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71
노아는 경기장 위에 선 베로니카를 마주 보았다.
처음 아무것도 모른 채 나이트레이에 도착했을 때 그의 입학시험을 감독했던 제국의 황녀.
마안의 소유자이며, 그에 따라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교육을 받아온 제국 최고의 엘리트.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대단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탑 소드 선발전 때는 비교적 일방적으로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산속에서 할아버지에게 배워왔던 것들을 모두 소화하고, 더 나아가 부모님의 진전까지 이어받은 지금.
노아의 실력은 마스터 나이트와도 동수를 이룰 수 있는 지경까지 왔다.
“처음 나이트레이에 왔을 때 분명히 온 김에 1위는 먹고 가자고 생각했었지. 2년차에 1위라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그런 소리는 저를 이긴 다음에나 하셔야죠.”
“아차차, 그렇지. 우리 부단장님 계약서에 서명부터 받는 게 먼저지.”
“제가 할 소릴.”
지는 쪽은 졸업 후 상대방의 기사단에 들어간다.
어쩌다 보니 성사된 의문의 취직빵 1위 결정전이 이곳 별의 전당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기면 보스, 지면 부하!’
두 사람의 검이 동시에 바닥을 두드렸고, 그 직후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까아앙!
정면으로 충돌한 노아는 검을 양손에서 한손으로 바꿔 잡으며 빈손으로 베로니카를 붙잡으려 들었다.
맨손격투의 시도.
재해급 영약을 흡수한 노아의 신체 능력은 현 세대 최고 수준.
당연하게도 베로니카는 상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노아의 손길을 피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와중에도 맞닿은 검은 자석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을 완벽히 읽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묘기.
“계속 도망만 다닐 생각이야?”
“필요하다면 못할 것도 없죠.”
분명 강체술을 최대로 끌어 올린 빠른 속도였으나, 양쪽 다 검기는 뽑아내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검기가 검 내부에서만 순환하는 1단계 검기, 강검을 쓰는 상태.
양측의 실력을 생각하면 몸풀기도 안 되는 수준이다.
허나 수면 아래에선 놀라운 수준의 오러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분명히 암월의 부재를 노릴 거다. 그러니 최대한 싸움을 다른 쪽으로 끌고 가야 해.’
현실의 암월은 아직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덕분에 노아는 암월을 들고 나오긴 했으나, 강철검을 먼저 뽑아 든 상황.
검의 내구도를 공략해 오면 곤란해질 것이 분명한 입장이었다.
때문에 노아는 처음부터 전투의 양상을 오러 컨트롤 싸움으로 이끌었다.
지이이잉!
눈에 보이지 않는 오러가 허공에서 어지럽게 뒤엉킨다.
무형검 카운터와 같은 원리로 자신의 오러로 주위 공간을 뒤덮어 아예 검기 자체를 형성하지 못하게 막는다.
물론 노아의 오러 소비는 그만큼 늘어났지만, 오러의 양만 따지면 이렇게 교환해도 이득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재미없는 짓을…….”
“전술과 전략도 실력이거든?”
이러한 검기 방해가 성립하려면 상대의 주위를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자신의 오러로 덮어야만 했다.
현실적으로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겨지는 기예.
그러나 마안을 가진 두 사람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영역에서 오러 싸움을 성립시키고 있었다.
‘율리우스 선배라도 마안이 없는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겠지.’
이론상 심안은 마안과 동등한 효과를 지닌다.
하지만 육감과 시각이라는 차이로 인해 같은 정보를 대하는 데도 인식의 차이가 생겨난다.
어둠 속에서는 랜턴의 불을 켜는 순간 랜턴이 어디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시각이 아닌 촉감으로 찾아보려면?
랜턴의 따뜻함을 찾아내는 과정은 훨씬 어려워진다.
마안은 그런 식으로 노아가 오러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게 가능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이런 것 따위, 거리를 벌리면…….’
베로니카 수준의 기사가 검기를 뽑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거리를 벌려 한순간이라도 틈을 만들면 검기 싸움을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노아도 그 점을 알기에 빠져나가려는 베로니카를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신체 능력의 차이 때문에 그냥은 벗어나기가 힘들다.’
생각한 순간 몸이 앞으로 나아간다.
강체술로 힘이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육체의 형태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관절의 방향, 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자세 등은 이전과 동일.
자신에 비해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긴 노아에게 역으로 파고든다.
검의 범위 안쪽으로 들어선 베로니카는 검을 든 팔의 하박을 쳐내고, 체중이 실린 디딤발을 짓밟았다.
콰직!
필요에 따라 무형검을 밟고 뛰기 위해 기사의 장화는 밑창이 금속 재질로 되어 있었다.
검으로 내려찍는 것과 맞먹는 그 공격을 막기 위해 노아는 호신강기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리고 외부에 실체화된 검기를 형성한 순간.
부아악!
베로니카의 검에서 검기가 치솟으며 노아를 베어냈다.
가슴의 정중앙을 가른 올려 베기.
허나 노아 또한 그새 검기상인을 발현해 공격을 막아냈다.
“강검으로 끝내겠다는 작전은 이미 실패한 것 같은데요?”
“그럼 검기상인으로 넘어가 볼까.”
오러의 덩어리가 검신의 표면에 솟아나는 2단계 검기.
잠깐의 틈을 허용한 노아였지만 아직도 그의 오러가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무형검을 형성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
아주 잠깐에 불과할지언정 그보다 형성 시간이 더 걸리는 속성변환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한번 틈이 생겨난 이상 이걸 더 벌리기만 하면 되는 일!’
베로니카는 검기를 길게 늘이며 노아를 공격해 들어갔다.
무작정 검기를 늘이기만 해서는 여기저기 걸리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검기로 주변의 오러를 걷어낸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둘 순 없지!”
노아도 베로니카를 상대하기 위해 검기를 뽑아내며 덤벼들었다.
아무리 강검을 단단히 두른다고 해도 일반 강철검으로는 검기와 직접 맞닿으면 안 된다.
대신 노아는 이대로 검기 싸움이 되지 않도록 예비 강철검을 한 자루 더 뽑아 들었다.
양손에 검을 든 쌍수검.
강도의 약점을 숫자의 이점으로 덮는다.
쌍둥이와는 달리 기승전결은 원래 한 자루의 검으로 펼치는 검술이었지만 노아의 실력이라면 두 자루로도 못할 것 없었다.
노아의 검이 베로니카의 검에 뒤얽힌다.
“흑아.”
가가가가각!
검신을 따라 회전하는 검기가 베로니카의 검기를 갉아낸다.
이대로 엉켜 있으면 베로니카가 일방적인 손해를 보는 상황.
그녀의 눈이 더 진한 보랏빛으로 빛났다.
날 때부터 마안을 가지고 태어난 그녀는 말하는 법보다도 먼저 오러를 다루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놀라운 오러 컨트롤이 노아의 감각 범위 밖.
수 킬로미터 상공에 미리 만들어둔 무형검을 낙하시켰다.
“허?”
오러의 양은 노아가 더 많지만 육감의 범위는 베로니카가 더 넓다.
그 말은 무형검을 다룰 수 있는 사정거리도 그녀가 더 길다는 뜻.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인식할 수 없는 거리에 미리 준비해 뒀다고?’
작정하고 온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허를 찔린 노아는 결국 틈을 내주고 말았고, 거리를 벌린 베로니카는 무형검과 속성변환까지 모두 해금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제부터는 제가 공격하겠습니다. 빙상만화.”
쩌저적!
베로니카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간 서리 위에 얼음꽃이 피어났다.
투둑, 퍼버버버벙!
검기로 이루어진 꽃잎들이 칼날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한다.
그에 따라 노아도 불의 속성변환을 활성화했다.
화륵!
불길을 휘감은 두 자루의 검이 주위의 꽃잎을 모두 녹여 버린다.
“화룡.”
이어서 두 개의 불기둥이 베로니카를 덮친다.
화룡을 쏘아 보낸 노아는 어차피 막힐 거라는 듯 결과의 확인도 않고 강철검을 집어 던졌다.
은하섬만큼은 아니어도 속성변환은 검의 내구도를 많이 잡아먹는다.
부러지지 않았을 뿐, 오러의 흐름에 저항이 생기는 것을 느끼자마자 검을 바꿔 든다.
이번에 뽑아 든 것은 암월.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부탁한다.”
그사이 불꽃을 뚫고나온 베로니카의 손에는 어느새 글레이셜 블레이드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암월을 확인한 순간, 그녀는 주저 없이 검을 휘둘렀다.
백야장천.
정말로 암월을 쓸 것이냐고 묻는 듯한 광범위 공격.
그에 맞서 노아는 암월 대신 월식을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검기를 만들기 위해선 바탕이 되어줄 날카로운 검의 존재가 중요했다.
허나 방어를 위한 것이라면 꼭 날이 선 검일 필요는 없었다.
‘종말도 베어낸 칼을 감싸고 있던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검집이라고.’
막은 직후 암월을 내지른다.
하지만 노아가 암월을 아끼는 모습을 본 베로니카는 거기에 크게 휘둘리지 않았다.
‘만상붕괴만 아니라면 대응할 시간은 충분.’
만상붕괴는 그 원리 때문에 준비하는 과정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월식을 이용한 은하섬은 비교적 빠르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쪽은 검을 집어넣어야 하는 준비 과정 때문에 기습이 불가능했다.
흑암진천.
예상대로의 기술.
마안으로 그것을 확인한 베로니카는 이 기회에 승부수를 던지려 했다.
그러나,
‘완전한 보라색……!’
아직 마안에 익숙하지 않은 노아는 의식적으로 마안을 조절할 수 없었다.
대신 집중 상태에 따라 자연스럽게 마안이 개방되었는데, 지금의 눈은 선술바둑 중 노아가 판을 뒤집는 한 수를 놓기 직전과 비슷했다.
눈이 마주친 노아가 방긋 웃는다.
‘축지.’
입모양을 읽은 순간, 공간이 뒤엉켰다.
파지지직!
뇌명신을 이용해 가속한 노아가 자신이 내지른 흑암진천의 뒤에 따라붙었다.
이미 발사한 검기를 다리로 따라잡아 자신의 검을 재차 찔러 넣는다.
검기에 검기가 더해진다.
키이잉!
허나 그 검기들은 서로 상쇄되는 대신 융합하여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초승달 베기.”
“……!”
축지로 인해 눈앞에서 짓쳐드는 검기가 어느 방향에서 올지 예상할 수 없었다.
준비하던 수를 포기하고 황급히 수정갑옷을 두른다.
갑옷의 끝에 참격이 걸리는 순간, 방향을 잡은 베로니카는 글레이시아를 휘둘렀다.
키기기기기기긱!
만상붕괴에 닿은 성련검이 비명을 지른다.
금속이 긁히는 소리.
그러나 지금의 베로니카에게는 어쩐지 그것이 글레이시아의 비명처럼 들렸다.
‘검령?’
의문을 풀 새도 없이 초승달 베기가 그친다.
처음부터 노아는 암월을 주공으로 쓸 생각이 없었다.
축지로 회피를 포기시키고 지근거리까지 파고들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구도를 만들어낸다.
그렇게까지 해서 꺼내 든 것은 3번째 강철검.
“약식…….”
검이 월식에 삼켜진다.
저기서 이어질 참격의 위력은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베로니카 또한 이날을 위해 준비해 온 기술을 꺼내 들었다.
“은하섬.”
“솔라리스.”
밤을 가르는 은하수와 떠오르는 여명의 빛이 지평선에서 충돌했다.
빛이 산란하며 오러의 광채가 퍼져나간다.
마안을 가진 인간들이 보는 오러가 시각화된 세상이 현실에 펼쳐졌다.
그 장엄한 광경 속에, 경기장 위에는 승자 한 사람만이 오롯이 서 있었다.
이윽고 모두가 승부가 결정 났음을 깨달았을 때, 승자는 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베로니카 부단장님.”
2년차 겨울.
노아는 나이트레이의 정점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