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6)
제 88화
30화. 알리사를 꺾어라!(3)
1795년 9월 22일.
대륙 동쪽 미보호구역, 통칭 흑해.
룬칸델 수호기사 칸이 이곳에 도착하고 벌써 사흘이 흘렀다. 그건 곧 칸이 사흘 내내 단 한숨도 잠들지 못했다는 의미였고, 그가 이미 오백 마리에 가까운 마물을 베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흑해의 마물은 가장 약한 종마저, 보호구역의 마물들과는 비교할 바 없이 강하고 위험하다. 날 때부터 순도 높은 마기를 들이마시며 자라기 때문.
칸 정도 되는 기사라 할지라도, 까딱 방심했다간 죽음을 면치 못하는 곳이 바로 흑해였다.
써걱, 써걱!
마물을 베며 나아가는 그의 얼굴은 심히 무심하지만, 눈 밑이 퀭한 것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이번엔 유달리 더 많은 마물이 덤벼드는 것 같았다.
‘대체…… 편지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지 이제는 나도 너무 궁금하군.’
칸이 이 고생을 하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시론에게 카시미르의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비밀 주소를 알려 준 이후, 처음으로 온 편지였다.
‘막내 도련님의 성장에 대한 내용이긴 할 텐데…… 도련님이 티칸으로 돌아가고 고작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그사이에 가주께 보고해야 할 만큼 유의미한 성장이 있을 수 있나?’
칸으로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룬칸델 생도 시절 동기들에게 ‘괴물’ 소리를 듣던 본인도 5성의 벽을 뚫을 때 꽤나 고생한 기억이 있었다.
‘설마 벌써 6성에 다다르신 건 아니겠지? 후…… 가주께서 내게도 내용을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군.’
칸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마물을 다섯 시간 동안 더 베고 나서야.
언제나처럼 흑해 한복판에 정좌로 앉아 있는 시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가주님, 수호기사 칸입니다.”
이미 한참 전부터 기척을 느끼고 있던 시론이 찬찬히 눈을 떴다. 칸이 절도 있게 검례를 올리자 손으로 한 차례 허공을 쓸어 내는 시론.
그가 손을 젓자마자 근처에서 숨죽이고 있던 거대한 마물들이 황급히 어디론가 모습을 숨기기 시작했다. 마치 빛에 노출된 벌레들처럼 굴속에 몸을 숨기는 모습.
창성기사의 위엄이 흘러넘치는 풍경이지만.
시론은 사실 그저 기쁜 마음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막내 녀석의 소식이로군……!’
칸이 극히 공손히 편지를 건넸다.
“열흘 전에 도착한 카시미르의 편지입니다.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습니다만, 다른 때보다 마물들이 극성인 탓에 조금 늦었습니다.”
편지를 받아 든 시론이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내일 시간을 내서 흑해 초입 쪽 마물을 다 죽이든가 해야겠군. 그놈들만 아니었어도 하루는 더 일찍 받았을 것 아닌가.’
사각.
시론이 가볍게 손가락을 놀려 밀봉을 베었다. 편지가 꽤 두툼했다.
마치 어린 시절의 일기라도 발견한 노인처럼, 천천히 음미하듯 한 글자씩 읽어 나가는 시론.
(존경하는 시론 룬칸델 경께.
이 미천한 소도시의 기사가 감히 펜을 놀려 이렇게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차마 언어로써 다 표현할 길이 없어 한탄스러운 기분입니다.
그곳 검의 정원의 날씨는 어떤지요?
이곳, 자유 도시 티칸은 밤입니다. 두꺼운 벨벳처럼 부드러운 밤하늘 높이 촘촘히 박혀 있는 별들이 마치 시론 경의 위대함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군요.
다시 한 번.
한낱 검객에 불과한 저, 카시미르 알프리온에게 이런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가슴 깊이, 더없이 감복한 마음을 전하며 한 자, 한 자 열의와 성의를 담은 문장으로써 시론 경을 만족시킬…….)
시론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이 친구 아무래도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군…… 무슨 서두가 이리도 길어?’
상당히 짜증스럽지만 창성기사의 인내심을 발휘해 다음 장을 넘겼다.
그러나 다음 장도 온통 장황한 안부와 인사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세 번째 장에 이를 때까지도 진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구절도 언급이 없었다.
“후.”
시론이 뜻 모를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젓자 칸은 왠지 자신이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가주께서…… 노하셨다. 설마 진 도련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하지만 네 번째 장을 펼치자마자.
시론의 만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눈빛이 인자해지고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린 것이다.
“허허.”
심지어 나지막이 웃음소릴 내기까지.
칸은 벌써 20년 가까이 시론을 보필하고 있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루나가 룬칸델의 왕좌에 관심이 없다고 선언한 이후, 시론은 늘 자식들에게 냉담했다.
그러니 칸으로서는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대체 진 도련님이 얼마나 대단한 성취를 이뤘기에, 저렇게 즐거워하실까?
“칸.”
“예, 가주님.”
“막내 녀석이 요즘 카시미르의 아내에게 매일 깨지고 있다고 하는군. 으하하, 이 편지를 쓴 시점에 벌써 마흔 번 가까이 대련해서 모두 패배한 모양이야.”
칸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평소의 시론이라면 이런 무능한 놈이 다 있냐며 혀를 찼을 텐데, 즐거워하고 있으니 당황스러운 것이다.
“꽤 많이 패배했군요.”
“첫 대련은 3수만에 깨졌고, 두 번째 대련은 5수를 버텼다는군. 일곱 번째엔 10수, 스무 번째엔 25수, 서른 번째엔 40수를 버텼고.”
“도련님이 마법과 영기까지 사용했다면, 7성을 상대로 그 정도를 버틴 게 이해가 가는군요. 게다가 한 사람과의 꾸준한 대련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칸은 시론이 가장 아끼고 신뢰하는 심복 중 하나인 만큼, 진의 비밀들을 알고 있었다.
물론 죽을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인물이었다. 만약 시론이 이유 없이 자신을 내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렇지. 그런데 마흔 번째엔 어떻게 된 줄 아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120수를 넘게 버텼어. 하나의 벽을 부순 거지. 깨달음을 얻은 것이야.”
5성이 7성을 상대로 단기간에 그만한 성과를 이룬 건 충분히 대단한 일이지만. 순수하게 검술로만 이룬 성과가 아니므로 아직까진 칸도 납득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시론이 뒷말을 잇자 칸의 동공이 커졌다.
“그리고 카시미르의 아내, 알리사 뱃저는 비먼트 특임대 2조 출신이었다는군. 허허, 이러니 내가 웃을 수밖에. 물론 은퇴한 지 오래되어 꽤 무뎌졌겠지만, 아주 기특하단 말이지.”
비먼트 특임대.
그리고 그중에서도 주로 황족 보호 임무를 주로 수행하는 2조의 무위는 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특임대 2조 출신이라면. 도련님이 요행이나 잡기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는 결코 아니로군요. 축하드립니다, 가주님.”
“아직 꺾은 건 아니니 축하는 이르다. 카시미르가 6개월을 줬다는군. 그 안에 꺾어 보라고 말이야.”
“그 기세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더 빠르게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녀석이 첫째였다면 미련 없이 가문을 떠났을 텐데, 아쉽군. 칸, 네가 보기엔 막내 녀석이 어떤 것 같나.”
“저도 가주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첫째로 태어났다면, 지금 조슈아 도련님의 자리는 진 도련님의 것이었을 겁니다.”
“내 말뜻은 그게 아니다.”
칸이 흠칫하며 시론을 쳐다보았다.
“설마…… 후계자로서 말씀이십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시론.
칸이 깜짝 놀란 것은, 이제 겨우 열다섯인 진의 나이 때문이 아니었다.
‘가주께서 후계에 대해 직접 언급하신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시론은 그간 단 한 번도 후계를 지목한 적이 없었다. 루나를 비롯한 몇몇 자식들에게 은근히 기대감을 드러낸 적은 있지만, 이토록 노골적으로 표현한 건 처음이었다.
차기 가주인 조슈아마저 루나가 스스로 물러났기에 자연스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시론이 직접 지목한 건 아니었다.
또 다른 가주 후보인 메리와 디푸스, 룬티아도 마찬가지.
잠시 정신을 추스른 칸이 입을 열었다.
“아직 너무 어려서 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분명 눈부실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긴 하나, 지금으로선 후계로 적합하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냉정함이 부족합니다. 생도 시절 초급 생도를 구하려고 모험을 한 일화는 막내 도련님의 천성에서 기인한 것이죠. 선하지만 물렁한 성정을 지닌 경향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네 말이 맞다. 조슈아와 정반대로, 막내는 정에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몇 번 있지. 그걸 다 잘라 낸 다음은 어떨 것 같나?”
“필요한 경우. 루나 아가씨까지 제거할 수 있을 만큼 냉정해지고, 이만한 성장세를 계속 유지한다면 더없이 적합합니다.”
시론이 만족스러운 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게 룬칸델이지. 이만 물러가 보아라.”
“예, 가주님.”
사흘을 내리 쉬지 않고 마물을 베었건만, 칸은 명이 떨어지자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시론의 영역을 벗어나면 또 사흘 동안 긴장 속에서 살육을 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검을 뽑기 직전, 칸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주께선 혹시 진 도련님이 룬칸델의 굴레를 초월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웃으신 게 아닐까.’
* * *
1795년 11월 중순.
어느덧 진과 알리사가 대련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진은 더 이상 알리사를 만나기 전에 마법을 미리 형성해 놓지 않았다.
“후! 진 공자. 오늘은 나도 아슬아슬했군요.”
95번째 대련에서 막 진을 쓰러뜨린 알리사가 이마를 훔치며 말했다.
“하하, 어제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이걸로 95번째 패배입니다. 우울하군요…….”
“작은 차이가 쌓이고 쌓여, 이제는 공자와 15분 이상 전투를 해야 승부가 날 정도입니다. 그나저나, 오늘도 진 공자는 그거 하고 들어갈 거죠?”
“예, 먼저 들어가십시오. 알리사 님.”
알리사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일주일 전부터 진은 대련이 끝난 다음, 일만 번의 종베기를 끝낸 다음에야 수련장을 빠져나갔다.
일만 번.
‘검으로서 의지를 발현시킨다…….’
일만 번 휘둘러 처음과 마지막이 같다면 가능한 영역. 알리사와 대련하며 성장한 진은, 이제 삼천 번을 같게 휘두를 수 있었다. 이토록 녹초가 된 몸으로도.
‘체력이 중요한 게 아니야. 지쳤을 때나, 멀쩡할 때나. 내가 검에 전하는 의지가 같아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진이 종베기 수련을 시작하기 위해 자리를 잡자, 알리사가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 설마 이렇게 빨리 따라잡히기 시작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저 지독한 훈련량을 보고 있으면…… 도통 자존심이 상하질 않는단 말이지.’
한동안 진의 종베기를 지켜보던 알리사가 조심스럽게 수련장 문을 닫아 주었다.
“하여간 강해질 자격이 넘치는 사람이야.”
그리고 다음 날, 그녀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