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96)
제 777화
197화. 적명족(1)
“허억, 헉……!”
옛 오테리엄과 아주 먼, 지하 어딘가.
진으로부터 도망친 적명족 세 사람이 순간 이동을 한 곳은 과거 ‘파틀록’이라 불린 적명족의 제3도시였다.
파틀록의 성채로 떨어진 세 사람은 한동안 순간 이동의 여파에 구역질을 하며 몸을 비틀었다. 본래도 적명족의 ‘귀환술’은 육체에 상당한 무리를 주는데, 세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약해진 상태니 핏물까지 토하고 있었다.
“……다들 괜찮나.”
시마트가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예…… 시마트 동포. 무사합니다.”
“빌어먹을, 깨어나자마자 마키람과 만타가……!”
안돌린과 오젠이 침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마키람과 만타, 귀환술의 촉매가 된 두 동포 때문이었다. 진에게 맞서는 동안엔 동포들의 희생에 괴로울 틈이 없었다.
동포를 촉매로 귀환술을 사용하는 건 오직 이런 순간뿐이다. 몰살을 피해야 하고, 촉매가 될 다른 생명체가 없을 때, 가장 약한 동포가 희생을 하는 게 적명족의 규율이었다.
그러나 깨어난 적명족 다섯 중 시마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2급 투왕이다. 위계의 차이가 없고, 전투력 또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니 마키람과 만타는 그냥 자신들이 먼저 나선 것이었다.
“울지 마라, 오젠 동포. 놈이 마키람 동포의 팔을 잘랐으니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진형상 바로 옆에 있던 만타 동포가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우린, 앞으로 두 동포들의 원한을 갚아주면 된다.”
냉정하게 말했으나 시마트는 괴로운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시마트군’의 대장으로서 깨어나자마자 휘하 동포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자책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댔다.
숫자로는 두 명이지만, 마키람과 만타의 죽음은 남은 병력의 4할이었다.
“귀환술의 촉매가 되었으니 두 동포는 불사군이 되는 명예조차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성기의 적명족은 전사자들의 시신을 병기화시킨 불사군이라는 부대를 운용했었다. 오젠의 말대로 마키람과 만타의 시체는 회수하지 못했으니 불사군이 될 수 없었다.
“……그것도 문제지만 두 동포가 갖고 있던 팔찌들이 걱정입니다, 시마트 동포. 특히 진 룬칸델은 일부러 마키람 동포의 팔을 베었습니다. 팔찌를 노린 겁니다. 동포들의 시신이 불탈 때 완전히 파괴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팔찌가 훼손된 채 남더라도 하등한 인간의 기술력으로 그걸 분석할 수는 없을 거다! 안돌린 동포. 분명 놈의 무력은 대단했으나 주변에서 그 어떤 기술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어. 휴대형 아공간 창고는 물론이고, 비행함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오젠 동포, 아공간 창고는 없었으나 놈들은 소지품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싸운 지상은 버려진 땅처럼 보였으니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겠지. 놈들은 순간 이동, 혹은 그에 준하는 방식으로 이동해서 아메리스를 찾았다는 뜻이다.”
“그, 그럼 시마트 동포. 그놈들이 팔찌를 분석할 기술력 또한 갖췄을 수도 있다는…….”
“그렇다고 가정하는 게 나을 것 같군. 물론 우리 기술자들조차 태양신의 지식을 습득해 만든 것이니 아주 빠르게 분석될 일은 없을 거다. 분석을 끝낸다 하여 팔찌를 똑같이 만들고, 사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고.”
팔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적명족의 광심장과 과부하를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육체가 필요했다.
“지금은 우리가 봉인되기 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무엇이든 인간을 비롯한 다른 필멸자들이 우리와 경쟁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시마트는 훌륭한 판단력과 잠재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일족 없는 자’이면서도 적명족 역사상 가장 빠르게 1급 투왕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시마트의 태도에 격분하던 오젠이 차츰 차분해지고 있었다. 슬픔에 젖은 안돌린의 눈빛도 결의를 되찾았다.
두 사람 다 봉인이 풀린 적명족 중에 다행히도 시마트가 포함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있다면, 그리고 봉인된 적명족들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남아만 있으면.
다시 한 번 붉게 물든 세상을 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 같았다.
천천히, 시마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틀록 성채 귀환실의 어두운 풍경이 보였다.
그러나 그토록 오랜 시간 완벽하게 방치되었음이 분명한데도, 귀환실은 전혀 낡은 느낌이 없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돌들에 크고 작은 균열이 생겼거나 먼지가 쌓이지도 않았다.
불이 켜지고, 다시 적명족들이 이곳을 드나들기만 하면 봉인되기 전의 그때와 똑같은 풍경이 될 터.
“다행히 파틀록의 성채의 주인, 대투왕 라키만 호그 동포께서 아직 살아계시는 모양이군.”
시마트의 말처럼 성채가 멀쩡한 건 그 주인이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적명족의 성은 각 주인인 대투왕들과 연결된 유기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오오, 그러고 보니…… 성이 멀쩡하군요!”
“성주실로 가보도록 하지.”
시마트가 귀환실 벽에 붙은 한 직각 판에 팔찌를 갖다대자 미약한 붉은빛이 번졌고, 승강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났다.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자 곧장 파틀록 성채의 중앙 홀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드높은 천장에 붉은 별처럼 떠 있는 동포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림잡아 백여 명이 훌쩍 넘을 듯한 동포들이었다. 대부분 평전사였으나, 때때로 2, 3급 투왕도 보였다.
그 모습에 시마트조차 잠시 울컥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봉인되기 전, 마지막까지 함께 파틀록 성채를 사수한 동포들이었다.
이윽고 성주실의 문을 열자 봉인된 대투왕 라키만 호그가 보였다.
“안돌린 동포.”
“예, 시마트 동포.”
“지금부터 라키만 동포의 봉인을 해제한다. 하지만 우리도 제대로 회복되기 전까지는 라키만 동포의 광심장을 깨우기 어려울 것이다.”
“하면…….”
“우선 우리가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 일단 성내의 지상으로 이어진 공간 이동 장치들이 가동하는지 확인해봐.”
“예!”
안돌린이 성주실 바깥으로 나가 공간 이동 장치들을 확인했다.
“다섯 개 중 다행히 하나가 작동합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두 동포는 지상 활동을 시작한다. 나가서 영양분을 구하며 현재의 상황을 확인하도록. 특히 진 룬칸델과 놈의 세력에 관한 정보는 샅샅이 캐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시마트 동포. 귀환 촉매는 그때그때 구하면 되겠습니까?”
안돌린의 물음에 시마트는 무거운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지상으로 나갈 땐 반드시 봉인된 동포의 광심장을 가져가도록.”
“아…….”
시마트는 지상 활동을 하는 안돌린과 오젠에게 언제든 도주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금은 귀환술에 필요한 ‘촉매의 기운’을 매번 쉽게 맞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평범한 인간을 촉매로 사용하려면 최소 백 단위가 필요했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용, 마족 등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무엇이든 촉매가 될 수 있으나 지금의 적명족은 전성기의 힘을 되찾지 못했다. 봉인되기 전처럼 아무나 붙잡아서 촉매로 사용하려다 죽을 수도 있다는 뜻.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동포 중 한 사람이라도 죽는 순간 우리 적명족의 부활은 그만큼 요원해진다. 귀환술의 촉매가 되는 동포는…… 전투력 순으로 선정하도록.”
세 사람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이라면, 이제부터 촉매가 될 동포들은 추후 불사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적명족 평전사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은 불사군이 되는 일이었다.
“언제부터 활동을 개시하면 되겠습니까?”
“지금부터 즉시. 복귀는 열흘에 한 번씩, 즉시 보고해야 할 사안이 있을 때는 바로 돌아와라.”
“최대한 동포들의 광심장을 사용하지 않고 복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안돌린과 오젠이 가슴에 손을 얹어 시마트에게 경례를 올렸다. 다시 예전처럼, 상관에게 임무 시작을 보고한 것이다.
두 사람은 중앙 홀로 나가 평전사 두 사람의 광심장을 도려내며 눈물을 삼켰다.
시마트는, 라키만의 앞에 정좌한 채 광심장을 붉게 빛냈다. 그 광심장으로부터 은은하게 퍼진 붉은 뇌기가 라키만에게 흘러 들어갔다.
‘다시 적명의 하늘이, 우리의 태양신이 부활할 것이다.’
시마트는 그렇게 괴로운 마음을 집념으로 떨쳐내고 있었다.
* * *
한편, 진과 동료들은 아메리스의 분신과 함께 티칸궁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적명족의 등장이나 현세에 활개를 치기 시작한 태양신교들이 신경 쓰이긴 했으나, 아메리스는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잘 해결하면 된다는 태도였다.
동료들 틈에 빠르게 섞이는 적응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늘 운명에 묶여 있기만 했던 그녀에게 이런 생활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나 다름이 없었다.
[이 몸이 잃어버린 기억이 너무 많은지라, 놈들의 봉인도 잊고 있었어. 게다가 귀환술…… 그것도 직접 보니까 생각이 나더군. 귀환술이 멀쩡히 실행됐다는 건, 놈들의 본거지가 아직 건재하다는 뜻이니라.]“건재하다굽쇼? 하이고, 야단 났네. 그놈들도 어쨌거나 나리의 형제분들과 한 갈래에 속한 종족인데…… 어마어마하게 강한 것 아닙니까요?”
[그렇다, 제트. 이번엔 놈들이 봉인의 여파로 제대로 싸우지 못했으나, 시마트 녀석은 본래 발카스보다 더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나머진 라타 정도는 되었을 것 같군.]“그런 놈들이 얼마나 있는 겁니까요?”
[놈들의 성채가 하나만 남았다면 천 이내, 다른 성채도 남아 있다면…… 개당 천에서 일만쯤 될 것 같군. 내가 아는 한 성채는 총 다섯이다. 융, 혼, 캄, 호그, 툰. 각 일족의 대투왕들이 다스리지.]제트는 계속 호들갑을 떨며 이마를 짚었다. 진은 그들의 규모와 전투력을 짐작하며 압박감을 느꼈다.
[그리고 대투왕 위로는 투신이 있다. 그자의 생존 유무가 가장 큰 관건이야. 이름이…… 뭐였는지 떠오르지 않는군. 적명족의 투신 역시 시마트처럼 일족 없는 자였는데.]“어쨌거나 시마트 일당은 지금부터 적명족들의 봉인을 풀기 시작하겠군요.”
[그래, 진.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내가 행한 봉인은 놈들의 광심장을 잠재운 것이니, 그 광심장들은 충분한 뇌기를 받기만 하면 다시 깨어날 수 있다.]아메리스가 어째서 그들을 봉인하기만 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당시의 적명족이 강했다는 건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놈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긴 할 것이야. 그리고 분명, 지상 활동을 시작할 테지. 힘을 회복하려면 사냥을 해야 할 테니. 지상의 정보도 알아봐야 하고.]“사냥이라…….”
[내 생각에, 일단 우리 바멀 연합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 같구나. 이미 네게 한 번 크게 당했으니 신중할 게다. 그러니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건, 놈들이 지플을 비롯한 적들을 공격하며 힘을 되찾는 일이다. 그리고 우린 그 과정을 추적해 놈들의 본거지를 알아내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