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
제 9화
4화. 열 살이 되기까지(1)
즐겁다.
하루하루가 즐겁다.
무라칸을 만나고 어언 여섯 달. 진은 여덟 살이 되었고, 50권 이상의 비전서를 필사했으며, 오늘은 토나 형제가 폭풍성을 떠나는 날이다.
‘앞으로 2년 동안, 귀찮을 일 없겠군.’
창 너머로 마차에 토나 형제의 짐을 싣는 하인들을 보며, 진이 생각했다.
사실 복도에서 토나 형제를 흠씬 두들겨 패고 새의 무덤가에 버린 후(하인들은 이 사건을 ‘새의 복수’라 부르며 은근히 통쾌해했다. 토나 형제에게 시달린 건 진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피곤하게 느껴진 적은 없다.
오히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심부름꾼처럼 부렸으니 편하기도 했다.
다만, 유모 ‘엠마’의 존재는 계속 껄끄러웠다. 노골적으로 진을 관찰하고, 친해지고 싶은 기색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영악한 여자라면 언젠가 내가 지하실을 갈 때 모른 척 쫓아오기도 했을 거야.’
그간 진은 엠마가 다가올 때마다 칼같이 잘라 냈다. 다가오는 이유가 뻔했다.
앞으로 토나 형제를 잘 봐주라는 의미.
그리고 그 의미에 숨겨진 진심은, 언제든 진이 토나 형제보다 급이 떨어지길 바란다는 마음.
‘엠마의 불쾌한 시선이 오늘로 끝나는군. 나중에도 이런 식이면, 그땐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처리를 해야겠어.’
아직까진 엠마가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지도, 뒤통수를 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진은 떠나는 엠마에게, 앞으로 그녀의 인생에 뼈가 되고 살이 될 작별인사를 해주기로 결정했다.
“도련님. 형님들에게 인사하러 가시지요.”
“응, 길리. 그래야지.”
두 사람이 폭풍성 중정으로 내려섰다.
굵직한 빗방울이 쉼 없이 몰아치는 와중, 토나 형제를 본가로 이송하기 위해 찾아온 수호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7성 수호기사 하나와 6성 수호기사 다섯. 본가의 권속들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드디어 저 악마 같은 막내와 작별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토나 형제.
“형들.”
“아, 응, 진.”
“마, 막내야.”
진이 미소 지으며 말을 붙이자, 토나 형제가 바싹 굳었다.
“왜 그렇게 놀라? 잘 가라고 인사하러 왔어.”
“고마워…….”
“고맙다…… 막내야!”
“이제 형들하곤 2년 후에나 보겠네. 아쉽다, 그치?”
토나 형제는 전혀 아쉽지 않았으나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토나 형제의 어깨를 툭툭 두들긴 진이 엠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엠마 유모도 잘 가.”
“고맙습니다, 도련님.”
“그리고 잠깐 귀 좀.”
엠마가 몸을 숙여 귀를 진에게 바짝 붙였다.
‘엠마. 본가에서는, 조금 더 조심성을 갖길 바라.’
그 말을 듣자마자 엠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여덟 살 꼬맹이가 지금껏 자신의 태도를 간파해 왔다는 걸 깨닫자,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엠마는 대답조차 못 하고 겨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어깨가 떨리려는 걸 겨우 억누르며 말이다.
“출발하겠습니다. 진 도련님, 2년 후엔 더 늠름한 모습으로 뵐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래.”
수호기사들이 진에게 검례를 올렸다.
이제 그들은 무라칸 산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마차를 타고, 룬칸델의 본가인 ‘검의 정원’으로 갈 터였다.
2년 후, 진 또한 그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 * *
“망할 꼬맹아, 어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는 게 좋을 거다.”
폭풍성 지하실.
무라칸이 진에게 바구니를 받아 들자마자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진은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곧장 책장 앞에 앉았다.
“어째서. 어째서…… 바구니에 딸기파이가 하나밖에 없는 거지? 이 무라칸을 뭐로 보는 것이냐?”
무라칸이 화난 것은, 딸기파이 때문이었다.
“아, 좀. 하나라도 감사히 먹어. 나 먹을 거 아껴서 가져온 거잖아.”
“용이 고작 딸기파이 하나로 배가 차겠냐고!”
용이 고작…… 딸기파이 때문에 이토록 화를 낸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무라칸에게 ‘딸기파이’는 천 년 만에 맛본 훌륭한 음식이었다.
또한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여전히 폭풍성 지하실에 ‘갇혀 있는’ 무라칸의 혀를 달래 주는 유일한 음식이기도 했다.
“음식 안 먹어도 내 영기 때문에 늘 충만감을 느끼고 있잖아? 새삼스럽게 배가 차긴 무슨.”
“이, 이 인정머리 없는 자식! 용들이 얼마나 까다로운 미식가인 줄 알아? 네놈 사정 때문에 바깥도 맘대로 못 나가는 신세인데, 딸기파이가 단 하나라고?”
무라칸은 깨어난 이후 지금까지 지하실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진을 위해서였다. 진은 성장할 때까지 무라칸과의 관계를 숨길 필요가 있었고, 무라칸 또한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지하실은 본래 ‘기수’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다.
진이 이곳을 들락날락하며 비전서를 베낀 게 가문에 알려지면, 시론은 아마 무라칸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설령 그게 가문의 수호신 취급을 받는, 천 년 만에 깨어난 용이라 할지라도.
그런 의미에서 진과 무라칸은 일종의 공범이나 다름이 없다.
“하! 또 그놈의 미식 타령. 딸기파이 말고 다른 건 네가 싫다며. 너야말로 이 폭풍성에서 딸기를 공수하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진에게도 할 말이 있었다.
사계절 내내 비가 몰아치는 데다, 무라칸 산의 정상에 있는 폭풍성. 이곳까지 싱싱한 딸기를 공수하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 미식을 좋아하는 흑룡은…… 폭풍성의 다른 음식은 모조리 쓰레기 같다며, 오직 길리의 딸기파이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빌어먹을…… 딸기파이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시대로군.”
“그 시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얼른 먹고 수련이나 시작하는 게 어떨까?”
“귀염성이라곤 없는 꼬마가 위대한 흑룡을 들었다 놨다 하는 시대이기도 하고.”
냠.
결국 무라칸이 졌다. 화를 내봤자 없던 딸기가 어디서 솟아나진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맛있어… 젠장, 미친 듯이 맛있다고. 네 유모라고 했나? 나중에 꼭, 이 무라칸에게 정식으로 소개해줘라.”
“알겠다고. 몇 번을 말해.”
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진에게 지난 6개월은, 용에 대한 환상을 모조리 깨부수기 전혀 모자람이 없는 시간이었다.
마법사 시절 상상해 온 용의 모습은, 지혜롭고 위엄이 넘치는 신비롭고 강한 존재.
그러나 실제로 겪은 용은 떼쟁이에, 변덕이 죽 끓듯 하고, 틈만 나면 누워서 허벅지를 벅벅 긁는다.
벅벅.
순식간에 딸기파이를 해치운 무라칸이 허벅지를 벅벅 긁었다.
‘그나마 상상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강하다는 것 정도인가……?’
무라칸을 만난 둘째 날부터 진은 그에게 영력을 다루는 법과, 각종 무술의 기본기를 배우는 중이었다.
직접 대련은 해 본 적이 없지만, 지도를 받는 것만으로도 무라칸이 강하다는 건 충분히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라칸의 힘은 현재 대부분이 봉인된 상태.
그건 아직 진의 ‘영기’가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무라칸에게 영기란 식물에겐 햇빛, 어종에겐 바다와 같은 관계였다.
즉, 무라칸에겐 진이 태양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셈.
다만 성장시켜야 하는 태양이었다. 무라칸이 힘을 되찾기 위해선 진의 빠른 성장이 필요했다.
“필사 삼십 분만 하고, 복도로 나와.”
“알겠어.”
필사를 끝낸 진이 무라칸과 마주하고 섰다.
“오늘은 뭐 따라 적었냐?”
“아틸라가의 검술 비전서.”
“오! 아틸라. 그 녀석들 검술 꽤 괜찮지. 한 천오백 년 전에 놈들 가주를 물어 죽인 일이 생각나는군. 이해는 좀 갔냐?”
“3할 정도. 그 이상은 이해하기 어려워.”
“시무룩하지 마라, 네 나이에 3할이나 이해한 건 어마어마한 일이니까.”
여덟 살에 아틸라라는 명가의 비전서 3할을 이해하는 건, 당연히 어마어마한 일이다.
하지만 진은 성취의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룬칸델에선 ‘어마어마한’ 일이 평균이고, 자신은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만큼 그 이상을 해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번 생에도 위로 열둘이나 있는 룬칸델의 미친 천재들을 꺾는 건 어려울 테니까.
“초대 가주님이었다면 내 나이에 이 비전서를 얼마나 이해했을까?”
“크하하. 그래, 그래. 네놈 선택 의식에서 테마르의 검을 골랐다고 했었지. 그래서 자꾸 테마르랑 너를 비교하는 거냐?”
“아니, ‘역사상 최강’이 초대 가주님이라는 이야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니까. 그래서 비교하고 싶은 거야.”
“역사상 최강이라. 그래, 테마르가 진짜 엄청나게 강하긴 했지. 아마 창성기사라는 네 아버지도 테마르에 비교하면 한 수 아래일 거다.”
진으로선 상상조차 가지 않는 영역이었다.
전생의 진이 죽기 3년 전, 솔더렛의 권능을 얻어 미친 듯이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지만.
그래도 창성기사를 넘보는 건 아득한 일이었다. 당시 솔더렛의 표현처럼 ‘불세출의 마검사’가 된다 할지라도, 과연 아버지를 넘어설 수 있었을지는 지금도 의문이었다.
“음, 그래. 좋아. 아무래도 확실히 해 두는 게 좋겠어.”
“뭘 말이야?”
“너와 테마르의 차이에 대해서 말이야.”
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했다.
“테마르는, 여덟 살 때 이 비전서의 단 한 줄도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잠시 뜸을 들인 무라칸이 뒷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꼭 검술 이론에 대한 이해력이 재능을 뜻하는 건 아니야. 지금껏 내가 봐 온 너는 꽤 대단한. 아니, 수백 년에 한 번이나 있을까 싶은 재능을 지녔지만… 테마르에 비할 바는 못 돼.”
“흠, 약간 힘 빠지는 이야기네.”
“창성기사라는 네 아버지도 분명히 너보다 한참 뛰어난 재능을 지녔겠지.”
“그럼 그 재능의 차이 때문에, 나는 영원히 아버지를 넘을 수 없는 걸까?”
아버지를 넘는다.
그건 다시 태어난 진에게 가장 큰 목표였다. 결국 시론을 넘지 못하면, 그가 죽기 전까진 언제까지고 룬칸델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전생에서의 허무한 죽음.
아킨 왕국을 습격한 9성 기사 셋. 진은 은연중에 그들을 보낸 인물이 시론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진 않지만 말이다.
“순수하게 검술로만 평가한다면 그렇지.”
“검술로만?”
“그래, 이 자식아. 검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있군. 네겐 영기와 마력이 있잖아.”
“그렇지.”
“마법과 영기도 극한까지 다룰 수 있게 되면, 네 아버지가 아니라 테마르를 넘는 것도 마냥 꿈은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 내 한계가 궁금했을 뿐이지.”
“하! 솔더렛의 영기를 얻고도 ‘한계’라는 단어를 떠올린다고? 네가 아직 꼬마라서 그런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신들 사이에서 솔더렛의 이명은…… ‘무한’이다.”
“무한?”
“그래, 무한. 네놈은 이미 무한한 가능성을,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많이 쥐고 있는 셈이지. 그러니까, 어서 크란 말이다. 이 답답한 곳을 빠져나가야 뭐라도 제대로 경험하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 수련은 뭐야?”
“영기 개방. 무술 기본기는 어차피 나중에도 하게 될 테니, 폭풍성을 떠날 때까지. 앞으론 이것과 관련된 수련만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