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98)
제 777화
197화. 적명족(3)
* * *
1803년 9월 25일, 적명족이 지상 활동을 시작하고 약 열흘이 흘렀다.
“하, 이런 미친놈들…… 진짜 단체로 돌아도 이렇게 돌아버릴 수가 있는 거냐?”
베락트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만상을 구긴 채 앉아 있는 그의 앞으로 백랑족과 적호족들이 빽빽하게 도열하고 있었다.
“뭐? 자꾸 전사들이 사라지니까 무서워서 순찰을 못 하겠다고? 내가 이 시국에 돌격대장들한테 정녕 이따위 보고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냐?”
수인들은 대답하지 못한 채 시선을 허공에 두었다. 베락트의 노기에 어깨가 무겁고 오금이 저려왔다.
고작 열흘 만에 순찰을 나갔던 전투종족 이백여 명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으니, 수인들이 두려움에 빠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백랑족 중엔 복수심과 전의에 불타는 이들이 하나씩 보였으나 그뿐이었다.
호전성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백랑족들조차 대부분 공포에 잠식된 것이다. 베락트는 아랫것들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했다.
평전사의 막사에서 생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인들이 이 지경이 된 건 괴담과 그에서 비롯된 실종의 현실뿐만이 아니라, 적명족들이 남긴 희미한 체취가 큰 작용을 하고 있었다.
“최근 평전사들이 실종되고 있다는 건 나도 안다. 그래, 괴상한 일이지. 그런데 전투종족이라는 네놈들이 이렇게까지 쳐 빠지고 망가질 일이냐?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건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찾아서 씹어먹겠다는 마음가짐이 옳지 않나? 그런데 이 새끼들이 계속 대답을 안 하고.”
“아, 거. 왜 애들을 갈구고 그래. 이런다고 떨어진 사기가 돌아오냐?”
베락트의 옆에 있던 한 적호족이 껄렁한 목소리를 냈다.
적호왕 ‘바드레이’였다. 그는 부상을 빌미로 최근까지 은둔생활을 하다가 며칠 전부터 킨젤로 본회에 합류한 상태였다.
“바드레이, 내내 숨어서 놀던 주제에, 말을 가려서 해라. 아랫것들이 보고 있다.”
“네, 네, 그럽죠. 그런데 베락트, 내가 볼 때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넌 예나 지금이나 왜 이렇게 둔하니? 응?”
“뭐?”
“난 말이야, 음! 아주 위험한 냄새를 맡았어. 위대한 백랑족 대전사 베락트 님께서 탁자에 앉아 에헴! 하는 동안 애들 순찰 지역을 직접 샅샅이 핥아 보니, 이건 정말 예사롭지가 않더라…… 이 말이지.”
계속 비꼬는 목소리에도 베락트는 짜증스러운 듯 이마만 짚을 뿐 더 강하게 바드레이의 태도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선 전사이기 때문이었다. 은둔하며 뭘 한 건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지기도 했고.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명왕족의 짓이야.”
“뭐?”
“사라진 놈들은 말 그대로 그냥 사라졌어용! 우리 애들이야 원래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하다지만, 너희 백랑들은 좀 낫잖냐? 상대가 아무리 빡세도 한 번쯤은 개겼을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이 말은? 거역할 수 없는 두려움에 굴복해서, 그냥 개장수 만난 개들처럼 깨갱 끌려간 거야. 싸움이고 저항이고 성립이 안 된 채. 명왕족 말고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어?”
“지금 인세에 명왕족을 부를 수 있는 인간은 룬칸델의 소가주 하나뿐이다. 혹은 진 룬칸델 본인이 명왕족의 기운을 낼 수 있지. 그러나 이건 놈의 방식이 아니야.”
“그래, 그래. 나도 그 친구는 아닐 거라고 봐. 그런데 명왕족 말고는 없다니까? 놈이 부리는 명왕족 중에 변절자가 있거나, 아니면…… 세상에 또 다른 명왕족이 존재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이 말씀.”
“변절자라…….”
베락트는 잠시 진과 그의 형제들을 떠올렸다.
특히 진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의 진영에서 배신자가 나오는 모습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말이 안 되긴 하지만 다른 명왕족이 존재한다는 쪽이 차라리 더 그럴싸한 것 같군. 혹은 명왕족에 준하는 다른 강자라든가.”
“일단 내가 맡은 냄새는 인간이나 용, 마족, 마물이 낼 수 있는 건 분명 아니었어. 우리처럼 털 달린 놈들만 풍기는 그런 냄새였다고. 짐승일 리는 없잖아?”
바드레이는 또 다른 명왕족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너랑 내가 직접 순찰을 돌자. 내가 볼 땐 오늘 국경 2지역 쪽이 털릴 것 같거든? 동선이 그래, 동선이. 내가 젊을 때 이런 짓 많이 해봐서 잘 알지요. 너랑 나랑 허접한 척 거기서 딱 기다리고 있는 거야. 진짜 명왕족이 나온다 해도, 우리 둘이 설마 지겠냐?”
“흠…….”
베락트는 못마땅했으나 일주일만 바드레이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했다.
“자자, 해결! 우리 불쌍한 강아지들은 이제 해산해서 일들 봐. 이 적호왕님과 위대한 대전사 베락트 님께서 그간 동족들을 해먹은 놈들을 잡아 올 테니까.”
수인들은 눈치를 보다 베락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해산해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휴 저, 저. 풀 죽은 뒷모습들 봐라. 애들이 불쌍하지도 않냐, 베락트.”
“위엄이라는 걸 좀 갖춰라. 넌 쓰레기 같은 적호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적호가 적호다워야지. 우린 너희랑 다르게 원래 근본부터 양아치야. 아주 센 양아치.”
“단장님과 제피린 대공이 갑자기 의식불명에 빠진 상황이다. 마족들에게 얕보이지 않도록 우리가 처신을 잘해야 한다.”
의식불명.
오르갈과 제피린은 열흘 전부터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이더니 의식불명에 빠진 상태였다. 그건 깨어난 아메리스에게 두 사람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데, 킨젤로는 아직 원인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흐음, 마족 녀석들이 말하기로는 두 양반 모두 생명에 지장은 없다던데. 정신적 충격으로 예상된다나? 이러다 영원히 못 일어나지는 않겠지?”
“재수 없는 소리 마라. 몽마들이 차도가 있다 하였으니.”
“순진하게 마족 새끼들 너무 믿지는 마라. 내가 볼 땐 언제든 뒤통수칠 준비가 된 놈들이거든.”
“나도 몇몇 마족들 빼면 대부분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네놈이 괜히 분란을 조장하진 않을 거라 믿겠다.”
“그쪽에서 먼저 깐족깐족 시비만 안 걸면야 뭐! 크크, 오늘 밤이 기대되는군!”
밤이 되자 그들은 평전사처럼 옷을 갈아입고 순찰을 돌았다. 체구와 기운 모두 옷으로 가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말이다.
별다른 낌새 없이 몇 시간이 흘렀으나, 정확히 자정이 되자 두 사람은 갑작스레 형용하기 어려운 한기를 느꼈다.
“갑자기 등줄기가 싸해지는 이 느낌! 너도 느꼈지?”
“조용, 저쪽인 것 같군.”
두 사람은 한 차례 눈짓을 교환한 후 동시에 등에 멘 대검을 뽑아 휘둘렀다. 거대한 검기가 수풀을 휘젓자 숨어 있던 적명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숨어 있던 건 두 명의 적명족 평전사였다. 안돌린과 오젠이 가져간 수인들의 피로 봉인에서 깨어난.
“캬! 이것 봐. 내가 뭐랬어, 명왕족이라고 했지? 그런데 요상하네. 명왕족의 광심장은 푸르다던데, 너흰 왜 붉냐?”
베락트도 그들의 광심장을 눈여겨보았다. 분명 진이나 그의 형제들이 가진 광심장과 다른 형태였다.
“게다가…… 듣던 것보다 상당히 허접하네?”
바드레이가 돌진해 휘두른 대검에 적명족 평전사들이 한 번에 튕겨 나갔다.
적명족들은 아직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다. 애초에 평전사인 만큼 두 사람의 상대가 될 수 없기도 했다.
“뭐, 약한 것과 별개로 우리 애들이 보는 순간 지릴 것 같은 냄새가 나긴 하는군. 명왕족은 명왕족이니. 너희 뭐야? 진 룬칸델이 보냈어? 아니면 독단이야? 왜 광심장은 붉은색이야?”
속사포로 묻는 바드레이의 질문에 적명족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분명 2급 투왕들이 설명하기를 다가가기만 해도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못 하는 게 인세의 잡종들이라 했으니까.
게다가 두 적명족은 2급 투왕들과 달리 오늘 처음으로 임무를 시작했는데, 하필 인세의 전투종족 정점들을 노린 것이다. 감각이 떨어진 탓에 그들이 풍기는 초인급 기운을 읽지 못한 패착이었다.
“대답하기 싫어? 어쩔 수 없지, 뭐! 우리랑 같이 고문실로 가는…… 엥?”
펑!
적명족들이 신호탄을 쏘았다.
“적지 한복판에서 신호탄을 쏴? 재미있는 놈들이네. 지원 요청이 아니라 다른 놈들 도망치라는 용도인가? 우리도 신호탄이 있다는 말씀. 도망치는 놈들도 다 잡아서 사이좋게 고문실로 보내줄게, 걱정 말어, 내가 너흴 외롭게 두지 않아!”
바드레이도 집결과 포위를 알리는 신호탄을 쏘았다. 이제 순찰 중인 수인들과 더불어 지부에 대기 중인 전사와 마족들도 몰려올 터.
그사이 베락트는 검신을 몽둥이처럼 휘둘러 순식간에 적명족들의 하체를 으스러뜨렸다.
“크아악!”
“크크, 우리 애들 이백을 넘게 해먹었으면서 뭘 이런 거에 비명을 지르고 그래. 이제 보니 너희, 우리 적호 녀석들이랑 같은 부류구나? 더 센 놈 앞에선 쪽도 못 쓰는. 냄새 때문에 괜히 잠깐 쫄았네.”
콰득!
베락트가 거칠게 적명족들을 땅에 처박았다.
“애들 오면 포박해서 데려가자. 이 새끼들, 기대해라. 응? 마족 놈들이 다른 건 몰라도, 고문 하나는 진짜 기가 막히거든.”
“보아하니 명왕족의 아종, 혹은 잡종인 것 같군. 내가 직접 겪은 명왕족들은 이렇게 쓰레기 같지 않았다.”
“아종이든 뭐든 바드레이는 솔직히 흥이 조금 깨졌어용. 한바탕 신나게 싸우는 그림을 기대했는데, 보람이 없다고나 할까.”
“목적과 배후를 캐내다 보면, 이것들의 동족 중에 자연스레 더 강한 놈들이 나올 거다.”
“아! 제발, 걔들은 이렇게 싱겁지 않아야 될…….”
돌연 말을 끊은 바드레이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또 한 번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방금과 달리 진짜로 식은땀이 나고 손이 떨렸다.
베락트도 한 박자 늦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순 온몸이 얼어붙으며 소름이 끼쳤다.
“우리 동포들을…… 놓아주어라.”
반대편 수풀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방금 전처럼 그쪽으로 검기를 날리지 않았다.
대신 모든 기운을 끌어올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상상해본 적 없는 유형의 강적이, 아니.
‘천적’이라 불러야 마땅할 존재가 수풀의 어둠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와 씨…… 겁나게 크네. 뭐야, 이거. 이것들하고 똑같은 명왕족 아종이 맞기는 한 거야?’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적명족을 보며 바드레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적호족과 백랑족 중에서도 유달리 큰 두 사람을 가볍게 압도하는 거구였다.
“그리하면 오늘은 조용히 돌아가주마.”
“……그럴 수 없다.”
“이 몸이 온전치 않아 얕보인 것인가, 아니면 잡종들이 머리까지 나쁜 것인가…….”
적명족은 애석하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적명족 대투왕 라키만 호그. 내가 베푸는 자비를 거절하는 잡종을 보는 일도 실로 오랜만이군.”
“대전사님!”
“적호왕! 귀신들을 잡은 겁니까!?”
라키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인들과 마족의 지원이 도착했다.
그리고 베락트는, 본능적으로 아군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도망쳐라……!”
그러나 이미 가장 먼저 도착한 지원군 열댓 명이, 라키만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소용돌이에 집어삼켜지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