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53)
제 999화
235화. 지토(3)
엘로나는 지옥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큰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다가 지토의 거처로 이어지는 차원문을 발견한 것이다. 그 차원문은 진이 들어올 때와 달리 닫혀 있었으나, 엘로나는 강제로 개방해서 심연을 마주했다.
그 심연 너머에서 어떤 거대한 존재들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할 수 있었다. 엘로나는 당연히 그게 베라딘과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했고, 살리온을 둔 채 홀로 심연을 건너기로 결정했다.
그게 엘로나가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된 연유였다.
진과 지토 모두 잠시 말문이 막힌 채 엘로나를 올려다보았다. 둘 중 특히 충격을 받은 건 지토였다.
‘진 룬칸델이 심연을 마주하고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는데, 이번엔 심연을 찢어발기며 여기까지 다다른 놈이 나타나? 하, 씁!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지토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분명 진을 끌어들일 때 바깥의 차원문은 이미 닫아둔 상태였다.
따라서 마녀의 도움 없이는 누구든 이곳에 오려면 최소 열흘 이상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설마 심연을 가로질러 찾아오는 존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쿠드드득-!
엘로나가 지토의 말을 끊으며 지팡이를 뻗었다. 그러자 지토의 근처로 마력이 퍼지며 그를 옭아맸고, 마치 주먹을 쥐듯 그를 잡아 터뜨렸다.
그물처럼 퍼진 마력이 계속 수축하며 지토를 육편으로 만들고 있었다. 엘로나는 그 정도로 지토가 죽지 않는다는 걸 단번에 알아보았다.
“마왕 지토. 나는 지금 장난을 할 기분이 아닙니다. 가주가 여기 없다면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세요.”
[켁, 크으윽!]“당장 말하지 않으면 당신과 이 공간을 전부 흔적도 없이 파괴할 것입니다.”
[카악! 화끈한 친구네? 그런데 미치셨나. 다짜고짜 남의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지랄이야, 지랄은.]“모른다는 건가요?”
[아, 이러면 알아도 말하기 싫어지지, 아무래도?]이내 엘로나가 마력으로 붙잡아둔 지토의 육신을 집어던지며 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 룬칸델. 그렇다면 당신은 알고 있나요?”
“살벌하군.”
“농담할 기분이 아니라고 했을 텐데요.”
“나도 농담할 생각 없소. 엘로나 지플. 당신을 한 번 만나고 싶기는 했으나 설마 이런 순간일 줄은 몰랐거든. 그리고 베라딘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모르오. 지옥에 내려와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당신에게선 가주의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그 말은 사실인 것 같군요.”
“하지만 뻔한 것 아니겠소? 지옥엔 켈리악 지플이 있지. 아마 베라딘은 그와 엮였을 것이오. 그래서 가주의 지팡이를 이용해 당신을 부른 것일 테고.”
[그렇지만 우리 화끈한 친구는 화끈하게 길을 못 찾아서 여기로 온 거고?]어느새 다시 육신을 형성한 지토가 말했다. 그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것처럼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원래는 그냥 보내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두들겨 맞았으니 나도 기분이 나빠졌어.]엘로나를 보자마자 지토가 부담을 느낀 건 사실이었다. 창성 둘을 한 번에 상대하는 건 지토로서도 겪은 적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엘로나가 자신을 공격하며 ‘접촉’한 순간, 지토는 그녀가 진과 달리 정신적 고통에 면역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엘로나의 표정 없는 얼굴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냥 온 김에 죽자, 엘로나 지플. 어차피 베라딘도 켈리악한테 벌써 뒈졌는데 네가 더 살아서 뭐하겠냐, 그치?]“가주께서…… 켈리악 지플에게 당하셨다고?”
[그럼, 그럼. 걔는 이미 갔어. 너만 따라가면 돼.]“내 눈으로 보기 전엔 믿을 수 없어요.”
[아 믿거나 말거나는 네 자유지. 난 그저 지옥의 지배자로서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만.]“거짓말이오, 엘로나 지플.”
진도 엘로나가 지토와 접촉하자마자 힘겨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고 있었다. 엘로나는 다른 창성들과 달리 수련과 의지로 그 힘을 얻은 게 아니니, 어떤 면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고통스러운 걸 감추려고 그렇게 많이 노력할 필요도 없소. 나나 지토나 둘 다 이미 당신의 약점을 파악했으니. 지토가 갑자기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지.”
시이잇-! 엘로나의 등 뒤로 보랏빛 가시가 형성되었다. 가시는 보호막을 뚫지 못했으나, 엘로나는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녀는 깬 채로 악몽에 빠진 상태와 같았다. 지토의 정신 공격으로 인해 잊고 있던 천 년 전의 괴로운 일들이 쉴 새 없이 머릿속을 울려대고 있었다.
가문의 전쟁 병기로서 죄 없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들이 살던 땅을 파괴하던 날들.
그리고 믿었던 가문에게 배신당해 고문과 정신 조작에 빠진 나날들이 엘로나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무지막지한 마력으로 펼친 보호막 덕에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으나, 계속 반응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보호막은 반드시 깨진다.
진이 도약하며 엘로나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경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소. 지금 나와 함께 지토에게 맞서 싸우시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죠?”
“애초에 인세의 거대 세력들이 여기 온 목적은 지토를 토벌하기 위함이오. 그러나 어쩌다 보니 나 혼자 지토를 상대하게 되었지. 나는 놈을 죽일 기회를 잡기에 힘이 조금 부족하던 상황이었고, 마침 당신이 도착했소.”
“하지만 나는 가주를 구해야.”
“지토를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이지 못하면 인세는 멸망이오. 베라딘도 고통에 빠져 죽게 될 것이며, 당신 혼자서는 저놈으로부터 베라딘을 지킬 수 없소. 마신석? 그 언제 완성될지도 모르는 끔찍한 물건도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군.”
[뭘 그렇게 쑥덕거려! 너희 둘은 원래 적 아니야? 친한 척하네.]두 사람의 사방에서 계속 가시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엘로나는 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가시를 쳐내는 모습을 주목했다.
‘테마르……? 그와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것 같은데, 윽……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엘로나가 눈을 질끈 감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정신 차리고 내 말을 계속 들으시오, 엘로나. 이깟 고통은 당신이 가진 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오.”
“나는…… 가주를 지킬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닙니다. 가문 전체가 함께 지킬 것입니다.”
“지금 지플의 수뇌는 대부분 베라딘을 이용하고자 정신 조작 실험을 했던 놈들이지. 그놈들이 정녕 최악의 순간에도 베라딘을 위해 싸울까? 아마 당신 혼자서 지켜야 할 것이오.”
“……어쨌거나 지금 내게는 가주의 안위가 최우선입니다. 내 능력이라면 다시 심연을 뚫고 가주를 찾으러 갈 수 있어요.”
“지토가 가만히 그 꼴을 보고 있지 않을 것이오. 설령 내버려 둔다 해도, 그건 미래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소. 그리고 베라딘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베라딘이 정말 켈리악과 싸우고 있다면, 내 수호룡이 그를 지켜주고 있을 것이오.”
“무라칸? 그자가 가주를 왜.”
“베라딘이 내 가장 친한 친구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무라칸은 베라딘을 죽이지 않고, 녀석이 죽게 내버려 두지도 않소. 그리고 무라칸은 전성기의 힘을 거의 다 찾았지.”
룬칸델의 소가주가 할 법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엘로나는 진의 이야기로부터 왠지 모를 위안을 받고 있었다. 베라딘은 단 한 번도 진을 친구라 말한 적이 없으나, 엘로나는 그가 줄곧 진을 의식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지토를 토벌하고, 함께 베라딘을 찾으러 갑시다. 나도 그 녀석이 걱정되는군.”
악몽과 환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육체의 고통은 엘로나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으나, 그녀를 괴롭히는 건 과거의 죄책감이었다. 그녀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엘로나는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적의 수장이 한 제안을 받아야 하는지, 어떻게든 베라딘을 구하러 다시 이동을 시작해야 하는지.
“마음이 시키는 선택을 하시오, 엘로나. 다른 건 몰라도, 당신은 분명히 느꼈을 것이오. 나는 결코 베라딘을 해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엘로나가 눈을 떴다.
환각 때문에 여전히 시야는 흐렸다. 눈앞이 캄캄한 와중, 진의 뒷모습이 홀로 뜬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어두울 땐 빛을 쫓아가야지.’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천 년 전 테마르가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그에게 왜 그런 말을 들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그때의 감정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알겠습니다.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어요.”
진이 미소를 지었다.
“훌륭한 선택이오, 엘로나 지플. 그럼, 이제 내 등으로 손을 올리시오.”
“손을?”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오. 그냥 그렇게 하면 내가 당신의 고통을 좀 나눠 받을 수 있을 것 같거든. 당신이 보고 있는 환각이 내게도 조금은 전해지고 있었소. 아마 당신을 괴롭히는 기억이 룬칸델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군.”
엘로나가 전방에 펼친 보호막을 거두며 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그를 보자마자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진은 엘로나를 보호하느라 홀로 거의 모든 가시를 감당하고 있었다. 때문에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 등으로 팔을 뻗자 뜨끈한 피가 손바닥과 손등을 적셨다.
그리고 진의 말대로, 안개가 걷히듯.
엘로나는 시야를 어지럽히는 환각이 옅어지는 걸 느꼈다. 악령이 옮겨가듯이 괴로운 기억들이 진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진 룬칸델은 그만큼 더 힘들어질 텐데……!?’
그러나 진은 여전히 고목처럼 우직하게 서 있었다.
“난 괜찮소.”
회귀자로서 세계에 가진 부채감에 비하면, 고통이나 괴로운 기억은 그저 순간일 뿐이다.
지토를 잡기에 엘로나가 최악의 상성을 가지고 있다면, 진은 그 반대였다.
“이제 조금 제대로 싸울 수 있겠소?”
엘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되죠?”
“그냥 되는대로 놈을 찢어버리시오. 보다시피 질긴 놈이오. 그러다 적절한 순간이 오면 내가 숨통을 끊을 것이오. 할 수 있겠소?”
엘로나가 지팡이로 가볍게 바닥을 두드렸다.
그러자 아공간 전체에 마력이 몰려들며 거대한 폭풍을 형성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사방에 형성되던 지토의 가시는 그 마력 폭풍에 휩쓸려 나오자마자 부스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우울하게도 그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죠.”
지토는 엘로나의 마력이 자신을 죄는 걸 보며 인상을 구겼다.
[아, 너무 싫다 너희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