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24)
제 999화
230화. 침공과 습격(6)
재차 광심장의 뇌기를 끌어올려도 결과는 같았다. 명왕족의 인정을 받은 이래 처음으로, 진은 뇌기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경험하고 있었다.
잠시 후 광심장은 아예 빛을 모두 잃고 시커멓게 꺼지고 말았다.
‘파엘리토의 검, 바스칼라가 뺨을 스쳤을 때 뇌기가 차단된 건가.’
진은 담담한 얼굴로 자세를 다잡았으나 사실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온전히 자신의 힘’이라 믿어온 뇌기가 실은 명왕족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능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파엘리토는 아주 간단하게 그 힘을 가로막았다.
동료들도 진에게 생긴 문제를 눈치채고 있었다.
뇌기를 잃었다는 건, 곧 진이 가진 최강의 검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뜻. 명왕군림검을 통한 변수 창출이 아예 막혀버린 것이다.
“……일부러 뇌기를 지금 차단했군. 나를 방심하게 만든 다음에.”
“오랜만에 평범한 인간이 된 기분은 어떠한가?”
“뇌기가 잠시 사라졌다 하여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파엘리토가 조소를 머금었다.
“과연 그럴지 지켜보도록 하지.”
치아악-!
단테의 일격이 파엘리토의 코앞을 스쳤다. 동시에 헤도의 거력이 파엘리토의 등을 찔렀으나 그는 이미 돌아서서 헤도를 쳐냈다.
무라칸은 암흑도래를 펼칠 시간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복제된 장막에서 뻗어 나오는 흑쇄와 자줏빛 창들, 그리고 파엘리토가 직접 쏘는 검기가 쉴 새 없이 무라칸을 견제하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이래선 꼬마 녀석을 제대로 지원할 수가 없다. 저 마족 괴물 놈, 세뇌된 게 이 정도면 대체 그전엔 어땠던 거지?’
겉으로 보기엔 넷이 한 명을 압박하는 모양새지만, 실제로 동료들이 느끼는 감각은 반대였다. 내내 압박을 이어가는 쪽은 파엘리토라고 말이다.
사각이 없다.
동료들은 파엘리토에게 사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어쩌다 만들어진 빈틈을 찌를 때조차 공격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으며, 파엘리토는 매번 매섭게 진의 품을 파고들었다.
진은 마치 일대일로 겨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파엘리토의 움직임을 좇아 시야를 바꿀 때마다 그곳엔 동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꿈에서 누군가와 싸울 때처럼.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파엘리토의 살기를 마주할 때마다 몸속에서 수십 마리의 뱀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언제든 장기를 물어뜯고 살갗을 뚫고 빠져나올 것 같았다.
‘설마 바스칼라에 체력을 빼앗는 능력도 있는 건가, 숨이 차오르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후욱, 후욱! 호흡할 때마다 목이 거칠게 꿀렁였다. 목구멍이 막힌 듯 숨은 제대로 돌지 않고, 불쾌한 쇳내가 신경을 긁어댔다.
결전기나 비기를 연달아 펼치며 몇 날 며칠이고 싸울 수 있는 강체가 빠르게 지치고 있었다. 이번 생엔 걸려본 적조차 없는 질병이 몸을 괴롭히는 기분이었다.
시야를 찔러 들어오는 파엘리토의 검이 아까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실제로는 검이 빨라진 게 아니라, 그만큼 진의 반응 속도가 느려진 것이다.
“크헉!”
후드드득-!
이내 진은 한 움큼 핏물을 뱉으며 허리를 꺾었다.
역류.
몸속에서 오러가 불안정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아무리 진이라 할지라도 당황한 기색을 숨기기 쉽지 않았다. 그간 몇 번이나 한계를 극복해낸 몸이, 이런 짧은 전투에 무너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내 진은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광심장 때문이다……!’
광심장은 단지 뇌기의 저장소가 아니다.
그건 명백히 진의 육체를 구성하는 한 장기였다. 평소 몸을 지탱하던 두 개의 심장 중 하나가 완전히 기능을 잃었으니, 극심한 체력 저하는 필연이었다.
체력 저하 정도로만 끝난 게 다행이었다. 만일 광심장이 진의 생명 유지에 관여하는 부분이 많도록 이식됐다면 이미 싸움은 끝났을 것이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나? 광심장이 없어도 진 룬칸델은 진 룬칸델이라고. 느껴라, 그것이 너의 현실이다. 분수에 넘치는 힘이 사라지면, 너는 그저 한 사람의 검객일 뿐이다.”
처어엉!
파엘리토의 찌르기에 진이 평야 저 멀리로 튕겨졌다. 바닥에 닿기도 전에 등 뒤와 바닥에서부터 송곳처럼 마기가 솟구쳤다.
마기가 진의 옷과 살갗을 휩쓸었다. 깊은 부상은 없으나 온몸에서 피가 튀었고, 내려간 체력 때문에 그 정도의 출혈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다시 한번 찾아드는 황천검의 감각 교란까지.
“한 사람의 검객이라.”
퉷! 진이 핏물을 뱉어내며 검을 바꿨다.
브라다만테, 주로 영검을 펼칠 때 사용하는 검. 그러나 시그문드가 그랬던 것처럼, 브라다만테도 영기를 머금지 못했다.
영기는 그저 잠시 검신을 감쌌다가 삭은 종이처럼 바스라지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역시, 영기도 막혔군.’
이미 예상했기에 광심장 때만큼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게다가 영기는 진의 육체에 광심장처럼 직접 관여하지 않으니 체력적인 문제가 증폭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역류는 이미 시작되었다.
동료들은 진에게 역류를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이대로 파엘리토가 계속 진을 노리게 둘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동료들은 부상을 각오한 채 더 위험한 수를 둬야만 했으나, 진은 그중 무라칸을 제외시켰다.
“무라칸! 하지 마, 파엘리토의 검에 직접 베이면 영기가 제한된다.”
무라칸은 평소와 달리 즉시 진의 의견을 따랐다.
지금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수호룡으로서 그럴 수 없다고 할 때가 아니었다. 만약 자신이 영기를 잃으면 전투는 오히려 더 힘겨워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 하늘엔, 일부 파괴된 아율라의 보호막과 부서진 탈라리스의 대결계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또 다른 균열.
파엘리토가 빠져나온 균열 옆에 새로운 균열이 형성되고 있었다. 지금껏 인세에 드러난 그 어떤 균열보다도 거대한 균열이.
그 균열에서 빠져나올 것은 마족이다.
성국의 신민들을 찢고, 그들을 보호하려는 자들을 죽이고, 인류가 지토로부터 지키려는 것을 빼앗으려는 마족들이, 머잖아 새로운 균열에서 더 쏟아질 터였다.
-지토의 눈, 그것 때문이겠지.
-그렇습니다, 퀴칸텔 님. 비셉스가 준 정보에 의하면 현재 진마계의 최강자는 완전히 세뇌되었음에도 창성으로 추정되는 파엘리토……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자들로는 리돌로스와 비델루체가 있습니다. 지토는 분명 그들에게 자신의 눈을 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릴 겁니다.
애초에 연합은 지토가 파엘리토만 성국으로 보낼 것이라 판단하지 않았다. 파엘리토에 준한다고 알려진 두 마족과 휘하 병력도 함께 침공하리라 예상한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무라칸의 영기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다. 연합원 중 적들의 무차별 대량 학살을 무라칸보다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젠장! 단테, 육체미! 부탁한다!”
“카아아아!”
단테는 순식간에 한계까지 기운을 끌어올려 열 줄기의 천공일섬을 쏘았다.
그중 아홉이 마기와 복제된 아율라의 창에 가로막혀 상쇄되었다. 한 자루의 창이 단테의 옆구리를 스치기도 했다. 단테는 제 살점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진을 보호하기 위해 한 번 더 무형검풍을 일으켰다.
무형검은 파엘리토라 할지라도 완벽하게 읽어낼 수 없다. 무형검에 휩싸인 마지막 천공일섬이, 마침내 파엘리토의 등을 찔렀다.
“허억, 헉……!”
단테는 현기증을 느끼며 재차 날아든 창을 피했고, 천공일섬이 정통으로 명중한 모습을 확인했다.
그러나 천공일섬은 파엘리토의 등을 관통하지 못했다. 잠시 파엘리토의 자세가 무너졌고, 등이 터지며 핏물이 튀었지만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그사이 헤도는 파엘리토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해일처럼 거대하게 일으킨 검도와 함께 파엘리토의 정면을 덮친 것이다.
먼저 검도가 폭풍처럼 파엘리토를 휘저었다. 잔해와 파엘리토의 온몸에서 튀는 핏물이 한데 뒤섞이며 일순 그의 시야를 가렸고, 헤도는 정확히 그의 시야가 완벽하게 차단된 순간을 노려 거력을 내리쳤다.
그 충격에 원형을 유지하던 검도와 무형검풍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울렸다.
시야가 열린 직후 헤도는, 자신을 응시하는 파엘리토의 붉은 눈을 마주했다. 바스칼라와 거력이 사선으로 교차되고 있었다.
“그간 완력에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다.”
“크윽!”
“운 좋게 태양신의 힘을 지닌 채 태어난 덕분이겠지. 오늘, 너를 죽여서 구시대의 질서가 남긴 혼란도 하나 없앨 수 있겠군.”
태양신의 파편이 가진 힘은 분명 권능이나, 그건 바스칼라의 힘으로 제한할 수 없었다. 빛을 빛으로 지울 수 없듯이.
파엘리토는 불쾌한 듯 미간을 좁혔다. 바스칼라로 헤도의 완력을 떨어뜨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감히 거저 얻은 태양신의 힘으로 자신에게 정면으로 맞서려는 헤도가 불쾌했다.
크그그그극……!
원시적인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헤도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힘 대결에서만큼은 단 한 번도 밀려본 적 없는 거인이, 어깨를 좁히며 바들바들 이를 악물고 있었다. 온몸에서 미친 듯이 땀이 흐르고 모든 뼈마디가 덜컥거렸다.
“크하아악……!”
“각성조차 하지 못한 태양신의 힘 따위, 부숴주마.”
만약 헤도가 더 버텼다면 그대로 두 팔이 으스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헤도는 격차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몸을 빼내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당연히 파엘리토는 헤도가 중심을 잃자마자 그의 목으로 검을 찔렀다.
단테가 이미 헤도를 돕고자 움직이고 있었으나 파엘리토가 더 빨랐다. 헤도는 불안정한 자세로 바스칼라를 쳐내느라 거력을 떨어뜨렸다.
이어 파엘리토가 떨어진 거력을 저 멀리로 날리며 헤도의 심장을 꿰뚫으려는 순간.
삐이이……!
파엘리토는 별안간 머릿속을 울리는 이명을 느끼며 검을 거뒀다.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본 듯 눈동자가 불타는 고통도 함께였다. 물론 그런 고통이 파엘리토를 움츠러들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지금 파엘리토를 가로막은 것은, 오래전 위명을 떨친 한 마법사가 진에게 남긴 유산.
첸미의 섬광포였다. 어느새 역류를 잠재운 진이 파엘리토의 눈앞에 섬광포를 터뜨린 것이다.
파엘리토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마기를 일으키며 진의 위치를 확인했다. 진은 섬광포에 함께 노출된 헤도의 앞에 서 있었다.
“이가 아니면 잇몸이라는 거냐, 진 룬칸델.”
진은 각오를 다지며 눈을 부릅떴다. 영기도, 뇌기도 없이 검마를 상대해야 하는 각오를.
“파엘리토. 나는 한 사람의 검객이 아니라, 룬칸델의 마검사다. 그러니 네 말대로라면 이것이야말로, 잇몸이 아닌 내 진짜 이빨이라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