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06
두 번째 공격은 필요하지 않았다.
율리우스가 검을 휘두른 순간, 인질을 놓친 마수들은 일제히 조각나 버렸다.
타라는 그 광경에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뭐가 이렇게 강해?’
율리우스가 저 상처로도 싸울 수 있다는 게 놀랍긴 했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슬란과 알렌이 있던 시절에도 그는 3위를 유지하던 인물이 아닌가.
중소 기사단의 단장급이라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아는 달랐다.
‘고작 반년 만에 저렇게 강해졌다고?’
초승달 군도에서 만난 노아는 분명 강했지만 그뿐이었다.
허나 지금의 노아는 율리우스 못지않은 기운을 풍겨대고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겠어. 속도는 그렇다 쳐도 내 장기인 은신술마저 나를 뛰어넘었다고?’
유니아와의 공부로 늘어난 노아의 은신술 실력은 이미 전문 암부기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
이건 단순히 성장이 빠른 정도를 넘어서 뭘 해도 잘하는 수준이었다.
“오랜만이다, 타라.”
수백의 무형검이 형성되어 사방에서 그녀를 노렸다.
눈의 결정체처럼 보이는 그 무형검들은 이번 깨달음으로 한층 강화된 노아의 검기였다.
특성부여.
4단계 검기인 속성변환에 추가적인 특성을 부여하는 4.5단계 검기.
펠릭스가 사용했던 침잠과 마찬가지로 빙정강검은 노아의 모든 검기를 한 단계 강화시켰다.
‘얼음의 속성변환을 쓰거나, 지금처럼 눈밭에서 무형검을 불러낼 때만 적용이 가능하지만 조건을 감수할 만큼 강력하다.’
빙정강검이 적용된 검기는 흑아로 긁어도 생채기에 그치는 강도를 자랑했다.
이러한 검기로 상대를 가둬놓는다면 어지간한 힘으로는 탈출할 수 없었다.
타라 또한 어렵지 않게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갇히면 도망치기 힘들겠는걸.’
그녀는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말했다.
“그래, 오랜만이네 꼬마야. 그런데 고작 실패작을 쓰러뜨린 정도로 너무 기세등등한 거 아니니?”
“실패작?”
“여기 이 집거미들은 모두 마수화 실험의 실패작들이거든. 범죄자들은 없어져도 화낼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야.”
“……!”
마을을 이루고 있던 집거미들은 사실 마을에 살던 범죄자들 본인이었다.
조직에서는 건드려도 부담 없는 범죄자들을 데려다 마수화 실험을 했던 것.
“고아를 사거나 일반인을 납치하는 건 꼬리가 잡힐 위험이 있는 데 반해 이쪽은 아무런 부담이 없거든. 하지만 쓰레기들이라 그런지 전부 실패했지 뭐야?”
조직의 마수화 시술은 성패를 예측할 수 없었다.
실패한다면 지금처럼 이성을 잃고 완전히 마수가 될 뿐.
성공작마저도 쓸모가 없으면 버려지는 와중에 실패작들을 아껴둘 이유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신호만 연결해 두고 있었는데 네가 걸릴 줄이야. 사람이었던 것들을 죽인 소감은 어때?”
-노아.
타라의 말에 율리우스는 노아의 상태를 걱정했다.
사람을 죽일 기세로 싸우는 것과 사람을 죽인 것의 차이는 컸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 충분한 훈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실전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들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것은 실력과 무관한 문제였다.
허나 노아는 타라의 도발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각오는 이미 옛날 옛적에 끝내뒀다. 적어도 너 같은 년한테 들을 소리는 아냐. 죽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조직에 복수 정도는 해주지.”
“흐음. 진심이구나? 아쉽네.”
인질극이 실패한 이상 타라 혼자서 이 둘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위험했다.
그녀가 받은 이능은 직접적인 전투에 적합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대로 저 인간들이 추워 죽을 때까지 시간을 끌어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목적은 이미 달성한 것 같으니 오늘의 만남은 이쯤 하도록 할까?”
“거기 서!”
노아가 휘두른 검이 타라를 갈랐으나, 타라는 재가 되어 흩어질 뿐이었다.
“이건 나이트레이에서의……!”
“피차 상대를 죽이고 싶은 건 마찬가지인 것 같지만, 지금이 때는 아닌 모양이네.”
파바박!
무형검이 쏟아졌으나 검기에 닿은 부위는 더 빠르게 재가 되어 흩어질 뿐이었다.
“생텀 킵에서 보자.”
그 말을 남기는 것과 동시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얼굴마저 재가 되어 날아갔다.
타라는 그렇게 사라졌다.
“저 이능을 이용한 도주는 확실히 대처법을 생각해 둬야겠군. 매번 이런 식으로 놓쳐서야 끝이 없겠어.”
“……분하지만 일단 치료부터 하시죠. 상처가 큽니다.”
“다른 사람들은?”
승객들은 모두 상처 없이 멀쩡했다. 다만 집이 사라져 추위에 떨고 있을 뿐이었다.
남겨진 그들은 추위를 피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 * *
집들은 사라졌지만 다행스럽게도 내부의 물건들은 진짜였다.
아무리 마수라도 모든 물체를 완벽히 구현할 수는 없었던 듯, 건물의 외벽만이 마수의 몸뚱이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수 통조림을 먹은 건 아니라는 건가. 불행 중 다행이군.”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챙겨 기차로 돌아왔다.
벽과 천장이 있는 건 객실도 마찬가지였다.
장작을 얻었으니 어떻게든 추위를 버틸 순 있었다.
그걸로도 부족한 사람들은 서로를 껴안고 체온을 나누었다.
앞선 계층 간의 갈등이 무색하게도 함께 위기를 넘긴 사람들은 그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그 와중에도 투덜거리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런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그들 또한 이 상황에서 불평이나 하고 있는 건 부끄럽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
‘사람은 더 나아질 수 있다.’
사람에 대한 실망은 사람에 대한 희망으로 아물었다.
* * *
구조대가 도착한 것은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지난 뒤였다.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덕에 승객들은 부상자 없이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인걸요.”
도착지였던 라플란드의 시장은 시민들을 구해낸 노아와 율리우스에게 감사를 표했다.
“다친 사람이 없는 게 기적입니다. 그래도 마수에게 한 번씩 잡아먹힌 만큼 건강검진은 전원 실시할 예정입니다만 기사님들은……?”
“저희는 일정이 늦어진 만큼 바로 생텀 킵으로 가야 합니다.”
“원래 탑승하실 예정이었던 배는 이미 출발했습니다만. 제가 배편을 한번 알아보죠.”
시장의 배려로 두 사람은 지체 없이 생텀 킵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도착한 빙하도시 생텀 킵.
“왔느냐?”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초승달 군도의 대무녀 코코아였다.
“대무녀님을 뵙습니다.”
“오냐. 네가 율리우스구나? 네 아비를 쏙 빼닮아서 몰라보기가 더 힘들군.”
코코아는 율리우스의 아버지인 올베르트보다도 한 세대 위의 기사였다.
아무리 그녀가 은퇴 이후 초승달 군도에만 박혀 있었다고 해도, 마스터 나이트끼리는 만나본 적이 있으리라.
“테오도르는 지금 나가 있다. 오는 도중에 사고가 있었다던데, 일단 서로 정보 교환부터 해두지.”
두 사람은 코코아에게 조직이 범죄자들의 마을에서 벌인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런 식으로도 조직의 인원을 충당하고 있었나. 이거 예상보다 놈들의 머릿수가 많을지도 모르겠구나.”
코코아와 테오도르는 거의 반년째 이곳에서 조직의 뒤를 쫓고 있는 상태였다.
그동안 이쪽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얼마 전 재해급 마수를 토벌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맞다. 여기까지 와서도 마수를 잡고 있게 될 줄은 몰랐다만 북해검왕이 괜찮은 대가를 제시하기도 했고, 우리도 계속 머무를 핑계가 필요했거든.”
원래 임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동맹국을 돕는 것도 일이었다.
몇 달에 걸친 토벌 준비 기간 동안 집행관들은 추가적인 조사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결국 임무의 연장이었다는 뜻.
“현재 우리는 하얀 마녀가 조직의 일원이거나, 최소한 협력자일 거라고 보고 있다.”
“하얀 마녀요?”
“그래. 생텀 킵의 두 마스터 나이트 중 한 명이 말이지.”
생텀 킵은 여러 빙하도시의 집합체로, 의회가 나라를 이끄는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에 마스터 나이트는 둘뿐.
따라서 두 마스터 나이트를 따라 파벌이 갈려 있었다.
“이 땅을 지배하는 것은 북해검왕과 하얀 마녀. 그중 하나인 하얀 마녀를 붙잡기 위해 우리는 북해검왕에게 협력하고 있었다.”
북해검왕은 또한 아르니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때문에 여차하면 아르니를 통해 북해검왕을 끌어들일 생각으로 자신을 부른 게 아닌가 생각했던 노아지만, 코코아의 말은 조금 달랐다.
“협력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까?”
“그래.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이니라. 아직은 대외적으로 비밀인 사항이니 어디 가서 흘리지 말도록.”
코코아는 다시 한번 주위에 숨어 있는 귀는 없는지 확인하고선 말을 이어갔다.
“북해검왕은 현재 토벌 중의 부상으로 위중한 상태다. 우리는 그것이 하얀 마녀의 공작이라고 생각한다.”
“……!”
“허나 우리는 어디까지나 외부인.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생텀 킵의 지배자 중 하나인 하얀 마녀를 멋대로 체포할 순 없지.”
이능을 이용한 범죄는 입증하기가 어려웠다.
하얀 마녀는 북해검왕이 마수 토벌 과정에서 다친 것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북해검왕 본인이 의식불명인 현 상황에서는 그 말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 불가능.
증거가 필요했다.
“우리가 너희를 부른 건 바로 증거 수집을 부탁하기 위해서이니라.”
* * *
코코아에게 생텀 킵의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들은 노아는 곧바로 북해검왕의 공관을 찾았다.
북해검왕이 쓰러진 지금,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외동딸인 아르니였다.
아르니는 갑작스럽게 집무실에 들어선 노아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멋쩍게 웃었다.
“에헤헤, 분명히 다음에 만나면 생텀 킵을 소개해 드리겠다고 했는데 죄송하게 됐어요.”
“괜찮은 거냐?”
물론 그럴 리 없었다.
가족과도 같았던 렉시가 조직의 손에 제거되었고, 이제는 아버지마저 중태에 빠진 상황이었다.
기사도 아닌 그녀가 아버지 북해검왕의 파벌에 속한 수많은 기사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아르니는 웃었다.
그녀에게는 아직 지켜야 할 것이 많았으니까.
“네. 괜찮아요. 많이들 도와주시는 걸요.”
북해검왕파의 구심점인 그녀가 무너지면 생텀 킵은 하얀 마녀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증거를 찾아 하얀 마녀를 체포하기 전까지 그녀는 힘들어도 힘들어하면 안 됐다.
그녀가 힘들면 그녀를 따르는 수많은 이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으므로.
소녀는 타의에 의해 어른이 되었다.
“가장 먼저 저를 보러 와주신 건 고맙지만 그래도 인사는 나누도록 하세요.”
아르니의 권유에 노아는 그제야 집무실에 한 명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실체를 느끼기 힘든 실력자.
남자는 노아와 같은 새까만 머리를 하고 있었다.
“카인 씨는 아버님이 쓰러지신 뒤부터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계속해서 저를 지켜주고 계신답니다.”
조직은 어떻게든 이 상황에 쐐기를 박고 싶을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병상의 북해검왕과, 아르니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만 했다.
코코아가 혼자 실습생들을 맞이한 것도 테오도르가 병상을 지키고 있기 때문.
다른 한쪽인 아르니에게는 이 남자가 붙어 있었다.
“아마 이야기는 듣고 왔겠지? 반갑다, 아들아.”
“……아버지.”
부자의 상봉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