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0)
제 88화
28화. 시론을 만나다(1)
예비 기수가 되어 가문을 떠나고 채 한 달이 흐르기도 전에.
아킨의 지하 조직 테싱을 괴멸시키고, 자유 도시 티칸을 거점으로 잡았으며, 지플의 부가주와 뷰렛타를 사살했다.
마지막 전투는 루나가 해결한 셈이지만, 애초에 진이 아니었다면 그들을 무인도로 데려올 수도 없었을 터.
룬칸델 역사상 그 어떤 예비 기수도 단기간에 이만한 공을 올린 적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기껏 개고생하며 이것저것 해 놨더니, 정작 예비 기수로서의 명성에 당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없군.”
무라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뭐, 어차피 나중에 전부 내가 한 일이었다고 밝히면 되니까 크게 아쉬울 건 없어. 아직은 내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수록 더 좋은 시기고.”
예비 기수의 명성은, 본래 가문에서 지정해 준 ‘가명’으로 쌓는 것이다.
그리고 룬칸델은 예비 기수가 충분한 명성을 쌓았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먼저 연락을 취해 자격이 증명되었음을 알린다.
즉, 자연스레 룬칸델 본가까지 그 명성이 전해져야 할 만큼 강자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뜻.
하지만 진의 경우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검’으로만 해결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마법을 이용해 처리했으니, 지금은 절대로 형제들에게 알려지면 안 돼.’
그렇다면 언제 알려야 하는가.
충분한 힘을 갖게 되었을 때다. ‘마법을 쓰는 룬칸델’이라는 사실이 다른 형제들에게 알려져도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강한 힘과 세력을 보유하게 된 순간이어야 했다.
그때까지 진은 세상에 ‘소문’으로서만 존재할 예정이었다.
단신으로 지플 등의 거대 세력에 맞서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소문.
그 인간은 검과 마법을 두루 사용하며 비밀스러운 독자 세력을 갖고 있다는 소문.
그리고 솔더렛의 계약자라는 소문까지.
‘그때까지 내가 마법 사용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내 동료들과 루나 누님, 그리고 아버지뿐이어야 한다.’
루나는 안드레이에게 진이 ‘맹세를 어겼다’는 걸 듣기 전부터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의 동생이 마법 사용자라는 사실을.
처음 폭풍성을 찾았을 때부터 무라칸의 존재를 인지한 그녀였으니 당연한 일.
그리고 진은 루나가 아는 걸 시론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막내, 룬칸델인 주제에 마법까지 쓰고. 완전 비행 청소년이 따로 없네? 아버지가 아시면 모가지 댕강이겠어, 흐흐.”
루나가 진에게 다가오며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정작 진은 어깨나 한 번 으쓱하며 가볍게 반응했지만, 듣고 있던 길리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도련님의 마법 때문에 저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가씨. 가주님 귀에 들어가면 가만두지 않으실 텐데요.”
“아니, 유모. 아버진 이미 다 알고 계실 거야. 테싱이 괴멸한 일이나 안드레이 지플이 죽은 일도, 머잖아 다 나와 관련이 있다고 짐작하실걸.”
루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꽤 자신만만하네. 뭔가 생각해 둔 수라도 있나 봐?”
“예, 누님. 내일쯤 누님이랑 같이 아버지를 뵈러 갈까 생각 중입니다.”
“아, 그래. 아버지를 뵈…… 뭐라고?”
빤히 진을 쳐다보는 루나.
“네가 파격적인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지만 말이야. 아버지가 눈감아 주실 때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아버지를 만나서 어쩌려고.”
“경고할 겁니다. 지플이 룬칸델을 치려고 모종의 계획을 실행 중이라고요.”
길리는 아예 사색이 되었고, 무라칸마저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으음, 마신석에 대한 이야기지? 그냥 내가 아버지께 전해 드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 예비 기수가 허락 없이 가문으로 돌아가는 건, 스스로 자격을 박탈하는 셈인데.”
루나의 말대로 예비 기수는 가문의 허락 없이 검의 정원을 방문할 수 없었다. ‘포기 선언’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아뇨, 누님이 전해드려도 결국 저 때문에 그 무인도에 갔던 걸 밝혀야 할 겁니다. 차라리 제가 직접 알리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전 그걸 기반으로 아버지와 거래를 할 생각이고요.”
결국 길리가 머금고 있던 찻물을 뿜었다.
“도, 도련님, 농담이시죠?”
“가문으로 돌아가는 것도 모자라, 아버지께 거래까지 제안하겠다고? 하하… 이것 참. 나도 이 나이 먹도록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잠시 정적이 흘렀다.
시론 룬칸델에게 거래를 제안하는 일…….
그게 과연 성립 가능한 이야기이기나 할까? 이번만큼은 루나도 혹시 동생이 저번 싸움의 여파로 머리가 좀 잘못된 건 아닐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아버지께 어떤 걸 요구할 생각인데?”
“너무 많으니, 가는 길에 한두 가지만 골라 보려고요.”
“……길리가 그간 네 녀석 감당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훤하다. 하아, 이걸 어째. 말려 봤자 소용없을 것 같고, 정신 차릴 때까지 패는 게 답인가? 자격 박탈이 문제가 아니야, 너 까딱하면 죽어 그러다.”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면 누님이 잘 말려 주시겠죠.”
“아오, 이게 진짜!”
벌떡 일어선 루나가 성큼성큼 진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것 같은 분위기. 길리가 안절부절 하는 사이, 진 앞에 선 루나가 돌연 웃음을 흘렸다.
피식.
“하여간 맹랑한 녀석. 그러지, 뭐! 이 누님이 방패막이 한 번 해 주마. 가족이라곤 죄다 널 잡아먹으려는 녀석들뿐이니, 나라도 따뜻한 누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야겠지.”
루나가 진을 패진 않았지만, 길리로서는 결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없는 대목이었다.
“너무 걱정 말게, 길리. 내가 몸으로 막으면 아버지도 그렇게까지 막 나가진 않으실 것이야.”
“아가씨…… 도련님, 그렇다면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아, 자네까지 왜 그래. 나 힘들어.”
말은 그렇게 했으나 루나는 내심 길리가 기특했다.
‘분명 두려울 텐데, 혹 죽더라도 진과 함께하겠다는 건가. 이런 유모를 만나다니 복 많은 녀석이야, 막내.’
그리고 씁쓸하기도 했다. 루나는 ‘길리 맥로란’이 어쩌다 ‘길리 유모’가 되었는지 내막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 진의 유모가 되지 않았다면, 맥로란의 차기 제일검이 되었겠지. 진과 꽤 닮은 운명을 타고나기도 했고.’
흠흠, 헛기침을 해 주의를 끄는 무라칸.
“룬칸델의 장녀여, 그렇다면 나도 딸기파이와 함께.”
“흑룡께선 그냥 여기 계시죠. 어차피 가 봤자 고양이로 변신한 채로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맞아, 무라칸. 넌 우리 돌아올 때까지 카시미르 경을 돕고 있어. 앞으로 칠색조가 캐내야 할 정보가 산더미니까.”
“알겠다…….”
시무룩해진 무라칸이 고양이로 변신해 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나 그 모습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으므로 무라칸은 결국 옆방에서 놀고 있는 유리아와 엔야를 찾아갔다.
거기서는 그야말로 인기 만점이니 말이다.
“자, 그럼 내일 첫 이동 관문으로 떠나는 걸로 하죠. 한 달도 안 됐는데, 정말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가는 기분이군요.”
하루가 흘러 검의 정원으로 떠나기 직전.
진이 카시미르의 집무실을 찾았다.
“진 공자.”
“카시미르 경, 부탁할 것들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부탁이라뇨, 당치 않습니다. 이제 저와 진 공자는 운명 공동체나 다름이 없으니 제 세력은 모두 진 공자의 것이기도 합니다.”
진은 카시미르가 비먼트의 폐황자이자, 그의 딸이 아즈 밀 계약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카시미르는 진이 룬칸델의 예비 기수인 데다 용과 어울리는 마법 능력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말하자면 서로의 역린을 쥐고 있는 셈이니 운명 공동체라고 표현한 것이다.
게다가 카시미르는 진에게 부채감을 갖고 있기도 했다. 비록 라트리를 진이 직접 찾아온 건 아니지만, 결국 딸을 구해 준 건 진이나 다름이 없었다.
“만약 공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제 딸이 죽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겠죠. 이 빚은 죽는 날까지도 다 갚지 못할 겁니다.”
카시미르의 두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들고 있었다.
‘의외로 굉장히 섬세하고 여린 성격인가 보군. 하긴, 전생에서 자유국 티칸은 건국과 동시에 성왕의 시대라는 소문이 많았었지.’
진이 대답을 고르는 사이 카시미르가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쳤다.
“이런, 제가 주책을…… 하하, 분위기가 이상해질 뻔했군요. 제가 앞으로 어떤 일들을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칠색조에게 이것들을 조사하라고 명해 주십시오.”
품속에서 꺼낸 종이 한 장을 내미는 진.
종이에 쓰인 내용은, 진이 지금껏 직접 목도한 지플의 악행들이었다. 콜론 유적지의 생체 골렘 실험과 무인도에서 겪은 마신석에 관련한 내용은 물론이고.
엊그제 무라칸이 근원석을 설명해 주며 고백한 ‘쿠라노 공국의 묘지 거인’에 관련된 내용들까지 모두 말이다.
그것을 받아 든 카시미르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생체 골렘 실험이라. 세간에 알려지면 지플의 명예가 한순간에 바닥까지 떨어지겠군요. 마신석은 근원석이 뭔지 모르는 이들에겐 중요한 문제로 다가가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예, 하지만 아직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될 사안들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놈들은 앞으로 더 교묘하게 실험을 진행할 테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장 신임하는 정보원들에게만 탐색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한데, 이 ‘거미손 알루’라는 잡배의 본명과 비슈켈 이블리아노에 관한 정보는 왜 필요하신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카시미르가 굳이 ‘왜 이 정보들이 필요하냐’라고 묻는 것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과연 진도 자신을 동료로 생각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진은 스스럼없이 대답해 주었다.
“알루는 아무래도 룬칸델과 끈이 있는 놈 같아서 그렇습니다. 얼마 전 테싱을 괴멸시킨 게 저와 일행들이거든요. 그리고 비슈켈은… 최근 연회에서 께름칙한 일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아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알루 건과 비슈켈 건은 금방 해결할 수 있지만, 나머지 건은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지플의 뒷조사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진과 카시미르의 시선이 맞닿았다.
그리고 카시미르에게 악수를 청하는 진.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카시미르 경.”
“저야말로. 검의 정원에서 무사히 돌아오시리라 믿고, 좋은 술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공자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거든요. 이 도시는 머잖아 국가가 될 겁니다. 그리고 공자는 자유국 티칸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겠죠.”
카시미르가 손을 맞잡으며 답했다.
이내 저택을 떠난 진은 곧장 루나, 길리와 함께 티칸 이동 관문으로 떠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