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78
아슬란이 심검을 펼치자 검은 구체가 그들을 감쌌다.
‘이건 단순히 벽을 친 게 아니로군.’
코코아는 육감을 통해 구체의 내부가 완전히 다른 공간, 이를테면 용궁과 같은 별개의 공간임을 눈치챘다.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심검.
온통 새까말 뿐인 텅 빈 공간에서, 아슬란은 앞장섰다.
“그럼 가실까요?”
그가 걷기 시작하자 전면에 바깥의 모습이 비쳤다.
마치 사방을 방패로 막고 탱크처럼 전진하는 것 같은 형태.
과연 아슬란의 심검이 광휘제의 태양광선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었으나, 방패의 효과는 확실했다.
피잉!
멀리서 날아온 광선이 구체의 표면에 맞고 튕겨나간다.
아슬란의 심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걸 맞고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고?’
광선에 담긴 힘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아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아슬란이 가진 심검의 효과라고 봐야 했다.
‘방어에 특화된 심검인 건가?’
마스터 나이트의 심검은 다른 마스터 나이트에게도 비밀이다.
비교적 최근에 마스터 나이트가 된 아슬란은 코코아와 엮일 일이 없었다.
덕분에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랭킹전에서 처음 선보인 모습을 레지나가 설명해 준 정도.
결국 추측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를 가두는 능력이 아닌가 생각했다만 이런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건가.’
구체적인 효과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저걸 막아낼 수 있는 시점에서 방어력 하나는 확실했다.
“걷는 속도로는 한참 걸리겠군요. 뛸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 제가 업고 뛰면 어떻게든…….”
“그럼 속도를 높이죠.”
아라크네가 코코아를 업어 들자 이동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그렇게 이동하자 그들은 금세 은하섬으로 갈라져 나간 공간의 장벽에 접근할 수 있었다.
“어……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여기서부턴 어떻게 들어가죠? 이거 부술 수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제 능력으로도 힘들어 보이는군요. 힘으로 뚫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은하섬으로 만들어진 밤하늘은 붕괴현상을 고정해 그 공간을 외부와 떨어뜨린다.
마치 축지처럼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엄청나게 멀리 있거나, 그 반대이기도 한 것.
공간 자체가 꼬여 있으니 일반적인 접근은 불가능.
부수려면 붕괴현상을 고정시켜 놓은 오러 그 자체를 부숴야 하는데, 광휘제의 광검을 가져다 쓴 은하섬이라 그것도 불가능했다.
“괜찮다.”
코코아는 그렇게 말하며 그 위로 손을 가져다댔다.
“헉, 잠깐……!”
아라크네는 그곳에 흐르는 막대한 오러로 인해 코코아의 손이 증발하는 줄 알고 기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코코아는 잠자코 오러의 흐름에 집중했다.
‘무작정 공간을 잘라놓은 것 같지만 이건 진법의 원리로 고정되어 있다.’
강력한 힘으로 인해 붕괴현상이 일어나더라도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공간은 원래대로 돌아간다.
붕괴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힘을 가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장벽이 계속 유지되려면 무한히 오러를 쏟아붓든가, 아니면 처음 들이부은 오러를 계속 굴릴 필요가 있었다.
‘진법의 원리를 이용해 한번 기술을 쓰고 나면 한동안 계속 유지되도록 만들어놓은 건가. 머리 좀 썼군.’
그렇다면 이 장벽은 무형검과 마찬가지로 시전자와는 떨어져서 유지되고 있는 상태라는 것.
‘그렇다면……!’
정령태.
코코아는 오러와 함께 심검도 잃었지만, 그렇다고 알고 있던 검술까지 잊어버린 건 아니었다.
정령태를 사용해 이곳의 오러와 동화한다.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한참 동안 자신과 이 공간의 오러를 링크시킬 필요가 있었지만, 살짝 흐름을 뒤트는 정도라면 어렵지 않았다.
코코아의 조작에 의해 은하섬에 구멍이 뚫렸다.
“들어가지.”
그렇게 열린 문으로 들어선 내부는, 마치 종말의 풍경을 연상케 했다.
* * *
티딩! 팅!
카인이 집어던진 시원석 막대가 바닥을 굴렀다.
용궁에서 썼던 것처럼 막대로 가공한 시원석.
카인은 우르슐라가 시원석의 힘을 끌어다 쓴 것처럼, 시원석 막대들을 오러 배터리로 사용하고 있었다.
종말급 오러를 지닌 광휘제에 대항해 가져온 시원석 막대는 모두 8개.
이번에 버린 것은 4번째 막대였다.
“가져온 것도 이제 반밖에 안 남았군. 그것으로 충분하겠나?”
“차고 넘치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8개를 다 쓰기 전에 강체술이 없는 카인의 육체가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테니.
‘이 자식. 몇 년 못 본 사이에 더럽게 세졌네.’
예전보다 강해졌으리라곤 생각했지만 예상 이상이었다.
종말급 영약은 단순히 오러의 양만 늘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광휘제 검술의 근간 자체를 바꿔놨다.
검술은 본래 인간에 맞게 만들어진 것.
이미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광휘제에겐, 상식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저건 이미 검술이라 부를 수도 없나.’
광휘제의 성련검 솔라리스는 이미 저 하늘의 태양이 되어 있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모든 것이 녹아내린다.
허나 그 열기도 카인의 주위를 따라 휘몰아칠 뿐, 카인을 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역시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나.’
광휘제는 광휘제대로 그 엄청난 공격을 받아내고도 멀쩡한 카인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자신은 종말급 마수의 오러를 손에 넣기라도 했지, 카인은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엔야의 존재가 그를 성장시켰다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역사에 길이 남을 천재가 바로 카인이었다.
“결국 이걸 쓸 수밖에 없겠군.”
그리하여 광휘제는 또 다른 검을 뽑아 들었다.
그 검은 카인의 기억에도 남아 있는 검이었다.
“너 그건…….”
최초의 성련검이자 시황제의 심검으로 벼려낸 검.
시원검 디 오더.
광휘제는 노아와 함께 황가의 무덤에 들렀을 때, 시황제의 무덤에서 이 검을 꺼내왔다.
“너라면 이 검의 위력을 잘 알고 있겠지.”
엔야가 검술을 처음부터 익혀 전선에 나오기 전.
그때까지 제국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검 덕분이었다.
마이어 소드와 마찬가지로 시황제와 같은, 황가의 검술을 익혀야지만 쓸 수 있는 검.
덕분에 기승전결을 익힌 엔야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디 오더는 현존하는 최강의 성련검이라 할 수 있었다.
제국의 역대 황제들의 손을 거치며, 무수한 심검을 품은 검.
마스터 나이트의 힘으로 단련된 디 오더는, 세월의 힘으로 완성된 시원석 이상으로 강력했다.
“끝이다.”
평범한 검기조차도 심검에 버금가도록 만드는 그 검에 막대한 오러가 더해진다.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든 갈라 버릴 무적의 광검.
빛의 검 클라우 솔라스가 그 전력을 내보이려 하고 있었다.
‘진짜로 작정하고 왔구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광휘제와의 싸움은 완벽하게 준비가 된 상태에서 치러져야만 했다.
이렇게 탈출 도중 갑작스럽게 맞닥뜨려서 아군의 지원도 없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평소에도 힘든 판에 이번에는 역으로 상대가 함정을 파고 기다린 상황.
‘조진 건가.’
이렇게 끝인가 싶은 순간.
은하섬에 구멍이 뚫렸다.
* * *
그들이 들어선 순간, 싸움은 중단되었다.
한쪽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신 못 차리고 골골대던 양반이 죽고 싶어서 작정했나 여길 왜 와? 하지만 나이스 타이밍. 선생님 감사합니다.’
같은 표정이었고 다른 한쪽은 여전히 뜻 모를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억! 콜록, 콜록!”
뜨거운 열기를 들이마신 아라크네가 기침을 해댔다.
구멍이 뚫린 순간 양쪽 다 싸움을 멈췄으나, 잔열만으로도 마인인 아라크네의 호흡기가 익어버리려 할 정도였다.
다만 코코아의 경우에는 아슬란이 진작 방어막을 쳐줬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말리지 마십시오, 선생님. 저는 적법한 방식으로 범죄자를 처벌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도 너희들 사이에서 골치를 썩이는 건 이제 사절이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급한 일이 있다.”
“……?”
“곧 선각자가 움직일 거야.”
광휘제는 대외적으로 카인이 선각자라 공표한 상태였지만, 사실은 아닐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가능성이 없진 않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가, 오늘 직접 대면하고선 아니라는 걸 확인한 것.
그 와중에 코코아가 진짜 선각자의 이야기를 꺼내자 광휘제 또한 마냥 이야기를 흘려들을 수만은 없었다.
“뭔가 보신 겁니까?”
“그래.”
코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습격한 조직의 인물은 바로 산군이었다.”
“산군이라면 그 호랑이 수인족을 말하시는 겁니까?”
“놈들은 용궁에 복수하기 위해 조직과 손을 잡았다. 수장인 대모는 이미 마인이 되어 이능까지 쓰더군.”
수인도 마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정보였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카인을 놔줘야 할 정도는 아닌바, 광휘제는 이어지는 말에 집중했다.
이어진 코코아의 말은 확실히 그만한 파급력을 지닌 것이었다.
“대모는 나의 심장을 뽑아먹고 내 오러와 심검인 대역만리 무궁해겸을 얻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겠나?”
집어삼킨 대상의 오러를 흡수하는 이능.
그들은 이미 그런 이능을 가진 마수를 본 적이 있었다.
“레비아탄…….”
초승달 군도에 나타났던 지옥아귀의 변이체.
그들은 재해급 마수 레비아탄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놈들이 만들어낸 마수니까 놈들도 그 이능을 쓸 수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마인답게 그새 열기에 적응한 아라크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물어보자 코코아는 곧바로 그것을 부정했다.
“아니야. 마수의 이능을 이식해 마인으로 만들기 위해선 최소한 원본이 될 마수의 핵이 필요하다. 집성제에게서 얻은 이 정보는 이미 사실이라고 검증됐어.”
레비아탄의 이능을 사용한다는 건, 조직이 레비아탄의 핵을 손에 넣었다는 것.
하지만 레비아탄의 핵은 제국에서 회수하여 영약으로 가공했으니 그게 따로 남아 있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 영약은 누가 가져갔는가.
“리히테나워 가문.”
리히테나워 가문의 가주는 원래 받기로 했던 재해급 마수의 영약을 노아에게 양보했다.
대신 이후 레비아탄을 쓰러뜨리고 나온 핵으로 만들어진 영약을 받기로 하고, 뒤늦게 받은 영약을 흡수하기 위해 폐관수련에 들어가 있었다.
“리히테나워의 가주는 폐관수련이 끝나지 않아 아직 공개적으로 마인 검사를 받지 않았지.”
가문의 식솔들은 검사를 마쳤지만 가주만은 아직이었다.
어차피 다른 이들은 검사를 마쳤으니 한 명쯤은 늦어져도 상관없다, 이미 영약을 양보하기도 했던 인물이니 마스터 나이트에게 이 정도 배려는 해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아직 검사받지 않은 유일한 인물.
“미하엘이 선각자다.”
“잠깐만요 코코아 선생님, 미하엘은…….”
카인조차 그 결론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하엘은 빈센트 선생님의 아들이잖아요……?”
국사 빈센트 리히테나워의 아들.
그들에게는 스승의 자식인 셈인 미하엘이 선각자라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군.”
제국이 이 시점에 마데이라를 침공한 것은 광휘제가 상황을 정리한 후, 제국으로 돌아가서 미하엘의 마인 검사를 확인하기 위해.
마스터 나이트의 마인 판별 검사는 항상 광휘제가 직접 확인했기에 이번에도 그럴 예정이었다.
그 말은 곧 미하엘의 폐관수련이 끝나기로 예정된 날짜가 코앞이라는 뜻이었다.
“놈이 선각자라면 폐관수련을 핑계로 시간을 번 동안 모든 준비를 마쳤을 거다.”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아슬란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폐관을 끝내기로 한 예정일이 언제죠?”
코코아의 눈이 그와 마주쳤다.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