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66)
제 999화
239화. 켈리악과 옥타비아
지플, 드락카.
켈리악은 실로 오랜만에 되찾은 자신의 영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원이 온통 시체와 피, 화염으로 물들어 있었다.
시체는 모두 적명족이었다. 마법사들은 그들을 모두 한순간에 태워 죽인 켈리악과 엘로나의 무위를 떠올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엘로나를 확보하고도 고작 이런 놈들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니…… 베라딘, 우리가 그 녀석에게 건 기대를 생각하면 통탄을 할 수밖에 없군.”
켈리악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옥타비아와 로닐, 사트린이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옥타비아의 얼굴엔 아직 켈리악이 돌아온 것에 대한 혼란이 묻어났지만, 사트린과 로닐은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켈리악이 줄곧 지플을 다스려 온 듯 자연스럽게 그를 보좌하고 있었다.
“로닐.”
“말씀하십시오, 가주.”
“네가 기록한 베라딘의 행보는 모두 읽어 보았다. 그 부분에도 실망스러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더군.”
“제가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탓입니다.”
“너와 사트린의 역할은 애초에 그것이 아니니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베라딘이 너희를 똑바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지.”
로닐과 사트린.
켈리악은 그들을 철저히 ‘가문’에 종속되는 도구로 길러냈다. 지플의 가주가 누구든, 로닐과 사트린은 언제나 충성스러운 비밀 병기로 존재하는 역할이었다.
그렇기에 켈리악이 다시 돌아온 지금, 그들은 반역자라 부르던 켈리악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주가 누구인가는 중요치 않았다. 난데없이 오래전 보육원에 버린 방계 가문의 사생아가 가주가 되었다 할지라도 두 사람은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 사실은 오로지 켈리악 본인만이 알고 있었다. 그는 본래 베라딘의 몸을 취해 영생을 이어가려 했고, 같은 방식으로 이후 자식들을 이용해 영원히 지플의 가주로 군림하려 했었다.
그렇기에 로닐과 사트린 같은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가문과 가주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칠 뿐인, 생각 없는 괴물들이.
그건 과거 이야기의 탑 폭주 당시 두 사람이 옥타비아와 다른 태도를 취한 이유이기도 했다.
당시 옥타비아는 가문이 심대한 타격을 받더라도 베라딘을 구해야 된다 소리쳤고, 로닐과 사트린은 베라딘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가주는 바꾸면 그만이지만, 가문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쯤 베라딘은 가주만이 알 수 있는 모든 기밀을 룬칸델에 넘겼을 것이다. 그러니 우선 그중 치명적인 정보들을 먼저 무의미하게 만들어야 할 테지.”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성지를 옮길 것이다. 오늘부터 너희 둘은 2급 이하 관리자들을 모두 제거하라. 또한 1급 이상 관리자들은 전원 개별로 격리하도록.”
“알겠습니다.”
“현재 성지에 남아 있는 생체 골렘들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살처분하기엔 아쉬운 병기들이지. 엘로나에게 여유가 생기는 대로 모두 기억을 조작해 재활용할 것이니, 그때까지는 기능을 잃지 않을 만큼만 양분을 제공하라.”
“실행하겠습니다.”
옥타비아는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을 제대로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익숙하게 켈리악의 명령을 받드는 로닐과 사트린의 태도도, 돌아온 켈리악의 과감한 행보도 그녀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벌써 한 달째 옥타비아는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켈리악도 그런 옥타비아에게 아직 한 번도 별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옥타비아.”
“예.”
“나를 가주라 부르는 게 아직 어려운 모양이군. 내가 돌아온 게 기쁘지 않은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다만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군요. 가주께선 베라딘, 그 아이가 늘 후계로서 자리 잡기를 고대하셨잖습니까?”
“그건 내 뒤통수를 치기 전까지의 이야기지.”
“물론 베라딘이 가주를 배신했던 건 사실입니다. 다만 그렇기에 저로서는 더욱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보아하니 로닐과 사트린은 애초에 가주가 철저히 훈련을 시킨 모양인데, 저는 아니지 않습니까?”
켈리악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왜 저를 처벌하지 않으시는 건지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상황이 어떠했든, 저는 가주를 밀어낸 베라딘에게 줄곧 충성해 왔습니다.”
“우스운 일이지…… 어떤 면에서, 베라딘은 네게 단지 실험체였다. 우리 모두의 귀중한 실험체였지. 실험자가 실험체에게 충성을 맹세한 꼴이다.”
“처벌하지 않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아는 가주라면, 당연히 저를 숙청하거나…… 지금 엘로나 경과 마령대장들에게 한 것처럼, 제 정신을 조작했어야 합니다.”
“너를 너무 과대평가하는구나, 옥타비아.”
옥타비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내가 돌아온 후, 너는 한 번도 내게 제대로 반기를 들지 않았다. 베라딘을 따르던 일부 우매하고 나약한 녀석들이 목숨을 바치며 내게 덤빌 때도, 너는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채 방관하였다. 그것이 내가 너를 살려 두는 이유다.”
“……예?”
“죽일 가치가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 네가 아직은 가문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지. 혹은 공로를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너는 오랜 시간 나와 함께 가문을 일궈 왔으니 말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체 제가 무엇을 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옥타비아. 너는 몇 년 전까지,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2인자였다. 당시 부가주는 안드레이였으나, 알 만한 사람들은 실질적인 2인자가 너라고 인식했지. 그러나 왜 그러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내가 왜 굳이 안드레이를 내세우고, 너를 감췄을지를 말이다.”
“그건…… 안드레이가 저보다 더 쓰고 버리기 좋은 패이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하다. 그러나 맹점이 하나 있지. 그렇다고 네가 안드레이보다 내게 더 가치가 있던 건 아니거든. 너는 오히려 안드레이처럼 할 수 없기 때문에 감춰진 2인자였던 것이다.”
켈리악이 뒤돌아 옥타비아와 눈을 맞췄다.
“안드레이는 천박하고 재능도 별 볼 일 없는 녀석이었지. 하지만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공모자이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더러운 수를 쓰고, 추잡한 실험을 이어가도 안드레이에겐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어. 그는 언제나 나를 이해했으니까.”
“아…….”
“반면에 너는 어땠지? 산드라와 베라딘을 비롯해 우리가 온갖 실험을 진행할 때, 너는 그 모든 악행에 참여했었다. 그러나 언제나 어딘가 한구석이 찝찝한 듯한 얼굴을 한 채 애매한 태도를 보였어. 선을 넘으려는 노력도, 넘지 않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모두 가문을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회색지대에 서 있었다.”
옥타비아로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켈리악은 틀린 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베라딘이 나를 배신했을 때는 어땠더냐? 넌 몇 차례 베라딘의 횡행을 말리다가 결국 그 아이의 명을 받들기 시작했다. 내가 지옥에서 돌아온 지금도 마찬가지야. 넌 여전히 회색지대에 망연하게 서 있을 뿐이다. 그게, 네가 안드레이처럼 부가주가 되지 못한 이유다.”
옥타비아의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껏 지플의 수뇌로서 누구보다 더 많은 실험과 악행에 가담했으나, 한 번도 켈리악에게 든든한 공범으로 취급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는 안드레이를 아득히 뛰어넘는 마법적 재능이 있었고, 지플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목숨을 내던질 준비는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무력과 충심은 훌륭한데, 결단력이 부족하다고 해야겠군.”
“그럼 가주가 저를 살려 둔 건…… 지금부터라도 제가 선을 넘길 바라기 때문이겠군요. 가주처럼, 죽은 안드레이처럼…….”
“글쎄, 너는 태생적으로 그런 인간이 될 수 없어. 그러니 무리하지는 마라. 다만 나는 가문에 한 명쯤 너 같은 인재도 필요하다는 입장일 뿐이다.”
끓어오르는 자괴감에 구토가 치밀었다. 단단하고 냉혹하다 믿어 온 내면이 썩은 죽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켈리악의 말대로, 옥타비아는 줄곧 ‘실험’에 대해 내심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 추악한 일들은 모두 지플을 위한 것이라고 덮어 왔을 뿐이다. 오랜 세월 외면한 진실이, 그 민낯이 옥타비아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너는 회색지대에서, 그간 해 오던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결단과 결정은 모두 내가 할 것이니…… 베라딘처럼 나를 배신하지만 않는다면, 너는 언제까지고 지플의 망령대장으로 살아갈 수 있다.”
옥타비아는 대답을 고를 수 없었다.
어쩌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 찰나, 켈리악은 그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았다.
“아, 혹시 삶을 포기할 생각이라면 말리지 않겠다. 성능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생체 골렘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면 그만이니까.”
켈리악이 옥타비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동생에게 또 그런 잔인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머리가 복잡할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도록. 원한다면 로닐, 사트린과 더불어 성지 관련자들을 정리하는 일에 참여해도 좋다. 아니면 엘로나를 도와도 되겠군.”
“……가주께서 돌아와서 기쁘다는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이 나이 먹도록 몰랐던 제 민낯을 직시하려니, 쉽지가 않군요.”
“나도 흔히 말년이라 불릴 나이에 저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올라와야 될 줄은 몰랐다, 동생아. 자괴감이 드는 일이지.”
“성지 정리는 로닐과 사트린이 제게 할 일을 주지 않을 것 같군요. 차라리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엘로나 경을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하긴. 적명족 중엔 너와 결판을 내야 하는 자들이 있지. 지금쯤 엘로나가 놈들의 본거지를 거의 찾았을 테니, 기대해도 괜찮을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는 옥타비아.
그녀의 뒷모습이 문 너머로 사라지자 라갈이 켈리악을 찾아왔다.
“켈리악 친구, 저 친구는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이는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핏줄이다. 심지어 옥타비아는 어린 시절의 나와 닮았지…… 내게도 옥타비아 같던 때가 있었으니. 결국은 나를 따르게 될 것이다.”
“뭐 친구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난 좀 불안해. 저런 애들은 꼭 사고를 친다고. 진마계에서 그런 애들 여럿 봤거든. 파엘리토도 그랬었고.”
“자네는 일단 엘로나에게 독을 주입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설령 옥타비아가 내 예상을 벗어나더라도 그걸 제어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