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90)
제 777화
195화. 옛 오테리엄으로(2)
“지금부터 땅을 파겠다고?”
“응.”
발레리아는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땅을 파겠다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이곳엔 초인이 둘이나 있었다.
원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깊고 거대한 구덩이를 파낼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진과 헤도였다.
“하긴, 검황지 지하 건조장의 기초 공사도 그런 식으로 진행했었지.”
마침 옛 오테리엄은 검황성전 이전부터 미보호 구역, 완전히 버려진 땅이다. 이 드넓은 땅을 죄다 헤집고 박살을 내도 상관이 없다는 뜻.
진과 헤도가 기지개를 켜며 겉옷을 벗었다.
“발레리아 양은 물러나 있는 게 좋겠군. 음…… 저쪽이 적당하겠어. 잠시만 기다리게.”
돌연 헤도가 내달려서 3리쯤 떨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그곳에 널브러진 사람 몸통 만한 바위를 몇 개 쪼개 판과 막대처럼 만들었다. 그의 괴력에 바위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부서졌다.
그가 바위를 부숴 만든 건 일종의 간이 탁자와 차양이었다. 위에 코트와 셔츠를 곧게 찢어 덮자 모양새가 꽤 그럴싸했다. 탁자 위엔 라트리가 싸준 다과와 언제 챙겼는지 모를 찻잔까지 있었다.
“저기서 차라도 마시면서 느긋하게 쉬게. 아마 차를 즐기고 있으면 아가씨가 올 텐데…… 다소 예의 없이 굴더라도 아가씨를 때리지는 않을 거라 믿겠네.”
다시 돌아온 헤도가 말하자 발레리아는 눈을 끔뻑이며 그와 탁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런 황폐하고 어두운 땅에도 별안간 괜찮은 휴식처를 만들 수 있는 집사라니, 새삼 신기했다.
“……엄청 익숙하신 것 같네요. 이런 일이 자주 있었나 보죠?”
“알다시피 우리 아가씨가 워낙 손이 많이 가다 보니. 그, 내 생각엔 겉보기와 다르게 아가씨는 자네를 아주 싫어하진 않아. 조금만 이해를 해 주면 너무나 고마울 것 같군.”
심각하게 엇나간 외동딸을 둔 아비의 심정을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발레리아는 잠시 숙연해지고 말았다. 진도 덩달아 그가 짠했다.
“산드라가 먼저 저를 물리적으로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뭐…… 같이 차를 마시는 일쯤은.”
“오, 이 시대에 성인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발레리아 양, 자네일 걸세.”
“그만, 부담스럽네요.”
[먀아!]진이 적옥묘에서 슈리를 꺼냈다. 발레리아와 산드라가 기다리는 동안 혹 좋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면 말리게 하려는 요량이었다.
“슈리, 저쪽으로 발레리아 데려가서 같이 놀아. 분위기 험악해지면 적절히 말리고.”
[먀먀.]슈리와 발레리아가 탁자 쪽으로 떠나자 헤도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언젠가 아가씨와 발레리아 양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군. 발레리아 양은 혼카 섬을 다녀온 이후로 많이 달라진 것 같으니, 아가씨만 좀 바뀌면 마냥 허황된 이야기는 아닐 테지.”
근처를 돌아다니던 산드라는 발레리아가 탁자에 앉는 걸 보자마자 눈에 쌍심지를 켰고, 헤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고생이시군요.”
“축복이기도 해. 자, 그럼 이제 땅을 파보도록 하지.”
스릉!
헤도가 새로운 자신의 애검 ‘거력’을 뽑았다. 거력은 그가 베일에게 넘기기 전까지 쓰던 샤칸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초대형 장검으로, 피콘의 새로운 걸작이었다. 당연히 헤도는 거력을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하게 여겼다.
“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검으로 처음 베는 것이 땅이 될 줄은 몰랐군.”
“뭔가 대단한 게 나올 수도 있으니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마계의 문이라던가.”
“그 정도면 거력의 데뷔에 부족함이 없겠어.”
흐읍!
헤도가 한껏 기운을 끌어모으며 자세를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일대 땅덩어리들이 격하게 진동하며 바위가 튀었다.
콰앙-!
검이 아니라 어떤 거인이 성의 기둥 같은 걸 내리꽂은 듯한 굉음이 일었다. 위로 도약하며 충격파를 쳐낸 진의 눈에 무식하게 무너져내린 땅의 몰골이 보였다.
폭이 족히 오십 걸음은 될 것 같은 반원이 뚫린 것이다. 깊이도 헤도의 키를 한참 상회했다.
‘소타 사막에서 요나 누님이 아니었으면 분명 헤도 경한테 모두 죽었을 테지.’
진이 지상에 착지하기도 전에, 헤도는 또 한 번 무지막지한 괴력을 검에 실어 구덩이를 내리쳤다. 거대한 바위들이 볶아지는 옥수수처럼 하늘 높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몇 차례의 굉음이 더 지나간 뒤 진도 시드문드를 부서진 땅속으로 밀어 넣었다. 검에서 뇌기가 폭발할 때마다 구덩이가 두 걸음 씩 깊어졌다. 구덩이는 안으로 갈수록 더 단단해졌고, 때때로 산사태처럼 잔해가 쏟아져 내렸다.
물론 두 사람이 잔해에 파묻히는 일은 없었다. 잔해는 쉴 새 없이 사방으로 퍼지는 검기와 충격파에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진과 헤도는 능숙한 노동자들처럼 합을 맞추며 네가 한 번, 내가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암흑마법회의 성터는 진즉 흔적도 없이 구덩이 아래로 삼켜졌고, 땅은 계속 비명을 질렀다.
호로록.
발레리아는 마력으로 차게 만든 차를 마시며 두 인간이 땅을 구타하는, 그 괴상한 풍경을 지켜보았다.
딱히 시선을 둘 곳이 없기도 하고, 앞에 앉아 껄렁한 칼눈을 뜨고 있는 산드라를 외면하기 위함이었다.
“야, 슈리!”
[먀?]산드라는 발레리아에게 쌍욕을 퍼붓기 전에 슈리를 먼저 불렀다.
“너 왜 꼬리를 이 빨간머리한테 내어주고 있어. 내 쪽으로 돌려. 나도 등 편하게 기대고 싶어.”
[먀먀먀.]“아, 빨리!”
[먀, 먀아.]눈치를 살피던 슈리는 발레리아가 달리 반응이 없자 슬쩍 산드라 쪽으로 꼬리를 옮겼다. 물론 산드라의 행패가 그렇게 끝나는 일은 없었다.
“빨간머리, 우리 진 씨 그만 봐.”
“진은 한참 전에 구덩이 아래로 사라졌어.”
“진 씨가 있는 쪽 말고 다른 곳을 보라는 뜻이잖아?”
“어, 난 구덩이 너머 허공을 보고 있었어.”
“이익. 이게, 으그그극.”
산드라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그 대목에서 놀랍게도, 발레리아는 산드라가 처음으로 애처럼 느껴졌다.
산드라 ‘지플’이 아니라 불행한 학대로 인해 엇나간 꼬마를 상대하는 기분이 든 것이다. 그래, 애가 무슨 잘못이 있겠나, 애를 저 모양으로 만든 괴물들이 문제지, 그런 마음이었다.
그래서 발레리아는 앞에 있는 쿠키를 가리켰다.
“네 몫으로 남겨둔 거야. 그만 노려보고 이거나 먹어.”
“하! 내 몫? 애초에 헤도가 챙긴 건 전부 내 몫이거든? 네 쿠키는 원래 없다고, 넌 내 허락도 없이 도둑질을 한 거야. 알아들어?”
“어떻게 이게 다 네 쿠키야? 라트리 님이 다 같이 나눠 먹으라고 챙겨준 건데. 엄밀히 말하면 진이랑 헤도 경 몫을 남겨두지 않고 너랑 내가 다 먹게 생겼으니, 이게 도둑질이라면 너도 공범인 거지.”
산드라는 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대답할 말이 없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상말을 퍼붓는 걸로는 저 빌어먹을 빨간머리에게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누가…… 다 먹는데? 진 씨 몫은 내가 알아서 잘 남겨줄 거다.”
“그럼 내가 헤도 경 몫을 남기면 되겠네.”
“네가 뭔데 헤도를 챙겨?”
“그럼 둘 다 네가 챙겨 주던가.”
“그렇게 되면 내가 먹을 게 없잖아!”
피식.
발레리아가 웃음을 터뜨리자 결국 산드라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주먹을 휘두를 기세였는데, 슈리가 꼬리로 그녀를 붙잡았다.
“놔아악! 넌 뒤졌다 진짜!”
덕분에 발레리아는 시선을 둘 곳이 한 군데 늘었다. 진과 헤도가 무식하게 구덩이를 파내는 풍경과 꼬리에 묶여 바동거리는 산드라. 모두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었다.
‘애라고 생각하니 그렇게까지 성가시진 않네.’
프즈즉, 쩌억!
발레리아가 그런 생각을 할 때쯤 별안간 탁자 근처의 땅이 쩌억 갈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구덩이와 탁자 사이엔 3리나 되는 거리가 있음에도, 진과 헤도의 땅파기에 일대 지반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구덩이와 더 멀리 떨어진 곳에 다시 자리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먀먀!]슈리가 입에 차양과 탁자를 물었다. 발레리아는 찻잔을 챙기며 자연스레 슈리의 등에 올랐고, 산드라는 여전히 꼬리에 묶여 있었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하니까 산 줄 알아라, 빨간머리!”
“방금도 말했지만 이거나 먹어라.”
발레리아가 휙 던진 쿠키 하나가 산드라의 입으로 들어갔다. 산드라는 왠지 진 것 같은 기분으로 쿠키를 삼키며 상말을 퍼부었고, 슈리는 땅파기의 영향권 바깥을 향해 속도를 내었다.
“역시, 방금 올라가서 보니 탁자 쪽 지반까지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군. 슈리가 아가씨들을 옮기는 중이다. 아가씨는 어째서인지 짐처럼 꼬리에 묶여 있었지만.”
“다행히 그쪽 분위기가 아주 나쁘진 않았던 모양이군요.”
“발레리아 양에게 고마울 따름이지. 후우, 얼마나 파낸 건지 모르겠군. 대충 오백 걸음은 될 것 같은데.”
“저도 그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이대로 계속 힘을 쓰면 너와 내가 인류 역사상 가장 깊은 구덩이를 파내게 될 수도 있겠어.”
“쉬누는 마계가 같은 별에 존재해도 일반적인 방법으론 절대 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 했으니, 그 정도는 해야겠죠.”
당연하게도 두 사람이 파낸 구덩이의 깊이는 이미 현대의 기술력이 지닌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규격 외의 초인 중에서도 특출한 두 사람이 직접 발굴을 행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지하에 무슨 마물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군.”
이 무지막지한 발굴에 치어 명을 다한 마물이 벌써 수백이었다. 지하에 숨어 있던 마물들은 대부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흙이나 바위와 함께 소멸했다.
“언젠가는 지상으로 올라와 활개를 쳤을 놈들이 잘 걸려줬군요. 계속 파시죠. 왠지 느낌이 나쁘지 않습니다.”
진과 헤도는 있는 힘껏 힘을 분출하는 일에 나름의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흥에 겨운 인부들처럼 굴착이 계속 이어졌다. 한나절이 다 지나도록 말이다.
흙과 검댕으로 범벅이 된 두 사람이 검을 멈춘 건, 한나절이 다 지나고도 두 시간이 더 흐른 다음이었다.
쩌엉!
내내 두부처럼 터지던 지저 바닥에서 처음으로 검이 튕겨 나온 것이다. 두 사람이 힘껏 내지른 검조차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한 무언가가 반발력을 일으키고 있었다.
“오!”
두 사람은 동시에 탄성을 내뱉으며 아래를 살폈다. 검흔을 가리고 있는 흙과 돌덩어리를 손바닥으로 쓸어보니 반질반질하고 거대한 광물 같은 물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건 물체가 아니라, 생명체였다.
“……비늘? 진, 이거. 용비늘처럼 보이는 것 같다만.”
“예, 헤도 경. 제 눈에도…… 그렇게 보입니다.”
왜 난데없이 여기서 용비늘이.
두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한 찰나.
[감히 누가…… 나의 잠을 방해하는가.]구덩이 전체에 음울하고 어두운 목소리가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