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56
“공성 측 전원 탈락에 추가적으로 수성 측에서도 실격자들이 꽤나 나왔군. 한 방에 참가자의 반 이상이 날아갔구만.”
빽빽한 도심에서 전투를 치르다 보면 의도치 않아도 주변에 피해가 가기 마련이었다.
도약만 크게 해도 보도블록이 부서지니 빙판을 걷는 듯한 섬세한 힘의 컨트롤이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집중 풀리면 가는 거였으니까. 이걸로 어중이떠중이들은 다 걸러졌겠어.”
1라운드 결과 500명을 넘어가던 참가자 숫자는 200명 언저리까지 떨어졌다.
총 5라운드로 최종 1인을 가려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앞으로도 우수수 떨어질 거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다음 경기 내용은 뭐가 나오려나.”
노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창밖을 돌아보았다.
창밖에는 끝없이 이어진 평야가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1라운드에서 살아남은 참가자들은 간단한 후야제를 마치고 모두 제국철도에 올랐다.
2라운드가 펼쳐지는 장소는 바로 제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초승달 군도.
제국 전역을 돌며 치러지는 탑 소드의 두 번째 라운드는 남부로 정해졌다.
“어이, 노아. 밥 먹으러 가자.”
“오늘 밥은 황녀님이 사신대!”
갑작스럽게 문을 열고 노아를 부른 것은 노아의 동기들.
초승달 군도까지는 열차를 타고서도 며칠은 걸리는 거리였다.
때문에 그들은 탑 소드 참가자들을 위해 전세 낸 초호화 여객차량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내는 중이었다.
“어차피 여기 밥은 다 공짜잖아?”
“중앙인 스텔라리움에서의 경기가 당일치기로 끝나 버렸으니 이렇게라도 황궁 요리 풀코스를 맛보여 주신다는데?”
“당장 간다.”
식당 칸에는 이미 그들 외에도 나이트레이의 선배 참가자들이 먼저 와 있었다.
“오랜 시간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게 지루하실 테니 제가 특별히 준비했답니다. 사양 말고 마음껏 드세요.”
테이블을 가득 채운 화려한 진수성찬에 노아의 입이 헤벌쭉해졌다.
딱히 노아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펠릭스를 제외하면 모두가 표정이 상기된 것이, 어지간해선 맛보기 힘든 요리들인 것이 틀림없었다.
“이 자식, 자긴 이미 이런 음식에 익숙하다 이거냐? 혼자 여유가 넘치는구만?”
“마이어가에서는 딱히 음식에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만, 그래도 손님을 대접해야 할 때가 있지. 덕분에 이런 음식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엥? 왜?”
“손님이 왔다는 건 나도 인사하러 가야 한다는 거니까.”
“……그건 또 생각도 못한 이유네.”
그렇게 시작된 식사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이상의 경험이었다.
“이거 기사의 감각을 염두에 두고 맛을 조절한 건가?”
“강체술을 얼마나 활성화시키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져!”
제국 황실이란 곧 제국 최고의 기사가문을 뜻했다.
황실요리는 예로부터 뛰어난 기사들이 즐기던 요리였다.
강체술이 극에 달한 이들을 위해 발전한 요리는 수많은 감각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었다.
일반적인 기사라면 먹는 것만으로도 감각 레벨이 올라갈 정도의 요리.
평범한 음식은 절대 아니었다.
“제국 황실의 총주방장은 어지간한 나라의 기사단장보다도 강하다고 하지. 이런 요리를 만들어내려면 본인도 감각이 뛰어나야 할 테니 당연한 일이야.”
“그런 실력으로 왜 요리사를…… 이라고 하기엔 너무 대단한 맛이야. 이런 걸 맛보면 납득이 갈 수밖에.”
“우리 동기 중에서도 요리사 지망인 녀석이 있지 않았냐? 요리사를 지망하는 놈이 왜 기사학교에 오나 했더니, 이걸 보니 알겠군.”
“나 졸업하면 황궁에 취직할래!”
티우와 미호 또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맛을 음미했다.
다른 감각에 비해 미각적인 자극을 받을 일은 드문 편이었다.
훨씬 더 많은 맛을 느낄 수 있음에도 말이다.
덕분에 이 식사는 마치 장님으로 살아온 인간이 처음으로 눈을 뜬 것과도 맞먹는 충격이었다.
“베로니카는 어릴 때부터 이런 걸 먹었다는 건가. 왠지 억울한데.”
“앗,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왠지 억울한 기분이…….”
“후훗, 부러우신가요?”
“으햣!”
생소한 감각에 집중하고 있던 그들은 베로니카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고 깜짝 놀랐다.
“하이 랭커라면 졸업 후, 황궁 취직에 우선권이 돌아간답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예요. 어떤가요, 노아 씨?”
“음, 확실히 괜찮을지도? 난 딱히 이어야 할 가업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노아는 테오도르가 들으면 눈물 날 소리를 해대며 그 말을 받아주었다.
“노아 너는 언제까지 황녀님께 말을 놓을 생각이냐?”
“으음?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러네. 황녀님이니까 윗사람이지? 지금까지 동년배이면서 손윗사람인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별생각 없었네.”
노아가 살던 곳에서는 그냥 애면 애고 어른이면 어른이었다.
귀족을 볼 수 있는 곳도 아니었고, 노아의 할아버지부터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황녀님이라고 부르면 되나?”
“아니오, 굳이 그러실 필요 없답니다.”
베로니카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황녀로 태어났을 뿐, 저는 아직 아무런 사회적 직책도 없으니까요. 같은 학생의 신분이니 다른 분들도 편하게 불러주셔도 된답니다. 아니,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그래도 엄연히 황녀이신데…….”
“어차피 신분보다 실력이 중요하다는 건 모두 알고 계시잖아요? 황녀라고 해도 아버님께서 황위를 내려놓으시고 나면 저도 황실을 나올 테니 다를 것도 없답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모두가 노아의 다음 말을 알아들었다.
베로니카는 현 황제의 자식 중 유일한 마안의 소유자.
다음 황제가 누가 될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는 사실상 1황자와 함께 황위계승서열 최우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황제가 바뀌면 나머지 형제자매들도 출가하고 황실 역시 물갈이가 되겠지만.
본인이 황제가 된다면 죽을 때까지 계속 황실에 남아 있을 게 아닌가?
“그러니 여러분도 제게 말을 놓아주세요.”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베로니카는 상냥하게 웃었다.
“나야 좋지. 하지만 같은 학생 신분이라 말을 놓는 거라면 베로니카 너도 놔야지.”
“예?”
노아는 그 모습을 보며 장난기가 솟아났다.
“친근하게 불러보지 그래? 노아야~ 하고.”
“……!”
그 말을 들은 베로니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어 있더니 얼굴이 새빨개졌다.
남들에게는 편히 대해도 된다고 했지만 정작 자기가 말을 놓는 건 상상도 못 한 그녀였다.
그런 의미에서 노아의 공격은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어, 음, 그, 그게…….”
“에휴, 내가 괜한 말을 했네. 어디 황녀님께서 우리같이 천한 놈들이랑 말을 놓고 싶으시겠어.”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어머어머, 혹시라도 넘어올까 확실하게 선 긋는 것 좀 봐.”
상황이 재미있다 싶으니 미호까지 가세했다.
결국 궁지에 몰린 베로니카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아야.”
“뭐라고? 작아서 안 들리는데?”
“……노, 노아야?”
“왜? 의문문인 건데? 속 시원하게 한번 외쳐보라구.”
“그, 그만 좀 놀려어어어어어어……!”
갑작스러운 베로니카의 급발진에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선배들까지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베로니카는 자기가 소리를 지르고도 놀랐는지 사고를 쳤다는 생각에 눈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이제 좀 나아졌지?”
“네?”
“고민이 있을 땐 소리라도 팍 질러주면 좀 낫거든. 왜, 너 1라운드 끝나고 나서부터 계속 딴생각만 하고 있었잖아.”
“그걸 어떻게……?”
노아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근처에서 모습을 숨긴 채 대기하던 미아가 나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노아는 이전에 소풍을 나갔을 때 선물을 챙겨준 이후로도 계속해서 미아를 챙겼다.
노아로서는 특별히 미아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고 주변 사람을 빠짐없이 챙긴 것이지만, 메이드인 미아에게는 그 의미가 컸다.
그녀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베로니카의 수행을 위해 딸려온 몸.
신경을 써도 그녀가 신경을 써야지 남이 그녀를 신경 쓰는 일은 드물었다.
덕분에 미아와 빠르게 친해진 노아는 그녀를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티가 많이 났나 보네요.”
“무슨 고민이야?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말해보는 건 어때?”
베로니카는 그 제안을 사양했다.
“고맙지만 괜찮아요. 이건 제 일이거든요. 제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럼 어쩔 수 없고. 하지만 말은 놓을 거지?”
“그건 조금만 여유를 주세요. 아무래도 이런 건 익숙하지가 않아서…….”
“한번 봐줬다. 그건 기다려 주도록 할게.”
노아와의 대화를 마치자 베로니카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선배들과 눈이 마주쳤다.
“의외로군요.”
“네?”
“작년의 황녀님은 뭐랄까, 굉장히 날이 서 있어서 말도 걸기 힘든 분위기였는데 말입니다. 지금이 훨씬 났군요.”
“난 눈치 보여서 말도 못 붙였는데 너희 기수는 대단한걸?”
“무서운 분이신줄 알았는데 완전 귀여우시잖아?”
이어지는 말들에 표정 관리가 불가능해진 베로니카는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럽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친목을 위한 식사회는 당초의 목적을 초과 달성.
선후배로 나뉘었던 나이트레이 참가자들의 관계도 돈독해졌다.
* * *
같은 시각, 나이트레이 별의 전당.
시원석 위에 세워진 제국 기사들의 성지에서 레지나는 한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온 거예요? 게다가 이상한 놈들까지 이끌고.”
“뭐, 괜찮지 않나? 탑 소드 때문에 광휘제가 스텔라리움에 있는 게 확실한 지금이 아니면 언제 오겠어. 쟤들은 비슷한 처지끼리 협력하고 있는 애들이니까 신경 쓰지 마.”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었으나 레지나는 그를 마냥 반길 수가 없었다.
“반역죄로 지명수배 당한 사람이 겁도 없어.”
카인 베이그런트.
오필리아가 나이트레이로 오게 만든 원흉이기도 한 이 남자는 제국 이인자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 두 개 정도 있거든.”
“자수하시게요?”
“아쉽지만 그건 아냐. 보니까 학교에도 황실에서 심어둔 눈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이 없으니 본론부터 말할게. 시원석이 필요해. 좀 잘라가자.”
레지나는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황실에서 시원석의 수호를 명받은 나이트레이 학교장인 건 알고 하시는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어디 꿍쳐놓은 거 없냐?”
“미쳤어요? 절대로 안 되니까 돌아가세요. 아니, 잠깐. 중요한 일이 두 개라면 남은 하난 뭔데요?”
“며칠 전에 제국정보원 녀석들이 나를 찾아오더라. 사면해 줄 테니까 슬슬 돌아오라던데?”
제국정보원.
황실의 직속기관인 정보원의 말이라면 사실상 황제의 전언이나 다름없었다.
즉, 광휘제는 반역죄까지 걸어가며 잡아들이려던 카인을 봐주겠다고 한 것.
그것은 카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정보원에서 나를 찾아온 것부터가 그간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는데 봐주고 있었다는 이야기야.”
“거기에 이제 와서 사면을 내걸었다는 건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네요.”
그 이유는 두 사람 모두 추측할 수 있었다.
“노아 때문이겠지.”
그제야 레지나는 카인이 자신을 찾아온 두 번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거절하셨군요.”
“응. 그래서 이제는 진짜로 제국을 떠나야 할 것 같아. 그러니 노아를 부탁할게.”
“원래부터 사부님이랑 저만 봐주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선배는 코빼기도 안 보였잖아요.”
“그야 내가 만나러 갔다간 바로 척살령이 떨어질 테니 그렇지.”
그땐 진짜 죽는다. 이건 확신할 수 있었다.
마스터 나이트만 6명쯤 튀어나올 테니까.
아무리 그라도 제국과 전면전을 펼칠 순 없었다.
“아무튼 나도 맨입으로 ‘아들’을 맡기려는 건 아니고. 교육비 명목으로 하나 보여줄게.”
“보여준다니 뭘요?”
“결의 단서.”
누가 기사 아니랄까 봐 카인은 검술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어린아이처럼 미소 지었다.
“내가 새롭게 도달한 경지. 궁금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