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50)
제 888화
211화. 오르갈의 협상(5)
“……후계자라고?”
[일단 들어가지.]다시 회의실로 들어선 후 오르갈은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그는 진과 무라칸에게 자신의 패배와 부상을 감출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보였다.
[지토는 예전부터 내가 본인의 뒤를 잇길 원했다.]“아메리스 님에게 듣기로, 지토는 폭력과 고통으로 세상을 다스리려는 인물이라더군.”
[그래. 그는 고대에 지하를 그런 식으로 통일한 적도 있었지. 내가 직접 겪은 그 시절의 지하는…… 인세엔 지금껏 단 한 번도 펼쳐진 적이 없는 지옥이었다. 지상에도 그간 수많은 폭군과 학살자들이 있었지만, 그가 지하를 통일했을 때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지.]“그런 미친놈이 왜 너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는 거지? 너희 킨젤로가 정화 운운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지만, 노선이 분명 다른 것 같은데?”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그는 이상하리만치 늘 내게 호의를 갖고 있었지. 난 그의 사상에 한 번도 동조한 적이 없는데도. 아마 내게서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거나, 이유가 아예 없을지도 모르지.]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오르갈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아는 한 지토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존재였다.
“지토가 왜 깨어났는지 짐작되는 바는 있나?”
[여러 이유가 있겠지. 지하의 일부 세력들은 끊임없이 지토를 깨우려고 시도했었다. 당장 오백 년 전 성국수호전 때도 그들은 지토의 눈을 되찾기 위해 마녀와 거래를 했었지. 결국, 그들이 성공한 것이겠지. 로키아 가네스토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날 죽이기 전, 로키아는 자신의 목적이 태양신의 부활이라 하였소. 동료들을 모조리 죽여놓고 베일만 살려둔 이유지. 지금의 세계를 완전히 말소시키고, 다시 온당한 세상을 되찾겠다더군. 세상의 본래 형태라고 했던가, 로키아는 그걸 위해 모조리 다 이용한 거요. 가문도, 마녀도, 심지어 지플까지도.]
-[심지어 이번에 흉신이 탄생한 일까지도, 로키아의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소.]
진은 불현듯 파들러가 소멸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흉신과 지토라는 마족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로키아가 정말로 세상의 말소와 재건을 원하고 있다면, 지토는 가장 적절한 패 중 하나야.’
설령 로키아가 지토의 부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더라도, 결국 폭력과 고통을 추구하는 지토의 행위들은 그녀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에 도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이제는…… 일부 세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겠군. 반 지토 세력의 수장이나 다름없던 마족마저 그를 따르고 있으니.]“호오, 그 마족한테 깨진 거군?”
무라칸이 비웃자 오르갈은 어깨를 으쓱였다.
[파엘리토 벨가시움이라는 인물이다. 마계에서는 검마라 불리는 인물이고, 그가 사용하는 검 바스칼라에는 권능을 차단하는 능력이 깃들어 있어. 손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당했다.]“그래도 너 정도 되는 마족이 그깟 권능 좀 잃었다고 그렇게 쉽게 피떡이 됐단 말이야? 아, 내 생각보다 네가 좀 약한가?”
[마음대로 생각해라.]“로키아에 대한 소식은 아직 찾은 바가 없을 테지?”
[로키아를 찾는 일에 가장 필요한 인물이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그가 일을 시작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야 할 것 같군.]‘그’는 중간세계의 3마계에 있는 바흐마가의 가주, 환마장을 뜻했다. 오르갈은 로키아에 대한 기억을 되찾자마자 샤갈 바흐마를 시켜 그를 호출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지토라는 마왕이 후계자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하군.”
[무엇이?]“자신이 완벽하게 건재하다면 굳이 후계자를 미리 구할 이유가 없지 않나? 물론 그가 너 정도는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신적인 존재일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힘을 되찾는 단계에 불과한데 불씨를 살려둔 게 이상하다는 뜻이다.”
그건 오르갈이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건…… 그렇군.]“게다가 로키아가 지토의 부활에 관여했다는 가정에도 묘한 점이 있다. 로키아의 목적은 태양신의 부활, 지토가 추구하는 바와는 전혀 다르지. 그런데도 지토를 부활시켰다면, 로키아에겐 지토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겠나? 필요한 만큼 세상이 파괴된 다음엔, 지토를 버려야 할 테니까. 과거 흉신 때도 똑같은 가정을 적용할 수 있겠지.”
[그것도 맞는 말이다. 빌어먹을, 그 벌레가 태양신의 부활을 통해 얻고자 하는 세상이 대체 무엇인지를 모르겠군.]무엇이든 킨젤로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 터였다. 산나의 태양신교, 킨젤로, 적명족, 로키아. 그들은 모두 태양신의 부활을 원하지만 그를 통해 얻으려는 결과가 다 달랐다.
[지토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근거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지금으로서는 전부 다 추측일 뿐이지만.]“봉마벽의 한쪽이 완전히 무너지고, 지하의 마족들이 올라오는 대략적인 시기에 대해선 짐작 가는 바가 있나?”
[며칠 내로 마족들이 지상으로 올라온다 할지라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그 정도라고?”
[협상을 하러 내려갔을 때, 솔직히 난 내가 패배하는 경우를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 설령 마계제일인이 나온다 할지라도, 봉마벽의 균열을 넘어 중간세계까지 올라오려면 엄청난 힘을 소모해야 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지. 그러나 파엘리토는 균열을 넘어온 후에도 그다지 지치지 않았다.]그건 곧 봉마벽의 균열이 오르갈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크다는 걸 의미했다.
[그가 지친 상태였다면 바스칼라를 감안해도 내가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당할 일은 없었겠지. 물론, 며칠 내라는 건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거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어. 그저 지상이 하루라도 더 준비할 수 있기를 바라야 할 뿐이지.]“지금이라도 봉마벽을 보수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 큰 뱀이 가진 권능으로는 봉마벽의 균열이 더 커지지 않도록 막는 것조차 어려워.]아메리스는 지금 봉마벽 일부에 균열이 생긴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한 번 시도는 해보는 게 좋지 않나?”
[위험하다. 아마 돌아가서 큰 뱀에게 말해도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거다. 봉마벽의 균열은 큰 뱀과 가까워지면 수복하려는 성질을 보일 거고, 그때 큰 뱀의 힘이 부족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지.]오르갈의 말대로 진마계의 마족들이 지상에 올라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건 몇 되지 않는다, 진 룬칸델. 첫 번째는 봉마벽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버텨주는 것. 두 번째는 네 말대로 지토가 후계자에 집착하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 곧 소멸할 예정이라던가, 그런 이유지.]“세 번째는 지하세력이 온전히 깨어나더라도 지상이 감당할 수 있는 경우인가.”
[……그래. 이를테면 지토는 흉신처럼 공공의 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존재다. 다만 그때처럼 임시 동맹을 맺기엔 상황이 적절치 않군.]지플은 이미 적명족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고, 흉신 때와 달리 지하세력의 힘은 아직 그 윤곽조차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섣불리 임시 동맹을 맺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진 또한 결국 언젠가는 없애야 할 적들과 한 번 더 손을 잡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천 년 전의 진실을 확인하고 온 이상.
지플과 룬칸델은 결코 한 하늘에 존재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적마전쟁을 제쳐두더라도 무라칸은 결코 지플과의 동맹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가문의 소가주인 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공공의 적’인 만큼, 지플도 지하와 손을 잡지 않는 이상 자연스레 그들과도 전투를 치르게 될 터.
바멀 연합의 입장에선 그 과정에 엘로나 지플을 비롯한 지플의 주요 전력들과 지하가 공멸하는 경우가 가장 좋았다.
“그럴 생각도 없다. 세 세력이 다시 임시 동맹을 맺는 경우는 오로지 하나뿐이지. 지토가 흉신 때보다도 더 거대한 위험을 몰고 와서 세계의 멸망과 동맹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수밖에 없을 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진 룬칸델. 우리 킨젤로는 너희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고 싶군.]“약속?”
[임시 동맹을 맺지 않더라도, 바멀 연합이 지하와 싸울 때 필요하다면 우린 모든 종류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아무런 대가 없이?”
[그렇다. 지하에 대한 정보든, 병력이든. 무엇이든 다 지원하도록 하지.]“손 안 대고 코를 풀려는 심산인가?”
[너 역시 우리가 로키아를 찾는 걸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지 않나, 피차일반이다. 서로 이용해야 할 때 이용하자는 거지.]진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공짜로 거들어주겠다는데 굳이 쳐낼 이유는 없지. 개인적으로 킨젤로에겐 뭘 공짜로 얻어가는 게 좀 익숙하기도 하고.”
[……그 말을 들으니 방금 한 말을 취소하고 싶어지는군.]“내 증조부께서 일수는 불퇴고 낙장은 불입이라 하더군. 킨젤로의 대가 없는 무한한 지원, 기대하도록 하지. 아울러 로키아 가네스토에 대한 정보도.”
얄밉긴 하나 오르갈로서는 진이 지원을 ‘받겠다’라고 결정한 게 다행이었다. 동맹까진 아니더라도, 연계는 분명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이만 돌아가야겠군. 몸조리 잘해라, 오르갈.”
* * *
이야기의 탑.
베라딘은 엘로나와 차를 마시던 중, 갑자기 그녀가 흠칫하며 놀라는 모습을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엘로나 님.”
“……무언가, 강대한 게 깨어났습니다.”
“강대한 것이 깨어났다……? 설마, 적명족입니까?”
“저도 지하에서 깨어난 힘은 적명족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에요. 평소 그들로부터 느껴지는 기운과 완전히 다른 종류입니다. 마족과 유사하군요.”
“마족이라…… 잠깐, 지하에서, 라고 하셨죠. 설마 지금 엘로나 님이 느낀 기운이 하나가 아닌 겁니까?”
엘로나는 손가락으로 창밖 저 먼 곳을 가리켰다.
“저쪽에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한 힘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힘은, 분명 인간의…… 것이에요.”
베라딘은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탁 트인 테이아 평원이 보였다.
그리고 불현듯 베라딘은 테이아 평원을 지나고, 몇 개의 왕국과 미보호구역을 지나면 다다르는 한 영역을 떠올렸다. 그곳에 있다고 알려진 한 인간의 모습도.
“……흑해?”
그 말에 엘로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느낀 힘은, 분명 흑해에 있는 한 인간으로부터 전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