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97)
제 777화
197화. 적명족(2)
“놈들의 성채도 지하에 있다고 하셨죠?”
[정확히 표현하면 지하세계와 지상세계의 중간쯤이다.]“총 다섯 개의 성채가 있다 하셨으니…… 큰일이긴 하군요. 지상과 지하의 중간쯤이라 해도, 어쨌거나 모두 아메리스 님보다 깊은 지역에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 진. 놈들의 본거지를 찾겠다고 온 세상을 때려 부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지상 활동을 하는 놈들을 잘 추적해야겠지.]적명족의 성채는 본래 모두 지상에 존재했다. 전성기의 아메리스가 행한 봉인 때문에 지하로 가라앉은 것이다.
[문득 이 몸이 봉인할 당시 적명족이 얼마나 거세게 저항했는지가 떠오르는군. 놈들은 지하로 가라앉아 봉인되고도, 남은 인력을 모아 바깥으로 이어지는 공간 이동 장치를 만들었었어. 이제 대투왕들의 봉인이 풀리면 성채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올 것이다.]“적명족의 기술력이 대체 어느 정도인 겁니까?”
[이 몸이 티칸에 와 너희들과 생활하며 직접 느끼고, 현세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은 바. 현재의 지상은 그 시절에 비해 현저히 낮은 문명 수준을 가지고 있다.]아메리스에 의하면 태양신이 있던 고대엔 초장거리 통신이나 순간 이동 등이 매우 흔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비행 함선 역시 지금처럼 거대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세력을 과시하는 가장 큰 상징은 공중요새였다. 지상의 전대륙은 물론이고, 지하조차 마음껏 오가며 정복 활동을 할 수 있는 공중요새를 가진 필멸자들이 있던 것이다.
아메리스가 설명하는 동안 진은 이전에 라프라로사에서 투신전의 본당이 다른 건물과 분리되어 부유한 순간을 떠올렸다.
‘투신전 본당도 그 시절에 존재하던 공중 요새 기술의 흔적이었나.’
투왕대전 이후 부서진 본당을 재건할 때, 진과 다른 형제들은 대부분 단순 노동에 가까운 역할을 주로 했었다.
명왕족 최고의 기술자인 보라스만이 높은 기술적 이해가 필요한 작업을 맡았다. 그러나 보라스조차 투신전 본당에 적용된 모든 기술을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했었다.
[그중 가장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게 적명족이었지. 청명족이 그다음이었으나, 격차가 있기는 했어. 다만 청명족은 그걸 개개인의 압도적인 무력으로 상쇄했다. 평균적인 전투력은 청명족이 훨씬 높았거든. 기술과 힘의 대결이었다고 할까. 물론 정점, 혹은 그에 준한 자들끼리는 비슷했지만 말이다.]아메리스는 그 시절의 과학과 문명이 현재까지 이어지지 못한 걸 당연하게 여겼다.
[구시대, 즉 태양신이 죽기 전에 불멸자와 필멸자들이 이룩한 모든 건 세상이 완전성을 잃고 이분된 순간부터 의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죽음과 부활을 사수하려는 세력들 사이엔 끊임없이 큰 전쟁이 있었고, 이 몸은 그 중심이었지. 나를 비롯한 전쟁의 주역들이 봉인된 이후 세상은 여러 차례 멸망과 재건을 거쳤을 것이다.]그녀는 세상에 문명이 여러 번 탄생하고 사라졌다는 결론에 닿아 있었다.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최소 한 번 이상은 멸망이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따라서 지금의 명왕족은 적명족이 봉인되고 청명족이 멸망하며 남긴 후인들이고, 가끔씩 발견되는 초월적 기술 장치들은 순환을 거치다 남은 1세대 초고도문명의 잔재였다.
“지하 역시 그럴 거라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지. 애초에 세상이 나뉘었을 때, 지하로 보내진 이들은…… 영원히 매몰될 운명에 놓이게 된 것이다.]“그건 조금 가혹하네요. 왜 누구는 지상으로, 누구는 지하로 가게 된 거예요? 그것도 태양신이라는 존재가 선택한 건가요? 보통은 지상이 더 좋다고 생각할 텐데, 저라도 반발심이 들었을 것 같아요.”
엔야의 물음에 아메리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표현이 매몰일 뿐, 지하세계는 지상 못잖게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어. 그곳에도 밤과 낮이 있다.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둡고 칙칙하기만 한 세상이 아니다. 오히려 태양신을 숭배하는 자들에겐 제단이 더 가까우니 더 나은 점도 있지.]“아하! 지하에 밤과 낮이 있다니.”
[이 몸은 지상과 지하의 전쟁에 근본적인 책임이 지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였다면, 지상을 넘보지 않았다면 지금 너희가 이 고생을 하고 있을 이유가 없겠지. 하지만, 태양신 부활을 위해 세상을 어지럽힌 놈들 또한 필멸자로서 자신들의 운명을 벗어나고 있을 뿐이겠지.]아메리스의 시선이 진에게 닿았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운명을 벗어나고자 투쟁한 괴물들이 바로 이 몸과 너,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의 적이다.]“그러나 투쟁의 가치는 이어진 시간으로만 정해지는 게 아닙니다. 놈들이 얼마나 오래 투쟁했든 그 근간에는 태양신에게 기대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는, 이상향을 되찾으려는 나약한 마음이 놓여있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채로, 극복하지 못한 채로 저와 싸운다면. 부서질 수밖에 없습니다.”
확신에 찬 진의 대답에 아메리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의 말에 담긴 한 마디 한 마디는 하나도 꾸며낸 것 없는 진심이었다. 진에겐 적명족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지하세계의 적들이나 기존의 적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솔더렛이 필멸자를 참 잘 골랐군. 그러나 얕보지는 말거라. 적명족의 봉인이 해제되기 시작하면 세상의 판도가 바뀌긴 할 것이다.]“룬칸델과 바멀 연합, 지플, 킨젤로, 비먼트 황가 잔당에 이은 제5세력의 등장이군요.”
제5세력.
이제 겨우 다섯 명이 부활했고, 그중 둘은 진에게 죽음을 맞이했지만 적명족은 그렇게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상 활동을 시작한 적명족이 가장 먼저 사냥할 대상은 누구인가.
잠시 동료들 사이에 그에 관한 말들이 오갔다.
[이 몸이 적명족의 지상 활동을 사냥이라 말한 건 단지 표현이 아니다. 놈들은 생명의 피를 주 영양분으로 삼는다. 광심장이 붉은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지.]“피……?”
[봉인을 해제하기 위해선 대량의 피가 필요할 것이다. 강한 개체의 피일수록 더욱 뛰어난 효과를 보이지.]“그럼 무차별 학살을 할 가능성이 높겠군요.”
[그렇게 하기엔 그 많은 생명이나 피를 운반할 수단이 없고, 애초에 가축이나 단련되지 않은 필멸자의 피는 별 효과가 없어. 그래서 적명족은 전성기에도 놈들 입장에서 가치가 없는 생명은 잘 죽이지 않았다. 맹수들처럼, 꼭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했지.]그 말에 진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활한 적명족들과는 몇 번을 싸워도 압살할 자신이 있지만, 그들이 갑자기 인세 어딘가에 나타나 빠르게 양민들을 도륙하고 빠지는 건 진으로서도 쉽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미 흉신전 때 그런 식의 학살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이다.
[게다가 너무 많은 생명을 죽이면, 그 많은 시체와 피를 어떻게 성채로 운반하겠느냐? 귀환술은 만능이 아니야. 네게서 도망치기 위해 동족을 촉매로 사용해야 할 만큼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데, 가치 없는 피에 사용할 순 없을 테지.]“콰울 박사가 가져간 팔찌에 장착된 기능인, 아공간 창고를 이용하는 것도 그렇습니까?”
[아공간 창고도 공간의 한계가 존재해. 1급 투왕인 시마트는 그래도 비행 함선 하나 정도는 넣을 공간이 있지만, 놈은 봉인 해제 때문에 직접 움직이지 않을 거다. 따라서 움직이는 건 남은 2급 투왕 두 명인데, 그들의 창고 크기는 기껏해야 성체 인간 서른 명 정도다.]적명족은 청명족, 그리고 현재의 명왕족과 달리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계급으로 결정되는 사회였다. 계급에 따라 가질 수 있는 아공간 창고의 크기조차 다른 것이다.
마지막까지 싸운 대상이 적명족이기 때문인지, 다행히 아메리스는 그들에 관해 상당히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아메리스 님은 성채 당 대략 천 명 이내의 적명족이 있을 거라 하셨죠. 그들의 광심장을 깨워 봉인을 해제하려면…… 평범한 인간 육십 명 정도의 피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진, 너 같은 인간이라면 한 명만으로 모두를 깨우고도 차고 넘칠 테지만, 흠…… 그래, 제트. 제트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되겠군.]“윽, 저요?”
[내 생각에 평전사 한 사람당 필요한 피는 제트 둘, 셋 정도다.]제트는 현재 6성 후반의 실력을(틈틈이 길리에게 배운 덕에) 바라보고 있었다. 초인과 괴물들의 세계에선 한없이 초라하지만, 보편적인 기준에선 어마어마한 강자였다.
“그럼 저 정도의 무인이 셋 정도 있으면 적명족 평전사 한 명을 이길 수 있는 겁니까요?”
[음…… 그런 건 그냥 꿈도 꾸지 말거라, 제트. 넌 전투원이 아니라 정보원이니. 네가 셋이면 힘의 크기 자체는 평전사와 비슷할 수도 있으나, 적명들은 명왕족이다. 상대조차 될 수 없다.]“그럼 적명족 입장에서 제트 정도의 전투력을 지닌 생명을 수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땅은…….”
대부분 거대 세력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소규모 왕국들은 왕실 근위대장쯤 되어야 7성이고, 평기사와 평마법사는 거의 5성을 넘지 못하니까.
불현듯.
진의 뇌리에 한 지역의 이름이 번뜩였다.
“수인들의 땅……?”
킨젤로의 영토, 수인들의 땅.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곳엔 수인들이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개체는, 전투 종족인 적호족과 백랑족이었다.
심지어 적호족과 백랑족은 과거 광심장을 얻은 진을 처음 보았을 때, 본능적으로 싸움을 포기하며 겁먹은 개처럼 오줌을 지렸었다. 지금도 두 전투 종족의 평전사들은 진의 살기 어린 눈빛조차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만일 그들이 적명족에게도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그보다 더 쉬운 사냥감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적호족과 백랑족은 ‘전투 종족’인 만큼, 성체를 기준으론 모두 6성 이상의 전투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분명 수인들의 땅을 노릴 겁니다. 제가 적명족이라면, 그보다 더 좋은 사냥터가 없습니다.”
[아, 수인들의 땅이라. 적호족과 백랑족이라 했던가, 나로서는 근본을 알 수 없는 녀석들이 있다고 했지. 아마 당시 존재하던 하위 종족들의 잡종으로 추정되긴 한다만. 적명족이 사냥하기에 더할 나위 없기는 하겠어.]* * *
진의 예측대로.
수인들의 땅 외곽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적호족과 백랑족들은 벌써 안돌린과 오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인들은 붉게 빛나는 광심장을 보며 넋이 나간 채 떠는 모습을 보였다.
“누, 누구십니까……! 왜, 왜 이러시는.”
“하? 진짜로 이런 잡종들이 있었군. 방금까지 지켜보니까 비전투 종족 수인들 잘 괴롭히던데, 우리에게도 그런 살기를 보여 봐라. 동포들이 더 팔딱팔딱 뛰는 생명을 섭취할 수 있도록!”
킨젤로의 수인들 사이에 적명의 괴담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