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70)
제 888화
217화. 아율라가 현현한 이유(3)
지토는 잠시 눈동자를 끔뻑이며 아율라와 차원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푸흐흐흐…… 크하하하학! 저걸 닫으면 뭐? 내가 잔뜩 놀라면서 비굴해지기라도 할 줄 안 것이냐? 아율라, 이 멍청한 친구야. 이런 간단한 연기에 속아 넘어가면 어떻게 하나! 지금껏 비실비실했던 이유가 정말 저걸 막느라 힘을 소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말인가?]처음부터 지토는 그걸 노리고 있었다.
그는 아율라가 오늘 자신을 소멸시키기 위해 소멸을 각오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우선 돌아갈 길을 막고, 어떻게든 내게 큰 타격을 준 후 이 결계 아래 있을 인간들로 나를 어떻게 해볼 생각이었겠지. 내가 힘을 이만큼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면, 충분히 괜찮은 수법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군.]문이 닫혔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지토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날개와 몸 곳곳에 새로운 가시가 돋아났고, 일렁이던 얼굴은 한층 윤곽이 선명해졌다.
[어차피 너를 죽이고 눈을 찾으면 이따위 장난질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럼 다시 시작하자고, 어리석은 평화여.]지토가 쌍 가시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하늘이 일그러졌다.
도끼가 닿는 아율라의 육신도 마찬가지였다. 피와 뼈, 살점이 우그러지며 비명보다 끔찍한 소리가 일었다.
기도하는 신민들은 아율라가 겪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고, 진과 무라칸은 미간을 좁혔다.
싸움이 계속 이대로 흘러간다면, 결과는 결국 아율라의 패배로 끝이 날 터.
“아이 씨, 이러다 진짜 아율라 양반이 지는 것 아니야? 인세라서 모든 힘을 완벽하게 쓸 수 없다고는 하지만, 너무 밀리는데? 아, 결계. 안 그래도 힘이 부족한데 결계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았기 때문인가?”
“……맞아, 무라칸. 아율라 님은 오늘 진다.”
진의 말에 무라칸의 눈동자가 커졌다.
“뭐?”
“이 싸움은 어차피 시작부터 결과가 정해져 있었어. 아율라 님은 단 한 번도 지토를 꺾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를 소멸시키겠다는 이야기도 하신 적이 없어. 회복할 수 없는 큰 상처를 주겠다, 그렇게만 말씀하셨지.”
애초에 아율라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다.
아율라는 처음부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무라칸의 말대로, 인세는 아율라가 온전한 힘을 낼 수 있는 땅이 아니니까.
“내가 볼 때 지토는 함정에 빠졌어. 아율라 님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분명 싸움이 끝난 후 차원문에 적용된 아율라 님의 권능이 지토의 발목을 잡을 거다.”
“제발 네 말이 맞기를 빌어야겠군.”
진이 정말로 전혀 걱정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본래 이번에 나는 내 권능을 다소 잃게 되더라도 그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히려 했다. 지토가 힘을 온전히 되찾는 게 아닌 이상, 그자가 인세에 더 위협적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지.]
방금 전 회색 영역에서 아율라가 했던 말.
싸움이 완벽하게 아율라의 뜻대로 흘러가더라도 그는 오늘 반드시 권능의 일부를 잃게 될 터였다.
‘아마도…… 아율라 님이 지금처럼 인세에 개입해서 직접 전투를 펼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 부디 아율라 님의 뜻대로 싸움이 끝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일이 잘못되면 아율라가 소멸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반면 지토가 그렇게 될 일은 없었다. 아율라 본인이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을 박아두었으니 말이다.
[결계 아래로 울고 있을 네 아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구나. 나의 눈동자도 그 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났을 것이다. 너무나 오랜 시간, 나의 눈은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한 채 갇혀 있었지.]투각-!
가시 도끼가 아율라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율라는 지토처럼 빠르게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머리 일부가 뜯긴 채 창들을 제어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시야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두 개의 날개가 더 찢어졌다. 창이 지토의 몸을 꿰뚫는 횟수는 점점 줄어가는 반면, 가시 도끼가 아율라를 유린하는 횟수는 늘어갔다.
이제는 비슷한 힘을 가진 두 존재의 싸움이 아니라, 한쪽의 일방적인 폭력이 시작되는 분위기였다.
쿵……!
이윽고 지토가 아율라의 가슴팍에 가시 도끼를 내리꽂아 그를 결계 위로 떨궜다. 결계 안쪽으로 전해진 충격은 잠시 성국 전체에 지진을 일으켰다.
지진이 빠른 속도로 거세졌다.
지토가 아율라의 위에 올라타 쉴 새 없이 도낏자루로 그를 내리찍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율라의 진기로 형성된 결계는 아직 굳건했으나, 이대로라면 언제든 균열이 생길 것만 같았다.
[크하하, 한 마리의 하찮은 짐승이 된 기분이로구나! 굶주림에 시달리다 마침내 사냥감을 발견한 것이야. 알들을 지키느라 지친 어미를. 어미는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어떻게든 포식자로부터 알을 지키려 하겠지만, 그럴 수 없는 거지. 왜냐, 하필 그 짐승의 정체가 이 지토니까!]지토는 균열을 알에 비유하며 광기에 찬 목소리를 드높였다.
별안간 아율라가 날개를 활짝 펼쳤다. 아율라는 방금까지 올라탄 지토의 도끼질을 막느라 계속 날개를 방패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율라는, 열 개 남짓 남은 날개로 지토를 끌어안았다.
지토는 날개를 떼어내려 했으나 지금껏 그토록 쉽게 찢어지고 떨어져 나가던 날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날개를 꿰뚫고 있는 지토의 가시들이 두 사람의 상태를 고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두 불멸자는 마치 하나로 묶인 거대한 고치처럼 보였다.
아율라가 처음으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너는 방금 네 한쪽 눈이 아름다운 것을 본 지 오래 되었다고 말했지…….] [뭘 하려고?] [내가 보기엔 네 남은 눈 또한 마찬가지다. 고통에 찬 세상, 그딴 게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이냐? 그러니 내가 보여주마. 진짜로 아름다운 것을.]화아아악-!
황금색 피로 젖은 날개 속에서부터 더 환한 황금빛이 번졌다.
그리고 지토는 날개 속에 퍼진 아율라의 기운이 자신의 뇌리를 침범하는 감각을 느꼈다. 그 기운은, 지토의 머릿속에 강제로 여러 영상과 소리를 형성했다.
물론, 그 내용은 지토가 가장 혐오하는 모습과 소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함께해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
가장 먼저 지토의 머릿속에 울려 퍼진 것은, 아율라를 향한 찬송가 중 한 구절.
온통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수백만 명의 신도가 일제히 합창을 하는 모습도 함께였다.
[미친, 크아악!]지토는 대번에 몸서리를 치며 처음으로 괴로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스스로를 고문할 만큼 고통에 환장하는 불멸자였으나, 이런 종류의 ‘거북한 고통’에는 그다지 내성이 없었다.
[이건 별로야, 이건 내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고통이라고.]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토에겐 크나큰 정신적 충격이었다.
내면에 빚어진 환상이기 때문에 노래 부르는 신도들을 죽이고 고문할 수도 없었고, 아율라를 손쉽게 떼어낼 수도 없었다.
[소름이 돋는군!] [아직 많이 남았어. 다음에 볼 것은 삶에 지친 이들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는 광경이다. 그리고 그들은 끝내 행복한 삶을 살게 되지…….] [이런 끔찍한 짓을 하고도 네가 평화의 신이란 말이냐, 이 악마 같은……! 지옥에 떨어질!]기도 중인 이들은 집중하느라 그들의 대화를 전혀 듣지 못했으나, 진과 무라칸은 잠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지? 정말 이런 식으로 저 지토란 놈을 괴롭게 만들 수 있던 건가?”
“여러 의미로 충격이긴 해, 나도.”
내내 아율라를 압도하던 지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빛과 치유를 극도로 혐오하는 애처로운 마귀가 있을 뿐이었다.
[그만, 그마아안!]그러나 지토의 내면에 침투를 하는 건, 그 자체로 아율라에게도 크나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율라가 지토의 내면을 더럽히고 있듯이, 지토 또한 아율라의 내면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아율라는 이 세상이 눈앞에서 불타고 고통받는, 현실보다도 더 생생한 환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신의 통찰력으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지토가 자신의 내면으로 침투한 아율라의 정신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듯이.
어느 쪽의 내면이 더 빨리 무너지느냐.
결국, 싸움의 마지막은 그것이었다. 그렇기에 아율라는 자신의 패배를 확신한 것이다.
이럴 때는 반드시 사랑하는 무언가가, 지켜야 할 무언가가 더 많은 쪽이 질 수밖에 없다. 아율라는 눈을 까뒤집으며 핏물을 토하고 있으나, 지토의 괴성은 점점 잦아들었다.
그리고 아율라의 날개들이 마침내 꺾였다. 가시에 고정된 모든 날개가 바스라지며 상처 입은 아율라의 육신이 드러났다.
아율라는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야윈 모습이었다. 지토는 자신을 붙잡고 있던 날개가 사라지자마자 거리를 벌리며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헉…… 하마터면 이상한 취향에 눈을 뜰 뻔했어. 이 또한 결국 내가 정복해야 할 고통의 한 종류이긴 하지만. 많은 배움이 되었다, 아율라.]아율라는 대답하지 못하고 숨을 골랐다.
지금이라면 지토는 아율라를 분명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아율라는 반격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토는 선택해야 했다.
지금 아율라를 끝장내는 일에 남은 힘을 마저 소모할 것인지, 아니면 그 힘으로 처음에 아율라가 차원문에 쳐둔 결계를 찢고 돌아갈 것인지. 아율라는 빈사가 되었으나 차원문의 결계는 건재한 상태였다.
지토는 후자를 택했다.
지금 아율라를 소멸시키기 위해 힘을 다 써버리면, 결계 아래 있는 인간들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큭큭…… 그래, 오늘은 내가 졌군. 속았어. 결계에 집착한 이유가 이것이었군. 그런데 이런 패배감은 싫지 않아. 이루 말할 수 없이 끈적하고 짜릿한 맛이 있는 패배감이야. 돌아가마, 다음에 만날 땐 약해진 모습이겠지, 아율라. 그때 충분히 네놈을 이용하고, 즐겨주마.]이내 지토가 차원문을 잠식한 아율라의 권능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지토가 사라지자, 아율라는 결계 아래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