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54
베로니카는 곧바로 뛰쳐나갈 것처럼 말했지만 의외로 첨탑에 남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리카르도에게 뒤통수를 맞을 뻔한 상황이었다.
운이 좋아 펠릭스와 노아가 사전에 차단해 주긴 했지만, 그것도 한 번이다.
심리전으로는 리카르도에게 말릴 뿐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수를 세고 있었다.
펠릭스가 오러를 회복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그녀가 입을 열었다.
“264명.”
“뭐가 말입니까?”
“지금까지 공성 측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원이 264명. 더 이상 저들에게 숨겨놓은 병력은 없어요.”
또한 리카르도와 마데이라의 기사들도 모두 이곳에 있었다.
아무리 리카르도라도 여기서 뭐가 더 나올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걸 세고 계셨던 겁니까?”
“그리고 거리 계산도요.”
베로니카는 난간 위에 올라섰다.
어지간한 산보다 높은 높이의 첨탑.
그곳의 난간 위에 선 것은 만장단애의 벼랑 끝에 선 것보다 아슬아슬한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무형검을 마스터한 이들에게 높이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민간에 피해를 입히면 실격이잖아요?”
“……?”
“그럼 피해만 안 입히면 되죠.”
그 말과 함께 베로니카가 첨탑 아래로 몸을 던졌다.
펠릭스가 황급히 난간에 달라붙자 어느새 그의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있었다.
별의 파편이 섞인 석재 난간에는 서리가 껴 있었다.
“미친.”
추락 따위가 아니었다.
베로니카는 지상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것도 막대한 오러를 휘날리며.
베로니카의 움직임에 따라 얼음 알갱이가 휘날린다.
얼음의 여왕이 지상에 도달한 순간, 구시가지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낙하지점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서리가 순식간에 도시를 뒤덮는다.
처음에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듯 보이더니, 이내 방향을 정해 수십 갈래로 나뉘었다.
그리고는 구시가지 전역에 퍼져 있는 공성 측의 인원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무슨 기술의 범위가…….”
저걸 가능하게 하는 오러의 양도, 그걸 컨트롤하는 베로니카 본인의 능력도.
어느 하나 일반적인 수준은 진작 뛰어넘었다.
“다수와 다수의 싸움에서는 자기 실력에 맞는 상대를 커버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런 게 가능하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아예 황궁을 포기하고 물러나지 않는 이상 서리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넓게 퍼진 만큼 하나하나의 위력은 약하지만, 잠깐 붙잡기만 해도 아군이 제압할 수 있을 거야. 공성 측의 수적 우세가 사라졌어.”
단 한 사람의 존재로 전장의 판도가 바뀌었다.
완벽한 통제.
도시를 자신의 오러로 뒤덮으면서도 원하는 대상 외에는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오러 컨트롤만큼은 이미 극한에 도달한 베로니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게 바로 마안의 힘.”
펠릭스는 무의식적으로 마이어 소드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상징적인 의미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마안의 진정한 힘을 직접 마주하니 피가 끓어올랐다.
나 또한 저곳에서 활약하고 싶다.
내 검을 저기에 부딪혀 보고 싶다.
노아나 베로니카처럼 전력을 다해 싸워보고 싶다.
‘아니, 이번에는 참자.’
펠릭스는 순간적인 충동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바로잡았다.
싸울 기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으리라.
단계를 초월한 검기.
도시를 얼리는 검기.
이번 라운드에서는 경쟁자들의 기술을 봐둔 것만 해도 충분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군.”
* * *
“티우 교대!”
“알았어!”
노아는 바통 터치를 하듯 티우와 검을 부딪치곤 앞으로 튀어나갔다.
베로니카의 한 수는 리카르도와 싸우고 있는 노아 쪽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콰직!
리카르도는 베로니카의 서리를 단번에 베어버렸지만, 노아에게는 그 잠깐의 틈도 컸다.
번개의 압도적인 속도로 공세를 유지하던 리카르도가 처음으로 수세로 돌아섰다.
노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공격을 몰아쳤다.
키이이잉!
리카르도는 자세를 고칠 시간을 벌기 위해 노아에게 무형검을 쏘아 보내려고 했으나 티우가 막아냈다.
붕괴 현상.
같은 공간에 동시에 둘 이상의 무형검이 형성될 경우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지며 오러가 소멸한다.
“저걸 실전에서 써먹는다고?”
“티우의 수읽기 능력은 반쯤 예지의 영역에 걸쳐 있거든!”
이미 무형검이 완성된 곳에 무형검을 형성하려고 해봐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붕괴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정확히 동일한 위치에 완벽한 타이밍으로 무형검을 형성해야 했다.
실전에서 당하면 욕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묘기에 가까운 일인 것.
“칫, 무형검만 없으면 이길 수 있다는 거냐? 어림없는 소리!”
리카르도의 검이 섬광을 발했다.
노아는 눈이 부신 와중에도 더더욱 눈을 치켜뜨며 검끝이 향하는 방향을 주시했다.
파바방!
검이 부딪히고 난 다음에야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속을 뛰어넘은 3연 찌르기.
노아는 음속을 따라갈 수 없었지만, 공격은 막아냈다.
‘휴우.’
미호의 연검을 상대해 본 것이 도움이 되었다.
채찍은 강체술을 배우지 않은 일반인의 몸으로 휘둘러도 음속을 뛰어넘는다.
연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유롭게 휘어지는 연검의 공격 패턴에 비하면 일자로 굳은 장검이 노릴 곳은 뻔했다.
‘찌르기는 빠르지만 노리는 곳만 파악하면 대처할 수 있다.’
리카르도 또한 그 사실을 알았는지 다시 물러나며 티우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키기기깅!
노아는 그가 무형검 컨트롤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그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리카르도는 점점 초조함을 느꼈다.
‘틈이 없다.’
분명 속도는 자신이 더 빠름에도 불과하고 공세로 전환할 틈이 안 보였다.
티우뿐만이 아니었다.
노아 또한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 엇박을 노리고 들어왔다.
그렇게 타이밍을 뺏는 것도 한두 번이지 1분도 안 되는 공방에서 수십 번을 연속으로 당하면 말이 달랐다.
‘내가 밀린다?’
피차 서로가 서로를 처음 상대하는 상황.
리카르도가 조사를 더 했으면 더 했지 상대보다 덜 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순수하게 상대의 수읽기가 훨씬 깊다는 뜻.
‘칫.’
인정하고 자시고 간에 결과가 나왔으면 바로 행동에 옮긴다.
‘이쪽이 안 뚫리면 다른 쪽을 뚫는다!’
속도의 차이가 있는 이상 공방은 성립해도 냅다 돌아서 버리면 쫓아올 수 없었다.
리카르도는 다시 공세로 전환하는 척하다가 이번에는 티우를 향해 쇄도했다.
“……!”
서로가 같은 위치에 무형검을 생성하려 하자 허공에서 오러가 부딪히며 폭발한다.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검을 내질렀다.
“큿!”
출수하는 속도는 비슷했다.
하지만 속성변환이 담긴 리카르도의 검기가 더 강했다.
타앙!
노아가 감전되는 것을 봤던 티우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검기를 폭발시켜 직접 닿는 것을 피했다.
허나 그래봐야 궁여지책.
리카르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티우를 향해 파고들었고, 끝내 그의 검이 티우의 손을 쳐내려는 찰나.
화륵!
순간 티우의 검에 불길이 일어난다.
불의 속성변환.
뒤따라오는 노아를 의식해 다소 무리하게 파고든 리카르도에게는 그걸 막아낼 여유가 없었다.
키기기기기기깅!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주변에 연쇄적으로 붕괴 현상이 일어난다.
양측에서 반사적으로 쏟아낸 무수한 무형검이 서로 겹쳐 완성되지 못하자 무수한 스파크가 튀었다.
서로가 서로를 가로막으며 단 하나도 실현되지 못한 공방 끝에, 티우는 리카르도의 가슴을 베어냈다.
치이익!
튀어나간 피는 불꽃에 휘감겨 날아갔다.
리카르도는 몸을 추스르며 티우와 노아를 한쪽 방향으로 모으는 방향으로 빠져나왔다.
“당신도 속성변환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겁니까?”
“안타깝지만 그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는 티우의 검은 벌써 불꽃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리카르도는 그제야 티우의 검에 서려 있는 오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건……!”
오러는 지문과 같다.
같은 검술을 배웠어도 사람마다 구분이 가능할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다.
티우의 검에 서려 있던 오러는 분명히 노아의 것이었다.
“검기전이(劍氣轉移).”
노아가 리카르도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무형검을 쓰려고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이런 것도 가능하더라고.”
선발전에서 만났던 검술연구가 시프는 노아를 만나 그간 이론상으로만 생각해 보던 기술들을 현실화시켰다.
대부분은 안 쓰이는 이유가 있어 재미용에 머물렀지만, 가끔 노아의 특수한 조건에 맞물려 실전성 있는 기술도 탄생하곤 했다.
‘검기전이는 호신강기와 더불어 대표적인 성공 사례지.’
무형검은 검에서 떨어져 나온 검기를 조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종은 둘째 치고, 검기가 검에서 떨어져 나온다고 바로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제어는 못 하지만 검기를 외부에 박아놓고 잠깐 유지하는 건 가능하더라고.”
남의 검에 자신의 검기를 심어두면 잠깐이나마 다른 사람도 노아의 검기를 써먹을 수 있었다.
이걸 어디다 쓰나 싶은 부산물이었지만, 의외로 이번에는 유용하게 쓰였다.
“이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애초에 정상적으로 검술을 배웠으면 시도해 볼 일도 없는 거니까.”
속성변환을 이룬 시점에서 이미 무형검도 쓸 수 있는 게 정상이었다.
무형검을 쓰면 되는데 굳이 남의 검에 자신의 검기를 남겨두는 걸 연습할 이유가 없는 것.
덕분에 리카르도로서는 상상도 못 한 방식의 기습이 가능했다.
“이거 사과해야겠군. 얕봤던 것은 나일지도 모르겠어.”
리카르도는 이만 두 사람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 두 사람은 강하다.
어설프게 아끼려고 했다간 당하는 건 오히려 자신이었다.
“괴물황녀에게 쓰기 위해 아껴두려 했지만 특별히 보여주도록 하지. 이게 바로 내 전심전력의 오의다!”
파지지지지직!
전신에서 뿜어진 번개가 리카르도를 뒤덮었다.
앞서 베로니카가 자신의 오러를 넓게 퍼뜨려 도시를 뒤덮었다면, 리카르도는 모든 힘을 압축해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마치 뇌전으로 이루어진 인간과 같은 모습.
섬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검기 덩어리 그 자체가 되어버린 리카르도는 나직하게 기술명을 밝혔다.
“뇌명(雷鳴).”
천둥이 울었다.
-!
정신을 차렸을 때, 노아는 자신의 몸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음을 느꼈다.
공격당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리카르도가 한순간에 노아를 제압하고 티우에게로 돌아섰기 때문.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이건 못 막겠네.’
공격 경로에 검을 들이밀면 아무렇지도 않게 뒤로 돌아가서 때린다.
그렇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몸이 따라가지 못했다.
다행히 저 상태일 때는 검의 예기를 못 살리는지 맞아도 그냥 오러 덩어리에 맞은 느낌이었다.
물론 더럽게 빨라서 몇 대 맞았더니 뼈가 뚝뚝 부러졌다.
‘팔은 부러졌고, 적은 막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이미 글러먹은 거 아닌가 싶은 상황.
하지만 노아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도 보였어.’
더럽게 빠르다.
그냥 뒤로 돌아와서 치는데 반응조차 못할 정도로.
하지만 노아의 눈에는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 보였다.
빨라진 속도를 감당하기 위해 리카르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로 인한 약점까지도.
‘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해서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할 노아가 아니었다.
“읏차.”
노아는 몸을 일으켰다.
부러진 오른팔을 대신해 왼팔로 검을 바꿔 쥐었다.
피가 흘러 손잡이가 미끈거렸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노아는 눈을 감고 집중에 들어갔다.
‘내가 아는 가장 빠르고 강한 기술.’
두말할 것 없이 흑천이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오의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가장 익숙한 기술.
다만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
얼치기로 배운 방식으로는 뇌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기술을 고친다.’
노아가 사용하는 흑천은 길게 뽑아낸 검기를 빙글 돌며 사방으로 뿜어내는 기술이었다.
반면 할아버지의 흑천은 검기로 하늘을 뒤덮는 광역 필살기다.
어차피 원본은 따로 있고 자신이 멋대로 따라 했을 뿐인 기술.
고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좀 더 내게 맞는 방식으로……!’
다리의 위치, 오러의 운용, 무게중심의 이동, 격발의 타이밍 등등.
지금의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고쳐 나간다.
노아가 가진 천부적인 감각이 어떤 게 옳고, 어떤 게 그른지 정답을 확인하는 지표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고친 흑천에 이번에 깨달은 강검의 묘리를 더한다.
새로운 파생오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늘을 뒤덮는 흑천이 한곳에 압축되어 검에 휘감긴다.
그 모습은 이를테면 맹수의 어금니.
“흑아(黑牙).”
노아의 오리지널 오의가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