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67)
제 777화
189화. 굴러들어 오는 복들(2)
진이 눈짓하자 우악스럽게 소년을 붙잡고 있던 기사들이 손을 풀며 물러났다.
“와! 진 경을 진짜로 만나게 해주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진 경! 저는 루체 피브리조라고 합니다! 바클 자치구 남부 콜 마을 출신이고, 나이는 열여섯입니다. 그리고 진 룬칸델 공식, 비공식 팬클럽 통합 우수회원이며…….”
루체는 잠시 말을 멈추며 엔야와 산드라가 운영하는 각 팬클럽의 공식 회원 배지를 꺼내 보였다.
온몸이 꼬질꼬질한 와중에도 그 배지만큼은 얼마나 깨끗하게 닦아온 것인지,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였다.
‘……엔야랑 산드라가 저거 아무나 받을 수 없다던데.’
루체는 진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때까지 두 개의 배지를 내민 채 씨익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텔롯은 골이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
루체가 지금껏 자신에게 까불어댄 것도 모자라, 감히 룬칸델의 소가주 앞에서도 이토록 경솔하게 굴 줄은 몰랐던 것이다.
“팬클럽 사이에서는 집념의 루체, 진성 진바라기라 불리고 있습니다.”
“음…… 그래, 우선 악수부터 한 번 하자. 그렇게까지 날 좋아한다니, 고맙구나.”
“하, 이런 영광이. 진 경과의 악수? 미쳤다, 미쳤어. 저, 텔롯 경, 혹시 손수건 좀.”
“허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군. 대체 겁대가리를 어떻게 상실한 놈인지.”
텔롯이 고개를 저으며 손수건을 내어주자, 루체는 빡빡 두 손을 비벼 순식간에 손수건을 더럽히고는 진의 손을 맞잡았다.
더러워진 손수건을 그대로 돌려줘 텔롯을 또 한 번 황당하게 만든 건 덤이었다.
루체가 한동안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아 진은 어색한 기분이 들었으나, 루체는 그저 신이 나서 캬캬캬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건축의 신 계약자라고?”
“예! 진 경,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전입니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더라구요, 난 건축의 신 바르보보다, 나와 계약을 하지 않겠느냐…….”
바르보보는 건축의 신으로 알려진 이름이 맞았다.
신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름이기도 했다.
“그래서 바르보보의 계약자로서 그 능력을 사용하고 싶어서 나를 찾아온 거니?”
“물론이죠! 저는 옛날부터 바멀 연합에 가입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언젠가 진 경과 함께 큰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 꿈이 지금 실현될 수도 있다니! 하늘이 제 염원을 알아준 거예요. 저는 마법과 검술 쪽엔 통 재능이 없어서, 그쪽으로 성공해서 진 경을 만나는 건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흥분을 조금만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대화를 하도록 하자, 루체.”
“알겠습니다!”
“우선, 바멀 연합은 꼭 그런 특별한 능력이 없더라도 누구나 가입이 가능해. 넓게 보면 연합의 땅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연합의 일원인 셈이지. 그런 차원에서, 너는 이곳으로 피난을 온 시점부터 이미 연합원이다.”
“그럼 더 좋네요. 이제 단순 연합원이 아니라 직접 진 경과 일을 하는 연합원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물론 루체가 진짜 바르보보의 예비 계약자라 한들, 그는 검황지의 함선 건조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계약을 끝내고 권능을 얻게 되면 바멀 연합에 무엇이라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진을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나도 좋을 것 같구나. 그런데, 예비 계약자라는 건 무슨 뜻이지? 네가 바르보보와의 계약을 온전히 진행하려면 시련이 필요하다던데.”
“아, 그건…….”
진의 질문에 루체가 처음으로 쭈뼛대는 모습을 보였다.
진은 나무라지 않고 차분히 그를 지켜보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그것보다 바클 자치구의 남부 출신인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먼저 물어야겠구나. 바클 출신이면 루테로 연방에서 꽤 부유한 측에 속했을 텐데.”
연방의 수도와 가까운 도시인 만큼, 바클에 거주하는 이들은 평민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부유층에 속했다.
애초에 루체가 텔롯 앞에서도 기죽지 않은 건 특유의 성격이 거침없는 편인 것도 있으나, 아마 평소 그다지 굽신거릴 일 없는 상황에서 자라온 이유도 없지는 않을 터였다.
무엇보다도.
진이 루체가 이곳에 오게 된 연유를 묻는 것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집안이 망했거든요.”
“……혹시, 흉신이 죽기 전 우리 가문의 4기수가 바클 자치구를 습격했을 때 그렇게 된 거니?”
-티칸 측에 지원 요청을 하는 사이, 한 차례 더 습격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설마 또 대규모 병력 이동이 있던 것이오?
-아닙니다. 디푸스 룬칸델이 두 명의 흑기사를 대동한 채 바클 자치구를 쳤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던 터라 민간 피해는 아주 크지 않으나…… 망령대장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카둔 님고 회복이 끝나지 않은 몸으로 응전했다가 내상에 빠졌고요.
디푸스가 루테로 연방을 습격한 당시 로닐과 나눈 대화.
“예, 디푸스가 습격했을 때 집과 재산을 몽땅 잃었어요.”
루체의 가족은 하필 그때 피해를 입었었다.
자신의 형님에게 당해 집안이 망했다고 말하는 루체를 보고 있으니 가슴 한 쪽이 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진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루체는 그럴 것 없다는 듯 연신 손사레를 쳤다.
“하지만 진 경이 마음 쓰실 일이 아닙니다! 진 경이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고, 오히려 진 경은 그때 루테로 연방으로 지원을 오셨었잖아요! 또, 집과 재산은 잃었지만 가족 중에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도 하고요. 마침 다 밖에 나가있던 터라 천만다행이죠.”
“그건 그나마 다행이구나. 잃어버린 재산은 내가 최대한 복구를 해주마.”
“그것도 진 경이 할 일이 아닐 걸요? 원래 보험금이 나왔어야 하는데, 빌어먹을 지플 놈들이 그걸 안 줬어요. 그때 저를 포함해 피해 가구가 열다섯 쯤 되었는데, 전부 다 못 받았죠. 전쟁 중엔 지급이 어렵다나? 저는 화룡 카둔한테 따지러 갔다가 죽을 뻔했다니까요?”
텔롯은 그 대목에서 또 한 번 끌끌 혀를 찼다.
카둔이 만나줬다면 루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때 우리 가족은 전부 지플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어요. 마침 이상한 소문도 돌고 해서, 그때부터 가족 전체가 휴페스터로 이민을 하자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상한 소문?”
“지플이 또 주민들을 상대로 생체 골렘 실험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에요. 진 경이 예비 기수 시절에 다 까발려서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건지, 아직 증거는 없지만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죠!”
지플이 또 생체 골렘 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리라는 건 진도 계속 염두에 둔 바였다.
성지에서 본 마검사 생체 골렘들이 그냥 만들어졌을 리는 없으니까.
“여하튼, 집이랑 돈을 잃은 건 좀 뼈아프지만. 우리 가족은 대체로 저처럼 다 긍정적이라 앞으로 휴페스터에서 잘 살아보자는 마음입니다. 까짓거 제가 연합의 핵심 일원으로 출세해서 먹여 살리면 그만이지…….”
진은 미소를 지으며 루체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그래도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해야겠구나. 4기수를 미리 막지 못한 일에 대해.”
“괜찮습니다, 이 세상에 진 경께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이 있기는 합니까? 진 경 아니었으면 흉신한테 다 죽었을 텐데. 샘샘으로 쳐요.”
“우선, 너에 대해 지금 검증을 좀 할 거다. 네가 진짜 바르보보의 계약자인지 공식적으로 확인이 필요하거든.”
“어떻게 하면 되나요? 예비 계약자라서 권능을 보여드릴 수는 없는데…….”
“너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잠깐이면 끝날 거다. 집사장.”
[예, 소가주.]“루체의 기록을 확인하세요.”
르엣이 루체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권능을 일으켰다.
[루체, 바르보보의 목소리를 들은 게 얼마 전이라고 했죠?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가요?]“보름 전 새벽이에요. 네 시쯤이었나?”
[잠시 그대의 보름 전 기록을 살펴볼 테니 너무 놀라지 마시길.]르엣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록창 위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보름 전, 루체가 바르보보의 목소리를 들은 날이었다.
안타깝게도 루체는 하필 그때 피난길에 우연히 구한 춘화집을 탐독하고 있었다.
루체는 그 장면에서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고, 진은 무라칸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오…… 내가 이런 걸 도대체 어떻게 주운 거지. 어쩌면 귀한 춘화집일지도 몰라. 소문에 의하면 진 경의 수호룡 무라칸은 춘화집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던데, 나중에 이걸 한 번 가져가 볼까? 엇, 방금 누구야! 누가 나한테 말을 걸었어? 뭐? 바르보보라고?”
바르보보의 목소리는 루체의 내면으로만 전해진 만큼, 그 목소리가 영상 속에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작이나 연기일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새벽 네 시에 가족들 몰래 혼자 피난소 구석에서 춘화집을 읽으며 바르보보의 목소리를 듣는 척을 할 이유 따위는 없는 것이다.
“내게도 드디어 신의 계약 제의가 찾아오는군! 좋아, 어떻게 하면 되는데? 뭐……? 내가 당장 그런 걸 어떻게 실행해? 잠깐만, 바르보보! 건축의 신 님! 조언이라도 좀 해주고 가!”
르엣이 확인한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하, 하하! 설마 이런 사생활까지 노출이 될 줄은 몰랐는데요. 좀 민망하네. 그나저나, 무라칸 님이 이 춘화집을 좋아하실까요?”
“음, 춘화집이라면 일단 뭐든 읽어보는 편이긴 하지. 검증은 끝난 것 같구나. 그럼 이제, 바르보보가 필요하다고 말한 시련이 무엇인지 알려줄래?”
아까 전 루체가 쭈뼛대던 반응도 그렇고, 영상 속에서 그런 걸 어떻게 하냐고 따지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 시련이란 루체가 해내기에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음, 그 시련은 말이죠…….”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말해라.”
“말씀드리면, 저를 도와주실 거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좋아요, 그럼 진 경을 믿고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르보보가 요구한 시련은 이 내용이었어요. 이 바르보보조차 도전 욕구가 생길 만한 건설현장을 찾아서 책임자가 돼라.”
건축의 신조차 탐이 날 만한 건설현장…….
그 말을 듣자마자 진은 검황지가 떠올랐다.
르엣과 텔롯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굳이 나침반을 확인하며 위험하게 바클 자치구를 건드릴 필요도 없겠군.’
진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루체에게 이렇게 답을 해주었다.
“루체, 너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