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72)
제 777화
190화. 말리엣 히스터의 전승지(3)
씨익!
테벤과 젠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미소를 지은 채 상당히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찌나 기대감에 찬 얼굴들인지 유령 같은 형체임에도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였습니다만.”
[우오오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그거 안 했으면 진짜로 못 들어왔다니까?] [하, 골렘이랑 그 내단 마물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구만, 젠장. 가져가!]아무래도 두 사람은 전승지를 찾아올 후손들이 입장 조건을 지키는가에 대해 내기를 한 모양이었다.
진 쪽은 젠이었다. 젠은 품속에서 종이 뭉치 같은 걸 꺼내서 테벤에게 내밀었는데, 골렘은 그걸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천, 번도, 더 말했는데, 그것들은, 당신들 물건이 아니라, 저의 소유입니다…… 내기를 왜 남의 물건으로.]그러거나 말거나 테벤은 젠으로부터 홱 종이를 낚아채 약 350년 만의 승리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캬캬캬!]젠과 테벤, 초장거리 통신 장치를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두 천재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였다.
‘스스로를 전승지에 덧씌워 기록한’ 사실과 350년이라는 세월 때문일 터.
심지어 그 긴 세월 동안, 젠과 테벤에겐 오직 서로와 골렘이 전부였을 것이다.
서신의 문체는 아주 차분했음을 생각하니 신이 나서 껄껄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애잔했다.
“테벤 히스터 님이 이긴 모양이군요, 축하드립니다.”
진은 짠한 마음이 드는 기색을 드러내는 대신 그렇게 말했다.
분위기를 맞춰주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았다.
[하하, 고맙다! 진 룬칸델이라고 했나? 룬칸델치고는 사람이 아주 유연하구만!]“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종이는 어디에 쓰는 물건입니까? 돈처럼 보이지는 않는군요.”
[아, 이건 마법 저장 종이다. 골렘은 자꾸 자기 물건이라고 우기지만 여기 내 것 네 것이 어디에 있다고 그러는지, 원. 그보다! 외부인이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도 축하를 받고 싶구나.]“축하드립니다, 테벤 선조님.”
[그래, 그래. 우린 참 오랜 시간 너를 기다려왔다.] [헹, 얼마 전까지는 후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도 까먹고 있었으면서.] [그야 우리 히스터가에 대해 역사 조작이 있었을 테니까 어쩔 수 없는 문제라구, 젠. 게다가 우린 망령이라서 원래도 기억력이 약해.] [아, 맞아! 얘들아, 우리 가문은 어떻게 됐냐? 루트베르가! 멸문을 당한 건 아니겠지?]“무사합니다.”
발레리아는 한동안 그들에게 사이얼을 만나 전승지를 찾아온 경위를 설명해주었다.
[……그래, 더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정말 다행이야! 젠, 우리 예상대로 놈들은 자네 가문을 찾아내지 못했어. 그리고 우리 가문 역시 끝장내지 못했지. 캬캬캭!] [그런데, 너흰 여기까지 왔는데 왜 이렇게 멀쩡한 모습인 거냐? 우린 며칠을 헤매다가 거지꼴을 했었는데.] [그건, 이번, 합격자들이, 샛길을 이용했기 때문. 설정된 난이도를, 무시할 수 있는, 무력 보유.]말리엣의 전승지에 설치된 함정들은 본래 혼카를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혼카를 간신히 이길 정도가 되면 갖은 고난 끝에 전승지의 마지막 지점에 닿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게다가, 적이, 아니기에 저 역시, 1급 적대 미적용. 본래 전투력의, 5할만 발휘, 하였습니다. 모든 능력, 사용해도, 의미는 없었겠지만.] [흠, 뭔가 억울한걸. 그렇게 간단했다면 우리가 만든 작품을 너무 편하게 얻어가는 느낌이 있어. 안 그러냐, 테벤?] [그렇기는 하지! 우린 정말 고생했다구!]“그 작품이 혹시 통신 장치입니까?”
[그래, 바로 그 통신 장치다!] [초장거리 통신이지! 지금도 밖에 그런 물건 없지?]“예, 없습니다. 지플 마탑주의 지팡이 같은 물건으로 신호를 주는 정도가 한계입니다.”
[안 되겠어, 그런 걸 그냥 줄 수는 없다. 우리가 시험을 하나 더 치르자.] [오, 좋아. 무슨 시험?] [그건 이 녀석들이 전승지를 살펴보는 동안 정하도록 하자고. 긴장해!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통신 장치를 진짜로 안 줄 거니까.]젠과 테벤이 어디론가 호다닥 달려가며 사라졌다.
[지금은, 저래도, 한때는, 위대한 마법사, 공학자. 시험은, 너무, 걱정 마십시오. 분명, 어렵지, 않을 것. 두 사람, 바보가 됐어도, 의무와 사명. 잊은 적이, 없습니다.]기록 마법사와 시대를 앞선 공학자로서의 의무와 사명.
그건 자신들의 발명품을 정당한 자격이 있는 이에게 넘겨주는 일이었다.
흉신전에서 혼돈의 힘으로 부활하고도 끝내 타락하지 않은 룬칸델의 선조들과 그들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지이이잉…….
골렘이 허공에 부유하는 말리엣의 기록창들 위로 손을 뻗자 전승지 전체에 기분 좋은 진동이 일었다.
[주인님께선, 오래전부터, 오늘 같은 순간을, 예견하셨습니다.]“예견? 그게 무슨 뜻이지?”
[하지만, 다행히도, 발레리아 히스터. 당신은, 아주 지치고, 쓸쓸해 보이지는, 않는군요.]말리엣은 발레리아의 미래를 미리 알았다는 걸까?
진은 그런 의문을 가지며 골렘을 지켜보았다.
골렘의 손길이 기록창을 활성화하고 있었다.
[두 분을, 주인님의, 기록 속으로, 모실, 테니, 누우십시오.]두 사람이 자리에 눕자 조금씩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내 완전히 캄캄해지자, 천장에 푸른 은하수처럼 흐르는 기록창들이 아름답게 빛났다.
[몽롱해지는, 기분이, 들 겁니다. 거부하지, 마십시오.]그 말을 따르자 잠시 후, 두 사람은 완타라모 숲에서 가왕주를 들이켰을 때처럼 과거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 * *
진과 발레리아는 반투명한 모습으로 영상 속의 관찰자가 되었다.
1391년 4월 1일, 혼카 섬.
‘말리엣 선조님과 혼카가 만난 날의 기록인 것 같아.’
‘막 싸움이 끝난 모양인데.’
진과 발레리아는 온몸이 반쯤 얼어붙은 채 가쁜 숨을 토하고 있는 혼카를 바라보았다.
아직 혼카에게는 이름이 생기기 전이었다.
말리엣은 무척 신비로운 풍채를 가진 여인이었다.
혼카에 비해도 그리 작지 않을 만큼 거대한 체구와 그 몸을 절반 이상 가리고 있는 붉은 머리칼, 장난스럽게 반짝이는 눈동자.
진과 발레리아는 잠시 그녀의 모습에 압도되어 입을 벌렸다. 둘 다 이렇게까지 큰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헤도조차도 말리엣의 옆에 서면 그리 커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왜 이 섬에서 혼자 지내면서 근처에 오는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거냐? 나한테 벌써 몇 번이나 혼이 나고도.”
[흥, 이유 같은 건 없다. 죽일 거면 죽여라!]“네가 인간을 단 한 명이라도 죽였다면, 그렇게 했을 거야. 그냥 바닷속에서 해류인 척하며 사람들을 쫓아내기만 했으니 이 몸이 귀엽게 봐주는 거거든. 너, 계속 그러면 곧 제국이나 지플한테 걸려서 토벌당해. 그러니 나를 통해 죄를 뉘우치고 광명을 되찾자.”
[싫다면?]“그럼 어쩔 수 없지. 사생활 침해의 문제가 좀 있어서 되도록 자제하는 일이지만, 네 기록을 낱낱이 살펴볼 수밖에. 네가 이러는 이유를 알아야겠어. 직접 듣겠다고 더 기다리다간 네가 죽을 것 같거든.”
[그게 무슨, 엇. 이건 뭐야! 갑자기 왜 내 기억이 허공에 그려지는 거냐!]“음, 그래. 역시 넌 내 예상대로 인간과 다른 생물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극복하려다 내단을 갖게 된 경우였어.”
[으윽, 그만둬!]“그런데 보통은 그렇게 내단을 얻으면 증오에 차서 보다 약한 존재를 찾아 학살을 저지르기 마련인데, 넌 그러는 대신 완벽한 은둔을 택했다. 그 말은 뭐다?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 말이지. 이리 와, 한 번 안아주마. 아, 얼어서 못 움직이나? 그럼 내가 가지, 뭐.”
혼카는 기겁하며 싫은 소리를 냈으나, 막상 말리엣이 거대한 몸으로 자신을 덮어주니 거부할 수 없는 안정감에 취하고 말았다.
그렇게 말리엣과 심술궂은 두꺼비 마물은 친구가 되었다. 말리엣은 그에게 섬의 명칭을 따 혼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잠시 말리엣과 혼카의 동화 같은 추억들이 재생되었다.
둘이 모닥불 앞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거나, 말리엣이 혼카에게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하는.
혼카는 이후로도 말리엣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으나, 누군가 섬 근처를 지나도 위협하는 일이 없었다.
“지금은 내가 만들고 있는 전승지로 히스터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결국 우리 가문은 지플에게 패배해 쇠퇴하게 될 거야. 이곳을 찾아오는 히스터는 점점 줄어들게 되겠지.”
[네가 이렇게 강한데도, 지플을 꺾을 수는 없는 거냐? 히스터의 마법은 최고라며.]“놈들은 우리보다 세력이 월등한 데다 치졸하기까지 하니 어쩔 수 없어. 어쨌거나, 분명 몇백 년 내로…… 아니, 짧으면 백 년 이내로 우리 가문은 멸문 직전에 놓이게 될 거야. 과연 몇 사람이나 살아남게 될까, 열? 다섯? 어쩌면 단 한 명만 남게 될지도 모르지.”
[왜 벌써 그런 얘기를 해, 곧 떠날 사람처럼.]“내게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어. 그때까지 언젠가 가문에 약해졌을 때 찾아올 전승자들에게 힘이 되어줄 유산을 완성시켜야 해.”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병이라도 걸린 거냐?]“병은 아니고, 저주. 지플의 망령대와 전투를 하다가 당했어. 카이안의 피라는 이름을 가진 저주인데, 걸리게 되면 서서히 고통에 잠식되다가 죽어. 내 진행도는 현재 5할 정도지. 내가 잘 버텨낸다면, 3년 정도 남았을 거야.”
갑작스레 다가오고 있는 이별에 혼카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말리엣은 그런 혼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죽으면 너도 이곳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어. 전승지를 지키는 건 지금 만들고 있는 골렘에게 맡겨도 충분할 테니까.”
[싫다.]“그러다 언젠가 너도 갈 때가 되면 후회한다. 나만 그리워하다 죽는 삶은 너무 쓸쓸하잖아. 내가 죽어서도 너를 신경 써야겠어?”
[자꾸 죽는 얘기는 그만하고, 저주를 풀 방법을 찾아봐. 그렇게 하겠다면 함께 섬을 떠나 너를 도우마.]“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저주 해제법을 찾는 것과, 후인을 위한 작품을 완성하는 일. 당연히 내 남은 시간은 후자에 쓰여야만 해. 가문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네가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히스터들이 전승지를 만들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거냐?]“그 녀석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고지식해서, 안 그래도 지친 후인들에게 사명감만을 남길 거야. 내 전승지는 그보다 좀 더 특별한 휴식처가 될 예정이지.”
거기까지 말한 말리엣은, 갑자기 진과 발레리아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관찰자로서 이 기록을 엿볼 후인에게 직접 말하는 느낌을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 남은 시간을 잘 감상하도록 해. 너희들이 겪었을 고독하고 어려운 삶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