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05)
제 777화
179화. 피할 수 없는 함정(5)
“……제국의 피해 상황이 그 정도라는 말인가?”
카시미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막 제트로부터 보고를 받은 참이었다.
제트 역시 보고서에 적힌 숫자들을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기사, 마법사를 비롯한 군 인원 사망 약 3만.
민간인 사상자는 현재까지 집계된 것만 80만에 육박하며, 포로로 잡혀간 양민, 귀족도 5만 이상…….
진과 동료들도 보고서를 확인하며 이마를 짚었다.
디푸스를 필두로 한 혼돈의 군대가 임시 동맹의 영토를 친 건 불과 사흘 전이었다.
고작 사흘 만에 그토록 많은 무고한 사람이 다치거나 휴페스터로 잡혀갔다.
보고서에 적힌 숫자들에서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얼마 전 콰울 님, 아멜라 경의 기술, 장비를 지원한 덕에 조금이나마 막아낸 결과라더군요. 그마저 없었다면…… 더 심각했을 겁니다, 전하.”
제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흘 전.
루테로 마법 연방과 제국을 공격한 건 디푸스와 조슈아뿐만이 아니었다.
라이오넬과 스탐, 그리고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영묘’의 기사들도 같은 시각에 인세를 공격하고 있던 것이다.
킨젤로의 영역인 수인들의 땅도 마찬가지였다.
그쪽은 그나마 오르갈이 강철문을 통한 차원 이동으로 대응한 덕에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나, 5천 이상의 수인과 더불어 차가운 조가 붙잡혔다.
“우리만 공격받지 않은 이유는…… 불명인가.”
라타의 말처럼 동맹 중 오직 티칸만이 공격당하지 않았다.
“임시 동맹의 결속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작일지도 모르지.”
“티칸을 치는 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놈들은 연방에서도 드락카 본진을 공격할 땐 근처에서만 맴돌았어. 절망 생성을 위한 학살과 인질 수급이 목적이라면, 여긴 적합하지 않아.”
작은 섬나라인 티칸과 달리 다른 동맹들의 영토는 매우 드넓다.
그들이 흉신의 갑작스러운 침공에 제대로 대응치 못한 이유였다. 드락카 본진 근처를 치다가 갑자기 밀쿤 왕국에 나타나고, 유카유카 시장 인근을 공격하다가 한순간에 미트라 대사막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식이었으니까.
“……혹은 단지 우리를 아껴서 마지막에 먹는 음식 정도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진이 입을 열자 시선이 모였다.
“제국, 지플, 킨젤로. 임시 동맹들의 땅에서 잡혀간 포로만 8만에 달합니다. 우리 바멀 연합 역시 그들을 구하러 휴페스터로 갈 수밖에 없으니, 로사는 그때 우리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절망을 수급하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베라딘이 만든 마법의 지도 속, 절망의 반점들이 커지는 중이었다.
혼돈의 군대로부터 직접 타격받은 지역들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글리엑전부터 전 세계를 짓누르던 일반인들의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 상태였다.
곳곳에서 피난민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가장 안전한 땅이라 여겨지던 드락카 본진마저 떠나는 양민들이 생겼으니,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이 찾아오려는 땅은 티칸이다.
겁에 질린 군중들은 티칸도 결코 안전 지역이 아니라는 설명을 믿지 않았다.
“진 공자의 예상대로라면…… 흉신과 4기수는 피할 수 없는 함정을 파둔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군요.”
세계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동맹은 이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만 했다. 동맹은 흉신에게 대항할 충분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휴페스터로 가서 잡혀간 사람들을 구출하고 침략자들을 제거해야만 했다.
그게 아니라면 세상을 뒤덮은 공포와 절망은 계속해서 배가될 거고, 그건 모두 흉신의 완성에 사용될 것이다.
“엇, 저거 제피린 아닙니까?”
“지플의 소가주도 같이 왔군요.”
라타가 창밖을 가리켰다.
먼 허공에 막 강철문이 형성되었는데, 그 속에서 제피린과 베라딘이 함께 나왔다. 그들은 곧장 회의실로 들어섰다.
베라딘은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인 반면 제피린은 무척이나 초췌했다.
그녀는 오르갈을 도와 내내 수인들의 땅 전역을 지키고, 방금까지 리칼튼 인근을 정찰하다가 티칸을 찾아온 상태였다.
“아, 우리 주인이 힘을 좀 되찾자마자 이렇게까지 부려먹다니…… 당신은 분명 죽으면 지옥에 갈 거예요, 진 경.”
리칼튼 정찰은 진의 의견이었다. 오르갈은 동맹 중 가장 뛰어난 기동력을 가진 데다 변수에 대응할 지식과 힘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가 정찰을 맡는 게 옳았다.
“왜 오르갈이 직접 오지 않았나?”
“지금 그걸 말이라고? 방금까지 개고생을 하느라 지쳤으니 나를 대신 보내신 거겠죠? 그 와중에도 지플 측 이동 시간이 낭비되지 않도록, 여기 베라딘 공까지 챙겼으니 감사한 마음을 갖도록 하세요.”
“그러도록 하지. 돌아가면 오르갈에게 고맙다고 전해줘.”
진이 순순히 감사를 표하자 제피린은 잠시 눈동자를 끔뻑였다. 분명 어차피 같이 해결해야 할 짐이 아니냐며 비아냥대리라 예상한 것이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요.”
“리칼튼 정찰에선 성과가 있었나?”
“뭐, 경이 예상했던 대로 포로로 잡힌 인간들 전원이 리칼튼에 모이고 있었어요.”
“포로들이 겪는 대우는?”
“뻔한 수준이죠. 채찍질 당하고, 어디론가 끌려가고. 주인께선 그들이 차례대로 일종의 고문 같은 걸 당하는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고문……이라.”
“잡혀간 포로 전체가 동시에 고문을 당하는 건 아니었어요. 혼돈의 병력이 적게는 삼십, 많게는 백여 명 정도씩을 끌고 어떤 건물로 들어갔는데. 두어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다음 인원을 끌고 가더군요.”
“그 시간 동안 삼십에서 백여 명을 고문하고 죽이는 식으로 절망 수치를 높이는 건가?”
“그것까진 모르죠. 하지만 여기 베라딘 공은 이 얘길 듣더니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듯 보였습니다.”
제피린이 말을 끝내자 베라딘이 지도를 펼쳤다.
티칸에선 태양신의 잔존 기운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인지, 지도는 드락카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연하고 불안정한 형태였다.
“다들 리칼튼을 한번 보도록 하지.”
베라딘이 손가락으로 리칼튼을 가리켰다.
“진, 나는 그날 이후 계속 지도를 관찰했다. 특히 리칼튼을 중심적으로 살펴봤는데…… 지금 모두가 보는 것처럼, 절망의 반점은 오히려 작아지고 있어.”
진과 베라딘은 사태 이후 당연히 리칼튼에 있는 절망의 반점이 커지고 짙어지리라고만 예상했다.
하지만 베라딘이 처음 확인한 내용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포로들이 리칼튼에 도착할 때마다 오히려 반점이 옅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현상은 하루 단위로 바뀌어. 하루 동안 작아지고 다음 날은 다시 커지는데, 반드시 전날보다 농도가 짙어진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겠나?”
“희망을 준 다음에 다시 절망시키고 있다는 뜻이군.”
“그래. 검의 정원은 두어 시간마다 포로를 삼십에서 백여 명씩 데려가서 정신 조작 같은 걸 하는 중일 거다. 우선 희망을 주고, 다시 그걸 꺾고. 이런 식으로 포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절망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지.”
“제피린, 오르갈과 네가 확인한 그 고문 추정 장소는 리칼튼이 유일한가?”
“네, 리칼튼 외로 가는 포로는 전혀 없었답니다.”
“내 지도에서도 리칼튼 외에 특별히 혼돈의 총량이 갑자기 늘어나는 지역은 없었다. 전반적인 상승이 있기는 했지만.”
“더 확실해졌군. 최대한 빠르게 동맹 전체가 병력을 꾸려서 리칼튼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겠지. 그런데 최대한 빠르게, 라고 했는데. 언제를 생각하고 있는 건가?”
“이틀 내. 아니, 가능하다면 내일 당장이라도.”
진의 대답에 베라딘과 제피린이 동시에 어깨를 으쓱였다.
“이틀, 혹은 내일이라니. 그건 너무 빨라.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함정에 대비할 필요도 있다. 뻔하고 당할 수밖에 없는 함정이라고 해도.”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진 경. 지금은 일단 혼돈의 군대가 인세 습격을 멈췄지만, 또 언제 나타날지 모릅니다.”
“물론 우리로서는 혼돈의 군대가 대규모 순간 이동으로 인세를 침공하는 주기를 예측할 수 없으니, 언제까지고 기다리자는 뜻은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보름 정도는 추이를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군.”
진은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흉신이 지금 침공을 멈춘 이유는 너희가 도착하기 직전에 확인이 되었다. 너희들이 정찰하고 지도를 확인하는 동안, 우리도 놀고 있지 않았거든…….”
* * *
리칼튼 성 최상층.
일리나가 디푸스의 상체 곳곳을 손으로 짓누르며 진땀을 쏟고 있었다. 마치 억지로 지혈을 하듯이.
[젠장! 당신까지 이런 식이면 나더러 어쩌라는 것이죠? 실패하는 건 조슈아, 그 머저리 하나만으로도 차고 넘친다고요.]일리나의 성난 목소리에 디푸스는 코웃음을 쳤다.
[책임을 내게 돌리지 마라, 예언자. 네가 사전에 이 불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이런 차질이 생길 일은 없었으니.]불.
디푸스의 몸에 들러붙은 영원화는 아직도 꺼지지 않고 그의 육체를 잠식하고 있었다.
일리나는 그걸 끄기 위해 사흘 전 검의 정원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것이고.
일리나로서도 도무지 불을 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불을 끄겠답시고 와서는 며칠째 헛수고만 하는 중이지, 너는.] [이봐요, 디푸스 룬칸델. 이 불을 곧바로 없애는 건 가주께서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로사는 현재 절망을 흡수하느라 운신이 불가한 상태였다.
[하, 됐습니다. 당신과 싸워봐야 가주께 결례를 저지르는 일일 뿐이겠죠. 어쨌거나, 이제 조금은 불이 진정되고 있으니 곧 해결될 겁니다. 이것 때문에 침공도 멈췄으니…… 다음부터는 조심하도록 하세요. 가주께 들어서야 할 절망이 예정보다 작아졌습니다.] [어머니께 빌붙은 기생충이 끝까지 기어오르는구나. 너, 아까 히스터가 숄 제후국에 남은 차원문을 확인하고 간 것은 알고 있나?]디푸스의 말에 일리나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게 무슨……?] [히스터는 우리가 침공을 멈춘 이유를 알아내서 돌아갔을 것이다. 너는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과연 네가 조슈아를 무능하다며 욕할 자격이 있는지 잘 생각해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