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24)
제 888화
208화. 바멀 연합은 바멀 연합의 할 일을(2)
폭풍신 페이텔.
진은 예비 기수 시절 청새 군도에서 그와 싸운 날을 떠올렸다.
‘무라칸이 율리안을 두들겨 팼더니, 페이텔이 시그문드에 담긴 그람의 힘에 반응해서 강림했었지. 아마 그람의 잔존 사념이 깨어나서 힘을 주지 않았다면, 그날 나는 거기서 죽었을 거고.’
-[크흐흐, 우습군. 그렇게 오만하더니, 힘이 봉해진 채 벌레의 손에 붙들려 휘둘리는 꼴이라니. 어떠냐, 벌레. 형님의 힘이 마음에 드는가?]
-그 벌레가 아니면 강림조차 못 하는 주제에 주둥이가 방정이로군. 신이라면 조금 더 품격 있을 순 없는 건가?
[크흐흐, 벌레 주제에 본인이 옛 명왕족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로구나. 그 검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뭣? 그건…… 명왕족의?]-이 검은 네 형을 죽인 자에게 직접 받은 것이다. 투신 반, 내 형제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
청새 군도에서 강림한 페이텔과 나눈 대화.
당시 페이텔은 진의 광심장을 확인하고, 반의 이름을 듣자마자 공포에 젖어 경기를 일으켰었다. 게다가 전투 중 진이 테스까지 소환하자 또 한 번 겁에 질려 꼴사나운 모습을 연이어 보이기도 했었다.
좋은 기억이 단 하나도 없었다. 위엄도, 어떤 숭고한 느낌도 전혀 없이 그저 망나니 같은 신이라는 기억뿐이었다.
“그 겁 많고 경박한 신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 도움을 줄지도 모르겠고.”
“너 예비 기수 시절 페이텔이 무라칸 님한테 목숨을 구걸했다는 얘기는 들었어. 악감정이 남았겠지. 그래서 협조를 거부하면, 그때는 무라칸 님이 또 패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진은 놀랍도록 단순한 발레리아의 사고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발레리아가 할 법한 대사가 아니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필요한 상황이라는 게 느껴진다.”
“맞아.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계약자에게 무기를 내리는 신은 아주 드물어. 그중에서도 페이텔은 자신의 만족도에 따라 세 가지 무기를 계약자에게 내리니까, 더 특별한 편이지.”
“페이텔이 폭풍의 권능을 무기화한 것처럼, 광심장을 동력원으로 변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그게 가능할 경우, 네 형제들이 복귀하기 전에도 황금함을 최소 한 척은 만들 수 있을 거야. 네가 라프라로사에서 설계도와 같이 챙겨온 광심장이 있기는 하니까.”
“대충 알겠어. 칼토르가 깨어나는 대로 페이텔과 접선할 준비를 해야겠군.”
진은 매일 칼토르의 옆을 지키고 있는 율리안을 떠올렸다. 그는 동료가 된 이후 중요한 순간마다 나름의 활약을 했으나, 칼토르 때문에 늘 어두운 분위기였다.
쿠잔과 베리스처럼 그 역시 동료들에게 마음을 열기는 했으나, 칼토르가 깨어나지 못하면 자신의 삶엔 의미가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칼토르가 깨어나면 그 어두침침한 사람이 웃는 걸 보게 되겠네.”
“너도 얼마 전까지는 거의 안 웃었어, 발레리아.”
“그래서 한 말이야, 이쪽이 좀 더 낫더라고. 아무튼, 최근 진척 상황은 이 정도야. 다른 쪽은 다 괜찮은데, 라프라로사와 관한 일들에만 특별한 성과가 없네.”
“일이 잘 안 풀려도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는 마. 너랑 콰울 박사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동료들 모두가 다 알고 있으니. 그리고 황금 함대는 아니어도, 곧 건조장이 완성되면 함대 생산도 시작될 예정이잖아.”
“바일람이 큰일을 해주고 있지. 그러고 보니 오늘 바일람 오는 날인데, 한 번 보고 갈래? 곧 도착할 거야. 어차피 루체가 무라칸 님한테 부탁한 일 끝날 때까지 시간이 좀 남을걸.”
“좋지.”
두 사람은 슈리를 타고 검황지 바깥의 바다로 나아갔다. 검황지를 빠져나가자마자 혼기가 가득한 탓에 보호막을 겹겹이 둘러야 했으나, 해변은 정화가 끝나서 마냥 푸르렀다.
강철을 받기 위해 해변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경례를 올렸고, 막 도착한 바일람도 얕은 바닷물에 통통 몸을 튕기며 인사를 전했다.
[피피! 안녕!]“안녕, 바일람.”
“오랜만이야. 대장장이의 섬은 좀 어때?”
“어, 오늘은 해강 말고 다른 것도 가져왔네?”
발레리아가 바일람이 토해내는 강철들을 보며 말했다. 진은 순간 그 특별한 강철의 양을 보고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 만년철이기 때문이었다.
[해강보다, 좋은, 철이래용.]“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고대 만년철이야. 주문한 적이 없는데, 대장장이들이 보내주라고 한 거야?”
[골렘, 제작할 때, 좋다고, 했어용.]바일람이 가져온 고대 만년철은 이엘로의 제작 소식을 듣자마자 대장장이들이 알아서 보낸 것이었다.
진이 아는 바, 민체 협회의 대장장이들은 무기가 아닌 물건을 만드는 일에 결코 고대 만년철을 사용할 이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만한 양이면 분명 대장장이의 섬이 가진 고대 만년철 대부분을 내놓은 것일 터. 그들이 연합의 발전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티칸의 동료들처럼 자주 볼 수는 없지만 모두 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혼카, 아저씨, 다음에, 놀자고, 전해줘용. 그 아저씨, 수영, 필요.]“그래, 혼카한테 전해줄게.”
“민머리…… 아니, 피콘 님께도 안부 전해줘.”
[민머리, 넹!]바일람은 피피 웃으며 다시 강철을 나르러 떠났다. 진과 발레리아는 그 뒷모습을 보며 웃었고, 기사들과 함께 강철을 검황지로 운반했다.
돌아오니 작업을 끝낸 무라칸이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꼬마. 딸기파이랑 나는 그렇게 악독하게 떼어놓더니, 나한테 일 시키고 너는 데이트를 하고 온 거냐? 우우우.”
진은 왠지 뜨끔했지만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강철 나른 거 안 보여? 나도 일하고 왔다. 그리고 떼어놓긴 누가 떼어놨다고 그래. 악독하지도 않았거든. 길리가 하는 말 못 들었어? 춘화집이나 읽는 것보다는 일하는 게 훨씬 낫다고 했잖아.”
“쳇, 하여간 한 마디를 안 져요. 이제 또 어디 갈 건데?”
“검의 정원 잠깐 들를 거야. 마법 기사 부대 잘 양성되고 있나 봐야지.”
“그것만 하면 끝이냐? 나 또 토하기 싫다. 저번처럼 딸기파이가 등 두들겨주는 것도 아니고.”
“제국도 한 번 다녀올까 했는데, 너 토하는 거 보니까 검의 정원까지만 가야겠더라. 다른 용들은 순간 이동 잘만 버티던데.”
“흥, 그건 놈들이 이 무라칸 님만큼 뛰어난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검의 정원만 다녀오면 끝이란 거지?”
“순간 이동은 끝이야. 저녁부터는 티칸 이주민들 환영식에 네가 나 대신 참석해야 하고, 밤엔 회의, 새벽엔 티칸 내 최상급 전투원들 대련 상대 해야 돼.”
“아악! 그럼 난 딸기파이랑 언제 놀아!?”
“글쎄…… 가자.”
발레리아는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이 붉은부엉이로 오르려는 찰나, 루체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은 당연히 그가 엔야처럼 또 사인을 요구하려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펜을 꺼내려 했으나, 루체의 머리 위로 바르보보가 화신하고 있었다.
[이봐, 이봐! 진!]“바르보보 님.”
“저 양반도 오랜만이네, 뭐가 그리 급하쇼?”
[아, 무라칸. 반갑네. 돌아왔다는 소식은 바로 들었다만, 이제야 인사를 하는군.]“거 옛날처럼 마음에 안 들면 다 줘패고 잡아 죽이고 그러지 않으니까 긴장하지 마쇼.”
[그것참 다행이야. 흠흠, 천 년 전에 자네들에게 협조하지 못한 건 미안하네.]천 년 전, 룬칸델은 바클 자치구가 왕국이었던 시절에 바르보보의 계약자를 얻으려고 기사들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바르보보는 양대 가문의 싸움에 휘말리기 싫어 잠적했고 말이다.
“나도 이제는 이해해, 미안할 일인가. 지금이라도 꼬마 녀석 돕고 있으니 고맙지.”
바르보보는 무라칸의 온건한 태도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무라칸을 만나면 늘 이런 반응을 보이곤 했다.
[이해해줘서 고맙네. 여하튼, 진을 찾은 건 다름이 아니라…… 케이탐 때문이야.]“화가의 신 말씀이십니까?”
루체와 계약하고 연합을 돕기로 했을 때, 바르보보는 자신과 가까운 신들을 보호해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지플이 마신석의 재료가 될 ‘신 사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화가의 신 케이탐, 액자의 신 옥스, 연필의 신 텔펜. 진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즉시 세 신을 그들이 원하는 안전지역으로 옮긴 상태였다.
-[그중 화가의 신은 너와도…… 아무래도 케이탐에게 직접 듣는 게 좋겠군.]
당시 케이탐에 대해 바르보보가 했던 말.
그러나 듣기와 달리, 케이탐은 아직 진에게 이렇다 할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 케이탐이 네게 이야기를 할 마음이 생긴 모양이야. 최대한 빨리 찾아주기를 원하더군.]진이 마지막으로 케이탐을 봤을 때, 그는 뭔가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 보였다. 그래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는데, 심경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케이탐 님이 내게 할 말이란 솔더렛과 관련한 일인 것 같았고, 무척 말하기가 어려운 눈치였는데. 무라칸이 돌아오자마자 나를 찾으시는군…….’
진은 왠지 그 이유가 무라칸의 복귀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아니, 자기가 오면 되지 왜 우리 꼬마한테 오라 가라 난리야.”
“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 신이든 뭐든 연합원이니까 이 무라칸 님이 지켜주는 게 맞겠어.”
[자네 정말 많이 변했어…… 너무 보기 좋다네. 솔더렛이 이 모습을 보면 분명 기뻐할 게야.]“칭찬 고맙수다.”
“알겠습니다, 바르보보 님. 검의 정원만 들렀다가 바로 케이탐 님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내 진과 무라칸은 붉은부엉이를 타고 검의 정원으로 향했다. 검의 정원은 진과 무라칸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미리 기사들이 도열해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무라칸은 돌아오자마자 바로 검의 정원을 찾았었으나, 아직 힘을 되찾은 그를 직접 보지 못한 기사들이 많았다.
때문에 기사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전성기에 근접해졌다는 가문의 전설적인 흑룡이 과연 얼마나 대단한 위엄을 보일지, 기대가 되는 것이다.
“우으에엑. 어엌.”
하지만 검례를 올린 기사들이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허리를 꺾는 무라칸의 모습이었다.
‘아, 그러게 그냥 함내에서 해결하고 나가라니까…….’
진은 고개를 저으며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