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24)
제 777화
182화. 임시 동맹의 맹점(2)
진은 카시미르와 함께 티칸궁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메리와 토나 형제를 비롯한 동료들 몇이 지하 감옥에서 린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감옥에 있으나, 린은 묶여 있는 대신 책상에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이었다.
[오셨소, 12기수.]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진을 맞이했다.
“호법회장. 아니, 흑검회장이라 불러야겠군요. 로사가 경을 흑검회장으로 임명했다 들었습니다.”
[나는 호법회로서 가문의 법도도 지키지 못했고, 흑검회로서 반역자들을 처단하지도 못했으니 어떤 직책도 맡을 자격이 없소. 그냥 이름으로 부르시오.]진은 대답하지 않고 린의 앞에 앉으며 혼돈에 검게 물든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린은 분명 혼돈에 완전히 잠식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전혀 이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어떤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기도 했다.
진은 린으로부터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기로 각오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읽어내고 있었다.
“어제 경께서 우리에게 알린 정보에 대한 진위 조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린이 티칸에게 전한 정보는 로사와 함선 람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에 의하면 현재 로사는 휴페스터에 대한 통제력 일부를 잃은 상태이며, 함선 람에는 로사가 모르는 한 가지 비밀이 존재했다.
[다행이군.]“유리아의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솔직히 믿기 어려웠습니다. 경이 찾아온 것 자체가 로사의 계략이 아닐까, 혹은 이제 흉신 쪽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다시 우리 쪽에 붙으려는 건가. 그런 의심이 들었단 뜻입니다.”
[이해하오. 그럴 수밖에 없겠지.]“왜 처음부터 저항군에 합류하지 않고, 예언자와 계약을 맺은 겁니까?”
[내가 처음부터 저항군을 택했다면 지금 그대는 흉신의 약점에 대한 정보를 전혀 듣지 못했을 것이오. 나 또한 함께 싸우고 싶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그래서는 가망이 없다고 여겼소.]“그래서 타락한 검의 정원에서 내부자가 되기로 했다?”
메리가 묻자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자가 되어야만, 어떤 식으로든 기회가 오리라 생각했지…….]“디푸스 오라버니가 사로잡힌 날, 경이 날 살린 건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손으로 직접 죽인 가문의 기사는 셀 수가 없을 것이오.]린이 찻잔을 내려두며 말했다.
진은 그녀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린이라는 ‘개인’으로서는, 분명 저항군과 함께 싸우다 명예롭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 터.
그러나 린은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로사의 명령에 복종해 왔다.
가문을 위해서라면, 개인적인 괴로움과 죄책감 따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설령 역사에 끔찍한 배신자로 기록되는 한이 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나 역시도 고인이 된 4기수처럼…… 예언자의 혼돈에 결국 굴복해서 본래의 의지를 잊어가고 있었지. 그대가 이번에 예언자를 죽이지 못했다면, 난 정말로 배신자가 되었을 터.]잠시 정적이 흘렀다.
[결전의 날은 정했소?]“아직입니다. 아마 내일 회의에서 정해질 것 같군요.”
[간밤에 한 이야기지만, 적어도 한 달 내로는 움직이는 게 좋을 것이오. 나와 남은 기사들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소. 예언자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생명도 꺼져가는 중이거든.]“예언자와의 계약 때문입니까?”
[그렇소. 어쨌거나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휴페스터를 치면 아무것도 도울 수 없소.]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야겠군. 자리를 더 비우면 흉신의 의심을 살 것이오.]린이 일어섰다.
[이게 아마 우리의 마지막 만남일 것 같군, 12기수. 그대와 임시 동맹이 휴페스터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린 함선 람의 정지에 전력을 기울이겠소.]함선 ‘람’의 구동을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법.
그것이 린이 내부자가 되어 얻은 정보였다.
[또한 람이 완전히 정지하기 전에도, 그 끔찍한 함선이 바멀 연합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로사는 함선 람의 통제권이 오로지 자신에게만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죽은 예언자는 언젠가 로사를 처리해야 할 날이 올 때를 대비해 람의 통제권을 뺏어올 준비를 해두었었다.
그 사실을 ‘세뇌’가 끝났다고 판단된 린에게 모두 알렸었고 말이다.
린이 진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진은 몇 초쯤 그녀의 손과 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부디 로사를…… 흉신을 꺾어주시오, 12기수. 나의, 우리의 룬칸델이 이렇게 끔찍하게 멸망하는 걸 막아주시오.]진이 린의 손을 맞잡았다.
수십 년 동안 오직 룬칸델이라는 가문에만 헌신한, 늙은 원로의 단단하고 꺼끌꺼끌한 손바닥이 느껴졌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이 직접 린을 배웅했다. 지하 감옥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로 나가자, 막내 사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메사가 린의 앞에 서며 고개를 숙였다.
“대고모님.”
[메사.]린이 메사와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가주, 시론 경은 이 세상의 지존이었으나 결국 지금까지도 흑해를 전전하시는 중이고, 로사는 흉신이 되어 가문과 세상을 파멸에 밀어 넣고 있다. 그러니 너희는 내 세대보다 훌륭한 군주를 모시는구나.]“주군께, 그리고 가문에 부족함 없는 기사가 되겠습니다.”
[그래……. 12기수가 가문을 수복하면 너희가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뒷일을 맡기고 편히 떠나도 되겠느냐?]“……예, 대고모님.”
[훌륭하구나.]남은 룬칸델들은 떠나는 린이 바다 저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 * *
휴페스터.
혼돈의 군대가 검의 정원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혼돈에 물든 탁한 눈동자들이 옥좌에 앉은 로사를 올려다보았다.
흉신이 된 후, 그녀는 처음으로 피로한 기색을 내보이고 있었다. 눈가는 어둡고, 입술은 메말랐으며 머리칼은 힘없이 축 늘어진 모습.
본래 리칼튼전에서 얻었어야 할 혼돈은 제대로 흡수되지 못했고, 디푸스에게 나눠준 권능의 한 조각이 완전히 소멸했기 때문이다.
광란.
로사는 인간이었던 시절부터 줄곧 사용해온 제 애검을 쓰다듬었다. 때때로 칼날에 손가락이 베이며 검은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로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 듯 멍하게 칼날을 매만질 뿐이었다.
그런 로사를 지켜보는 사령관급 기사들은 다소 불안감을 느꼈다. 완전히 마성에 젖은 중하급 기사들과 달리 그들에겐 인간으로서의 의지와 이성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들은 리칼튼전에서 대패하는 경우를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승을 거두고 임시 동맹이 정비를 끝내기 전에 새로이 침공을 시작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디푸스와 예언자는 죽었고, 로사는 자신의 군대를 앞에 두고도 지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군대가 모두 모였소, 가주.]이윽고 라이오넬이 로사의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로사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광란을 매만졌다.
싸늘한 바람이 때때로 그녀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가주.]라이오넬이 한 번 더 로사를 불렀다. 이성이 남은 고위 기사들의 불안감이 자신의 등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오직 파들러만이 비소를 머금은 채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식이었다.
로사는 삼십여 분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전대 가주, 라이오넬 경.] [하명하시오.] [자식을 사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예상치 못한 느닷없는 질문, 라이오넬은 로사의 저의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건 왜……? 혹, 4기수의 죽음 때문이오?] [그 아이는 저기 있는 벌레와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났으나, 각별한 애정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지.]그 말에 옥좌 아래 서 있던 조슈아가 잠시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언자가 죽은 이후, 조슈아는 더 이상 특별한 절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예언이라는 희망이 사라진 까닭이었다.
[질문에 대답을 해주시지요.] [있소.] [그렇다면 경은 그런 자식에게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연달아 나오는군……. 나의 경우는, 가문을 물려주었지. 바로 이곳, 검의 정원을 말이오.]그러자 로사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둡기만 하던 눈가에 생기가 번지고 있었다.
[나 또한 그 아이에게 이곳을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막내와 결착을 내기 전에. 어미로서, 제대로 된 선물을 하나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놀이터 같은 것을.] [놀이터라고 하셨소?]로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부터 성을 쌓겠다.] [가주, 그게 무슨.] [막내를 위한 마지막 무대다. 정교하고 아름다워야 하며, 분명 신화가 될 그 아이의 죽음에 어울리는 인물들이 있어야 할 테지.]라이오넬은 어떻게 우려를 표해야 할지 고민했고, 군대에선 술렁이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들은 허공에 뻗은 손을 위로 들어 올리는 로사를 보며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후아아악……!
로사의 손길을 따라 별안간 도열의 좌우로 검은 기둥이 솟구친 것이다.
도화지에 그림이 그려지듯, 그녀가 손짓할 때마다 ‘성’의 골조가 생겨나고 있었다.
창조, 신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아울러 옥좌 뒤편에서부터 창백한 기운이 해일처럼 거대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영묘에서 새로운 영혼들이 빠져나오는 모습이었다.
라이오넬은 그들로부터 전해지는 힘을 느끼며 전율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성을 쌓는 동안 너희들이 할 일은…… 그저 이곳이 허전하게 보이지 않도록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결전에 임할 준비를 하라. 나의 아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로사가 납검하자 라이오넬과 군대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영묘를 빠져나와 육신이 형성되기 시작한 룬칸델의 옛 영웅들도 로사를 경배하며 검례를 올렸다.
그리고 로사는 도열 중앙에 서 있는 흑검회, 그중에서도 린에게 잠시 시선을 두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이다.
린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 로사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