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99)
제 777화
178화. 깊어가는 고민(4)
진은 킨젤로의 신본부에 와서 보여준 베일의 모든 돌발 행동들이 마음에 들었다.
제피린의 협박이 불쾌했고, 오르갈의 농담 같지 않은 농담에 한 방 먹은 기분이 들었건만. 베일이 자신을 대신해 시원하게 나서주고 있었다.
킨젤로는 베일의 막말에도 한동안 대답 없이 눈동자만 껌뻑였다.
“글쎄, 베일. 좀 참는 게 어떨까? 괜히 덤비면 오히려 네가 터질 것 같은데.”
진은 베일을 말리는 듯 말했으나, 실은 그 반대다.
지금 진이 한 말은 한 번에 두 가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첫째는 오히려 베일을 더 자극하는 것이고, 둘째는 킨젤로 측에 자신은 나름대로 베일이 예를 갖출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티를 내는 것이다.
예상대로 베일은 진의 말에 한층 더 분개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거든!]“아니긴 뭘 아니야, 네가 분명 진다. 오르갈이 진짜 마왕은 마왕이네. 그러니까 더 말썽 부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진으로서는 오르갈이 베일을 상대하는 모습을 한 번 보고 싶기도 했다.
‘결전 때는 오르갈의 전투를 자세히 볼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온전히 로사에게 집중해야 할 테니.’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힘을 되찾은 오르갈이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미리 봐둬서 나쁠 건 없었다. 검황성 테러 때와는 차원이 다를 테니까.
[하, 진. 이건 진짜 네가 뭘 몰라서 하는 말이야. 그래, 쟤가 나보다 강할 수도 있지.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무엇을?”
[쟤는 날 못 죽여.]“그야 당연한 이야기지. 우린 임시 동맹이라니까? 넌 최중요 전력 중 하나고.”
[단지 그런 뜻이 아니라, 더 본질적인 문제야. 저 녀석이 가진 힘으로는 나를 죽일 수 없어. 그래서 나는 맞더라도 때리고 싶은 거지.]진이 오르갈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뜻인지 설명하라는 듯이.
[창성의 기운,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없는 한 생명의 흔적을 완벽하게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아주 드물게 그런 존재들이 있지…… 네가 과거 상대했던 흑해의 왕처럼.]“굳이 완벽하게, 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살해만 불가할 뿐 봉인이나 다른 건 가능하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네놈들은 글리엑이 깨어난 그때 코빼기도 비추지 않은 거고 말이야…….”
검황성전을 떠올린 진이 이를 악물었다. 당시 킨젤로는 자신들이 글리엑전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진의 충성을 요구했었다.
[베일 경, 정말 나와 싸우고 싶다면 나로서는 그대의 힘을 일부 봉인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동맹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야. 그러니 진이 더 적극적으로 말려주겠지.]“어, 그렇게 할 생각이다. 오늘은 유독 재수가 없군, 오르갈.”
[피차일반 아니겠나.]창성, 혹은 그에 준하는 기운이 없이는 생명의 흔적을 죽일 수 없다.
진은 잠시 그 사실에 대해 생각했다.
‘결국 추후 오르갈을 죽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창성의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군.’
애초에 오르갈이 가진 힘을 생각하면, 태양신의 권능이 가진 특성을 제하더라도 창성의 힘은 당연히 필요할 터였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날 봉인지에서…… 베일은 왜 내게 그런 식으로 패배를 인정한 거지? 오르갈의 말대로라면 난 베일을 죽일 수 없을 텐데.’
지금 오르갈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걸 보면 베일은 결코 상대가 보다 강하다고 해서 굴복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베일은 태양신을 만난 적은 없으나 본인이 신적인 존재라는 건 인지하고 있으며, 그만큼 오만하고 제멋대로였다.
‘내가 사라 경의 후인인 걸 알았기 때문인가?’
지금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진이 눈짓하자 베일이 씩씩대며 오르갈을 노려보던 눈을 돌렸다.
“이만하면 대충 서로 약속한 바는 지킨 것 같군, 오르갈. 이제 로사에 대해 상의나 좀 하자고, 동맹으로서.”
[로사가 내 예상보다 빠르게 완성되어 가는 이유에 대해서?]“그래. 로사의 행동에 이상한 점도 몇 가지 있다.”
[말해봐라.]“우선, 지금 로사는 칼드란 설원에서 널 반죽음으로 몰았던 파들러 경 같은 강자들조차 필요치 않을 만큼 거대한 악이 되었다. 근거를 설명하기는 어려워, 내가 직접 느낀 것일 뿐이니.”
[네가 이 문제에 대해 헛소리를 할 리는 없으니 믿도록 하지.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도 하고.]“그런데 그런 로사가, 갑자기 조슈아를 다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이전보다도 더 무능한 느낌을 줬고, 최근에 맡았던 일들을 모두 실패했어. 내가 모두 가로막았지.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래. 아킨에서 놈을 만난 이후, 나는 계속 고민했다. 대체 로사가 그런 폐급을 곁에 두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진은 몇 초쯤 생각을 정리한 후 오르갈과 눈을 맞췄다.
“불현듯, 첫 회담 때 당신이 했던 말이 떠오르더군.”
-그녀의 딸들이 소망하는 건 단 하나다. 내 옛 연인, 헬루람의 재림.
-그래서 인간을 제물로 사용하는 건가?
-정확히는 인간 그 자체가 아니다. 인간의 살점과 뼈 같은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효율이 썩 좋지는 않아. 진짜는 절망이지. 순도 높은 대량의 절망만이 헬루람을 깨울 수 있다.
절망.
진은, 어쩌면 로사가 조슈아를 통해 순도 높은 절망을 얻기 위해 그를 이용하고 있다는 가정을 떠올렸었다.
진이 이런 내용을 설명하자 오르갈은 조금 놀란 듯 눈동자가 커졌다.
“그게 아니라면 로사가 그 쓰레기를 곁에 둘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군, 진 룬칸델. 그렇다면 흉신의 완성이 빨라진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겠어.]“당신이 보기에,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나?”
[룬칸델의 2기수는 너무 존재감이 없던지라 잊고 있었는데. 인간의 질투심이란 때로 신들조차 놀랄 만큼 대단하지. 그가 가진 열등감의 크기가, 흉신에게도 유의미할 만큼 깊고 어두운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나 역시 전혀 생각지 못한 영역이로군.]“그렇다면…… 조슈아가 맡은 일을 잘 해내는 게 로사에게는 오히려 불편한 일이라는 뜻이란 말인가.”
하지만 로사가 조슈아의 절망을 수확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놈에게 져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무엇이든 로사가 맡긴 일을 성공해냈다는 건, 곧 진과 주변인들이 다치거나 죽는다는 의미니까.
해결책은 단 하나.
조슈아를 찾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로사가 그를 아예 사용하지 못하도록.
[그렇겠지.]“조슈아를 찾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대처법이겠군.”
[흉신이 직접 보호하고 있을 테니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만한 쓰임새가 있는 인물을 로사가 아무렇게나 방치할 리는 없었다. 조슈아가 알아보지 못할 만큼 교묘하게, 그러나 누군가가 절대로 끝장낼 수는 없을 만큼 치밀한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을 터였다.
그게 베일이 아킨의 숲에서 조슈아를 놓친 까닭이기도 했다.
“보호, 보호라니…… 윽.”
돌연 진은 끔찍한 구토감이 몰려드는 감각에 휩싸였다.
혐오스럽기 때문이었다.
끝내 절망 생산용 인형으로 추락한 다음에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자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자식을 나락에서 더 깊은 나락으로 보내고도 그저 본인에게 필요하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어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괜찮나?]진은 미친 듯이 솟구치는 헛구역질을 간신히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아무튼, 내 가정이 맞든 틀리든 조슈아는 결전 전에 반드시 제거해야겠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조슈아 룬칸델이 살아서 절망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건 네 절망이 될 테니 말이다. 너는 조슈아보다 흉신에게 훨씬 의미있는 존재이니…… 네 절망은 그의 것보다 훨씬 좋은 재료가 될 것이다. 헬루람을 일깨우는…….]진은 이제 정말 절망이 헬루람을 재림시키는 일에 사용되는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가 얼마 전 본 로사는, 헬루람을 깨우는 게 아니라 본인이 그만한 재앙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듯 보였었다.
무엇보다도 진은 로사가 예언자처럼 헬루람에게 충성을 바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 로사가, 대체 누구의 밑으로 들어간다는 말인가?
‘빌어먹을…… 고민이 계속 깊어지기만 하는군.’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 막, 오르갈이 옛 힘의 일부를 되찾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지금부터 할 일이 정해졌군, 오르갈. 계속 병상에서 쉬었으니 이제 움직일 때가 되었어.”
[나더러 조슈아를 죽이라는 것인가?]“힘을 그 정도만 되찾아서는 어렵다는 얘기를 하지는 않겠지?”
“좋아, 점점 더 베일을 데려온 일에 보람을 느끼게 만들어주는군. 다음에 만날 땐 유의미한 소식을 기대하도록 하지.”
진이 돌아가려는 듯 일어서자 오르갈이 손을 휘저어 강철 차원문을 열어주었다. 차원문 너머로 티칸의 영해가 보였다.
[원한다면 사용하도록 해라.]겉으로는 배려처럼 보이나, 진은 이것이 배려를 가장한 경고에 가깝다는 걸 알아보았다.
동맹으로서 허튼짓을 하면, 언제든 티칸을 순식간에 찾아갈 수 있다는.
이전과 달리 오르갈은 차원문을 여는 게 달리 힘에 부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타고 온 배가 있다. 잘 알겠지만, 공간이동함이지.”
진이 같은 경고로 응수하자 오르갈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뭐. 당신이 말했듯이, 피차일반이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이후 킨젤로의 신본부를 빠져나와 붉은부엉이에 탑승했을 때, 베일은 의아하다는 듯 진을 쳐다보았다.
“야, 진.”
“왜?”
“내가 처음에 너한테 패배한 건 네가 가진 불 때문이야.”
진은 갑자기 그 말을 왜 하냐고 물으려다가, 아까 킨젤로의 회의장에서 그 이유를 고민했던 걸 떠올렸다.
“그래? 아까 문득 궁금하기는 했다. 단지 내가 더 강해서는 아닐 것 같았는데, 불 때문이라면 그게 맞았던 건가?”
“아니, 넌 모르는 모양이지만 네가 가진 불은 아주 특별해. 그리고 그 불은 그놈에게도 통할 거다. 그러니까, 언젠가 꼭 나랑 같이 그놈을 패자.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