. 베일의 권능은 아공간으로부터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본인의 것이니.
[해수를 얼릴 마력도 이제 부족한 모양이지? 겨우 두 발을 딛는 게 전부로군. 내내 요란하게 싸우더니 말이다. 그래도 남겨둔 절기가 있기는 할 텐데, 어서 꺼내고 산화하는 걸 추천해주지.]그 말처럼 진의 발 아래에서 얼어붙은 바닷물이 극히 좁았다. 단단히 고정되지도 않아, 지상처럼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진은 이상하리만치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호흡도 가쁘고 온몸에 난 벌어진 상처들에선 피가 흐르며 슬슬 체력적 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말이다.
사실 진도 이렇게까지 자신이 여유를 가질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길고 치열했던 전투 속에서, 진은 어떤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제압할 수 없는 상대로 느껴졌는데…… 이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군.’
란케 할로비체, 스마리온 프로치, 검의 정원 총공격, 룬티아 룬칸델, 가짜 요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라프라로사에서 인세로 복귀한 후, 진은 쉴 새 없이 싸움을 해왔다.
그 모든 싸움의 경험이 비로소 베일과의 전투를 통해 한 번에 만개하며 진을 각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나와 싸우다 보면 당신이 번쩍 정신이 들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지. 사라 경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차분히 사라 경의 마지막 모습과 그녀가 내게 남긴 의지를 전해 듣기를 바랐어. 당신이 정말로 사라 경을 사랑했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지금 당신이 보여주는 모습은 무엇이지? 방금도 헛소리를 지껄였어. 사라 경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두려워서, 헛짓거리를 하고 있단 말이다. 그녀는 룬칸델을 사랑했고, 나아가 세상을 구하고자 끝내 꺼지지 않는 불처럼 살았던 사람이다.”
[닥쳐라!]“사라 경은 단 한 사람이고, 그 누구도 그녀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니 사라 경을 그만 모욕해라, 네놈은 사라 경을 사랑한 게 아니라 네 사리사욕을 위해 그녀를 이용했을 뿐이다. 사라 경이 없으면 죽을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막상 사라 경이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걸 알고도 네놈은 애도하거나 그녀의 유지를 잇는 대신 현실 부정이라는 나약한 선택을 골랐다.”
베일이 진에게 검과 날개를 휘둘렀다. 검기와 금빛의 기운이 난폭하게 바다를 뒤집었는데, 진은 허상처럼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중심을 잃지 않았다.
충격을 흘린 결과였다.
베일은 개의치 않았다. 지난 전투에서 내내 진은 이런 식으로 공격을 흘리며 시간을 끌었으니 특별히 여길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베일은 등골이 싸해지는 걸 느꼈다.
‘드디어 숨겨둔 한 수를 펼치려는 것인가? 업화, 아니면 영검이나 명왕족의 검인가?’
그게 무엇이든 베일은 자신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의 눈에는 진에게 남은 힘이 정확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초장부터 절기를 준비했다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진이 자신을 위협할 만한 위력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화르륵……!
브라다만테를 막 뒤덮기 시작한 푸른 불꽃은 미약한 마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력은 이제껏 진이 가장 많이 소모한 힘이다. 바다를 얼리느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베일은 진이 마지막 절기를 영기나 뇌기가 아니라 마력을 통해 펼치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틀 전에 사라에게 직접 업화를 전수받았다며 펼친 업화는 꽤 그럴싸했는데, 그건…… 그녀의 불을 흉내 내는 것조차 되지 않겠어.]베일은 계속 검기와 권능을 난사했고, 진은 요동하지 않았다.
“이건 사라 경의 업화가 아니야, 베일.”
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하자 베일은 대답 대신 괴성을 내지르며 권능을 폭발시켰다.
마치 맹수가 횃불과 직접 닿는 걸 꺼리며 짖기만 하듯이, 베일은 계속 원거리 공격을 고수했다.
쓰러져야 하는데, 쓰러지지 않는다.
지금 베일이 느끼는 진이 그랬다. 진이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브라다만테를 휘감은 미약한 불도 꺼지지 않고 있었다.
베일이 왜, 라고 생각한 순간.
진은 그와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해저에서 지켜보던 헤도는 지금이 바로 진이 벽을 허문 순간임을 알았다. 오직 헤도만이 그 사실을 알아보았다.
“왜 지친 내가 쓰러지지 않고, 이 약한 불이 꺼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테지. 그리고 본능이 말하고 있을 거다. 나와 거리를 좁히지 말라고.”
한 번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베일의 얼굴이 빠르게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 불, 정체가 뭐냐?]베일은 자신이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우세하다고 생각했다. 진이 가진 기운은 바닥을 보인 반면 자신은 처음과 다르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하나 지금은 빠르게 생각이 달라지고 있었다.
저 불에 닿으면 반드시 진다는 확신이 베일의 전신을 압박했다.
“사라 경으로부터 시작되어 비로소 오롯이 내 것이 된 불.”
브라다만테에 맺힌 불은 계속 흐릿한 상태다.
그것이 완성된 모습이기에 더 위압적인 형상으로 변할 일은 없었다. 그 말은 곧, 진이 지쳤을 때나 충만할 때나 언제나 같다는 뜻이다.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새로운 마검.
말하자면, 진은 베일과 싸우는 동안 하나의 독자적인 궁극기를 만들어냈다.
그 검을 처음으로 펼친 채, 진은 천천히 베일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걸음에 맞춰 얼어붙은 해수가 계단 같은 길을 만들고 있었다.
“이 불이 너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지, 아니면 너를 구속하는 무기가 될지는 네게 달렸다.”
베일이 악을 쓰며 진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검이 닿기 직전에 움찔하며 멈춰 서는 모습. 흥분해서 달려들었으나, 칼날이 섞이기 시작하면 저 이상한 불꽃에 순식간에 제압당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지.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잘 생각해서 대답하도록 해라, 베일.”
지금 저 아래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그 물음에, 베일은 한동안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닫힌 십자 눈동자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지플.]“그래, 사라 경은 천 년 전 전사하셨다. 네가 사라라고 믿은 사람은 그분의 원수인 지플의 후손이자, 내 동료다.”
[왜 나를 깨우고, 끔찍한 진실을 알려주기까지 하는 것이냐. 내가 네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 끔찍한 세상에, 나는 뜻대로 죽을 수도 없는 몸인데…… 잔인하구나.]진은 베일의 반응에 조금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처음으로 대화 같은 대화를 나누자 보인 베일의 모습은, 스스로를 지킬 최소한의 껍질조차 없는 어린 짐승이었다.
베일이 마침내 사라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얻은 거대한 슬픔이, 자신에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슬픔과 별개로 진은 계속 그를 압박해야 했다.
-[사라! 그녀가 죽었다면, 나는 온 세상을 멸할 것이다!]
베일이 깨어나자마자 내뱉은 말을 실행하겠다고 날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퀴칸텔에 의하면 그는 천 년 전 이미 매일 폭주하며 세상을 파괴한 이력이 있다. 사라의 죽음으로 인해서.
“그래서, 이제 닥치는 대로 세상을 파괴할 것인가?”
그 말에 베일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저 산드라 지플이라는 여자가 그것을 원한다면 그래야겠지.]“하, 사라 경이 아니라 산드라 지플이라는 걸 깨닫고도 그 미친 짓을 멈추지 않겠…… 잠깐, 베일. 설마?”
불현듯, 진의 뇌리에 이틀 전 베일과 산드라가 나눈 대화가 불길한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어쨌거나 다 괜찮아, 사라. 넌 내가 기억하는 것과 모습이 변했고, 오른팔도 잃었으며 약해졌지만…… 이제는 내가 널 지켜줄게. 네가 나를 지켜줬듯이.]
-나를 지켜주겠다고?
-[그래, 사라 룬칸델. 내 목숨과 영혼과 권능은 오로지 너를 위해 존재한다.]
“금제…… 이미 산드라에게 맹세를 바쳐 스스로 금제를 건 거냐?”
베일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