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1)
제 88화
28화. 시론을 만나다(2)
이른 아침인 만큼 휴페스터 연합국 이동 관문이 한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과 루나, 길리가 도착하자마자 몇 없는 사람들의 이목이 한순간에 집중되었다.
루나 때문이었다.
진은 아직 대외적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루나의 경우는 어딜 가나 알아보는 사람 천지였다. 특히 룬칸델의 본진인 이곳 휴페스터 연합국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함부로 루나에게 말을 걸거나,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오늘 밤 인근 선술집엔 밤이 다 가도록 루나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할 것이다.
“내가 이래서 돌아다니는 걸 싫어해. 역시 날 알아보지 못하는 시골 동네가 편하다니까. 집보다 밖이 편하다니, 이게 말인지 뭔지.”
루나가 툴툴대는 사이 진이 후드를 눌러썼다.
동시에, 이동 관문에 내에 대기하고 있는 경비병들이 쏜살같이 일행 앞으로 달려왔다.
“충!”
“충! 룬칸델의 첫째 기수를 뵙습니다!”
“검의 정원으로 갈 것이니, 마차 좀 불러 주게.”
루나가 경례를 받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후다닥 어디론가 뛰어가는 경비병들. 그들은 검의 정원 소속이 아니지만, 룬칸델로부터 봉급을 받는 이들이었다. 휴페스터 연합국 내의 다른 모든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10분쯤 기다리자 특급 대기실 바로 앞으로 룬칸델의 강철 마차가 도착했다.
마차를 몰고 온 사람은 2등 집사 페트로였다. 마침 동맹 가문에 서류를 전송하기 위해 이동 관문에 있던 것이다.
“루나 아가씨! 갑자기 사라지셔서 본가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엇? 게다가 진 도련님과…… 길리!? 아니 자네가 왜 첫째 아가씨와?”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페트로.
그가 알기로, 지금 이 셋은 존재해선 안 되는 조합이었다. 예비 기수가 첫째 기수와 함께 움직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사정이 있던 모양이로군요. 일단 가시죠, 첫째 아가씨. 보는 눈이 너무 많습니다. 자네들은 말을 타고 먼저 가서 본가에 소식을 알리게.”
페트로가 주위를 살피며 자신을 수행하고 있던 수호기사들에게 말했다. 행여 오늘 루나와 진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소문이라도 날까 봐 신경 쓰이는 것이다.
다그닥, 다그닥.
마차를 출발시키긴 했지만, 페트로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대로 진 도련님을 가문으로 모셨다간…….’
이번에야말로 검의 정원이 제대로 뒤집어질 것이다.
루나가 갑자기 사라지는 건, 사실 자주 있는 경우인 만큼 다들 그러려니 생각하는 분위기였다지만.
떠나고 한 달도 되지 않은 예비 기수가 허락도 없이 돌아온다?
당장 오늘 내로 검의 정원에 피바람이 불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건이었다.
“저, 루나 아가씨, 진 도련님! 외람되지만 한 가지 여쭤 보아도.”
“외람되니까 조용히 하게. 사실 자네만큼 나도 심란하거든.”
“예…….”
페트로의 타들어 가는 속을 모른 채, 마차는 잘도 검의 정원을 향해 나아갔다.
‘일단 같이 오긴 했다만, 진짜로 아버지가 난리를 치시면 어쩌지? 내가 아버지를 막는 동안, 길리가 진을 데리고 탈출하길 기대해야 하나?’
그러기엔 검의 정원에 대기 중인 수호기사가 너무 많았다. 수호기사들은 둘째 치더라도, 다른 형제들까지 길리 혼자 따돌리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 심지어 길리는 힘이 봉인된 상태였다.
막상 검의 정원이 가까워지니, 점점 더 불안해지는 루나였다.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설마 진짜로 죽이기야 하시겠어? 아니…… 아버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이내 생각을 포기한 루나가 물끄러미 진을 쳐다보았다.
‘나도 조금 긴장돼서 식은땀이 나는데, 이놈은 얄미울 정도로 무심한 얼굴이로군.’
정작 진은 창에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시론에게 요구할 수 있는 사안 중, 가장 합당하고 합리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막내야.”
“예, 누님.”
“넌 진짜 나한테 잘해야겠다.”
“당연한 말씀을.”
마차가 멈췄다.
별처럼 촘촘히 검이 꽂혀 있는 드넓은 정원에, 일을 하고 있는 하인들이 몇 보였다. 그리고 마차가 도착하자마자 검례를 올리는 문지기들.
페트로가 마차 문을 열자 루나가 내렸다.
뒤이어 길리와 진이 내리자, 문지기와 하인들이 흠칫했다. 이 정원의 말단들조차 뭔가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지리라 직감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막 먼저 도착한 수호기사들에게 보고를 받은, 형제들이 저택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막내! 가문을 나서니 눈에 뵈는 것이 없더냐? 예비 기수가 감히 검의 정원을 찾아!”
가장 먼저 소리친 사람은 넷째 아들, 뷔고 룬칸델이었다. 그 옆에는 넷째, 다섯째 딸인 뮤와 앤이 서 있었다.
“큰언니가 오냐오냐한 결과물이겠지.”
“이번만큼은 큰언니도 막아 줄 수 없을 거예요. 이건 정말 아니라고요.”
루나와 진, 길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다만 그들을 데려온 페트로는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은 심정이었다.
‘하, 예상대로 야단났군!’
하인들은 감히 저들끼리 웅성대지도 못했다. 급기야 하던 일을 멈추고 황급히 하인 숙소로 몸을 피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만큼 진이 이곳에 온 게 중대한 사안이라는 뜻.
마지막으로 저택 안에서 둘째 딸 룬티아와 셋째 딸 메리, 둘째 아들 디푸스가 걸어 나왔다.
“와우… 직접 보니 더 충격적인데. 뭐야, 막내 녀석. 기수 자격을 포기하기로 한 거냐? 아니면 사춘기가 와서 문득 죽고 싶어진 건가?”
디푸스가 혀를 차며 메리 쪽을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달리 반응하지 않고 진에게 시선을 고정한 모습이었다.
‘막내 녀석…… 아직 꺾이면 안 되는데. 넌 더 커서 이 누나랑 한판 붙어야 한다고.’
메리는 불사조의 심장을 선물한 순간부터, 줄곧 성장한 진과 싸울 날을 기대하고 있었으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사태의 주범들은 석상처럼 서 있는 와중, 한숨을 내쉰 룬티아가 곁으로 다가왔다.
“루나 언니…… 대체 어쩌자고 막내를 데려왔어요?”
조곤조곤한 말투. 그러나 룬티아의 두 눈빛엔 차가운 살기가 가득했다.
“내가 데려온 거 아니야, 이 녀석이 직접 온 거지.”
“그랬다면 언니가 잘 타일렀어야죠, 애가 생각이 없다고 언니까지 이러시면 어떻게 해요!”
룬티아가 큰소리를 쳐도 루나로서는 사실 할 말이 없었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이기 때문이었다.
“아…… 몰라! 그래서 아버진 어디 계시는데?”
이내 루나가 짜증스러운 듯 고개를 홱 돌렸다. 루나는 어릴 적부터 왠지 룬티아를 어려워했는데, 반면 룬티아는 형제들 중 유일하게 루나에게 ‘한 소리’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맙소사, 막내야. 설마 너 아버지를 뵙겠다고 찾아온 것이냐?”
“그렇습니다, 둘째 누님.”
룬티아는 이마를 짚었고 곳곳에서 욕설이 이어졌다.
루나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진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기세로 눈을 부라리는 형제들.
‘참 아름다운 집안이야.’
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룬티아가 고개를 저었다.
“하아. 난 모르겠어요, 큰언니. 너, 막내. 대체 무슨 일로 아버지를 찾아온 건진 모르겠다만, 각오해야 할 거다. 가 봐, 서재에 계신다.”
진이 걸음을 떼고 루나가 그 뒤를 따르려는 순간.
스릉!
형제들을 비롯해, 정원에 자리하고 있는 모든 수호기사들이 검을 빼 들었다.
“……현 시간부로 첫째 기수께선 무기를 버리고 대기해 주십시오. 반드시 진 룬칸델 혼자 올려 보내라는 가주의 엄명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가주로, 큰언니는 첫째 기수로.
룬티아가 그렇게 바꿔 말했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이 사태를 공적으로 취급하겠다는 의미였다. 시론의 명령대로였다.
‘아, 이건 예상 못 한 전개인데.’
루나가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가 진을 죽이기로 결정했을 때 방패가 되어 줄 수 없는 것이다.
“싫다면?”
루나가 눈을 부릅뜨며 크란텔로 손을 가져다 대려는 찰나.
어느새 길리의 뒤편에 선 수호기사가 그녀의 목에 칼끝을 갖다 댔다. 길리는 아직 봉인을 해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기척조차 느낄 수 없었다.
“멈추십시오, 첫째 기수님. 가주의 명입니다.”
“이것들이……! 그 검 안 치워?”
“선을 넘었어요. 만일 아버지가 만족할 만한 이야기가 없다면, 막내는 결코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 첫째 기수께서는 파면을 면치 못할 거고요.”
“무기를 버리십시오, 저항할 시 사살하겠습니다.”
으득!
이를 악무는 루나.
‘망했다… 그냥 지금 당장 진을 데리고 탈출할까? 젠장, 나도 너무 쉽게 생각하긴 했어. 아버지가 진을 어여삐 여기시니까 별일이야 있겠냐는 마음이었는데……!’
지금 맞서 싸우고 탈출한다면 성공하긴 할 것이다.
다만 길리는 살릴 수 없고, 진과 자신은 평생 룬칸델의 추적을 피해 숨어 다니는 신세가 될 터.
물론 최근 열다섯에 5성에 이른 천재 중의 천재와, 시론 이후 최강의 기사로 평가받는 루나를 잃는 건 룬칸델에게 지대한 손실일 것이다.
그러나 룬칸델은 그런 걸 따져 가면서 일을 처리하는 합리적인 가문이 아니었다. 설령 전력 손실로 인해 가문의 세력이 약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주의 명은 절대적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진이 시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진은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형님들, 누님들. 다들 너무 격앙되었군요. 그저 자식으로서, 그리고 룬칸델의 일원으로서. 아버지께 알릴 것이 있어 찾아왔을 뿐입니다. 진정하시지요.”
형제들은 아까처럼 진에게 눈을 부라리거나 상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그저 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루나만 주시하고 있을 뿐.
“그리고 루나 누님, 길리.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진이 저택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런 격한 반응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하나도 긴장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를 잘 몰라. 예비 기수가 본가를 찾는 건 분명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아버지는 의외로 룰에 대해 그렇게까지 엄격한 분이 아니다.’
어차피 위험 부담 없이 시론을 상대로 무언가를 얻어 내는 건 불가능했다. 다소 도박 수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
또한 회귀 후, 진은 왠지 아버지를 읽는 게 가장 편했다.
과거엔 아버지만 보면 주눅이 들어 눈도 못 마주쳤는데, 이번 생에선 늘 아버지를 마주할 때 가장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이번에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기회만 주신다면, 반드시.’
후우.
서재 앞에 다다른 진이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들겼다.
똑, 똑.
극히 조심스러운 노크.
그리고 동시에.
사아아악!
한 줄기 검광이 진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의 진으로선 감히 인지할 수도 없는 검광이었다.
“내가 널 너무 높게 평가한 모양이로구나. 나는 분명 5년의 시간을 주었을 텐데.”
이어서 나지막이 시론의 목소리가 울리자, 서재 문이 문자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시론의 검광에 스친 결과였다.
그리고 진은 시론을 보자마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왠지 모르게 아버지를 보자마자 또다시, 마음이 편해지며 지금 당장 해야 할 말이 우수수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꺼내선 안 된다. 당당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지만, 건방져 보일 정도면 안 돼.’
즉시 고른 대답은 이것이었다.
“보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