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99)
제 999화
227화. 새로운 적, 적들의 적(1)
“비셉스가 룬칸델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거의 확실해졌다.”
독마성, 켈리악 지플이 라갈의 집무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그는 막 진마계로 온 뮤를 만나 앤에 대한 보고를 받고 돌아온 참이었다.
“거의 확실해졌다라…… 시케르 녀석을 잃어가며 얻은 정보치고는 다소 아쉬운 느낌인데.”
“앤이 한 번 사망했다. 그러나 육신을 잃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짧았으니, 분명 백경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당했을 것이라더군. 백경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비참한 모습을 꾸민 앤을 단칼에 처리할 수 없으리라고 말이야.”
“그렇군. 그건 자네 쪽 사람의 의견인가?”
자네 쪽 사람.
라갈은 아직 조슈아를 비롯한 ‘가네스토가’를 만난 일이 없었다. 물론 죄수일 때 고문하기는 했으나, 그들이 각성해서 로키아의 세계로 간 이후로는 켈리악만이 가네스토가와 접선하는 중이었다.
“그래. 그는 백경을 아주 잘 아는 인물이니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과거 내가 직접 겪은 백경을 생각해도, 그럴 수는 없어.”
“백경은 시론 룬칸델을 따라서 흑해를 다녀왔잖나. 거기서 좀 괴물처럼 변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 됐을 가능성은?”
“그랬다면 시론은 백경을 복귀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지금껏 진마계에 보고된 백경에 대한 내용도 그런 부분은 없었지. 거의 확실하다, 라는 내 말이 걸리는 모양인데 그냥 비셉스와 룬칸델의 협력은 확실하다고 인지해도 괜찮을 것 같군, 라갈.”
“그렇다면 다행이긴 하네. 시케르 놈, 그래도 괜찮은 녀석이었는데 말이야.”
켈리악이 자리에 앉아 마법서를 펼쳤다.
라갈은 살살 그의 눈치를 살피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런데 켈리악 친구, 방금 만나고 온 자네 쪽 사람들 말이야. 나한테도 소개를 시켜주면 안 되나?”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네.”
“쩝. 아직 나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인가?”
“물론 그렇지.”
“아닌데…… 난 자네를 배신할 생각 같은 건 전혀 없는데. 알잖아, 내 사정. 지토 님한테 자네를 고발했다간 내 목이 먼저 날아갈 거고, 다른 마왕들하고 연계해서 자네를 족치는 것도 솔직히 불가능할 것 같고.”
켈리악이 라갈과 눈을 맞추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라갈 자네를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야.”
“그럼 왜……?”
“아직, 자네는 자기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모른다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켈리악 친구.”
“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차차 알게 될걸세. 혹시, 요즘 나와 지내면서 뭔가 머리가 맑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던가?”
라갈은 잠시 근래를 돌아보았다. 켈리악의 말대로, 그를 만난 이후 자신의 두뇌가 빠르게 비상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엇, 그런 것 같기도. 확실히…… 예전보다 흥분하거나 경박하게 웃거나 하는 일도 많이 줄었어. 그러면서도 지토 님한테는 왠지 평소와 똑같은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아서, 어쩌다 나를 부르셔도 일부러 더 멍청하게 행동을 하지.”
라갈이 변화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세뇌.
틸리아스가 진에게 알려줬듯이, 현재 지토의 부하들은 대부분 고통에 정신이 세뇌된 상태였다. 때문에 고위 마족들 중에도 지능이나 능력이 멀쩡하지 않은 이들이 대다수였다.
대다수 마왕들의 전투력이 인세 최상위 초인들에 비해 지나치게 떨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라갈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나, 그 세뇌는 켈리악을 만난 이후부터 조금씩 옅어지는 중이었다.
세뇌는 지토가 죽기 전까진 결코 완벽하게 해제할 수 없으나, 이 정도만으로도 라갈에겐 큰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호오! 문득 신기한걸?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이 또한 켈리악 친구 자네 덕분에 시작된 일인가? 그저 요즘 들어 자고 일어나면 유달리 개운한 줄만 알았는데.”
“자네가 자신을 다 알게 되면, 그때는 내 쪽 사람들을 만나도 무방할 것이다.”
라갈은 새삼 켈리악이 한층 더 존경스럽게 보였다.
켈리악이 본색을 드러낸 후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나, 라갈은 그가 그간 보여준 능력들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독마성에 비셉스의 첩자가 있던 것은 물론, 비셉스가 인세와 연계하고 있으리라는 건 라갈로서는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지하 감옥에서 죄수들을 빼돌린 일 역시 마찬가지고, 켈리악이 방금처럼 진마계에서 ‘모종의 세력’과 지토 몰래 연락을 주고받는 일도 그랬다.
‘뒷배로 마녀가 있으니 가능한 일일 테지만, 켈리악 이 친구…… 볼수록 뭔가 함부로 대하기 어렵단 말이야. 뭔가 어마어마하게 큰 야망도 있는 것 같고. 설마 나중에 지토 님을 이 친구가 제친다거나…… 뭐 그런 일이 벌어지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군.’
그간 세뇌된 라갈의 인정 욕구는 오로지 지토를 향해 있었다. 지토로부터 더 많은 인정을 받고, 파엘리토를 넘어서서 다른 모든 마왕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날이 오는 것이 라갈의 오랜 꿈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라갈은 지토만큼이나 켈리악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고 있었다.
“흠! 그렇다면 이 귀염둥이 라갈이 더 노력을 해야겠군. 그나저나 친구, 최근 들어 마왕들이 너무 자주 전사하고 있다. 이번에 시케르를 잃은 것도 지토 님과 하이타 가문, 그리고 총서기관이 추궁을 할 수도 있어.”
“지토는 아마 나 때문에 이쪽을 들춰보지 않을 거고, 하이타가는 이참에 내가 한번 만나보도록 하지.”
“아, 하이타가도 집어삼키겠다는 뜻이군? 나한테 했던 것처럼.”
“시케르의 부가주가 내가 처음에 만났던 자네보다 말귀가 밝다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자네는 내게 다소 심하게 당했으니까.”
“끔찍했지…… 솔직히, 엘로나를 병상으로 보낸 다음이라 자신감이 넘치기도 했으니 충격이 컸어. 지금이야 내가 엘로나를 그 모양으로 만들 수 있던 건 오로지 인질 덕분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라갈이 지능과 능력을 되찾고 있듯이, 하이타가의 마족들도 켈리악의 하수인이 되면 마찬가지일 터. 라갈이 생각하기에 그렇게 된다면 하이타가의 마왕급 마족 중 죽은 시케르보다 훨씬 강하고 뛰어난 인물이 드러날 것 같았다.
“방금 든 생각인데, 왠지 자네가 이런 식으로 진마계를 다 접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
“저번에도 말했지만, 내 최종 목표는 가문을 되찾는 것이네.”
“그 과정에 자연스레 진마계 접수가 필요한 거고?”
“여전히 궁금증이 많군. 마왕을 잃은 일은 걱정하지 마라. 방벽에서 진행 중인 전투가 한창이니, 총서기관은 시케르 문제로 네게 따지러 올 여력이 없을 거다. 드루가 킬렛은 살아남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마왕들이 다수 사망했다 한들 진마계의 총 전투력은 오히려 상승하는 중이지.”
“자네가 자네 쪽 사람들과 더불어 부활시킨 영혼들 덕분에 말이지?”
-벌써 지플 쪽 쓸 만한 영혼들을 다섯이나 찾다니…… 친구를 만난 게 참 행운이야, 그렇지?
라갈이 지토로부터 켈리악을 넘겨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했던 말.
그때나, 관계가 역전된 지금이나 켈리악은 여전히 ‘쓸 만한 영혼’을 찾아 지옥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영혼들 중엔, 지플이 아닌 자도 섞여 있었다. 역천의 키다드 홀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었다.
“그렇다네, 라갈.”
“으, 지토 님이 마녀를 의식해서 묵인하고 계신 건지, 아니면 정말 그들의 존재를 모르시는 건지 신경이 쓰이긴 하는군. 그런데, 그들이 정말 죽은 마왕들보다 많이 강하긴 하나?”
“그들 또한 한때는 인세를 지배했거나 특별히 추앙받던 존재들이지. 본래 격을 갖추지 못한 마왕들보다는 훨씬 우월하다.”
“여러모로 재밌게 돌아가는군……. 어쨌거나, 그럼 다음은 뭔가? 비셉스와 룬칸델의 동맹이 확인되었는데, 우린 이제 뭘 하면 되지? 비셉스 첩자에게 거짓 정보를 뿌리면서, 루나 룬칸델이 형제들을 직접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건가?”
“아니. 아직 앤이 깨어나지 못했으니 자세한 상황은 듣지 못했으나, 그녀가 육신을 잃기 전 힘을 사용하긴 했을 것이다. 그러니 누가 앤을 죽였든 바멀 연합엔 그에 대한 내용이 보고되었을 거고, 백경은 더 이상 지옥에 있던 형제들을 베는 일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형제들을 이용해 백경의 정신을 갉아먹는 건 어렵겠군.”
“우린 당분간 하이타가 같은 가문들과 접촉하면서 때를 기다리면 된다. 지토의 병력들과 바멀 연합이 싸우는 동안, 양쪽이 지치는 과정을 구경하면 되는 것이지. 대신, 자네가 좋아할 만한 일이 하나 있기는 하군.”
“오,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이라! 뭔가?”
“벨가시움가의 마왕 하나를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어.”
라갈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파엘리토를 말하는 건 아닐 테고…… 그렇다면, 레일라 벨가시움?”
“그래. 레일라 벨가시움, 그자는 자네처럼 자기 자신을 모르는데도 창성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지. 나는 추후 그자가 백경을 상대하게 만들 생각이다.”
“오호…… 레일라는 따로 지토 님의 비밀 명령을 수행하는 중이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레일라는 나보다 훨씬 강해. 물론 자네라면 얼마든지 레일라를 밟아버릴 수 있겠지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니까?”
“때로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지. 하지만 나는 레일라 벨가시움과 싸울 생각이 없다. 그저 몇 마디만 대화를 나누면, 그자는 지토를 배신하고 내게 붙을 것이다.”
라갈은 그 고지식하고 콧대 높은 레일라가 그러는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았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다만 내용은 좋은데, 내가 좋아할 만한 부분이 대체 어디라는 건지 모르겠다만.”
“레일라가 내게 붙는다면, 자네는 그녀보다 높은 서열을 갖게 될 테니 좋은 일이 아니겠나?”
라갈은 함빡, 웃음을 터뜨렸다.
“그야 당연하지……! 역시 나를 생각해주는 건 친구밖에 없군!”
“레일라에게 초대장을 보내게. 지토의 비밀 명령에 대해 알려줄 내용이 있다고 하면 싫어도 찾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야, 자네 그 비밀 명령의 내용까지 알고 있던 건가. 소름이 돋는군……. 알았어, 즉시 레일라를 부르도록 하지. 큭큭, 내 아래가 되면, 그간 받은 모욕을 죄다 배로 돌려주마, 레일라.”
라갈은 초대장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켈리악은 마법서를 덮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금 만나고 온 뮤 가네스토에 대한 생각이었다. 뮤와 대화를 나누며 ‘통찰력’으로 본 바에 의하면, 그녀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가네스토들이 벌써 내게 숨길 만한 일이라면…… 설마, 과거에 버린 용들에 대한 정보인가. 다음에 란 가네스토나 뷔고 가네스토를 만나서 제대로 확인을 해야겠군. 조슈아를 상대로 통찰력을 사용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