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48)
제 777화
184화. 숙명을 넘어(21)
‘아, 이 꼬마 놈…… 굳이 혼자 싸우겠다는데도 왠지 모르게 불안하지가 않네.’
누메루스의 피로 회복한 체력은 다시 바닥이 났을 거고, 흉신에겐 아직 숨겨둔 비장의 수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성큼성큼 흉신을 향해 나아가는 진의 뒷모습을 보는 게,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그걸 넘어 진이 흉신에게 패배한다는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설명하기 어려운 확신이 직감으로 다가오고 있을 뿐. 진의 룬칸델이 흉신의 룬칸델보다 더 빛나고 있을 뿐.
‘못 본 사이에 많이 컸구만.’
무라칸이 뒤돌아 혼기의 폭풍으로 숨결을 토했다.
숨결은 종잇장을 찢듯 폭풍 한쪽을 뚫어 무라칸이 나갈 입구를 만들었다.
“고백은 나가서 직접 해. 길리도 싸우고 있을 테니.”
[유치하게 고백은 무슨…… 아니, 이 미친 꼬마가! 여기 딸기파이도 데려왔어? 이 위험한 곳에?]“반드시 참전하고 싶다더라.”
[그래도 그렇지! 아오, 얼른 가봐야겠네!]사실 길리는 아직 지난번 전투에서 입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라 참전하지 못했다.
무라칸은 진의 미소를 보지 못한 채 황급히 혼기 폭풍을 빠져나갔다.
[딸기파이여-!]쩌렁쩌렁 전장 전체를 흔드는 무라칸의 목소리에, 일순 바깥쪽 전장에 있던 이들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두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지상을 노려보고 있는 무라칸을 보며, 적들은 물론이고 아군들마저 일순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딸기파이를 해한 자, 그 누구도 이곳에서 살아서 다시 땅을 밟을 수 없으리라! 그 누구도, 이 무라칸이 결단코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뭐, 뭐라는 거야!?”
“딸기파이가 무엇이오?”
“12기수를 두고 왜 혼자 나온 거지?”
한창 생사를 넘나들던 와중 들려오는 뜬금없는 고백은 그 누구라도 당황스러울 것이다.
눈치 좋게 대충 상황을 파악한 동료들은 민망한 마음에 이마를 짚었고, 동맹들은 말뜻을 헤아리느라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러나 무라칸이 가진 힘은 진짜다.
단번에 밀리고 있던 아군 병력을 위기에서 끄집어내고, 적들을 무자비하게 짓이길 수 있는 괴력.
한 번 더 무라칸이 진노가 담긴 포효를 퍼뜨리자, 혼돈의 기사들이 한 무더기씩 주저앉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몸이 되었는데도 무라칸이라는 흑룡의 격에 짓눌린 것이다.
아군들 중에도 정신력이 부족한 이들은 무라칸의 포효에 타격을 받았다.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아군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결코 아군들을 더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일종의 충격요법에 더 가까웠다. 쓰러진 이들은 모두 무라칸의 포효를 듣기 전까지 흉신의 정신 공격에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으니까.
고통스러울지언정, 포효가 그들을 정신 공격으로부터 일깨우고 있었다.
제피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무라칸의 기운에 전율하고 있었다.
[아니, 근접하긴 했으나 아직도 천 년 전에 비할 정도는 못 된다.]오르갈의 대답에 제피린은 놀라운 마음을 억눌렀다.
[……정말이에요, 주인?] [그래. 내가 멀쩡할 때도 무라칸과는 결코 싸우지 말라고 했던 이유가 이제 이해되나?] [되네요.] [가서 무라칸을 보조해라, 제피린. 힘을 보태라는 뜻이 아니라, 그가 더 자유롭게 싸울 수 있도록 아군 보호에 힘을 쓰라는 의미다.]제피린의 눈동자가 커졌다.
오르갈은 그렇게만 해도 전쟁이 승리로 끝난다는 암시를 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제피린이 무라칸의 근처로 비행했고, 지플 쪽에서는 다시 마신석을 개방한 베라딘이 나섰다.
그 역시 무라칸의 힘을 확인하자마자 오르갈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무라칸은 솔더렛의 신격에서 비롯된 통찰을 통해 그가 켈리악이 아니라 베라딘이라는 사실을 즉시 알아보았다.
진이 베라딘을 어찌 생각하는지 알기에, 무라칸은 그에게 짧고 묵직한 한마디를 해주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베라딘 지플. 그러니 그 전에 너무 많은 죄를 지어서는 안 되겠지.]베라딘은 대답하지 않고 광범위하게 마력을 퍼뜨려 보호막을 펼쳤다.
‘결전 이후, 투신과 무라칸의 현현 조건을 최대한 빨리 확인하며 전쟁 준비를 해야겠군…….’
심란하기도 했다. 투신이 현현했을 때도 이미 충분히 충격적이었건만, 무라칸까지 건재하다면 오늘 이후 지플의 운명은 벅차질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딸기파이는.] [진 경의 유모를 말하는 것이라면, 애초에 그녀는 이 전장에 참여하지 않았답니다.] [망할, 꼬마 놈에게 속아서 다소 모양이 빠져버렸군. 뭐, 상관없다. 오히려 좋아. 딸기파이가 안전하다는 걸 알았으니 차분히 저것들을 족쳐볼까.]무라칸의 두 날개에서 영기로 이루어진 검은 사슬들이 뻗어졌다. 족히 수천은 될 검은 사슬이 불길한 촉수처럼 하늘에 일렁였다.
영기 해방 – 흑쇄黑鎖
소나기처럼, 영기의 사슬이 일제히 람의 상부로 내리꽂혔다.
그토록 거대한 사슬들이 쏟아지는데도 파공음은 전혀 없었다.
람의 상부가 찍히고 터지는 폭음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혼돈의 병력들은 사슬을 피하느라 순식간에 진형이 무너졌다.
[오호, 저것들이 되살아난 전대 가주들인가.]그 수많은 사슬 중, 딱 네 개만이 람의 상부에 꽂히지 못하고 베이거나 튕겨 나갔다.
마지막 남은 네 명의 전대 가주가 검으로 쳐낸 것이다.
그러나 효과는 극히 미미했다. 그들이 한 건 겨우 자신들 쪽에 떨어진 수많은 사슬 중 단 하나씩만을 쳐냈을 뿐이니까.
무라칸이 말을 끝맺자마자, 람의 상부가 영기로 들끓기 시작했다. 꽂힌 사슬들로부터 거품처럼 영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12기수를 따르는 이들은 영기를 피하지 말라.]반사적으로 거품을 피하려던 아군들이 동작을 멈췄다.
영기가 닿아도 그들에겐 달리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반면 거품에 갇힌 적들은, 그대로 녹아버리고 있었다. 마치 모래가 바다에 가라앉아 진흙으로 변하듯이 말이다.
영기 해방은 그림자를 다루는 일의 시작이자 끝.
무라칸은 지금 영기의 끝 중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었다.
싸움, 혹은 전투라고 부를 만한 행위조차 없이 그저 상대를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것. 극에 다다른 흑쇄는 그런 권능을 품고 있었다.
거품에 갇힌 혼돈의 병력 중 정예라 불릴 만한 자들은 영기에 저항하며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 문제일 뿐이다.
이대로 혼돈의 병력이 저항하지 못하면 적들은 곧 모두 다 자신의 그림자에 파묻혀 무로 환원될 것이다.
거대한 채가 혼돈이라는 불순물을 걸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룬칸델의 기수들은 들으라. 전대 가주였던 자들의 목을 취하는 건 너희들이 행해야 할 일이니, 속히 움직이도록.]메리와 토나 형제가 하늘을 향해 검례를 올렸다.
“받들겠습니다!”
“히, 메리 언니. 나도 껴도 되나?”
“그럼, 요나는 저쪽 놈 죽여. 토나 놈들은 좌우, 내가 중앙을 맡는다.”
“히히.”
각자 맡은 전대 가주들에게 도착한 기수들은 치열한 전투를 펼칠 필요가 없었다.
전대 가주들은 이미 흑쇄에 갇혀 운신조차 제대로 못 하는 상태였다.
무라칸이 굳이 룬칸델의 아이들에게 그들을 죽이라 명한 건 상징을 위해서다.
지금의 룬칸델이 썩은 뿌리를 도려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고자 함이다.
흑쇄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무라칸은 흑쇄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영기 해방의 궁극기를 펼치기까지 했다.
그러자 별안간 람의 상부 중앙이 눈동자처럼 열리며, 완전히 파괴된 줄 알았던 주포를 드러냈다.
람이 숨기고 있던 또 다른 주포는 장전하는 기미도 없이 곧장 무라칸을 향해 시커먼 불을 뿜었다.
람이 반에게 부서지기 전까지 보여준 것과 유사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무라칸은 있는 힘껏 숨을 그러모아 뱉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포격을 받아쳤다.
무라칸의 숨결이, 람에서 쏘아진 거대한 검은 광선을 반으로 양분하고 있었다.
람의 포격은 썩은 나무처럼 갈라지며 전장 사방에 파편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제피린과 베라딘, 그리고 인세의 영웅들이 보호막을 펼치며 파편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했다.
무라칸의 숨결은 포격을 찢은 것만으로도 모자라, 흉물스럽게 치솟은 주포까지 다시 꺾어버리며 람의 상부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무라칸은 만족스럽지 않은 듯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름 지금 낼 수 있는 전력으로 쏜 건데, 꼴랑 저것밖에 안 부서져? 칫, 이러면 내가 명왕족 투신보다 약해 보일 텐데. 심지어 투신은 이 함선이 멀쩡할 때 완파를 했으니.’
물론 무라칸의 속내와 달리 아군들은 천 길 낭떠러지처럼 뚫린 구멍을 내려다보며 경악에 휩싸이고 있었다.
[이제 이 몸의 시간이 거의 끝나가는군. 전원, 일어나서 다시 싸워라. 이 흑룡 무라칸이 떠나도 무사히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라.]멈춰 있던 아군들이 다시 검과 지팡이를 추켜들었다.
입에 고인 핏물을 뱉어내고, 부러진 뼈를 맞추고, 찢어진 상처를 대강 붕대로 감았다.
모두 무라칸의 명령이 있기 전에도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아군들은 전부 얼굴에 희망과 악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무라칸은 마지막으로 베일과 파들러가 싸우고 있는 저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싸움이 중앙 전장에서 한참 떨어진 채 이루어지고 있는 건, 파들러가 그렇게 유도했기 때문이었다.
‘파들러 룬칸델, 저 녀석은 어지간하면 살리고 싶었는데…….’
무라칸의 눈에는 보였다.
파들러의 심장에 묶여 있는 혼돈의 사슬이.
파들러도 이제는 자신의 심장에 묶인 사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사라에게 안부 전해줘라, 파들러.’
다시 신의 영역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무라칸의 두 눈동자에 슬픔이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