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58)
제 888화
214화. 형제들(2)
룬티아 룬칸델.
그녀는 현재 칼드란 설원의 아공간에 묶여 있는 상태였다.
“그래야지, 그 녀석 소식을 듣고 계속 마음이 아팠다.”
진은 루나가 늘 룬티아를 어렵게 대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룬티아는 루나가 가장 사납던 시기에도 유일하게 한소리를 할 수 있던 형제였다.
형제들은 붉은 부엉이를 타고 우선 티칸으로 향했다. 칼드란 설원의 아공간으로 진입하려면 베일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천 년 전의 십대 기사시라니…… 베일 경께서 다시 가문을 돕게 되어 다행입니다.”
“흥, 다행은 무슨! 내가 멍청하게 금제를 잘못 거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을 뿐이지.”
“막내가 너무 심하게 부려 먹으면 제게 말씀하십시오.”
“오, 그럼 어떻게 되는데!? 저 선조 우대도 모르는 녀석을 혼내 줄 수 있는 건가!?”
“아뇨, 달리 바뀌는 건 없을 거예요. 그냥 저한테 하소연이라도 하시라는 뜻입니다.”
“언니, 큰언니! 큰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루나 경. 하하, 전 진 씨의 아내가 될 산드라 지플.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그래요, 산드라 지플.”
“루나 언니, 저 이상한 애가 하는 말은 무시해. 이제 동료가 돼서 죽일 수도 없고, 징글징글하다니까. 소타 사막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그때 죽였어야 하는데.”
“에이 우리 작은 언니 또 이러신다. 사실은 산드라가 좋으면서.”
“으, 저리 가!”
산드라는 겁도 없이 요나를 껴안으며 킬킬 웃음을 흘렸다. 루나의 눈엔 요나가 평범한 사람처럼 당황하는 모습이 좋게만 보였다.
“오구 우리 작은 언니는 하여간 귀여운 맛이 있어. 까칠한 게 아주 앙증맞달까? 그나저나 야! 베일, 진 씨랑 우리 언니들, 도련님들 잘 모셔라. 행여 불편하게 모시거나 실수라도 하기만 해 봐, 돌아오면 묵사발을 내 버릴 거니까.”
“하…… 내 신세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아, 알았다고, 알았어. 소리 좀 그만 질러라…….”
“진, 그 룬티아라는 아이를 만나러 가는 것이지?”
“예, 아메리스 님.”
“그렇다면 이 몸도 함께 가 보는 게 어떨까 싶구나. 형제들끼리 상봉하는 자리에 내가 끼면 모양은 좀 안 나겠지만, 처음 그 아이의 이야길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었다. 어쩌면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말이다.”
“안 그래도 출발하기 전에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함께 가시죠.”
그렇게 형제들과 베일, 아메리스는 다시 붉은부엉이를 타고 칼드란 설원으로 향했다. 새하얗게 펼쳐진 설원은 눈보라가 한창이었다.
흉신전이 끝나고 처음으로 룬티아를 만나러 갔을 때, 진은 마음이 심히 불안했었다. 아공간 내부엔 혼기가 가득했고, 룬티아는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지금은 왠지 모르게 기대감이 들었다. 어쩌면, 오늘 룬티아가 아공간을 빠져나와 다시 가문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동굴로 들어선 베일이 변신하며 힘을 개방했다. 금빛 기운이 동굴 내부를 가득 채우자 아공간으로 이어지는 차원문이 형성되었다.
‘혼기가…… 저번에 찾아왔을 때보다 옅어졌다.’
들어오자마자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형제들은 진의 표정을 보곤 아공간 안에 무언가 좋은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오…… 이게 웬일이지?]룬티아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들 오랜만이야, 형제들이 이렇게 반가워지는 날이 오는군.]“룬티아…….”
루나와 형제들이 룬티아에게 다가갔다.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으나, 형제들은 서로가 조금씩 변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흑해에서 엄청나게 고생했을 텐데, 오히려 예전보다 많이 유해졌네 언니는. 설마 아버지도 돌아오신 거야?]“아니, 나랑 제드 숙부, 전대 흑기사 세 분만 먼저 돌아왔어. 넌 예전처럼 세상을 등지지 않고 있구나.”
“흠, 흠흠! 이런 꼴이라뇨, 룬티아 누님. 너무 멋있으십니다.”
“맞습니다, 누님. 누님이 여기서 수련하시는 동안, 저희도 열심히 노력하는 중입니다.”
“이 토나 놈들은 언제부터 룬티아 언니랑 친했다고 아부질이야?”
“아, 그러는 메리 누님은 룬티아 누님하고 친했습니까? 이제부터 차차 친해지면 되는 거지.”
“뭐 그건 그렇다. 이야, 우리 룬티아 언니. 예전에도 너무 강해서 언제 따라잡나 싶었는데, 지금은 더 답이 없잖아? 그냥 바로 느껴진다고, 언니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큰언니하고 한판 붙어도 누가 이길지 모르겠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야, 메리. 요나는 왜 이렇게 쭈뼛거리고 있어?]“히…… 그게, 언니 뿔을 만져 보고 싶어서.”
요나가 대뜸 뿔 얘기를 꺼내자 형제들이 흠칫하며 눈치를 살폈다. 룬티아는 피식 웃으며 요나의 머리를 헝클었다.
뿔과 더불어, 룬티아를 아공간에 묶고 있는 연결점 또한 그대로였다.
[이런 흉측한 건 만지면 부정 탄다, 요나. 내가 옛날 모습을 되찾으면 없어질 거야. 막내가 도와준다고 했거든.]“응, 나도 귀엽거나 예뻐서가 아니라 내가 벨 수 있을까 궁금해서 만져 보겠다고 한 거야. 언니랑 이야기하니까 좋다, 히히.”
[나도 그래, 요나. 내가 여기 나가면 앞으론 자주 놀자. 그나저나 진, 이분은?]“아메리스 님입니다, 누님. 고대부터 세계를 지켜 온 존재시죠.”
“이곳은 바깥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들었다. 형제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부족할 테니, 이 몸에 대한 건 추후 나가서 자세히 듣는 게 좋겠군. 다만 이 몸이 여길 찾아온 이유는 너를 돕기 위함이니, 그게 잘하면 오늘이 될 수도 있겠구나.”
[설마 저를 꺼내 주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네 상태를 보니 가능할 것 같기도 하군. 진에게 들은 것보다 이곳에 찬 탁한 기운이 옅기도 하고.”
그 말에 진과 형제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특히 진은 이곳을 찾으며 묘한 기대감을 품기는 했으나, 설마 아메리스가 곧바로 답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룬티아를 해방하는 건 결국 반이 돌아와야 가능하다고 여긴 것이다.
[아, 혼기는 얼마 전 제가 수련의 성과를 좀 보았을 때 갑자기 옅어지더군요.]“아마 수련을 통해 무언가 심득을 얻고 특별한 힘을 쟁취한 결과일 게다. 진의 영원화, 루나의 붉은 검기처럼.”
[특별한 힘이라…… 딱히 새로운 비기나 결전기를 얻은 것은 없습니다만. 그저 제가 익히고 있던 검들을 더 예리하게 벼렸을 뿐입니다.]“그런 힘은 꼭 무술이나 기술의 형태만을 갖지 않는다. 분명 네게 뭔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아라.”
[아,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기운을 끌어올리면 손바닥에 묘한 빛이 감돌긴 했습니다.]“보여다오.”
이내 룬티아가 기운을 개방하기 시작하자, 형제들은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맑고 강대한 오러와 마력이 아공간 전체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호오, 이 몸의 예상이 맞았군.”
룬티아의 손바닥을 살피는 아메리스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저는 이 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희미한 빛이고…… 제 검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느낌도 전혀 없던지라.]“이것은 네 의지가 마침내 형상을 갖고 발현된 결과다.”
[저의 의지가……?]“네가 모른다면, 나 역시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다. 존재의 의지란 이렇게 발현이 될 때 모두 다른 형태를 취하기 마련이니까. 다만, 잘 들여다보니 이 빛은 마치 별처럼 보이는구나.”
“아메리스 님 말씀을 들으니, 별 같기는 하군요. 왼손에는 두 개, 오른손에는 하나입니다.”
“히, 진짜 예쁘다. 이건 만져야지.”
“너는 아마도, 오랜 시간 별을 숭상하거나 너 스스로 별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든, 현실적인 의미든.”
아메리스의 말에 룬티아는 잠시 자신의 지난 날들을 돌아보았다.
‘별…… 별이라.’
별을 숭상하고, 별이 되고 싶은 마음.
불현듯, 소녀 시절 자신의 유모인 리샴이 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아가씨. 아가씨도 충분히 루나 아가씨처럼 거대한 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유모는 마침내 아가씨가 하늘에 올라 루나 아가씨보다 빛나는 별이 되는 날을 꿈꾸고 있답니다.
루나에게 패배하고 언덕에 누워 하염없이 별을 보던 날이었다.
‘그래…… 그때부터 내게 가장 거대한 별은 루나 언니였다.’
그리고 루나가 왕좌를 포기한 후, 룬티아는 삶의 의미를 잃었다. 의미 없는 고요로 가득 찬 권태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새로이, 그녀의 가슴 속에 막내라는 새로운 별이 떠올랐던 것이다. 가주 선언 당시 진에게 패배한 다음에.
-아가씨, 건투를 빕니다. 이제까지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가주 선언 다음 날, 리샴은 룬티아에게 새로운 별이 떠오른 사실을 직감하며 눈물을 흘렸었다.
‘왼손의 두 별은 루나 언니와 막내…… 그리고 오른손은, 나 자신…….’
룬티아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자신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이 별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아메리스 님.”
“어, 루, 룬티아 누님! 목소리가……!”
“목소리가 예전처럼 돌아왔습니다!”
토나 형제들이 별안간 변한 룬티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그녀의 목소리에선 혼돈 특유의 어두운 공명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가 손에 쥔 별들은 더욱 선명하고 강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룬티아는 깨닫고 있었다.
이것은 어머니에게 배신당하고, 리샴을 위해 희생하고, 괴물이 되어서도 끝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라고. 자신은 마침내 루나와 진처럼, 별이 되었다고 말이다.
절망과 권태를 이겨 내고 빛을 손에 거머쥔 것이다.
“이 몸이 할 일은 그저 네가 얻은 힘의 의미를 알려 주는 것뿐이었군. 이미 혼기가 그 별들 속으로 흡수되고 있구나.”
아공간의 혼기가 룬티아의 두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연결점들이 분해되는 모습이 이어졌는데, 룬티아에겐 아무런 타격이 되지 않았다.
“호오, 이제 네가 아공간을 네 안에 가둘 차례인 모양이군. 내가 오지 않았어도, 너 혼자 그 빛의 의미를 깨닫기만 했다면. 너는 언제든 이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룬티아의 별이 혼기를 빨아들일 수 있는 건, 그녀가 계속 빛나려는 까닭이다.
빛을 차단하는 어둠을 집어삼켜 없애기 위함이다. 별을 숭배하고 갈망한 룬티아의 의지는 그렇게 스스로를 빛내고 있었다.
이내 아공간 전부가 룬티아의 손바닥 속으로 사라졌다. 동굴 바닥을 밟으며 룬티아는 형제들을 돌아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형제들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설원의 한파 속에서 형제들은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형제로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