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55
“흐음.”
바깥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광휘제는 잠시 그곳을 돌아보았다.
황궁의 벽 너머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먼 곳.
광휘제는 노아가 새로운 오의를 펼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기의 완성을 이루었군.”
광휘제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런 제목이나 저자명이 적혀 있지 않은 무명의 검술서.
제국 마스터 나이트의 검술서이면서도 퍼플 섹터에 보관되지 않은 유일한 책.
검술서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까운 책이었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기승전결의 개념은 퍼플 섹터에 있는 그 어떤 자료보다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명검술서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지평선에 도달한 자의 수기였으니까.
그만큼 귀중한 물건이라면 더더욱 퍼플 섹터에 안전하게 보관하는 게 맞겠지만, 현실적인 이유에서 그러기 힘들었다.
국사 빈센트 리히테나워가 연구를 위해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 연락책을 통해 반납해 온 것.
무명의 검술서와 함께 동봉된 편지에는 고작 두 문장만 적혀 있었다.
[연구는 끝났다. 노아가 모든 것을 완성시킬 것이다.]“타인의 가르침에 얽매이지 말고 네 자신의 감각을 믿으면 되는 거다. 네 검술은 처음부터 너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기승전결은 노아를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었고, 노아가 곧 기준이었다.
흑천은 어디까지나 빈센트의 개인 오의지 무명검술서에 적혀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하지만 흑천을 바탕으로 노아가 새롭게 만들어낸 기술은 기승전결의 기에 해당하는 오의.
그런 오의를 창안해 냈다는 건 노아가 기를 마스터했다는 뜻이었다.
“스승님은 어설프게 자신의 검술이 묻어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오의를 전수하지 않았을 뿐. 너는 이미 무명검술서의 모든 걸 배웠다.”
남은 것은 깨닫는 것뿐.
그런 의미에서 테오도르가 노아의 감각을 일깨워 준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노아의 감각은 천부적.
한번 정답을 맞췄다면 그다음부터는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나도 이제 내 일을 해야겠군.”
황제의 일은 제국을 다스리는 것.
광휘제는 국정을 맡은 대신들을 소환했다.
마수와의 일로 미뤄두었던 인간들의 일을 재개할 시간이었다.
* * *
뇌명을 사용한 리카르도는 노아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빨랐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느렸다.
노아가 보기에 리카르도는 저것보다 더 빨라야 했다.
‘속도를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거야.’
노아가 신체 레벨에 비해 감각 레벨이 뛰어나다면, 리카르도는 그 반대였다.
뇌명을 사용한 리카르도는 자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덕분에 움직임은 이동하고, 확인하고, 이동하고, 확인하는 식으로 뚝뚝 끊기고 있었다.
물론 리카르도 정도의 실력자에겐 그 사이사이의 간격도 엄청나게 짧았지만, 어쨌거나 분명히 있었다.
노아가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로 떨어지는 구간이.
파앙!
리카르도의 발차기에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 공격에 노아는 더더욱 확신했다.
저 속도라면 얼마든지 노아를 일격에 끝낼 수 있어야 정상이었다.
발차기를 한 것은 노아가 급소만은 지키고 있었기 때문.
방어를 걷어내고 공격하려 들지 않은 것은 속도를 유지하며 그만큼 복잡한 동작을 취할 수 없다는 뜻.
또한 노아의 앞에서 속도를 줄이면 당한다는 걸 리카르도도 눈치챘다는 뜻이었다.
‘안일해.’
노아는 자신을 향해 뛰어오르는 리카르도를 바라봤다.
이기고 싶었다면 뇌명을 쓰자마자 바로 황궁을 향해 뛰었어야 했다.
베로니카에게 제지당했겠지만 시도라도 해봤어야 했다.
자신에게 덤벼들어선 시도조차 못할 테니까.
노아는 뛰어오른 리카르도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앙!
검과 검이 부딪히는데 폭발음이 일어났다.
노아의 검에 휘감겨 있는 검기와 리카르도의 전신에 휘감겨 있는 검기가 맞부딪히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충격에 리카르도는 뒤로 튕겨났지만 그건 노아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자세가 흐트러지면 뇌명을 켠 리카르도의 다음 행동이 훨씬 빠르다.
“이겼……!”
“아니, 내가 이겼다.”
그와 동시에 지면 곳곳에서 화염의 검이 치솟았다.
“뭣?”
“검기전이는 잔재주지만 오러 은폐와 연계하면 이렇게도 쓸 수 있지.”
뇌명을 킨 리카르도는 한번 도약하면 목적했던 곳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다.
빠른 속도 그대로 노아의 화염검에 갖다 박는 꼴이 되어버린 것.
리카르도는 황급히 무형검을 생성해 재도약하려 했지만 노아의 검이 더 빨랐다.
부욱!
전신을 휘감고 있던 번개가 가죽 찢어지듯 갈라졌다.
노아의 흑아는 검을 타고 끊임없이 흐르며 톱날처럼 뇌명을 갈아버렸다.
속성변환으로 만들어낸 검기마저 가볍게 갈라 버리는 위력.
제어를 잃은 번개는 그대로 소멸한다.
순식간에 대량의 오러를 잃은 리카르도는 충격으로 대응이 늦었다.
“체크메이트.”
전력으로 내려친 검이 리카르도의 머리 위에서 정지했다.
탑 소드는 어디까지나 스포츠.
진짜로 상대를 베어버릴 필요는 없었다.
아래에 있던 티우는 무형검을 만들어 추락하는 노아와 리카르도를 받아냈다.
“노아! 너 방금 그 검기는 뭐야? 뇌명을 그냥 갈라 버렸잖아!”
“새로 만든 기술…… 이긴 한데 그냥 검기상인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그게 고작 검기상인이라고? 속성변환도 갈랐는데?”
검기상인은 검기가 외부로 돌출되는 2단계 검기를 말했다.
흑아는 흑천을 기반으로 한 만큼 위력은 강했지만, 원리만 따지면 2단계 검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정확히 따지면 강검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방식으로 사용한 검기상인에 가까우리라.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기술인지라 아직은 이래저래 검증이 필요했다.
“변명의 여지도 없이 졌군.”
리카르도는 승자의 대화를 들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실력에 비해 싸우는 방식이 너무 감정적이지 않나? 전략적인 스타일이라고 들었는데. 그 속도로 황궁까지 돌파하려 했으면 베로니카를 뚫을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아니, 제어도 안 되는 속도다. 너한테도 당했는데 괴물황녀가 그걸 놓칠 리 없지. 이게 맞다.”
“응?”
리카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황궁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노아는 리카르도를 막아서기 위해 최대한 황궁에서 밀어내는 식으로 싸웠다.
덕분에 황궁과의 거리는 꽤 멀어진 상태였다.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베로니카 또한 약한 이들부터 도우며 앞으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승부에서는 졌지만 애초에 노리던 건 경기에서의 승리니까.”
-성식자들이 뚫렸습니다! 이 자식들, 동쪽이 세요!
“……!”
공성 측의 작전은 성동격서 후 공수부대의 기습.
당연히 수성 측은 동쪽 방면으로 나갔던 인원들이 돌아와 합류하면 자신들이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들려온 소식은 오히려 동쪽 방면이 뚫렸다는 이야기.
“애초에 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너희는 끝까지 경계했겠지. 한 번쯤은 실패를 보여주는 게 상대를 더 방심시킬 수 있는 법.”
“한 수가 더 남아 있었나!”
“동쪽에 간 건 대부분 발이 빠른 녀석들이다. 쫓아가긴 늦었어.”
베로니카가 황궁에 진을 치고 있는 이상 그녀를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결국 리카르도가 노린 것은 처음부터 상대의 방심뿐.
앞서 준비한 작전으로 끝나면 좋다.
하지만 안 될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이중 삼중으로 위협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심어두면 된다.
그러한 노림수가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당했다……!”
동쪽에 강한 녀석들이 끼어 있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성동격서를 위해선 동쪽이 확실하게 위협적이어야 했으니까.
하물며 그쪽이 전부 빠른 발에 특화된 이들이라면?
“이걸 모두 의도했다고?”
“딱히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만든 건 아니다. 난 상황을 이용했을 뿐이지. 저들은 가장 먼저 공격에 나선 놈들이다. 당연히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놈들이겠지.”
리카르도가 한 일은 그저 동쪽 방면에 길만 뚫어놨을 뿐.
그것만으로도 공성 측의 참가자들이 알아서 그렇게 움직였다.
“자연스러운 현상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거지. 덕분에 너희도 저쪽엔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고 안심하고 있지 않았나.”
-최종 방어선 뚫렸습니다!
-누구 없어? 아무나 좀 막아봐!
-제가 갑니다.
공성 측의 선봉이 황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
그들을 막아선 마지막 인물은 바로 펠릭스였다.
“맞아, 펠릭스가 남아 있었지! 펠릭스라면 분명 어떻게든 해줄지도……!”
“아니, 무리야.”
티우를 비롯한 수성 측의 대부분은 펠릭스의 등장에 환호했지만 노아는 그러지 않았다.
“저 녀석 이미 오러를 거의 다 썼다고. 그냥 싸우는 거면 모를까, 저래서야 상대가 그냥 피해가면 막을 수가 없어.”
“그럴 수가…… 여기까지 와서 지는 거야?”
실제로 몇 명이 작정하고 펠릭스를 물고 늘어지는 동안 마지막 한 명이 그를 제치고 달려 나갔다.
최후의 보루마저 돌파당했다고 생각된 상황.
모두가 포기하고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을 때, 무언가가 공성 측 선두의 발목을 감아 넘어뜨렸다.
“대영웅 미호 님 등장!”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새침하게 외친 그 한마디는, 다음 날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 * *
“대영웅 미호!”
“대영웅 미호!”
“대영웅 미호!”
“아주 좋아, 모두들 좀 더 나를 떠받들라구.”
제한시간이 끝나고 경기의 종료가 공지되자마자 수많은 이들이 미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경기 내내 이런저런 활약들이 있었지만, 미호의 활약이 단연코 압권이었다.
리카르도는 그 모습을 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쯤 되니 이제 억울하지도 않군.”
‘대영웅’이 등장하던 상황에서 베로니카를 제외한 나이트레이는 마데이라를 일대일 마크하고 있는 구도였다.
노아와 티우가 리카르도를 쓰러뜨렸듯, 다른 쪽에서도 승부가 갈린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놀라운 건 그 와중에 미호가 자신의 상대를 쓰러뜨리자마자 황궁으로 복귀할 생각을 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했지?”
“아까 물어보니까 어쩐지 뒤통수가 간지러워져서라고 하더라.”
“맙소사.”
노아의 설명에 리카르도는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미호의 감도 노아의 직감처럼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감 때문에 황궁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을 한 건 리카르도가 예상할 수 없는 변수였다.
“젠장 여기까지 와서 1라운드 탈락이라니.”
탑 소드 1라운드는 수성 측의 승리로 끝났다.
그에 따라 공성 측에 속했던 인물은 전원 탈락.
이 대회에는 패자부활전도 없었으므로 리카르도의 도전은 여기서 끝인 셈이었다.
“그러면 너는 다시 마데이라로 돌아가는 건가?”
“아니. 탑 소드는 탈락자들도 마지막 라운드까지 조력자로 참가할 수 있다. 졌다고 바로 돌아가는 건 예의가 아니기도 하니 끝까지 남아 있어야지.”
탑 소드의 모토는 최고의 기사를 선발하는 대회였다.
그러니 패자부활전은 없다. 우승자는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완전무결한 인물이어야 하니까.
하지만 친선과 홍보 등을 겸한 국제대회에서 졌다고 가차 없이 끝내 버려서야 안 될 일이었다.
때문에 생긴 것이 조력자 시스템.
탈락한 이들도 동행하며 살아남은 참가자들을 돕거나 하는 등의 규칙이 있었다.
“승부에서도 졌고 경기에서도 졌군. 네놈이 나를 쓰러뜨렸으니 남은 라운드에선 네 조력자가 되어주마. 어떤 경기가 나올지 모르니 별반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정했으니 그리 알도록.”
“뭐 도와준다는데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노아는 리카르도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했다.
이기긴 했어도 어디까지나 티우를 끼고 둘이서 상대한 것이었다.
리카르도 정도의 실력자라면 몇 번이고 다시 붙어보고 싶었다.
“네가 우승해야 그나마 나도 우승자한테 탈락했다고 할 수 있지. 꼭 우승해라.”
“회복이 빠른 녀석이구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노아도 이것이 횡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번처럼 혼자 잘해봐야 이길 순 없는 경기가 또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리카르도가 조력자가 되어준다는 건 꽤나 든든했다.
“우하하하! 이 몸이 바로 대영웅이시다!”
“……그런데 쟤는 언제까지 저러는 거냐?”
“기껏해야 며칠 가겠지. 설마 자기 입으로 계속 저러고 다니겠어?”
정확히 2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