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20)
제 888화
205화. 이야기의 부름(3)
1805년 10월 27일.
엘로나의 봉인이 깨지고 이틀이 흘렀다. 탈라리스는 엘로나가 탈출한 시점부터 계속 비궁과 성국을 오가고 있었다. 비궁의 훼손된 부분을 재건하며 지토의 봉인을 유지하는 일도 멈출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언젠가 이렇게 될 것 같긴 했다만…… 막상 내 대에 봉인이 깨지니 자존심이 상하는구나.”
탈라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정좌한 채 만빙의 힘을 비궁 곳곳에 흘려보내고 있었다. 만빙의 힘이 스미며 비궁의 파괴된 부분들이 조금씩 복구되었다.
“흐응,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이 그리 나쁜 시기는 아니라는 것이겠지. 우리 사위와 룬칸델, 바멀 연합이 굳건하게 서 있는 시대니 말이다. 후후, 내가 일찌감치 사위의 떡잎을 알아보고 투자한 결과라고나 할까…… 에잇, 빌어먹을! 왜 하필 내 대에 깨어나고 지랄이야, 지랄은.”
“고정하세요, 어머니.”
“딸! 열이 안 뻗치게 생겼니? 내가 그 봉인 막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물론! 언젠가는 깨어났겠지. 저번에 사위한테 말했듯이 지토나 그 여자가 깨어나는 건 필연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게 좀 나중일 수도 있었잖아? 한 천 년쯤 뒤라든가.”
곁에 있던 작은 수인들이 눈치를 살피며 탈라리스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괜히 식은땀을 흘리며 열심히 탈라리스의 어깨와 등을 주물렀다.
“으윽, 전 한낱 인간인지라 아메리스 님처럼 대범한 마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언젠가는 봉인에서 풀려날 수밖에 없다.
분명 탈라리스는 엘로나를 그렇게 생각했으나, 막상 현실을 마주하니 괴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글리엑전 당시 그토록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최후의 최후까지 엘로나 지플의 존재를 숨긴 게 바로 탈라리스였다. 엘로나의 봉인을 유지하는 건 비궁주가 책임져야 할 최고의 과업인 것이다.
[네 말대로 시기가 썩 나쁘지도 않다. 어쩌면 그걸 넘어 좋은 시기일 수도 있지. 엘로나 지플이라는 마법사 역시 언젠가는 꼭 처리해야 할 짐이지 않았느냐. 그런 면에서는 지금이 적기다.]“내 생각도 그렇다, 비궁주. 엘로나 지플이 막 깨어났을 땐 나도 이성을 잃었었지. 그래서 목숨을 바쳐서라도 어떻게든 그 봉인을 유지하려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잘됐어. 이틀 전에 내가 엘로나에게 대항하느라 죽었다면, 망할 동생 놈이 다시는 인세로 돌아오지 못했을 테니까.”
아메리스에 이어 미샤까지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전하니, 탈라리스로서는 더 울분을 토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보다 더 오랜 세월 세계의 균형과 질서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온 이들이었다.
“비궁에 인명 피해가 없던 것도 천만다행입니다. 루일 경의 팔도 회복되었고, 다른 이들의 내상도 치명적이지는 않았죠. 그리고 엘로나가 깨어난 시기가 썩 나쁘지 않다는 건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지플은 적명족 때문에 엘로나 지플을 이용해 다른 정복 전쟁을 시작하기 어려울 겁니다.”
진이 말하자 발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로나 지플이 남긴 기록들이 꽤 희망적이기도 해요. 엘로나는 깨어나자마자 되도록 살인을 피하려는 의식이 있었고, 자신의 존재의의에 대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발레리아가 기록 창을 펼쳤다.
“비궁을 빠져나간 시점엔 무언가 결단을 내린 것 같지만, 엘로나 지플은 분명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에요. 과거 진이 기록 영상에서 본 것처럼 무자비한 학살자라고는 볼 수 없는 심리가 나타났죠. 어쩌면 베라딘 지플과 마찬가지로, 엘로나 또한 지플에게 이용되다 내면에 문제가 생긴 경우일 수 있습니다. 생각만큼 쉽게 지플의 통제를 받지 않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요.”
[이 몸이 보기에도 그렇다. 그 필멸자는 훈련과 경험만을 통해 강해진 게 아니야. 그렇게 창성에 올랐다면 내면이 그렇게 물렁할 수 없지. 태양신의 가장 강한 사념이 깃든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베일, 혹은 헤도가 가진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강한 사념이.]아메리스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게 아니라면 엘로나가 가진 힘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상적으로 창성에 다다른 게 아니라, 요나처럼 특수한 능력을 타고난 부류였다.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이전까지 엘로나 지플의 역사가 지워진 상태였다는 사실입니다. 역사 조작을 한 장본인들은 분명 지플일 테니, 어쩌면 엘로나는 놈들의 치부였을 수도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가문의 대마법사를 지금껏 역사에서 지웠을 리는 없으니까.”
바멀 연합에겐 그게 가장 좋은 가정이었다.
엘로나와 지플 사이에 모종의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역사 조작이 있었다면, 엘로나가 지플을 위해 싸울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나저러나 갑자기 제어할 수 없는 창성 마법사가 나타난 건 극도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엘로나가 이야기의 탑을 향해 떠난 사실도 기록에 남았으니, 당장은 지플의 전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셈이었다.
[우선 사태를 잘 지켜보도록 해야겠구나. 지플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 시국에 엘로나를 앞세워 우리 연합을 치지는 않을 테지.]창성 마법사가 더해졌다 한들 지플은 결코 바멀 연합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적명족의 침공, 엘로나의 완벽한 통제 여부 등.
특히 ‘바멀 연합의 전력’ 그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엘로나가 흉신전에서 드러난 투신 반과 무라칸의 무력을 압도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흐응, 엘로나 지플이 사용한 마법 중엔 공간 이동을 제한하는 것이 있었죠. 그것 때문에 저나 사위도 바로 비궁으로 오지 못했던 거고. 그게 적명족에게도 통한다면 놈들은 이야기의 탑이 아니라 다른 지역을 칠 때도 가슴을 졸여야겠군요.”
[그건 반대로 엘로나 역시 어지간하면 루테로 연방을 떠날 수 없다는 뜻이 된다.]“그렇겠죠. 한데, 적명족이란 놈들에게 그런 괴물을 상대할 만한 능력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전적을 보면 그놈들은 최상위 초인에겐 다소 약한 것 같던데 말이죠. 사위가 무서워서 바멀 연합은 아예 건들지도 않기로 했고.”
“비행함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그 물건 말이죠. 저번 침공 때 연방의 리스릿 자치구를 한순간에 초토화했다고 들었습니다.”
[막강한 개인을 보유하고 있다 하여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적명족은 정말로 끈질기고 지독한 놈들이지.]“그런데 적명족은 사위가 두려워서 연합이 아니라 지플을 노리기로 한 건데. 적명족이 보기에 엘로나 지플이 사위보다 강하다면? 그래서 적명족이 침공 대상을 연방에서 연합으로 바꿀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 지플이 우리 연합처럼 자유자재로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는 한. 엘로나 지플이 아무리 강해도 진보다 빠르게 침공 지역을 지원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그간 기록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전성기 엘로나의 무력은 테마르와 비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봉인에서 막 깨어난 지금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고, 설령 엘로나가 서서히 회복하며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더라도.
여전히 지플이 가진 최고의 수는 엘로나 지플이 아니라 마신석이었다. 마신석을 통한 역사 조작을 완성하는 일이야말로 지플의 최대 과제였다. ‘개인의 무력’만으로 할 수 있는 일엔 분명 한계가 있는 것이다.
다만, 진은 엘로나가 ‘역사 조작’에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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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세 번째 무덤에서 확인한 기록들.
당시 지플은 테마르의 역사를 조작하는 일에 실패했으나, 테마르와 십대기사들이 마탑 다섯 개를 파괴한 일을 ‘존재하지 않는 역사’로 만든 이력이 있었다.
‘정황상, 그 기록에서 파괴된 마탑의 역사를 지운 일엔 분명 엘로나 지플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러니 지플이 엘로나 지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면 역사 조작을 완성하는 일에도 박차가 가해질 테지……. 엘로나 지플을 한 번 만나보기는 해야 한다. 엘로나가 왜 역사에서 지워진 건지 알아낼 필요가 있어.’
그리고 가능하다면, 언젠가는 그녀를 아군으로 만들고 싶었다. 과거 흉신전을 치르기 전에 마음먹은 그대로.
“조만간 제가 직접 엘로나 지플을 한 번 만나봐야겠습니다. 만약 엘로나도 베라딘 같은 상태라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지플이 만남을 쉽게 허락할 리는 없으니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기는 합니다.”
여러모로 위험한 일이나 동료들은 진의 판단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추측만으로는 엘로나에 대해, 그녀와 지플의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또한 다들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설령 전투가 벌어진다 한들, 진이 허망하게 죽을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설령 진이 마주하는 게 전성기의 엘로나라 할지라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진은 혼자 엘로나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곧 미샤 님이 솔더렛의 대리로 복귀하실 테니, 그때 무라칸과 함께 움직이면 좋을 것 같군요.”
바멀 연합엔, 이제 무라칸이 돌아올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