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00)
제 777화
178화. 깊어가는 고민(5)
붉은부엉이를 타고 티칸 출격장으로 돌아온 직후, 베일은 진이 얻은 검이 ‘사라지지 않는’ 특성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 당연히 아는 줄 알았는데 전혀 모르는 눈치네.”
“얼마 전 너를 며칠 동안 상대하면서 완성된 검이다. 그 불을 발현시키자마자 널 수월하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만.”
진은 아직 새로운 마검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간 누군가로부터 전수 받은 비기나 결전기에 자신의 이름을 더한 적은 있어도,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검은 처음인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붙이는 일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룬칸델의 결전기, 비기나 사라의 업화, 명왕검 투신기처럼 거창하고 멋진 이름을 스스로 붙이자니 더더욱 민망한 기분이었다.
“네가 가진 불은 한 번 대상에게 붙으면 꺼지지 않아. 아마 네가 죽어도 꺼지지 않을걸.”
“그래? 나도 모르는 걸 네가 어떻게 아냐?”
“흥, 난 신격이 있기 때문에 초월적인 통찰력을 소유하고 있지. 네게 당한 이후, 그 불꽃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했다. 아마 그날 네가 나를 베었다면, 나는 결코 자력으로 그 불을 끌 수 없었을 거다.”
베일이 가진 힘은 태양신의 권능이다.
그리고 오르갈의 설명에 의하면, 태양신은 분명 현세에 알려진 타 신들보다 현격히 높은 격을 지닌 존재이므로.
베일이 진의 불을 끄지 못했다면 그보다 낮은 신격을 사용하는 이들도 어쩔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베일이 가진 태양신의 권능은 극히 일부일 뿐이나, 그것만으로도 베일은 어지간한 중하급 신을 능가하는 격을 갖고 있었다.
“흥미롭기는 한데, 영 믿음이 안 가는걸.”
“나도 네가 그런 불을 완성한 사실이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건 사라가 닿고자 했던 영역이거든……. 너는 그녀의 후인이니, 아주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사라가 있었다면 분명 좋아했을 테니까. 한번 그 불로 날 베어봐.”
“갑자기?”
“못 믿겠다며. 그리고 너도 확실히 그 불의 효과를 알아야 추후 사라의 복수를 할 때도 잘 써먹을 것 아니야.”
베일이 힘을 개방하며 한쪽 팔을 진에게 내밀었다. 어서 베어보라는 듯이.
“좀 꺼림칙한데. 네 말대로 불이 안 꺼지면…….”
[사라가 바라던 영역에 닿았는데 네가 네 불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그럴 리는 없으니 빨리 베. 아주 약하게, 생채기만 내라!]이내 진이 브라다만테에 불을 일으켜 베일의 팔뚝을 살짝 베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연고조차 바를 필요 없을 만큼 옅게.
[아, 더럽게 따갑고 뜨겁네!]베일이 베인 팔을 홱 빼내며 인상을 구겼다. 이내 진은 베일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고 말이다.
‘진짜로 상처에 남은 불을 베일이 지우지 못하는군…….’
베일은 진에게 보여주고자 계속 다른 손에 잔뜩 금빛 기운을 일으켜 상처 입은 팔을 지혈하듯 눌렀다.
그러나 상처에 남은 그 작은 불은 도무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권능으로 아무리 덮고 비벼도 흐릿한 불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봤지? 이건 나 정도 되는 존재도 못 지워. 그러니까 그 오르갈이라는 놈도 마찬가지일 거다. 놈이 가진 태양신의 권능이 내가 가진 것보다 격이 높아 보이지 않았거든. 네 불사조 같은 존재나 불의 신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을 거라고.]“왔나, 진.”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출격장으로 헤도와 유리아가 들어섰다.
“예, 헤도 경.”
진은 저도 모르게 헤도와 유리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산드라가 아니라 유리아와 함께 서 있는 헤도라니, 어딘가 어색한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 유리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유리아도 안녕?”
“응…… 진 오빠.”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무슨 일 있는 거야?”
아즈 밀의 계약자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어쩔 수 없이 겪은 일들과 간접적으로 체험한 여러 비극 때문에, 그간 동료들은 그녀의 정신 건강을 위해 특별히 노력해왔다.
덕분에 유리아는 늘 명랑하고 쾌활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공주로서의 지각 또한 충분해서, 티칸 왕국 모두에게 사랑받는 중이기도 했다.
“아니, 딱히 없는데 이상하게 가라앉는 느낌이네. 그래서 헤도 아저씨가 내 기분 풀어주려고 애쓰고 계셔.”
“음…… 알고 있었나? 하긴, 진실의 힘이 있으니.”
헤도가 민망한 듯 말하자 유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아저씨. 덕분에, 그리고 진 오빠가 무사히 돌아온 걸 보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아요.”
유리아는 자신의 마음이 갑자기 어지러워진 이유를, 진의 신변 때문이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킨젤로의 신본부로 향할 때쯤부터 불길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군. 그런데, 베일은 왜 계속 몸을 비틀고 있는 건가? 어디 아픈가?”
[너희들이 나타나서 얘가 불을 안 끄고 있으니 그렇지!]“불?”
진이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베일의 상처에 남은 불을 회수했다.
베일이 예상했던 대로 진의 의지가 전해지자 불은 아주 쉽게 사그라졌다.
“그날 네가 벽을 넘었다는 건 나도 인지하고 있었다만. 새로 얻은 검이 그런 힘을 갖고 있다니. 나한테도 한번 시험해봐라.”
진이 헤도에게도 똑같이 생채기를 냈다.
그 역시 쇳덩이 같은 손으로 연신 환부에 난 작고 흐릿한 불을 비볐으나 꺼지지 않았다.
“오…… 진짜로 꺼지지 않는군. 이 정도로는 베일처럼 저렇게 호들갑을 떨 만큼 고통스럽지 않으나, 제대로 베인다면 답이 없겠어.”
“깊게 베이면 경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습니까?”
“글쎄, 겪어보기 전까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고통스럽기는 할 테지, 제때 치료받지 못한 화상 환자들처럼. 이 검, 이름은 붙였나?”
“아직입니다.”
“영원화는 어떤가.”
“……영원화요?”
“그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나를 포함해, 그간 너를 상대해온 이들은 아마 다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네가 꺼지지 않는 불 같다고. 실제 검의 효과도 그와 같으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거창해서 민망한데요.”
왠지 코스모스가 ‘흑태자’라는 별명을 지어준 순간이 떠올라 닭살이 돋는 진이었다.
“원래 비기의 이름을 지을 때는 그런 법이다. 네가 배운 비기들도 다 그런 식으로 이름이 붙었을 거고. 너만 괜찮다면, 어울리는 이름 같은데.”
그렇게 비기의 이름은 영원화가 되었다.
헤도는 같은 무인으로서 자신이 진의 검에 이름을 붙여준 사실이 흡족한 마음에 송연을 꺼냈다가, 유리아가 아직 옆에 있다는 걸 생각하고는 도로 집어넣었다.
“킨젤로와 만나서 수확은 좀 있었나?”
“회의실로 가서 차근차근 설명해드리죠.”
회의실로 가는 동안 진은 조심스레 유리아를 살폈다.
표정이 조금 나아진 듯 보이긴 했으나 여전히 평소보다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아즈 밀의 힘이 유리아에게 어떤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건 아니어야 할 텐데…….’
회의실에 도착하자 순식간에 동료들이 모두 모였다.
한동안 진은 그들에게 오르갈로부터 알게 된 모든 정보를 상세히 전해주었다.
태양신과 마왕 지토, 그리고 조슈아가 맡은 걸로 추정되는 역할에 대해서 말이다.
이야기를 들은 동료들은 대부분 진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
안 그래도 벅찬 와중 고민이 깊어지는 것이다.
“후우, 흉신을 없애도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새삼 가슴이 답답해지는군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어차피 임시 동맹들과도 결국 흉신 다음에는 반드시 결착을 지어야 했습니다.”
가장 먼저 카시미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들을 모두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세상은 우리가 알던 곳이 아니게 될 겁니다. 킨젤로가 주장하는 정화를 통해 변하거나, 강림한 마왕에 의해 지옥이 되거나, 지플이 유일신이 되어 뜻대로 역사를 조작하거나, 흉신이 멸망시키거나. 그러니 우린 아무리 버거워도, 하던 일을 계속 해야만 합니다.”
모두가 아는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어쩐지 카시미르에게서 티칸의 국왕다운 위엄이 느껴졌다. 그는 왕다운 카리스마를 갖춰가고 있었다.
“카시미르 경의 말대로입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하나씩, 단계적으로 잘 해결해 나가면 됩니다. 그러니 우선은 태양신이나 마왕 같은 문제는 제쳐두고, 로사에게 집중해야겠죠.”
“그렇습니다, 주군.”
“여러분도 알다시피 로사는 현재 오르갈의 예상보다 빠르게 강해지는 중이고, 그 이유로 추정되는 건 조슈아가 생성하는 절망입니다. 오르갈이 놈을 맡아 이 사실을 확인하기로 했으니, 연락이 오는 대로 연계해서 제거하도록 하죠. 그리고…….”
진이 찬찬히 동료들과 눈을 맞췄다.
“로사와의 결전을 최대한 앞당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로사를 강화시키는 건 조슈아의 절망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에 퍼져 평범한 인간들을 잠식하고 있는 혼돈.
그 역시 바멀 연합과 임시 동맹들이 세계 각지의 오염 지역에 임무를 나가며 최대한 억제 중이나, 한계가 있었다.
특히 휴페스터 지역은 그들조차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침식된 상황이니, 세상의 절반은 이미 절망의 도가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히, 절망은 싸움이 더 늦어질수록 더 많이 생성될 겁니다. 이건 직감이지만, 로사는…… 우리가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생각할 때를 적기로 보고 있을 것 같군요. 그때 덤벼드는 우리를 꺾어야, 절망이 가장 극대화될 테니까.”
진으로서는 그 이유가 아니라면 그만한 힘을 갖고도 검의 정원에만 있는 로사를 납득할 수 없었다.
“물론 아주 빠르게 치자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로사가 예상치 못한 시점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로사가 원하는 것보다 절망하지 않아야 하고, 그로 인해 로사가 완성되지 못한 때를 노려야 하죠…….”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지만, 애초에 로사가 ‘절망을 사용한다’는 것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진과 동료들은 이런 식으로 매번 어렵게 추론하고, 그 결과를 확신할 수도 없었다.
인간이 아니라, 흉신이 된 존재를 상대하는 일이니 말이다.
“오늘부터 임시 동맹들과 연계해서 이런 예상들을 일부라도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할 겁니다. 대략적으로라도 로사가 완성되는 속도와 절망의 관계가 확인되면, 그때 결전 날짜를 정하겠습니다.”
진이 거기까지 말한 순간, 한 칠색조 대원이 다급하게 회의실을 찾았다.
“국왕 전하, 진 경! 방금 메리 경이 복귀하셨습니다!”
“어서 안내하게!”
메리는 얼마 전 토나 형제 등과 더불어 휴페스터 내의 생존자들을 위해 구출 작전을 떠난 상태였다.
막 생존자 일부를 구출해 돌아온 그녀의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다.
그녀는 진을 보자마자 괴로운 듯 질끈 눈을 감았다.
휴페스터에 들어섰다가, 디푸스를 마주치고 왔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