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58
황가의 무덤은 처음 건설에 동원된 인부들을 제외하면 오로지 황족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장례 이후 관을 옮기는 것조차 옅게나마 황실의 피를 이은 이들이 맡았다.
그 정도의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한때 엔야의 은신처로 사용되었던 것.
“결국 황가의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선 내가 마안을 각성해야 한다는 뜻이네.”
노아가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알았어. 약속할게. 다만 그런 거라면 너도 나를 도와줘.”
“제가 말인가요?”
“너라면 기승전결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 아냐?”
“저는 검집이지 기사가 아니에요. 검술 보는 눈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걸 이해하고 남에게 가르칠 정도는 아니라고요.”
노아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족집게 과외를 해달라는 게 아냐. 너는 그냥 어머니의 기억을 보여주기만 하면 돼.”
월식은 기승전결을 만드는 과정부터 엔야가 그걸 사용하던 것까지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흔적만 가지고 공부하는 것보다는 그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건 명백했다.
“가능하신가요?”
“검술을 가르쳐 주진 못해도 비교는 할 수 있지? 지켜보라고, 내가 어떻게 변하는지.”
* * *
그날부터 노아는 시원석 내부에서 명상으로 오러를 모으며, 동시에 월식의 심상세계에 들어가 수련을 진행했다.
‘예상대로 그간 타인이나 흔적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던 것보다 능률이 좋다.’
어디가 문제인지 바로바로 알 수 있어서 진도가 훨씬 빨라졌다.
또한 심상세계는 어디까지나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을 실제로 해볼 수 있었다.
“크으음, 아버지는 저때도 더럽게 강했구만?”
노아는 카인의 반격에 바닥을 굴렀다.
월식이 심상세계 속에 구현해 낸 카인은 대전쟁 당시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팔심검이 아닌, 반격기인 천의무봉 하나뿐인 시점의 실력.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카인은 이미 마스터 나이트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였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옷깃조차 못 스치다니. 역시 같은 심검이 아니면 답이 없나?”
다른 마스터 나이트들은 순식간에 심검으로 끝장을 내기 때문에 연습조차 안 됐다.
그나마 반격기인 천의무봉은 노아도 어떻게든 들이대면서 실전 연습이 가능했다.
덕분에 노아는 마스터 나이트를 붙잡아놓고 연습을 한다는,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조금은 쉬면서 하세요.”
“그럴까? 지금은 무작정 들이댈 게 아니라 고민이 좀 필요해 보이기도 하고.”
노아의 말에 월식은 손을 휘저어 심상세계의 환경을 변화시켰다.
전장이 사라지고 황가의 무덤에 위치한 암자가 나타났다.
노아는 월식이 만들어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단 계속하다 보니 천의무봉에 반격당하는 게 아니라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게는 됐지만 여전히 공격이 불가능하네.”
“마스터 나이트를 상대로 그렇게 버티기라도 할 수 있는 사람도 극소수지만요.”
“아냐, 내 생각이 맞다면 나는 이것보다 잘 싸울 수 있어.”
처음에는 단순히 기승전결의 진전을 확인하기 위해 상대를 만들어달라 부탁했던 노아였다.
그러나 카인과 싸우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점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기승전결은 내 생각보다 더 강한 게 분명해. 어쩌면 심검 없이도 마스터 나이트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노아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개선점을 찾을 수가 없다.’
뇌명신도 그렇고 흑천도 그렇고 남의 기술을 가져다 자신에게 맡게 변경해 쓴 적이 많은 노아였다.
그런데 카인이나 엔야의 기승전결에는 개선점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그랬다.
“어릴 때부터 검술을 익히면서 내 몸은 계속 자랐는데 개선할 부분이 안 보여.”
몸이 변하는 와중에도 검술은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분명 변화에 따라 최적화할 부분들이 생겨야 하는데, 기승전결에는 그런 게 없었다.
“이건 처음부터 어머니가 나의 성장까지 예상해서 검술을 설계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엔야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겠죠.”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어머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당연한 소리예요.”
노아가 엔야를 칭찬하자 월식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 엔야의 모습으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노아는 새삼 월식이 새롭게 보였다.
월식은, 말하자면 엔야의 딸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따지고 보면 네가 내 누나인가?”
“저는 인간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가족이나 마찬가지잖아.”
“…….”
순간, 월식의 감정이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이곳은 심상세계.
감정의 변화가 물리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곳이었다.
‘으읏.’
공간 자체가 파도처럼 출렁이는 기묘한 느낌도 잠시.
노아는 엔야가 죽은 후 홀로 용궁에서 20년에 달하는 고독을 곱씹었던 월식의 외로움을 자신의 일처럼 느낄 수 있었다.
절망에 가까운 고독.
하지만 그 끝에는 노아 자신이 있었다.
“엿보지 마세요.”
콩!
월식이 발을 구르자 출렁임이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방금까지 자신의 일처럼 느껴지던 감정도 사라졌지만, 그러한 감정이 있었다는 기억만은 남았다.
월식은 황급히 노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고작 말 한마디에 뭘 이렇게 동요하고 있는 건가요, 저는!’
자신의 얼굴은 아마 새빨개져 있으리라.
엔야의 첫 번째 자식이라 자부하는 자신이 노아의 앞에 그런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한편 노아는 그런 월식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로 따지면 월식이 누나일 테지만 유니아와 겹쳐 보여서 그런지 동생처럼 느껴졌다.
“우우우…….”
그러는 사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암월이 노아의 다리 위에 앉아 몸통을 껴안고 늘어졌다.
“아이고, 그거 잠깐 대화했다고 질투하는 거 봐. 완전 애기야 애기.”
심상세계 속의 암월은 월식을 따라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때문에 카인과 마찬가지로 연습용 검도 환영으로 만들어 쓰려 했던 노아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노아가 다른 검만 들면 암월이 착 달라붙어서 다리를 깨물어댔기 때문.
덕분에 심상세계에서 연습할 때 쓰는 검은 암월이 검의 형태로 변신한 모습이었다.
“심상세계 안에서 쓴다고 상태가 더 나빠지진 않는다지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던 걸 휘두르니 기분이 요상하단 말이야.”
게다가 아파서 끙끙대는 애를 세게 휘두르자니 부담스러웠다.
“그럼 말을 가르쳐 보는 건 어떠신가요?”
“얘가 말을 할 줄은 몰라도 알아듣긴 잘 알아듣는데 이미 아는 거 아냐?”
“심상세계에서는 말뜻을 몰라도 생각 그 자체가 전달되니까요. 말을 배우다 보면 자아가 더 빨리 형성될지도 모르죠.”
“일리는 있네. 앞으로 쉴 때마다 말을 가르쳐 볼까.”
“캬릉?”
청명한 쇳소리가 아름답긴 했지만 사람처럼 생겨서 검과 같은 소리를 내고 있으니 어색한 건 사실이었다.
“좋아, 따라 해봐. 아, 빠.”
“아, 아?”
“인간의 구강구조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일 것 같네요.”
아무래도 한참 걸릴 것 같았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제국은 여전히 조직의 본부를 찾아내지 못하고 지부만을 몇 개 박살 내는 데 그쳤다.
표적으로 짚었던 카인조차 잡지 못하기를 한참.
상황이 늘어지자 광휘제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제국의 독주 체제에 이상이 생긴 것 아닌가 하는 분위기가 돌고 있는 것.
그러는 사이 나이트레이에서는 3학기가 시작되었으며,
“이건 다시 받아가도록 하지.”
율리우스가 연승전에서 얻은 도전권을 이용해 1위를 탈환했다.
“크읏……!”
패배한 베로니카는 몸을 추슬렀다.
6시간에 달하는 격전.
랭킹전에서는 손꼽힐 만한 장기전 끝에 승부가 난 만큼 승자도 패자도 똑같이 만신창이였다.
“1위의 자리는 잠깐만 맡겨두는 겁니다. 곧 다시 되찾아가겠어요.”
“투지 하나는 살벌하군. 하긴 입학 초에는 원래 그런 분위기였지.”
율리우스는 베로니카를 보며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승부는 실로 근소한 차이였다.
다시 1위가 되긴 했으나 이 자리는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다고 봐야 했다.
‘아슬란처럼 심검이라도 얻지 않는 이상 말이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문득 베로니카가 저러는 이유인 한 후배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노아는 뭘 하고 있는지 아나? 연승전 때의 그건 후유증도 없이 잘 나았다고 들었는데 안 보이는군.”
“몰라요. 또 어디선가 흉악한 검술이라도 연습하고 있겠죠.”
“거기서 더 발전하면 진짜로 심검이라도 들고 올 것 같아서 무섭군.”
두 사람은 연승전에서 노아가 보여준 은하섬을 떠올렸다.
은하섬은 감히 그 이상을 상상하기 힘든 위대한 기술이었다.
단순히 위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의 검술체계를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그건 이미 속성변환 이상의 무언가였다.
‘흔히 심검을 4단계 검기인 속성변환의 다음이라 하여 5단계 검기라고도 부르지. 그렇다면 그건 4.5단계라 해야 하나.’
붕괴현상을 이용한 검기인 만상붕괴.
그것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 걸 당당히 쓰고 다니는 이상 앞으로 5년이면 8대 가문 쪽에서도 같은 원리의 기술들을 뽑아내겠지.’
하지만 5년이면 충분히 길었다.
이 세상의 모든 기사들을 상대로 5년이라는 시간을 앞섰다는 것은 그야말로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만했다.
그런 검술을 만들어낸 인물이 바로 카인 베이그런트.
율리우스는 생텀 킵에서 만났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선각자라는 말인가…….’
황제가 직접 선언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카인을 직접 만나본 바 있는 율리우스는 그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그 남자가 선각자라면 이 정도일 리 없다.’
여덟 개의 심검.
거기에 사실은 이능까지 있다?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지금처럼 숨어 다닐 필요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하얀 마녀를 상대한 것은 바로 카인.
‘기만을 위해 그랬다고 생각하긴 힘들어.’
율리우스는 광휘제와 카인 사이의 일은 몰랐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카인은 조직과 상관없는 존재.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밖엔 안 보였다.
‘노아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일에 엮여 있는 건지…….’
자신이 옆에서 손을 써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율리우스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로 인해 노아가 잘못되지 않기를 바랄 뿐.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걱정시킨 노아는 여전히 시원석 내부에서 심상세계에 틀어박혀 있었다.
“으으으으음…….”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으신가요? 그런 건 현실에서 해주세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한 달이 넘도록 붙잡고 있었음에도 마안의 각성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검술 쪽은 확실히 숙련도가 올랐는데 말이야. 마안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걸까?”
“원래 마안을 각성하는 방법이라는 게 따로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나마 마안 보유자였던 엔야의 기억을 따라가 보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거죠.”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처음부터 마안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지?”
“네. 엔야는 날 때부터 마안을 타고난 케이스였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기승전결을 만들 때도 마안을 가진 사람의 시점으로 검술을 만들었겠네?”
잘 모르겠으면 원래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편이 낫다.
그리고 마안의 전문가라 하면 이 학교에 둘이나 있었다.
마안을 가지고 있는, 또는 가지고 있었던 두 사람.
“그 둘도 여기로 데려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