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51)
제 888화
212화. 복귀 명령(1)
글리엑, 키알, 스, 니르간드, 모르가니엘.
흑해 5왕.
시론의 원정대는 마침내 키알에 이어 ‘스’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키알과의 마지막 전투 이후, 거의 4년 만에 마주한 흑해의 왕이었다.
지금껏 원정대에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건, 오로지 시론 룬칸델이라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론은 이번에도 딸과 기사들을 죽게 둘 생각이 없었다. 덧붙여서 이제 정식으로 룬칸델의 일원이 된 전설의 마물 오즈도크도.
“바네사, 자네는 슬슬 빠져서 오즈도크를 챙겨라. 지금부터 그놈은 여파를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이미 스와의 전투가 시작되고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오즈도크는 스를 마주치자마자 전장을 이탈해 후방 저 멀리로 빠진 상황이었으나, 시론은 이제 그곳까지 전투의 충격이 전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가주.”
“루나, 너는 더 버틸 수 있겠느냐?”
“아직 거뜬합니다, 아버지.”
“성장했구나.”
“지상 최악의 영역을 견뎌내고 있으니까요.”
스와 목숨을 건 전투를 이어가는 중임에도.
시론의 원정대는 이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혼돈에 피폭되어 죽어가던 기사들의 눈동자는 흑해에 들어서기 전처럼 생기와 투기가 가득했고, 시론에게선 싸움을 ‘즐기는’ 열정이 묻어났다.
이를테면, 이전만큼 어둡고 처참하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미래가 오직 흑해를 탐사하다 죽거나 괴물이 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인 것이다.
그 모든 배경엔 시론의 각성이 있었다. 시론은 스와의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에 마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였다.
바네사가 전장을 이탈하자 루나와 흑기사들이 시론의 뒤로 대열을 고쳤다.
[시론…… 어째서 그리 멀쩡할 수 있는 것이냐? 내 형제, 키알을 살해한 후 분명 마성에 시달렸어야 할 터인데.]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흑해 5왕은, 모두 시론이 결국 자신들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 확신해왔다. 시론이 흑해 5왕을 떨어뜨린 신들의 의지를 베어내고, 마침내 흑해의 왕들은 완전한 존재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소유한 힘은 결코 인간이 가져선 안 될 것이었다.
“시달렸지, 오랜 시간. 너희와 똑같은 존재가 될 뻔한 순간이 셀 수도 없었다.”
[그 모든 순간을 극복했다는 것인가…… 대체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들 수 있던 거지? 운명을 초월할 수 있는 의지는 소모품과 같다. 불멸자도, 필멸자도 영속적인 초월이란 불가능해. 너는 이미 네가 가진 의지를 모두 사용했을 터인데…….]“영속적인 초월이라, 그건 아직 모르겠군. 내 수명이 무한한 것은 아니니 그게 다할 때엔 내 의지도 함께 잠들지 않겠나. 다만, 그 모습을 네놈이 지켜볼 일은 없겠군.”
스, 너는 오늘 여기서 내게 소멸한다.
시론이 씨익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그 당당하고 위엄에 찬 모습 어디에서도 혼기의 흔적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나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 그러나 나를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시론, 네놈……!]스는 그저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시론을 마주하고 있으면, 그 말을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 무엇도 자신을 죽일 수 없게 되었다 말하는 오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는 보고 있었다.
마성을 극복한 최초의 필멸자가 자신에게 겨눈 검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찢기고 베이는 감각이 일며 내면을 유린하고 있었다.
키알이 살해되었을 때만 해도.
흑해의 왕들은 오히려 시론이 자신들을 합쳐주기 위한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고 판단했다. 키알의 소멸은 괴로운 일이지만, 시론은 단지 그가 가졌던 혼돈을 모두 흡수했을 뿐이라고.
결국, 시론은 키알의 혼돈을 모두 짊어진 채, 자신들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형제들이여, 이제 시론 룬칸델은…… 우리를 다시 하나로 만들어줄 존재가 아니라, 멸하는 존재가 되었다……!’
스는 그것이 오판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론은 처음부터 자신들처럼 다섯으로 나뉜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오롯이 홀로 우뚝 선 괴물이었다.
바리사다가 움직인 순간, 스는 막대한 혼기를 방출하며 시론의 접근을 저지하려 했다. 스는 눈동자 하나를 가진 개와 같은 형태였는데, 그 거대한 몸뚱이는 혼기 속으로 순식간에 몸을 감췄다.
전대 흑기사들과 루나는 스의 움직임을 쫓아가지 못했다. 고래가 아무리 크다 한들 심해를 유영하면 그 위치를 알 수 없듯이.
그러나 시론은 단숨에 자신과 루나, 기사들을 덮친 혼기를 지워버리며 스가 숨으려던 공간을 포착했다.
“너는 오늘 이 자리에서 소멸한다고 하였다.”
시론의 의지는 곧 말이 되고, 그 말은 피할 수 없는 선고가 된다. 바리사다는 정확히 스의 눈동자 한가운데를 찌르고 있었다.
눈동자는 바로 아물었으나, 스는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혼기가 벌써 1할 가까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쳤다.
창성의 힘이 아무리 초월적이라 할지라도 흑해 5왕의 혼기를 이토록 빠른 속도로 소멸시킬 수는 없다. 스가 아는 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셋 뿐이었다.
마녀 헬루람, 신들을 빚은 신.
그리고 자신들의 가장 큰 조각, 모르가니엘.
[창성…… 그 너머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말인가?]“내 검은 이전과 똑같다. 단지 마성이 사라졌기에 맑은 정신으로 휘두를 수 있을 뿐.”
수악-!
스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루나와 전대 흑기사들은 목과 몸통을 다시 이으려는 혼기를 베어내며 시론을 보조했다.
원정대 중 흑해의 왕들에게 본질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건 여전히 시론이 유일했다.
다만 루나의 심검 적월 또한 창성의 힘과 비슷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붉은 검기는 아껴두거라, 루나. 나와 같은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 그 검은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다.”
루나는 시론의 말을 추후 있을 다른 흑해의 왕들을 대비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지금은 자신이 적월을 무리하게 사용하면서까지 아버지를 도와야 할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시론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스의 혼기가, 그가 형성하고 있는 어두운 영역이 한지처럼 잘려나가고 있었다.
미리 바네사를 보내지 않았다면 오즈도크는 그 여파를 감당하지 못해 사망하고 말았을 터.
시론은 스와 결착을 짓기 시작한 와중에도 문득 오즈도크의 멍청한 모습이 생각나 씨익 미소를 지었다. 놈은 지금쯤 ‘에구머니나’를 외치면서 바네사에게 들러붙었을 터였다.
‘막내 녀석이 보물을 보내준 것이지…… 오즈도크. 그놈이 가진 특유의 경박하고 하찮은 성격이 아니었다면, 나는 스를 만나기 전에 반드시 인간성을 완전히 잃어버렸을 것이다.’
전투는 계속 그런 식으로 이어졌다.
스는 그저 의미 없이 거친 저항을 할 뿐이고 시론은 천천히, 그러나 일방적이고 확실하게 스를 압박해갔다.
때때로 시론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기기는 했다.
그러나 키알 때처럼, 그 상처들 속으로 독처럼 혼기가 침투하는 일은 없었다. 피부가 찢어지고, 붉은 피가 흐르고. 그저 평범한 존재의 평범한 무기에 다친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마저도 뼈가 부러지거나 근육, 장기가 파손되는 깊은 상처는 없었다.
말 그대로 시론은 스를 압도하고 있었다. 루나와 전대 흑기사들도 생채기 몇 개가 생기는 게 전부였는데, 그건 스가 시론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아예 신경조차 쓸 수 없을 만큼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었다.
콰득-!
이내 시론이 쓰러진 키알의 눈동자에 한 번 더 바리사다를 내리꽂았다. 그토록 거대하던 스는 이제 시론과 비슷한 체구가 된 모습이었다. 스를 이룬 혼기의 9할 이상이 바리사다에 소멸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무엇이 네 마성을 극복하게 한 것이지? 시론…….]그 말에 시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나 골라보자면.”
스의 말대로 시론은 자신의 마성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막연히 몇 가지 가정이 떠오를 뿐이었다.
“어쩌면 막내 녀석이 성장한 모습을 직접 보고 싶기 때문인 것 같군. 그리고 내가 정을 주지 못했던 다른 자식들도 조금은 궁금한 상태다. 지금 가문의 모습이 어떠한지도.”
[이런 미친…… 그딴 게 어떻게 지금의 너를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냐. 겨우 그딴 것들이?]“크하하, 그게 아니면 다른 무언가겠지.”
[시로오오온!]원한에 찬 마지막 절규를 끝으로, 더 이상 스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시론은 입자로 분해되어 사라지는 스를 내려다보며 쯧, 혀를 찼다.
“키알보다 약한 조각이었군. 이제 남은 건 니르간드와 모르가니엘, 둘인가. 다들 고생하였다.”
루나와 전대 흑기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시론은 잠시 스가 죽자마자 이전보다 조금 환해진 흑해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리고는 별안간 즐거운 일이 생긴 사람처럼 이를 드러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바네사와 오즈도크가 있는 쪽이었다.
“아버지?”
“호오…… 젊은 시절, 내가 기대했던 그 잠재력과 투쟁심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모양이군. 오랜 시간 검의 저지대를 헤매던 녀석이.”
“가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반가운 녀석이 나를 찾아왔다.”
루나와 전대 흑기사들은 한동안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깊고 끔찍한 이 땅에, 대체 누가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인가.
반가운 녀석.
당연히 그 말은 바네사와 오즈도크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시론은 이제 막 바네사와 오즈도크를 만난, 한 룬칸델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막내가 온 거예요!?”
시론은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유지했다. 루나와 전대 흑기사들도 시론이 보는 방향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시론이 말한 반가운 녀석은 지금 미친 듯이 시론을 향해 달려오는 중이었다.
시론은 지친 그를 위해 더 가까이 이동해주거나 이름을 불러주는 배려는 하지 않았다. 그건 이제껏 이곳을 홀로 헤쳐온 그의 투쟁을 훼손하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시론의 앞까지 겨우 터덜터덜 걸어온 그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루나와 전대 흑기사들은 그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놀라운 마음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가주를…… 뵙습니다.”
시론은 몸을 숙여 친히 그를 일으키고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제드. 기어이 네가 한 번은, 나를 감동시키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