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52)
제 999화
235화. 지토(2)
상처로 독성이 침투하고 있었다.
만독주와 창성의 육신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뺨이 녹아내리며 구멍이 났을 것이다. 진은 재빠르게 다시 지토와 거리를 벌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흥, 아율라 놈이 내게 한 개짓거리 때문인가. 내 가시에 닿았는데도 그냥 평범한 검에 베인 것처럼 멀쩡하다니.’
지토는 자신이 잠시 성국에 강림한 날, 아율라가 했던 선택을 떠올렸다.
그로 인해 지토가 다소 힘을 잃은 건 사실이었다. 약 2할에서 3할, 지토는 그게 지금 자신의 발목을 잡으리라 생각지 않았으나 멀쩡한 진을 보니 괜히 기분이 찝찝해졌다.
이 아공간은 지토 그 자체인 만큼, 그의 내면에 따라 반응하는 속성이 있었다.
왠지 모를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아공간에 더 많은 가시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파괴된 대지와 치솟은 검은 바위들, 허공에서도 가시가 돋아나고 있었다.
진이 서 있는 자리에도 가시가 돋았다.
그러나 진은 가시를 피하지 않았다. 그 가시는 땅을 뚫고 올라오기도 전에 진의 금빛 기운에 부스러졌다.
“겁먹으면 말이 많아지는 부류인 모양이군.”
[하아?]“여기까지 오면서도 느꼈다. 네놈은 나를 상대하기 위해 마족들을 미치게 만들어서 고통의 권능을 끌어모으고 있었지.”
[아아, 그렇게 보일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우리 애기들이 서로 잡아먹게 만든 건 딱히 너를 의식해서가 아니야. 그건 그냥…… 결말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해야겠군.]“결말이라…… 네가 추구하는 고통의 질서가 도래한 새로운 세상을 말하는 건가.”
[그래, 바로 그거다. 넌 고통이 뭐라고 생각하나? 진 룬칸델.]시종일관 장난스럽고 가벼운 태도를 보이던 지토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단단하게 굳었다.
“글쎄, 생각해본 적이 없군.”
[고통의 핵심은 결국 대상을 무아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 고통의 질서가 도래하면, 같잖은 것들이 내가 잘났네 네가 잘났네 하며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이지.]“말하자면 너는 고통으로 세상을 정화시키고 싶다는 뜻이로군.”
문득 킨젤로가 떠올랐다.
세상에 자신들이 추구하는 ‘완전성’을 부여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점에서, 킨젤로와 지토는 그다지 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
[일종의 정화라고 할 수도 있지. 난 말이다, 고통 속에서 태어났다. 진정한 왕이자 생명의 창조자인 태양신 킨젤로가 겪은 고통이, 나라는 존재로 형상화된 것이다.]지토가 가시도끼를 어깨에 걸쳤다. 가시가 어깨로 파고들며 살점이 찢어지고 터지는 소리가 전해졌다.
[그러니 이 세상에 나보다 고통의 본질을 잘 아는 존재는 없다고 할 수 있지. 탄생 초기의 나는,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었다.]“그러다가 그런 이상한 취향이 생긴 모양이군. 고통을 쾌락으로 느끼는.”
[취향은 선택의 영역이지. 나의 경우는 선택지가 없었다. 너는 매일 끓는 물에 빠진 채로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나? 심지어 끓는 물이라는 건 단지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설명한 것이지. 내가 지금껏 겪은 고통은 언어나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안타까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서 민망하군그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것이다. 나는 이 세상이 나만큼 고통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종래엔, 끝없이 깊고 무한한 고통의 바다에 잠식되어 자기 자신을 잊는 것이다.]“그때도 나는 의식이 깨어 있는 채로 네놈의 장난감으로 지내는 거고?”
[그렇지. 하지만 내가 너를 장난감으로 고른 이유는 단지 네가 맛있어 보이기 때문만은 아니야…… 내가 오르갈을 후계로 골랐던 이유와 마찬가지지.]“오르갈?”
[그에겐 세계의 변질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누군가나 어떤 현상에 의해 세상의 일부가 지워지거나, 변하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지.]-[운명이라는 것이 때로 참 야박하구나…… 네 신도 그렇고 말이야. 안 그런가? 무라칸.]
-[……네놈, 여길 어떻게 알고 갑자기 튀어나온 거지?]
-[알려진, 혹은 지워지거나 변질되지 않은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아. 알잖나?]
불현듯 진은 테마르의 두 번째 무덤에서 들은 무라칸과 오르갈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 기록 속에서, 오르갈은 괴물이 된 테마르를 구할 방법이 있다고 말했었다.
[고통의 시대가 도래하면 세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변질을 겪게 될 거다. 마녀가 그랬듯이…… 그러니 그때, 그 사실을 인지하고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해. 오직 오르갈만이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너를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고통의 시대는, 오르갈과 네가 있어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그렇군. 그럼 복잡한 설명은 다 끝난 거냐?”
복잡한 설명이라고 말하긴 했으나, 진은 이제야 지토라는 불멸자의 목적을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세상에 복수를 하고 싶을 뿐이다.
따라서 치하에 있을 백성이 필요 없으니 마족들을 소모품으로 사용한 것이며, 앞으로도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살려둘 생각이 없을 터였다.
‘놈이 말한 오류라는 건 아마 고통의 질서를 위협할 변수를 말하는 것일 테지. 그리고 놈은 나와 오르갈을 그런 변수 제거용 안전장치로 사용하고 싶은 것이고.’
소름이 돋았다.
지토는 로사로부터 태어난 흉신처럼 불완전하지 않고, 흑해의 왕들처럼 나뉘어 있지도 않다. 그는 이제껏 진이 만난 강적들 중 가장 순수하고 거대한 광기의 화신이었다.
[너는 나를 막을 수 없다, 진 룬칸델. 네가 가진 의지는 드높지만, 결국 나만큼 완전하지는 못해. 나는 킨젤로가 세상을 빚고 지켜보며 그로부터 얻은 고통의 산물이자, 그의 원한이다. 태초부터 이어져 온 고뇌의 덩어리란 말이다.]쩌엉! 카가가각-!
지토가 진의 우측면에 육신을 형성하며 가시도끼를 휘둘렀다. 시그문드와 가시도끼가 격돌한 순간, 검신에 맺힌 금뢰가 일시적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지토는 다시 장난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시도끼는 더욱 난폭해졌고, 독성도 진해졌다.
진 역시 그에 맞춰 기운을 끌어올렸으나 제한이 있었다.
‘태양 가르기를 전력으로 펼치려면 틈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힘이 소모되어야 한다…….’
그게 문제였다.
이 싸움은 과정에 많은 힘을 쓰지 않으면 결말에 다다를 수 없는 구조였다.
‘무라칸이 아쉽군. 지금 녀석이 함께 있었다면 충분히 무리하지 않고 틈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단기전으로 갈 게 아니라, 차라리 무라칸이 오길 기다리며 시간을 버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처음에 생각한 대로 단기전을 선택하면 부족한 힘으로 태양 가르기를 펼치게 될 위험이 있고, 장기전은 무라칸이 이곳으로 도달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지금 진은 문밖의 상황이 어떤지를 알지 못했다.
지토가 자신을 잡아 끌어들인 후 여전히 이곳으로 통하는 차원문이 열린 상태인지, 아니면 소멸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지토에 의하면 지금 무라칸 일행은 켈리악을 상대하고 있어. 무라칸이 그자를 상대한 후에도 계속 싸울 수 있는 상태인지도 관건이고…… 여러모로 피곤하게 됐군.’
곧 진은 결론을 내렸다.
진의 근처로 퍼진 금뢰가 점점 더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태양 가르기를 쓸 기회를 잡지 못하면 승산은 없다. 언제 올지 모르는 아군을 기다리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지토의 빈틈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결국 그를 지치게 만들지 못하면 승리는 불가능했다.
[오오, 드디어 제대로 싸울 마음이 생긴 모양이군? 그래, 이것저것 따지는 모습은 멋이 없지!]진이 지토에게 쇄도하며 시그문드를 내질렀다. 금뢰로 펼친 광속 찌르기가 허공에 빛나는 잔상을 남기며 지토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지토는 가슴이 뚫린 채로 달려드는 진을 향해 가시도끼를 휘둘렀다. 진은 그를 몰아붙이다가도 때때로 측후방에서 튀어나오는 가시를 모조리 쳐냈는데, 그때마다 지토의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진을 스쳤다.
접촉할 때마다 종양처럼 번지는 고통이 계속 육신을 잠식했으나 진의 움직임은 단 한 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진은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길 때마다 파천을 펼쳐 하늘을 열었다. 지토가 심연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심연을 들추려고 너무 힘쓰지 마. 내가 저것 때문에 뭐 바보가 되기라도 하겠냐? 그냥 좀 짜증 날 뿐이지, 키키킥.]크적-! 금뢰의 충격파에 지토의 가시가 부러지며 진의 허벅지를 찔렀다.
금뢰로 밀어낸 탓에 깊게 박히진 않았다. 진은 손가락 한 마디쯤 파고든 가시를 뽑아내며 다시 그와 거리를 좁혔다.
‘슬슬 지칠 법도 한데, 점점 더 빨라지기만 하잖아…… 창성이 원래 이런 건가? 예전에 파엘리토를 상대할 땐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진은 처음부터 지토에 대해 그다지 많은 계산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옥을 찾을 때도 무라칸 일행만을 데려왔고, 갑자기 지토와 싸움이 시작됐어도 당황하지 않았다.
반면 지토는 그간 끝없이 진 룬칸델이라는 인간을 예측해왔다. 진이 가진 힘과 능력, 그 의지가 마모되기 시작할 시점까지도.
그러나 싸움이 시작된 후 지토의 생각은 계속 빗나가고 있었다. 분명 전성기의 파엘리토보다 약할 것이 분명한 진은, 그보다 더 끈질기게 자신에게 들러붙고 있었다.
물론 지토로서는 그런 진의 모습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진이 특별하다는 건, 그만큼 추후 고통의 질서가 도래할 때에 더 확실하게 오류를 잡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벌써 시간이 꽤 지난 것 같군.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어. 이틀은 내가 너무 짧게 잡은 모양이야. 한 사나흘까진 버티겠어? 우리 진 룬칸델.]“사나흘 뒤에도 네가 살아 있다면 네 말이 맞은 걸로 하지.”
진이 그렇게 대답한 찰나.
지토는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덕분에 한 차례 진의 검에 목이 베였으나 어차피 죽지는 않으니 문제는 없었다.
다만 지금 하늘이 열리며 심연이 드러난 사실이 문제였다.
이번에 그 하늘을 연 건, 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늘은 바깥에서부터 열린 것이다.
‘아, 이게 갑자기 뭔?’
진도 한 박자 늦게 심연이 열린 걸 깨달으며 고개를 들었다.
‘저자는……!?’
심연을 가로지르며 한 사람이 아공간으로 하강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진이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이었다.
“가주! 여기에 계신 것이 맞습니까! 가주……!”
엘로나 지플, 그녀가 분노에 찬 다급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