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21)
제 888화
206화. 흑룡 무라칸, 돌아오다
흑룡 무라칸.
그가 미샤의 대리를 수행하느라 동료들 곁을 떠난 건 1800년 4월, 검황성전이 끝난 직후였다.
그때만 해도 모두가 무라칸이 금방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마 진이 라프라로사에서 수련을 끝내기 전에, 그보다 먼저 티칸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봉인들이 문제였다.
엘로나 지플과 지토의 눈.
그 두 골칫덩이가 탈라리스와 미샤를 지금껏 묶어두고 있던 것이다. 지난 3년 반 동안, 미샤와 탈라리스는 내상에 빠진 채(심지어 탈라리스는 검황성전의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로사에게 또 당해서 얼마 전까지 의식이 없었다) 봉인들을 유지해왔다.
“그간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미샤 님.”
“자네도 고생 많았어, 탈라리스. 나야 용이니 봉인에 매진한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만…… 자네는 앞으로도 당분간 지토의 눈을 살펴야 할 테니 안타깝군.”
“미샤 님이 짊어진 사명에 비할 바가 되겠습니까. 염치없지만, 비궁이 미샤 님의 도움을 받은 일은 영광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그간 동생 놈이 내 대리를 그럭저럭 잘 해낸 듯하지만, 아마 어질러진 부분이 많을 것이다. 정리가 되면 한 번씩 인세로 올 테니 그때는 느긋하게 술이라도 한잔 마시도록 하지.”
진과 동료들은 미샤에게 며칠이라도 쉬다 돌아가라고 했으나, 그녀는 불안해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엘로나가 깨어났으니 행여 문제가 생길 경우 자신보다는 무라칸이 있는 게 백 배는 낫다는 생각이었다.
“인세는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엘로나 지플을 포함해, 모든 일을 잘 해결하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든든하구나, 진. 하지만 조심해라, 엘로나와 일대일 승부는 절대로 피하고. 항상 무라칸을 대동한 채로 만나야 한다.”
“알겠습니다.”
[솔더렛으로부터 난 흑룡, 미샤. 비록 짧지만 반가운 만남이었다.]아메리스가 미샤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아메리스, 미샤, 탈라리스. 그들은 알고 지낸 기간이 길지 않음에도 서로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셋 다 세계의 질서를 수호하는 사명을 지닌 것이다.
“아메리스 님, 제 동생이 혹 실수를 하거든 그냥 패버리십시오. 아마 전성기에 많이 가까워졌을 테니, 죽일 생각으로 패셔도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후후, 그렇게 하지.]“미샤 님, 완성됐습니다.”
길리가 바구니 두 개에 잔뜩 파이를 담은 채 달려왔다. 길리가 만든 딸기파이를 먹고 싶다는 건 떠나기 전 미샤가 한 유일한 요구였다.
와구!
한 입 크게 딸기파이를 베어 문 미샤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맛이다…… 피로가 싹 가시는군.”
미샤는 순식간에 한 바구니를 없앴고, 남은 바구니를 쳐다보았다.
“이건 그놈을 주려고 만든 것이냐?”
“앗, 네 미샤 님.”
“이리 내라, 어차피 그놈은 이제 매일 먹을 수 있잖아. 음, 좋아. 이건 더 맛있군…… 아니, 왜 더 맛있는 거지? 동생 놈하고 날 차별한 것이냐?”
“설마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미샤 님!”
“그럼 이 맛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 파이 위 딸기의 배열이 묘하게 하트를 이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부, 분명 똑같은 재료로 똑같이 만들었습니다만. 배열도 방금 미샤 님이 드신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그건 사랑이 더해졌기 때문인 것 같군요, 미샤 님. 정말로 모든 게 같다면 그것밖에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탈라리스가 말하자 미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길리, 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리 주의하라고 일렀건만…… 너는 지나치게 그놈 취향이니 조심하라고 말이다. 한데 결국 이렇게 되었어. 어떻게 그 놈팡이 같은 놈에게 너같이 좋은 아이가.”
“전 그저 도련님과 무라칸 님을 보필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흐응, 그러시겠지. 그럼 우리 잘생긴 흑룡 오빠는 임자가 없으니까, 내가 차지해야겠군.”
길리가 애써 미소를 짓자 동료들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고, 미샤는 놀리는 맛이 제대로라고 생각하며 남은 딸기파이를 먹어 치웠다.
“덕분에 아주 맛있게 먹었다, 길리. 이제 정말로 가봐야겠군.”
동료들이 미샤를 배웅하러 밖으로 나왔다. 본모습으로 변한 미샤가 영기 해방을 펼치자 비궁 일대가 온통 검게 물들었다.
후우우웅…….
이내 영기가 모여들어 거대한 용오름을 형성했고, 미샤는 그 흐름을 타고 서서히 하늘로 부유했다. 그 모습은 단순히 비행이 아니라, 일종의 승천처럼 보여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다들 조만간 다시 만나자꾸나.]미샤가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한 순간, 하늘 위에서 구름을 뚫고 한 흑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하하, 크하하하핫!]무라칸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온 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드디어! 이 몸이, 돌아왔다!] [좀 닥치고 얌전히 안 내려갈래?]무라칸과 가까워지자마자 미샤는 날개를 주먹처럼 휘둘러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무라칸은 피하지도 않고는 헹, 코웃음을 쳤다.
[크크크, 그렇게 때려서 내가 아프기나 하겠냐? 어?] [응, 계속 까불어. 다시 영계에 묶이고 싶으면.] [쳇! 알았다, 알았어. 너 갈 때까지 안 웃으면 되는 거지? 그까짓 거, 그렇게 하지 뭐. 흐흐, 잘 가라 이 마귀야. 뭐, 나도 해보니까 네가 꽤 고생을 하긴 하더라. 욕보고!]그 말에 미샤는 무라칸을 그냥 지나치려다 뒤돌아서 그의 등에 송곳처럼 날카로운 뒷발톱을 내리꽂았다.
그리곤 앞발로 사정없이 무라칸의 뒤통수를 후려쳤는데, 평범한 용이었다면 이미 일격에 목이 꺾여 죽었을 것이다.
[이게, 미쳐서, 아주, 미쳐 가지고, 넌, 언제, 정신을, 차릴까?]음절마다 정확한 타격이 이어졌다.
[아이씨, 아퍼!] [씨? 아이씨? 뒈질래 진짜?] [아악! 적당히 해라, 나도 체면이라는 게 있다.]하늘엔 방금까지 신성했던 분위기가 온데간데없이 그저 흑룡 남매의 구타와 폭언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결국 미샤는 무라칸을 50대쯤 쥐어팬 후 영계로 돌아갔다. 무라칸은 머쓱한 듯 잠시 헛기침을 하다가 동료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중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지난 3년 동안 수호룡도 없이 온갖 난관을 헤치며 나아간, 천 년의 계약자가 아니었다.
그 옆에 붉은 눈시울을 한 채 서 있는 여인.
길리였다.
[딸기파이여!]매처럼 빠르게 하강하는 무라칸. 영기 입자를 날리며 멋들어지게 인간으로 변신한 무라칸은, 어느새 길리를 자신의 양팔에 눕혀 안고 있었다.
“그간 얼마나 고생하였느냐 딸기파이여……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괜찮다. 널 못살게 구는 놈은 내가 모조리 먼지로 만들어버릴 것이야.”
“그,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었어요, 무라칸 님. 당연히 동료들 중에 절 못살게 구는 사람도 없었고…….”
“그런데 왜 울고 있느냐.”
“일단 저를 내려주고 말씀을 하셔도.”
“딸기파이, 설마 내가 싫어진 것이냐? 그렇다 할지라도 이제 난 널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지금부터는 이 무라칸이 영원히 네 곁에 있을 것이야.”
두 사람 다 잘생긴 덕에 모양새 자체는 꽤 아름다웠다. 한 번도 제대로 드러낸 적 없지만, 그간 길리가 그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도 동료들 모두가 다 알았다.
다만 동료들은 왠지 속이 매스꺼워지는 기분이었다.
“아, 느끼해. 그리고 다소 거북하다. 그만하면 안 되냐?”
“꼬마! 네놈이라 할지라도 딸기파이와 나를 갈라놓을 순 없어. 상봉의 기쁨 또한 저지할 수 없다.”
“길리도 부담스러워하잖아. 보는 우리도 좀 괴롭거든?”
특히 진에겐 무라칸과 길리가 실질적으로 부모나 다름이 없던지라 기분이 이상했다. 부모의 애정행각을 마냥 흐뭇하게 볼 수 있는 자녀는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보아하니 무라칸 님을 차지하겠다는 어머니의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군요.”
“농담이긴 했는데, 진심이었어도 답이 없긴 했겠어. 흐응, 왠지 짜증 나는데, 딸. 나 좀 위로해줘.”
“싫으니까 들러붙지 마세요.”
길리는 자연스레 무라칸의 품에서 내려와 표정과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헛기침을 했다. 정작 무라칸은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연신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동료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이제 좀 낫네. 고생했다, 무라칸.”
“이 꼬마 놈,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도 더 강해졌잖아? 크크, 밀린 이야기가 많겠군. 처음 보는 얼굴도 있고.”
[듣던 것보다 더 바보로구나, 무라칸. 이 몸은 아메리스라 한다.]“인세로 오면서 잠깐 솔더렛의 통찰력이 남아있을 때 보니까, 대충 어떤 존재인지 알겠더군. 세계의 어떤 경계선을 지키는 오래된 존재인 것 같던데. 반갑다, 무라칸이다.”
[……반말?]“아 거 말투 가지고 쪼잔하게 굴지 말자고.”
아메리스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무라칸을 응시했다. 싸우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을 테지만, 무라칸은 왠지 양심이 아파서 홱 고개를 돌렸다. 아메리스가 미샤처럼 다짜고짜 자신을 팰 것 같다는 직감도 들었다.
“아오, 나는 솔더렛하고도 반말하던 사이인데. 그래, 그래요. 그 마귀도 극도로 어렵게 대하는 양반인 것 같으니 앞으로 곱게 존댓말 잘 쓰겠습니다. 됐습니까?”
[그래야지. 참고로 과거 솔더렛은 이 몸을 꼬박꼬박 존칭으로 불렀느니라.]“알겠다니까요. 테스, 그 양반 같은 부류시네.”
[넌 누이를 혐오하는 듯 말하지만 실은 깊이 존중하는군. 아니면 그걸 넘어 존경인가?]“징그러운 소리는 접어주시고.”
오랜만에 돌아왔음에도 무라칸은 늘 함께였던 듯 자연스레 동료들과 섞이고 있었다. 이제 겨우 몇 마디를 나눴을 뿐임에도, 동료들은 벌써 마음이 기분 좋게 시끌벅적해지는 것 같았다.
“시국이 좋지 않기는 하다만, 그래도 너 왔으니 조그맣게라도 환영식을 해야겠지. 티칸으로 가자,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까. 특히 유리아랑 애들이 너 보고 싶다고 난리였다.”
“대충 인지는 했다. 엘로나 지플이 깨어났다며, 이제 그거 엄청 센 놈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왜 지금껏 잊어버리고 있었나 이상할 정도야.”
“오, 자신이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웬일이지? 위대한 무라칸 님이 벌써 겁을 먹은 건가?”
“겁? 꼬마, 이 무라칸 님은 말이다. 살면서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어.”
진은 잠시 무라칸의 살펴보았다. 확실히, 진조차 측량하기 어려울 만큼 광대한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럴 만하네.”
“예전처럼 힘이 부족해서 네놈 지켜주기 벅찰 상황은 이제 없을 테니, 항상 안심하고 싸우면 된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무라칸.”
“오냐.”
진과 무라칸이 서로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냥.”
이내 무라칸은 고양이로 변신해 길리의 품으로 안겼는데, 붉은부엉이의 공간 도약을 경험하자마자 실컷 토악질을 해댔다.
진은 처음으로 폭풍성을 떠나던 날 무라칸이 이동 관문에서 토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실컷 그를 비웃어주었고, 길리는 또 그때처럼 그의 등을 두들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