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60)
제 999화
236화. 멸망의 불, 잔인한 과거(4)
엘로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사람으로부터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세상에 나와 예상치 못한 불쾌감에 치를 떨 뿐이었다. 생명으로서 타인과 소통하는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이제 그녀는 자신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성지가 있던 왕국은 사라졌으나 그 폐허 아래 성지는 여전히 녹색으로 빛났다. 엘로나가 빠져나온 나무도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우으으.”
엘로나는 다시 나무가 되고자 매일 나무의 갈라진 틈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한 번 탄생한 생명이 어미에게로 회귀할 수 없듯, 엘로나는 결코 나무와 합쳐질 수 없었다.
그래도 엘로나는 매일 나무 속에서 잠을 잤다. 인간과 세상의 고약한 냄새들을 그나마 가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완전하고 안전하며 무욕한 상태.
나무이던 시절의 엘로나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때때로 나무의 향기로도 감춰지지 않는 끔찍한 냄새와 기운이 성지로 스며들어왔고, 그때마다 엘로나는 나무를 빠져나가 한참을 포효했다.
결국 엘로나는 자신이 다시 안식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무 속에 가만히 숨죽이고 있어도 자꾸 불결하고 불쾌한 것들이 찾아드니 말이다.
답을 얻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밖으로 나가 이곳을 제외한 모든 땅과 생명을 없앤다.
그게 엘로나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녀는 레지날드가 도망친 날 자신이 부순 왕국을 떠올렸다. 생존자가 단 한 명도 남지 않은 엄청난 학살과 파괴가 있었음에도, 정작 엘로나는 그들의 한 마디 비명조차 듣지 못했다.
그저 레지날드를 없애기 위해 선 자리에서 쏘아댄 마력만으로 지상의 왕국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엘로나에겐 앉은 자리에서도 세상의 크기를 헤아릴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
자신이 왕국을 소멸시키기까지는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인세 전역을 파괴하는 일은 대략 열흘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레지날드처럼 극렬하게 저항하거나 도망치려는 인간들이 있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변수들을 계산해도 한 달은 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일은 마치 태어나기 전부터 쭉 원해온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졌다. 엘로나는 자신이 태양신의 파괴욕으로 빚어진 존재라는 걸 알지 못했으나, 본능적으로 파괴를 원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목적을 완수할 때까지는 한동안 나무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유일한 안식처를 그냥 둔 채로 바깥을 돌아다니는 건 무척 위험한 일처럼 느껴졌다.
원한을 이해하진 못해도, 어쨌거나 사람이 이곳을 찾아온 걸 직접 겪은 까닭이었다. 자신이 없는 사이 그 유해한 생명들이 나무에 무슨 짓을 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에 잠들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며칠 뒤, 엘로나는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다가오는 걸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내 동생…… 비첼린을 죽인 악마가 여기에 있다.”
레지날드였다.
그는 한 맺힌 붉은 눈동자를 한 채 군대를 이끌고 성지를 찾았다. 고용된 용병들과 동맹국들의 정예 기사단, 지플 마법대의 거친 걸음이 성지 곳곳을 짓밟고 있었다.
오백 명쯤 되는 인원이었다.
하지만 엘로나가 위협을 느낄 만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그중 가장 강한 레지날드조차 자신의 몸에 작은 생채기 하나도 낼 수 없을 정도니, 그보다 약한 이들은 차라리 공기가 더 위험할 정도였다. 엘로나가 맹수라면 그들 대다수는 날파리조차 되지 못했다.
인간들이 풍기는 불쾌한 온기가 성지를 들끓게 만들고 있었다.
엘로나는 그들이 나무에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나무를 둘러싼 인간들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고, 레지날드는 최후방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 이 나무가 맞는 것이오?”
“여긴 이상한 공간이군…… 과연 레지날드 경의 말씀대로 허기나 피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
스걱-!
한 무리의 기사와 용병들이 나무 바로 앞에 선 순간, 엘로나는 가볍게 손을 휘저어 그들의 목숨을 거뒀다.
그리고 그들의 더러운 피가 성지에 닿기 전에 화염을 일으켜 증발시키기도 했다. 검기처럼 뻗어진 마력과 화염이 순식간에 근처에 모인 사람들을 죽였다.
그 순간에 성지를 찾은 인간들은 대부분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으, 으아악!”
“이게 무슨……!”
혼이 나간 채 뒤돌아 내달리는 이들에게 레지날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건조한 목소리로 지플의 마법사들에게 보호막으로 울타리를 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레지날드 경! 이게 무슨 짓이오, 퇴로를 막다니!”
레지날드는 대답하지 않고 엘로나가 초월적인 힘을 휘두르는 모습에만 시선을 집중했다.
애초에 레지날드를 쫓아온 용병과 동맹국의 전력은 대부분 중하위권 무력을 지닌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학살을 시작하는군. 힘의 크기는 창성 이상이다. 어쩌면 쉬누 님조차 넘어설 수도 있겠어. 그러나 역시, 전투 방식은 한없이 투박하고 깊이가 없군. 마치 짐승처럼.”
레지날드가 기사와 용병들을 데려온 건 엘로나를 파악할 소모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전투를 하는지, 혹 약점이 존재하는지, 힘을 사용한 후에는 회복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용병과 중하급 기사들의 하찮은 목숨으로 그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면, 레지날드는 몇 번이고 그들을 희생시킬 생각이었다.
“나무…… 저 나무에 집착하는 느낌이 있군. 빌어먹을 괴물 년, 설마 나무를 자신의 어머니로 인식하는 것인가? 게다가 일부러 땅에 피가 튀지 않게 조심하고 있어.”
“확실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저 괴물은 나무와 이 땅이 훼손되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것 같습니다.”
“괜찮은 수확이다. 이만 돌아가지. 내일은 천 명을 투입해보겠다.”
“알겠습니다, 가주.”
엘로나는 도주하는 레지날드에게도 마력을 퍼부었으나, 그는 이미 첫 만남 당시 엘로나의 공격이 단조롭다는 걸 완벽하게 파악한 상태였다. 그녀가 쏜 마력 광선은 떠나는 레지날드 일행을 맞추지 못했다.
그때부터 레지날드는 매일같이 군대를 이끌고 성지를 찾았다.
적은 날엔 백, 많은 날엔 천에 육박하는 사람들을 미끼로 사용한 것이다. 동맹국과 용병들은 보낸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걸 알고도 레지날드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에게 거역한다는 건 곧 세상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뜻이니까.
엘로나는 그로 인해 점점 더 고민에 빠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꼬이는 벌레들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엘로나는 묘하게, 그들이 조금씩 나무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고 있었다. 레지날드가 그녀가 나무를 소중히 여기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약점을 파악한 레지날드는 집요하게 엘로나의 신경을 긁었다.
마침내 레지날드가 엘로나와 끝장을 보고자 결심한 날은, 지플 최정예 마법대 일부와 당대 최고로 알려진 기사를 데리고 성지를 찾은 다음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소모품으로 사용한 이들과 달리 제대로 엘로나를 공략할 인원이었다.
마법대가 포격을 퍼붓고, 엘로나가 막는 사이 기사가 나무로 접근해서 공격한다는, 간단한 전술이었다.
콰앙, 쿠드드드……!
마법대의 포격이 쉴 새 없이 성지로 쏟아질 때, 엘로나는 너무나 쉽게 그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혼란을 틈타 기사가 나무로 접근하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고, 기사는 나무의 한가운데에 길고 깊은 검흔을 남길 수 있었다.
“아아아아!”
그때, 엘로나는 처음으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나무로 달려들었다. 이성을 잃은 채 나무를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기사는 그 순간 엘로나로부터 발산된 기운에 온몸이 찢겨 죽었으나, 레지날드로서는 미래의 승리를 확신한 순간이었다.
심지어 엘로나는 그날 이후 한동안 시름시름 앓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레지날드는 매일 원정대를 이끌고 그녀의 동향을 관찰했는데, 평소보다 거리를 좁혀도 공격조차 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면 손을 휘저어 마력을 뿌려대긴 했으나, 이전처럼 군대를 집요하게 학살하지 않았다. 마치 의지가 꺾인 사람처럼.
“백야와 탑주들, 대기 중인 기사들을 전원 소집해라. 내일 우린 저 괴물을 찢어서 비첼린의 원한을 갚는다.”
그렇게 인세 최대의 병력이 성지로 집결했다.
기사들은 엘로나 토벌을 성공함으로써 진정한 당대 최고가 되고자 혈안이 되었고, 레지날드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냥을 시작하라.”
엘로나가 얼마나 강하든, 역린이 그토록 명확한 이상 전투는 성립할 수가 없었다. 레지날드에게 엘로나는 숭배의 대상에서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사냥이었다. 기사들은 첫 번째로 나무를 벤 기사보다 훨씬 수월하게 나무로 접근할 수 있었고, 마법사들은 과감하게 마법을 퍼부었다.
엘로나는 분노에 차 마력을 폭발시켰고, 그 단순한 공격에도 수많은 마법사들이 휩쓸려 죽기는 했다.
그러나 이윽고 기사들의 검이 나무를 유린하기 시작한 순간, 그녀는 모래 더미처럼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사들은 앞선 기사의 죽음을 교훈 삼아 나무에 검을 댄 채 그녀의 접근을 가로막았다. 나무를 인질처럼 사용한 것이다.
그때, 토벌대는 처음으로 엘로나가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아, 안 돼…… 그만.”
그건 엘로나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소모품으로 사용된 수많은 토벌대원들을 죽이면서.
엘로나는 저도 모르게 그들의 말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들처럼 무릎을 꿇고 손을 비비기도 했다.
“하, 크하하하……!”
그 모습에 레지날드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며 엘로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가주, 위험합니다!”
“가주!”
측근들의 만류에도 레지날드는 맨몸으로 엘로나의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엘로나는 눈물을 흘리며 나무를 살려달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 동생을 죽이고, 그토록 많은 생명을 벌레 잡듯 죽였으면서, 네 소중한 것이 다치는 건 못 보겠다는 말이냐?”
“그만, 그만……!”
레지날드는 완전히 굴복한 엘로나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본래는 널 바로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복수가 있을 것 같구나. 그래, 내 생각이 짧았어. 널 이토록 쉽게 죽일 수는 없지…….”
레지날드는 웃음기를 지우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이 괴물은 지플의 자산이다. 나무는 뿌리째 뽑고, 이 괴물과 함께 1마탑의 실험실로 이동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