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99)
제 888화
197화. 적명족(4)
우드드드득, 콰직-!
라키만의 손바닥으로 당겨진 수인들은 순식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작게 찌그러졌다. 그가 손을 움켜쥐자 수인들이 으깬 사과처럼 뭉개졌고, 라키만의 거대한 주먹 사이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마치 보약의 진액을 마시듯.
라키만은 손을 들어 뚝뚝 흘러내리는 수인들의 무거운 핏방울을 입으로 받아먹었다. 목울대가 게걸스럽게 꿀렁이는 동안, 킨젤로들은 감히 공격할 생각을 품지 못했다.
‘저놈은 대체…… 뭐야…….’
줄곧 재미있다는 듯이 촐랑이던 바드레이는 단번에 표정이 굳어버렸다. 베락트는 그간 아랫것들이 느껴온 공포를 이해하고 있었다. 지상 전투종족의 정점들이, 떨고 있었다.
대적할 수 없다는 직감.
도망쳐야 한다는 확신.
수인이 가진 짐승으로서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라키만 호그라는 저 괴물은 반드시 피해야 할 포식자지, 싸워서 이겨야 할 적이 아니라고.
힘의 격차가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의 라키만은 막 봉인에서 깨어나 본래 가진 무력의 3할조차 운용할 수 없었다. 베락트와 바드레이도 그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보았고, 지금 당장 제대로 싸우면 승산이 높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도 공포를 쉽게 이겨낼 수가 없을 뿐.
“저번부터 느낀 거지만, 피맛이 썩 좋지 않군. 잡종의 한계인가.”
우드득!
또 한 무리의 수인들이 라키만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 보니 그물처럼 퍼진 붉은 뇌기가 수인들을 당기며 뭉개고 있었다.
라키만은 그렇게 아무런 방해 없이 또 한 모금의 압축된 피를 마셨다. 수인들의 주검은 뇌기에 산화해 검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전부 도망치라고 하였다!”
베락트가 다시 외쳤으나 수인들은 거미줄에 걸린 날파리나 다름이 없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고, 베락트의 목소리가 들리지조차 않았다.
‘신호탄을 터뜨리지 말았어야 했다……!’
어차피 적명족들이 터뜨린 신호탄 때문에 순찰조들이 몰려오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부의 본대 전체가 움직이지는 않았을 거고, 그랬다면 지부를 버리고 본부로 전원 대피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만둬, 이 괴물 새끼야!”
바드레이가 쓰러진 적명족들의 목 옆에 대검을 내리꽂으며 말했다.
“방금 동포라고 했지? 보아하니 네놈도 동족을 아끼는 모양인데, 한 번만 더 움직이면 이 새끼들 목하고 몸이 영영 이별하게 될 거다……!”
물론 라키만은 바드레이의 애절한 협박에도 식사를 멈추지 않았다. 또 뻗어진 라키만의 손으로 한 무리의 수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라키만이 평전사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건 결코 아니다.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크나, 죽어도 어차피 시체를 회수해 불사군이 되는 영광을 내려주면 된다는 마음이었다.
“너희 잡종들은 우리 적명을 모르니 그런 협박을 할 수도 있겠지.”
“알고 싶지 않거든? 협박 말고 협상이라고 생각해주면 안 되냐? 네놈이 처음에 말한 것처럼, 이것들 데리고 조용히 돌아가는 거야. 피차 피곤해지지 말자고. 거 몸도 성치 않은 것 같은데.”
“두려울 텐데, 용기를 내는 모습이 가상하구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선택의 기회를 주마. 너희 둘은 적명의 하수인이 될 테냐, 아니면 부질없는 저항을 할 테냐.”
“하수인이 되면 뭘 해줄 건데?”
“너희 둘은 살려서 요긴하게 부려주마.”
“나머지는?”
“나와 동포들의 양분이 된다.”
콰아앙-!
마침내 두려움을 떨쳐낸 베락트가 라키만에게 달려들어 대검을 휘둘렀다. 적뇌로 형성된 라키만의 보호막을 뚫지는 못했다.
아직 10성 무인으로서의 평정을 완벽하게 되찾은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베락트의 일격엔 공포에 잠식된 자들 특유의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
“바드레이, 아랫것들을 데리고 도망쳐라. 내가 최대한 시간을 벌겠다.”
막 도착한 지원군들이 계속 라키만을 보자마자 석상처럼 굳고 있었다. 그나마 마족들은 상황이 조금 나았으나, 그들도 굳은 수인들과 어느 때보다도 위축된 대전사들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그럼 그렇게 할까? 아이, 빌어먹을. 저건 또 뭔데!”
퍼엉……!
별안간 먼 폭음이 들렸다. 바드레이와 베락트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방향을 확인하니, 온 하늘에서 붉은 벼락이 내리치고 있었다.
지부가 있는 쪽이었다.
매복하고 있던 다른 적명족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라키만의 팔찌에서 사각형의 창이 하나 떠오르며 다른 적명족의 얼굴이 드러났다.
{대투왕 라키만 동포, 건물 내 잡종들 전원 제압 완료했습니다. 도주 중인 마족들이 있기는 하나, 오젠 동포가 추적, 제거를 맡았습니다.}
안돌린이었다.
그녀를 비롯한 적명족 침투조가 지부를 점거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5초.
베락트와 바드레이가 여기에 있으니, 지부 점거는 사실상 적명족이 나타난 순간 끝이었다. 평전사와 돌격대장급 수인들은 평범한 적명족의 기운에조차 대항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힘을 되찾은 2급 투왕들까지 있으니, 저항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오젠 동포의 힘은 거의 다 돌아왔으니 문제없겠군. 다른 특이 사항은?”
{……건물 지하 시설에 청명족을 닮은 실험체들이 있습니다. 청명족을 흉내 낸 생체 골렘 실패작들로 보입니다. 다행히 저와 동포들이 쏜 뇌기에 지하가 다 파괴되지 않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여러모로 재미있는 시대로군. 지금의 지상은. 알았다, 곧 그쪽으로 가지. 동포들은 내 몫을 따로 남기지 말고 광심장을 채우고 있도록.”
{적명!}
안돌린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가슴에 손을 얹어 적명의 경례를 올리자 팔찌 위로 떠오른 창이 사라졌다.
‘벌써 지부가 끝장이 났다고……?’
‘조져도 이렇게 조질 수가 없네. 이런 놈들이 대체 얼마나 있는 거지?’
대화를 듣고 있던 베락트와 바드레이는 또 한 번 흩어지려는 정신을 붙잡아야만 했다.
“이 개 같은 새끼, 아까는 동포들만 풀어주면 얌전히 돌아가겠다더니. 이미 우릴 치려고 준비를 다 끝냈었구만?”
“적명은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다. 너희 잡종들이 황금보다 귀한 기회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
“헛소리 집어치워! 가지고 노니 재밌지? 응? 어디 두고 봐, 네놈들도 오늘 마냥 웃기만 하다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뒤에 누가 있든, 반드시 알아내서 몰살시켜주마. 지금부터 전면전이라고, 개자식들아!”
그 말에 라키만은 쇠가 끓는 듯한 소리로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상스러운 잡종은 은둔하고 있었다는 바드레이, 흰 털은 베락트. 너흰 지금 인세에서 손꼽히는 강자라고 보고를 받았는데, 실망이 커. 진 룬칸델이라는 인간도 너희 둘과 비슷한 수준인가?”
“왜 갑자기 룬칸델의 소가주를 묻는 거냐.”
“잘 모르겠다면 너희 단장이라는 오르갈에 대해서라도 이야기를 해봐라. 그자는 어디에 있나? 같잖기는 하다만 인세 4대 세력의 수장이라고 하니, 한 번쯤은 대화를 해보고 싶군.”
“대화를 원했다면 이런 살육을 저지르기 전에 청했어야 했다. 바드레이가 말했듯이, 네놈들과 우리 킨젤로 사이에 남은 건 오직 전면전뿐이다.”
“또 한 번 귀한 자비를 걷어차는군……. 이래서 너희는 한낱 잡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키만의 두 눈동자에 선혈처럼 시뻘건 뇌기가 맺혔다.
그러자 베락트와 바드레이는 정신을 짓누르는 공포감이 한층 더 거대해지는 걸 느꼈고, 근처의 수인들은 모두 까무러치며 바닥에 쓰러졌다.
라키만의 양손에 적뇌가 거대한 검을 형성했다. 두 자루 붉은 검이 진동할 때마다 퍼지는 뇌기에 허공이 일그러졌다.
“와라, 잡종들. 이 몸이 현재 가진 힘은 너희보다 결코 크지 않으나, 세상에 존재한 모든 필멸자 중 가장 위대한 종족의 격이 무엇인지를, 내 직접 일깨워주마.”
“카아아아!”
“죽어, 죽어, 죽어어엇!”
베락트와 바드레이가 외치는 기합은 자신에게 거는 주문과 같았다. 억지로 악을 쓰지 않으면 싸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인세에 적명족 대투왕을 마주하고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인은, 이들 두 사람뿐이었다.
전투는 초장부터 일방적이었다.
라키만은 유희를 즐기듯 가볍게, 무리하지 않으며 검을 휘둘렀고, 두 사람은 매 순간 죽을힘을 다해 그에게 대항했다.
그럼에도 베락트와 바드레이는 본래 실력의 절반조차 낼 수 없었다. 라키만이 말한 대로 천적과 먹이 사이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과 격이 존재하는 것이다.
때문에 십여 분이 흐르기도 전에.
베락트와 바드레이는 도주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치욕스러우나 살아남아 본부에 이 사실을 알리고, 다시 싸울 준비를 해야 했다.
라키만은 그들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보았다. 도망치고 싶어 안달이 난 마음, 분명 지금의 자신보다 가진 힘이 큰데도 거역할 수 없는 공포, 늘 패자로 군림하다 한순간에 잡병보다 못한 신세가 된 굴욕감.
그 모든 감정을 읽으며 사냥의 즐거움을 느꼈다.
이내 지상 전투종족의 무력을 상징하는 두 수인은, 겁에 질린 애들처럼 뒤돌아 마구잡이로 뛰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살고자 하는 본능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짓누른 것이다. 베락트와 바드레이는, 특히 베락트는 태어나 이보다 더 큰 치욕을 겪은 적이 없었다.
라키만은 뛰는 두 사람을 쫓을 수 없었다. 아직 육체 능력이 그들보다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또한 어떻게든 잡아야 된다는 생각이 없기도 했다. 어차피 지금보다 더 잘 익었을 때 취하면 좋을 사냥감들이었다.
대신, 라키만은 한 차례 힘을 모아 그들의 뒤로 검기를 쏘았다. 당장 먹어야 될 만큼의 순도 높은 피를 얻기 위해서.
스악-!
검기가 잘라낸 건 바드레이의 왼팔이었다. 바드레이는 팔이 잘린 순간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뛰었다.
이후 라키만은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그들을 추격하지 않았다. 산책이라도 하듯 느긋하게 걸어 떨어진 팔을, 그 속에 담긴 피를 취할 뿐이었다.
“역시, 훌륭한 양분이로군. 반은 시마트 동포에게 나눠주어야겠어.”
라키만은 바드레이의 떨어진 팔을 주운 후, 멀찍이 떨어진 한 바위를 바라보았다. 라키만은, 아까부터 그 바위를 의식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바위의 뒤에 숨어 있던 한 인간을.
“요나 룬칸델. 내 예상이 맞다면 너는 아마 진 룬칸델의 형제일 테지. 인세에 이렇게까지 잘 숨을 수 있는 인간은 너와 무명왕밖에 없다고 들었으니. 이제 지금까지 훔쳐본 것을, 네 형제에게 알려주겠구나.”
요나.
라키만의 말대로 그녀는 아까부터 줄곧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최근 진의 부탁을 받아 계속 수인들의 땅에 숨어 있던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거든 너의 형제에게 전해라. 지금이라도 아메리스를 죽이고, 청명족을 배신하면 적명의 동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