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69)
제 888화
217화. 아율라가 현현한 이유(2)
아율라의 말에 세 사람의 눈동자가 커졌다.
“지금? 아율라 양반, 그 지토라는 놈이 지금 성국에 나타날 거라고 한 거요?”
[그래, 자신의 눈을 찾기 위해서.]성국엔 지토가 ‘완성’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신의 눈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 눈 때문에 탈라리스는 엘로나가 봉인을 빠져나온 후에도 운신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중이었다.
“아율라 님, 지토가 성국 가까이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는 그 눈에 달리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겁니까?”
[라니를 도와 눈을 안정시키고 있던 비궁주가 걱정되는 모양이로구나, 진. 지금은 내가 현현한 상태인 만큼 지토의 기운이 성국 안쪽까지 닿을 수는 없다. 내 예상보다 많은 힘을 되찾았다 한들, 나를 소멸시킬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니 말이다. 그녀는 오늘 무사할 것이다.]“흐음, 그 마족 놈. 예고도 없이 갑자기 훅 들어오고 지랄이네. 아율라 양반, 그럼 우린 이제 뭘 하면 되나? 양반을 도와 놈과 싸우면 되는 건가?”
“필요하다면 즉시 연합의 모든 초인급 전력을 소집하겠습니다.”
진과 무라칸이 동시에 말했다. 아율라는 진이 대견한 듯 날개 한 쪽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은 신과 신의 싸움으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함께 싸운다면, 너희 중엔 반드시 죽는 자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지토는 패배하더라도 소멸할 일은 결코 없으니, 오늘 내가 그를 상처입힌 후 너흰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옳다.]“그래도 혹시 모르니 우리 애들 좀 불러서 대기시키는 게 낫지 않겠수? 원, 걱정이 돼서.”
[지금은 나의 결계가 가장 강할 때라 애초에 인간의 기술을 통한 공간 도약은 불가하다. 걱정이 된다라…… 무라칸, 내가 누구인지 잊었느냐?]“잊기는, 평화의 신 아율라 양반이지. 엄청나게 강한…….”
[그래, 나는 평화의 신. 그렇기에 나는 신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힘을 가졌다. 평화와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선 그만한 능력이 필요하니 말이야. 지금 부담스러운 쪽은 내가 아니라 지토일 것이다.]아율라가 열 쌍의 날개를 펼쳤다.
[라니, 이곳을 벗어나거든 나의 아이들과 함께 계속 기도를 올리거라. 너희의 기도는 내게 큰 힘이 된다. 그와 나의 싸움은 수도 상공의 결계 바깥에서 진행될 것이다.]라니가 고개를 숙였다.
이내 아율라가 하늘로 날아오르자, 회색 영역이 흐릿해지며 인세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진과 무라칸, 라니는 다시 대신전 가운데에 서 있었다.
“아율라께서…… 우릴 지키기 위해 싸우신다!”
“아율라 님!”
대신전에 모인 사람들도 아율라가 지토와 전투를 시작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율라가 진 일행을 인세로 돌려보내며 자신을 믿는 이들에게도 사태를 알려준 것이다.
“신민들이여, 아율라 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내가 적에 맞서 싸울 테니, 너흰 나를 위해 기도하라. 모두 옥상으로 모여주십시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라니의 음성에 신성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방금까지 아율라와 가까이 있던 것만으로 그녀의 신심은 한층 더 깊어지고 강해진 상태였다.
대신전 옥상으로 올라가자 황금빛 결계가 밤하늘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현현한 아율라가 있었고, 그의 앞에 이제껏 인세에 보인 적 없는 거대한 균열이 있었다.
오백여 년 전 성국수호전 당시 헬루람이 마왕들을 소환했을 때에도 이런 규모의 균열은 없었다. 지토가 가진 권세와 힘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균열 속에서 천천히 지토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랏빛으로 일렁이는 거대한 얼굴이 마치 용처럼 보였고 일곱 개의 뿔이 돋아 있었다.
만일 이곳에 아율라가 없었다면.
평범한 인간들은 지토의 모습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가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율라의 기운과 결계가 지토의 영향력을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흉신, 혹은 흑해의 왕 글리엑. 그들보다도 더 어둡고 끔찍한 존재란 말인가…….”
“장난 아니게 빡빡하긴 하네. 뭐 저런 게 다 있냐?”
그토록 신성하고 거대하게 보였던 아율라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두 분은 싸움을 지켜보도록 하세요.”
“우리도 아율라 양반을 응원해주고 싶은데. 기도 같이 하면 안 되나?”
“어차피 신앙심도 없는 기도라서 별 효과 없을 거예요. 무엇보다, 두 분은 추후 저 끔찍한 존재와 싸워야 하니…… 그의 능력을 봐두는 게 여러모로 좋겠죠. 아율라 님께서도 그걸 바라실 겁니다.”
진과 무라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민들은 따로 지휘와 통제가 없어도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라니를 따라 모두가 기도를 시작했고, 결계 위로 한 줄기 황금빛 기운이 올라가는 모습. 기운은 아율라의 등허리로 연결되었다.
그사이 지토는 아율라의 기운을 밀어내며 균열을 빠져나왔다. 그 역시 아율라처럼 열 쌍의 날개가 돋아 있었다.
[아율라…… 오랜만이로군.] [이곳은 네게 허락되지 않은 땅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지토. 어서 너의 자리로 돌아가라.] [나의 눈을 가져와라. 그리 하면 오늘 네가 하찮은 신도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어리석구나, 지토. 필멸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 나를 분노케 하여 좋은 결과를 얻은 이들은 아무도 없었음이니, 너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필멸의 시대라…… 태양신이 뒤진 이 세상을 너흰 그렇게 여겼나 보군. 그 혼탁하고 번잡한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린다. 이 지토에 의해서. 고통이 너희를 완성하리라!]지토와 아율라가 동시에 무기를 형성했다.
가시가 가득한 도끼와 스무 자루의 창. 지토는 한 손으로 가시 도끼를 들어 올렸고, 아율라의 창들은 각 날개 옆에 부유했다.
선공은 아율라였다. 아율라가 손을 뻗자 스무 개의 창이 일제히 쇄도했는데, 지토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뿔은 부러졌고, 날개들은 찢어졌으며 온몸엔 거대한 구멍들이 생겼다.
지토는 고통스러운 듯 부르르 몸을 떨었으나,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 그래, 이거지. 짜릿하군 그래, 아율라. 이런 통증을 느끼는 게 대체 얼마 만이란 말인가?]아율라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창을 날려 그를 압박했다. 그러나 창이 지토를 상처입히는 속도보다 회복이 더 빨랐다.
“와…… 저거 아주 곤란하게 미친놈이네.”
악과 어둠의 결정체.
지토는 그런 존재였다. 그는 고통을 사랑했고, 때문에 진마계를 평정한 후엔 오랜 시간 스스로를 고문하며 지냈다.
진마계엔 더 이상 그에게 고통다운 고통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아율라는 인세의 평화와 균형이라는 대의를 위해 싸우고 있으나, 지토에겐 이 대결이 그저 쾌락일 뿐이었다.
[혼자 노는 건 고독한 일이라고, 아율라. 역시 존재란 건 말이지, 뭐든 함께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거다. 고통받는 이들이 유대하며, 그 아픔을 나누는 것. 너는 그보다 아름다운 광경을 본 적이 있나? 내가 왜 눈만 내놓으면 그냥 가겠다고 했던 거지? 이렇게 행복한데.] [인세는 너 같은 괴물이 없어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곳이다. 생명의 삶을 폄하하지 마라, 이곳은 모두가 각자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며 나아가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탐을 내는 것 아니겠나, 아율라. 더 강하게, 더 잔인하게 이 몸을 상처 입혀라! 아니, 이런 느낌이 아니라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 내가 보여주지.]지토가 성큼성큼 하늘을 걸어 아율라에게 다가갔다.
[우선 상대를 압박할 땐 이렇게 천천히, 천천히 움직이는 거다. 그래야 공포가 배가되기 때문이지. 느리게 오는데도 도망칠 수가 없거든.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완벽한 방법이라고나 할까? 그 다음에 어딘가를 때릴 땐, 이렇게. 과감하고 위협적으로!]지토의 가시 도끼가 하늘을 일그러뜨리며 아율라의 어깨로 떨어졌다. 살점과 황금빛 피가 튀었으나, 지토의 목에도 두 개의 창이 박혔다.
신과 신의 싸움이 아니라, 야만과 야만의 대결 같은.
한동안 그런 구도가 이어졌다. 지토는 온몸이 창에 찔리면서도 계속 같은 속도로 가시 도끼를 휘둘렀고, 아율라는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아, 어떻게 비명 한 번을 내지르지 않을 수 있나, 나의 친구 아율라. 난 너 같은 존재가 정말 싫어. 너는 아마 내가 붙잡아서 천 년을 고문해도 지금처럼 고결할 테지.] [인세의 인간들 중에도 그런 이들이 많다. 너는 결코 그들을 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너 같은 녀석들도 다 쓰임새가 있어. 첫 번째는 내게 고통을 주는 것, 고결하고 강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리고 두 번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처럼 패배하는 것이다. 너는 그 순간까지도 고결할 테지만, 과연 너를 믿고, 의지하고, 지켜보는 이들도 그럴까?]너는 그렇게, 그들의 마음 속에 그 어떤 고통보다 뼈아픈 패배감을 심어줄 수 있다.
지토가 뒷말을 이으며 가시 도끼를 하나 더 형성했다.
[너 하나의 고통보다, 너를 믿는 수많은 인간들의 절망을 맛보는 게 내게는 더 큰 즐거움이다. 왜냐하면, 난 굶주렸거든. 고통의 순도와 질보다는 양이 더 중요해. 질을 따지는 건 일단 주린 배를 채운 다음이어야 하지.]츠칵-!
지토가 자신의 가슴팍으로 날아든 아율라의 창 한 자루를 베어냈다. 창은 유리처럼 깨지며 어디론가 흩어졌고, 지토는 창을 잃은 날개를 이빨로 물어뜯었다.
찢어진 날개에서 홍수처럼 피가 쏟아졌다. 아율라는 전혀 타격이 없는 듯 공세를 이어갔으나 지토도 더 강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원시적인 형태의 공방은 계속되고 있었다. 피하고 막으면서 싸우면, 서로에게 결코 결정적인 피해를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누가 보기에도 아율라가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율라는 전혀 위축되는 기색 없이 지토를 노려보았다.
[지토, 뒤를 돌아보아라.] [왜, 뒤에 내 선물이라도 준비했나?] [내가 왜 지금껏 네게 밀렸을 것 같나? 그건, 네가 돌아갈 길을 가로막느라 그랬던 것이다.]그 말에 지토는 처음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빠져나온 거대 균열이 어느새 아율라의 기운에 잠식된 모습이 보였다.
[네가 당당할 수 있던 건 혹 내게 당할 것 같으면 언제든 저곳으로 내뺄 수 있기 때문이었을 테지. 그리고 겁 많은 자가 말이 많은 건, 예로부터 불변의 진리였어. 도망칠 수단이 사라졌는데, 이제라도 내게 무릎을 꿇는 게 옳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