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68)
제 888화
217화. 아율라가 현현한 이유(1)
성국 반켈라, 수도 아율라 대신전.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국제 정세가 위태롭고, 지하세력의 인세 침략이 예고된 와중에도 오늘 반켈라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 상태였다.
세상이 어지러운 만큼 신에게 기대고 싶은 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 반켈라를 찾은 이들이 믿고 기대려는 대상이 아율라만은 아니었다.
“진 경, 이들은 우리의 주 아율라의 말씀을 듣고 위안을 얻고자 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경의 모습을 보기 위해 어려운 걸음을 한 것이기도 합니다.”
라니가 대신전에 모인 군중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며칠 내내 쉬지 않고 이어진 기도는 방금 막 끝이 났고, 그녀는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냈다.
“경이 예비 기수 시절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래, 경은 늘 이 난세를 짊어지고 진압해왔다는 걸 여기 있는 모두가 아는 겁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진 경이라면, 이 어두운 시대를 또 한 번 밝혀주리라 믿는 것이죠.”
“인사를 하기도 전에 금칠부터 해주는군, 라니. 꽤 부담스러운걸.”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랍니다. 안 그런가요? 무라칸.”
“종교쟁이, 손수건이나 이리 내라. 땀을 닦는 건지 뭘 하는 건지 모르겠네. 수전증이 온 건 아니지?”
“무라칸도 한 일주일 물 한 방울 안 마시고 기도만 해봐요. 수전증보다 더한 걸 경험하게 될걸요? 후우! 어쨌거나, 와줘서 고마워요, 둘 다. 진마계 전이 사태 때문에 혹 두 분이 자리를 빛내주지 못하면 어쩌나 신경이 쓰였거든요.”
“바멀 연합 쪽 균열들은 일단 모두 제압이 된 상태야.”
“예, 아율라 님과 기도로 소통하는 동안 그 몇 가지 광경을 직접 지켜보았습니다. 휴페스터에선 루나 경을 비롯한 룬칸델의 일원들이 대단한 활약을 펼쳤고, 제국은 황금함이 그야말로 마족들을 박살 냈더군요.”
“오, 내내 기도만 했는데도 그걸 다 알고 있네? 아율라 그 양반 역시 신통하구만.”
“무라칸, 곧 아율라께서 현현하실 텐데 그런 불경한 표현 감당할 수 있겠어요?”
“큭큭, 종교쟁이 넌 성왕이면서 나보다 아율라를 잘 모르네. 그 양반은 민감한 문제만 안 만들면 자애롭기가 짝이 없어, 짝이. 아마 내가 앞에서 짝다리 짚고 반말 찍찍 해도 허허 웃어넘길걸.”
라니는 왠지 분한 기분이 들었으나 아율라가 무라칸에게 정말 그만큼 관대할 것 같아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기도를 통해 본 아율라는 실제로 진과 무라칸, 그리고 바멀 연합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대신전 가운데에 있는 휴화산이 완전히 빛으로 물들면 아율라께서 현현하실 겁니다. 성국의 결계는 그때 완벽하게 완성이 됩니다. 결계가 완성된 후부터 진마계의 마족 대부분은 성국 근처에 얼씬도 할 수 없습니다. 대장군급 마족들은 예외지만요.”
“거, 현현하는 김에 대장군들도 못 뚫을 결계를 만들 수는 없던 건가?”
“아시다시피, 아율라께선 신에 의한 인세 개입을 극히 경계하십니다. 이 정도 결계를 형성한 것만으로도 당신께서 정한 기준을 넘은 것이죠. 많은 고통을 감내하셨을 겁니다.”
“하긴, 과거 축복의 신도 그것 때문에 아율라가 소멸시켰다고 듣기는 했지. 신의 고통, 인세 개입의 대가라…… 내가 실언을 했군.”
“알면 땀이나 마저 잘 닦아요. 아율라 님을 뵙기 전에 최대한 깔끔한 모습을 하고 싶으니.”
“오냐.”
“그리고 두 분은 이 휴화산 목걸이를 걸도록 하세요. 아율라께서 결계를 완성하고, 신민들을 격려한 다음엔 두 분을 따로 만나겠다고 하셨으니. 신도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 예의는 차리는 게 모양이 좋겠죠?”
십여 분이 지나자 대신전 가운데에 솟은 휴화산의 빛이 눈부시게 밝아졌다.
그리고 잠시 세상이 어두워졌다. 10초쯤 전 세계가 어둠에 잠겼고, 어둠은 초가 지날 때마다 범위를 좁히며 성국의 결계 안쪽으로 수렴했다.
캄캄한 와중 휴화산의 빛만이 점점 더 환해졌다.
‘이게 최상위계 신의 진짜 현현인가……. 왠지 반켈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잠시 어두워졌을 것 같군.’
아율라의 현현은 최근 진이 경험한 다른 신들의 화신이나 현현과는 격이 다른 위엄을 품고 있었다.
페이텔은 상대적으로 권능이 떨어지고 쉬누는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어린 화룡 파이를 통해 화신한 반면, 아율라는 거의 온전한 현현인 것이다.
나의 자녀들이여.
이내 아율라의 목소리가 성국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신민들은 무릎을 꿇고 환희에 찬 눈물을 흘렸고, 진과 무라칸도 고개를 숙였다.
휴화산 위로 떠오른 아율라의 모습은 열 쌍의 날개를 가진 사람과 같은 형상이었다. 온몸에서 황금빛이 흘렀고 눈을 감고 있으나 그 눈동자 속에 담긴 신의 자애가 생생하게 보이는 듯했다.
두려울 땐 두렵다 말하고, 괴로울 땐 괴롭다 말하라. 내가 너희의 부름에 응하지 않아 원망스러울 땐 나를 원망하라. 그대들이 내게 어떤 마음을 품어도 나는 그대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아픈 마음으로 그대들을 지켜볼 것이다.
‘귀로 들을 수 있는’ 아율라의 격려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아율라는 신으로서 성국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와 영적 소통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너흰 조금만 기다리거라. 자녀들의 이야기를 다 듣는 대로 찾아가겠다.’
진과 무라칸에게 전해진 아율라의 목소리였다.
아율라와 신민들의 영적 소통은 한 시간 동안 진행이 되었다. 그 시간 동안엔 신의 현현이라는 대특종을 작성하고자 찾아온 기자들조차 펜대를 움직이는 대신, 경건한 마음으로 아율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 너희를 잠시 나의 영역에 초대할 것이니 놀라지 말거라.’
다시금 아율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과 무라칸이 속으로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들은 별안간 주변의 풍경이 바뀌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율라의 영역으로 소환된 것이다.
끝없이 광활한, 회색의 대지.
그게 아율라의 영역에서 느낀 첫인상이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이루 말할 수 없이 삭막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진과 무라칸은 차게 식은 그 회색 땅이 한때 인세를 몇 번이나 멸망시키고도 남을 불이 지나간 흔적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보았다.
인세에 지나친 혼란을 야기한 신을 심판할 때, 아율라는 그들을 이곳으로 불러 소멸시켜왔다. 신을 심판할 때가 아니면, 아율라의 땅은 언제나 이렇게 고독한 회색이었다.
[내 의지로 필멸자를 이곳으로 데려온 건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진 룬칸델, 무라칸, 그리고 나의 가장 성실한 자녀 라니 살로메.]“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아율라 님.”
“거 오랜만이요, 평화의 신 양반. 예전에 여기가 살벌하다고 듣기는 자주 들었는데, 직접 와보니 이 회색 땅에 각인된 신들의 죽음이 아주 생생하게 느껴지는군…… 괜히 조금 쫄리는걸. 그나저나, 최근에 누구 잡아 족친 적이 있수? 땅이 식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느낌이라.”
라니는 잠시 기겁했으나 무라칸의 말대로 아율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라칸의 재롱을 보는 것 또한 오랜만이군. 좀 더 즐기고 싶으나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구나.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해주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어서 시작하는 게 좋겠어.]“말씀해주십시오, 아율라 님. 경청하겠습니다.”
[인세에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위험이 찾아온 것은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진. 그러나 아직 진마계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난 적은 없으니, 그들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사실 체감이 되지 않을 테지.]“그렇습니다. 저희 연합이 균열 몇 개를 제거한 적은 있으나, 아직 진마계의 일원 중 초월적인 강자라 할 만한 존재를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진마계뿐만이 아니라 태양신교도 그들과 맞먹는 강적들이다. 방금 전에 무라칸이 내게 말했지. 최근 내가 누군가를 심판한 적이 있느냐고. 그 말대로, 나는 최근 이곳에서 한 필멸자와 전투를 벌였었다.]“……설마 태양신교의 사제입니까?”
“전투를 벌였었다, 라니? 여기서 아율라 양반이랑 전투가 되는 필멸자가 있긴 있는 거요? 꼬마 놈 아비랑 싸웠을 리는 없을 텐데. 당연히 나랑 싸운 것도 아니고. 혹시 엘로나 지플?”
[태양신교에 그 둘과 대적할 만한 인물이 하나 있더구나.]“쳇, 셋이 아니라 둘이라니. 완벽한 전성기가 아니니 서러워서 원.”
[그는 루크라는 이름을 쓰는, 명왕족의 옛 투신이었다. 진, 네 형제 투신 반의 선조다.]“그자가 반 형제만큼 강했습니까?”
[전성기의 반보다 강한 필멸자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다만 루크 또한 명왕족의 최전성기에도 충분히 투신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이란 건 확실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자는 곧 인세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될 것이다.]“저는 얼마 전 쉬누를 만났었습니다. 그때 쉬누도 상당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그 루크라는 명왕족이 그렇게 한 모양이로군요.”
[그럴 테지. 본래 이번에 나는 내 권능을 다소 잃게 되더라도 그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히려 했다. 지토가 힘을 온전히 되찾는 게 아닌 이상, 그자가 인세에 더 위협적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지.]아율라가 눈을 뜨며 진을 바라보았다.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지토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힘을 되찾고 있으니, 그자를 너와 네 동료들의 몫으로 남겨야만 했어. 나조차 각오를 해야만 겨우 한 번밖에 들 수 없는 그 큰 짐을…… 너희에게 맡겨 미안한 마음뿐이로구나.]“아닙니다, 아율라 님. 루크에 대한 정보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알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너를 믿고, 축복하겠다. 진 룬칸델. 언제나 자신보다 무거운 짐을 꿋꿋이 들어 올린 자여.]“나도 축복해주쇼.”
[그래, 너도 조금 축복해주마. 라니, 진, 그리고 무라칸. 인세를 구하는 건 결국 나와 같은 신이 아니라 너희밖에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것일 뿐이지…….]진은 방금 아율라가 말한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지토가 그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힘을 되찾고 있다는, 그래서 루크에게 힘을 쓸 수 없었다는 대목을.
아율라는 그 속내를 정확히 읽으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지토가 잠시 성국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힐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