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57
초승달 군도는 이름 그대로 초승달 모양으로 모여 있는 섬들의 모임이었다.
당연하게도 바다를 건너야 하므로 열차를 통해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
참가자들은 남부의 항구도시, 하바나에서 배로 갈아타야 했다.
“화물을 싣는 데 시간이 걸리니 주변 관광이라도 하고 있지 그러나?”
“테오도르 씨……? 여기까지 따라오신 거예요?”
며칠 만에 열차에서 내려 따뜻한 햇살 아래 몸을 풀고 있던 노아는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나. 대회를 주관할 인물이 따라붙는 건 당연한 일인데.”
“아, 확실히.”
황제가 직접 전국을 따라다닐 수는 없으니 대리인이 올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개회식에서 그 자리를 대신한 바가 있는 테오도르가 따라왔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하바나는 관광도시로도 유명하지. 뭣하면 죽여주는 레스토랑이라도 소개해 주겠네. 싱싱한 해산물은 그냥 구워먹기만 해도 맛있거든.”
“오오.”
산골에 살던 노아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열차에서 요리의 참맛을 알게 된 참에 그간 접해보지 못한 해산물에 대한 유혹은 참기 힘들었다.
다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동기들의 시선은 묘했다.
“저 녀석. 의외로 쉽게 넘어가네.”
“먹을 거 준다고 아무나 따라가면 안 돼, 노아야. 독이 들었을지도 모르잖아.”
티우는 그렇게 말하며 노아의 입에 시나몬 스틱을 집어넣었다.
“자, 너는 내가 주는 것만 먹어.”
미호는 그 광경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티우 쟤, 아무렇지도 않게 은근슬쩍 엄청난 소리를 하는데?”
“으음, 확실히 좀 그렇군.”
“그지? 펠릭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리 미각적 자극이 재미있어도 시나몬 스틱을 생으로 씹어 먹는 건 좀 그렇다.”
“……아니, 태클 걸 부분은 그게 아니잖아!”
어쨌거나 하바나에서 시간을 죽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므로 일행은 테오도르가 추천한 레스토랑에 가보기로 했다.
“83-7번지랬지? 여기가 83번 길이니까 이쪽으로 가다 보면 나올 텐데…….”
일일이 확인해 볼 것도 없이 얼마 안 가 오러 반응이 왔다.
“나이트레이도 아닌 일반 도시에서 기사들이 모여 있을 만한 곳은 기사식당 정도겠지.”
“꽤 강한 오러가 느껴지는데?”
평범하게 식당 안에서 느껴지는 오러 자체에 감탄한 펠릭스, 미호와는 달리 티우와 노아는 그게 누구의 오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안쪽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인물이 손을 흔들어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왔니? 우리 쪼꼬미들.”
다만 그 한마디에 식당 안을 가득 메운 모든 손님들이 일제히 그들을 돌아봤을 때는 솔직히 조금 쫄렸다.
족히 쉰은 넘어 보이는 기사들이 모두 같은 일행.
그들은 모두 중앙에 있는 한 여성을 호위하기 위한 위치를 잡고 있었다.
노아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우르슐라 선배가 여기 왜 계신 거예요?”
“왜긴 왜야. 너희들이 이제부터 갈 초승달 군도가 내 고향이니까 그렇지.”
그곳에서 만난 것은 나이트레이 랭킹 72위의 하이 랭커.
우르슐라였다.
“이분들은 다 뭐예요?”
“내 호위들.”
우르슐라는 그들에게 같은 테이블에 앉을 것을 권했다.
사람으로 가득 찬 가게 안에서도 우르슐라의 테이블만은 그녀 혼자 앉아 있는 것이, 평범한 꼴은 아니었다.
“여길 찾아온 걸 보면 너희도 뭔가 먹으러 온 것 같은데 마음껏 시켜.”
“아니, 뭐. 굳이 사주실 것까지야…….”
“사양하지 마. 내가 아니라 저 형씨들이 살 거야.”
“그럼 메뉴의 첫째 줄부터 정주행해 볼까.”
“진짜 너는 그런 점이 기가 막힌다니까.”
점원이 일행의 주문을 받아가고 나자 우르슐라는 여유롭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을 꺼냈다.
“어쨌거나 너희들이 와줘서 다행이야. 올해는 일손이 적어서 걱정이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엥? 설마 아직 2라운드 내용 공개 안 했니?”
앗, 하고 자신의 입을 가린 우르슐라는 이내 상관없지 않나? 하며 말을 이어갔다.
“탑 소드 2라운드 내용은 바로 초승달 군도의 마수 퇴치야.”
“마수 퇴치라고요?”
“마수 퇴치야말로 기사의 탄생 이유이기도 하니까. 기사의 덕목을 시험하는 대회 내용으로는 제격이라고 할 수 있지.”
“아니, 그런 거야 아는데 그리 큰 섬도 아니잖아요?”
초승달 군도가 다음 시험장이라고 들었을 때부터 섬에 대한 것은 알아보았다.
대륙 남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섬들의 집합체.
제국의 변경지대였지만 초승달 군도 자체가 과거, 별이 떨어진 여파로 생겨난 지역인지라 영향력은 꽤 컸다.
어쨌거나 세상에 몇 없는 별 채굴지였으니까.
항구도시인 하바나도 사실상 초승달 군도 때문에 형성된 도시일 정도.
다만 군도 자체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인구도 1만 명 내외.
단순히 토지 면적이나 인구수로 계산하면 나이트레이보다 작았다.
“그런 곳에 수백 명의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마수를 잡는다고 하면 태반은 마수 그림자도 못 보고 올 것 같은데요.”
“후후, 우리 노아. 자꾸 육지 촌놈 티 낼래? 정말 모르겠어?”
의외로 노아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답은 해양 마수야.”
“해양 마수인 게 무슨…… 설마?”
“맞아. 아무리 기사라도 바닷속에 있는 마수까지 모두 토벌할 순 없거든.”
제국 내에 있는 마수는 대부분 토벌되었다.
마수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에서 넘어온 놈들.
하지만 해양 마수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어업을 나가는 근해의 마수들은 대부분 정리가 되어 있어. 하지만 외해는 다르지.”
“철새처럼 계절마다 서식지를 옮겨가는 어종도 있을 테니까요. 당연히 마수가 몰려오는 주기도 있겠네요.”
“정답. 초승달 군도에는 매년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유롭게 성장한 마수들이 몰려오는 ‘빅 웨이브’가 와.”
“그게 마침 지금이고요?”
“중앙 입장에선 얼마나 좋았겠어. 민원도 처리하고, 대회 준비도 덜고.”
상황은 대충 알았다.
어차피 빅 웨이브가 올 시기이므로 그걸 탑 소드 과제로 삼아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겠다는 뜻.
“근데 이거 미리 들으면 문제 유출 아니에요?”
“아마 배 타고 가면서 말해줄 예정이었나 본데, 어차피 미리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 말해도 상관없겠지.”
“그런가.”
노아가 납득하고 있자 이번에는 옆에서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티우가 질문에 나섰다.
“저기 우르슐라 선배가 초승달 군도 출신이라는 건 그거죠? 달의 사원 출신이라는…….”
“어 맞아. 사실 난 달의 무녀거든.”
사원이니 무녀니 하는 소리에 노아가 의문을 표했다.
“무녀라고요?”
“무녀라고는 해도 별거 아냐. 그냥 옛날 옛적에 떨어진 별의 파편을 신의 선물이라 여기던 시절의 문화가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을 뿐인 구시대적인 이야기라서.”
“구시대적이라…… 선배는 무녀라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드는가 봐요?”
“그야 물론이지. 어린 시절부터 부모랑 생이별해서 사원에 갇혀 살면 기분이 좋겠어? 주변에서야 영광이니 명예니 해도 애 입장에서는 그냥 납치거든.”
우르슐라는 그렇게 말하며 갑각류의 집게발을 들어 살만 쏙 발라 먹었다.
“그래도 별거 없는 어부 집에서 태어난 내가 무녀가 된 덕에 부모님이든, 나 자신이든 유복한 생활을 즐기는 거 하나는 나쁘지 않지.”
꽤나 묵직한 이야기인 것 같았으나 우르슐라는 그에 개의치 않았다.
주변의 호위들도 땀만 삐질삐질 흘릴 뿐 우르슐라의 과격한 발언을 제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녀라는 게 이 지방에서는 상당히 위상이 높은 모양이었다.
“나이트레이에 들어갔던 것도 사실 여기 있는 게 지겨워서야. 그쪽에서도 하이 랭커를 찍어놓으면 돈은 넉넉하게 나오니까.”
“허어.”
초승달 군도의 무녀는 생선 가시를 발라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바다에서 주기적으로 마수가 밀려오면 무녀라는 게 생길 만도 하네.’
시골에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산에 자리 잡은 마수가 마을에서 산제물을 받아먹던 경우도 있었다.
노아는 우르슐라가 무녀라는 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다만 다른 일행들은 달랐다.
“달의 무녀라면 사원 내에서도 대무녀의 직계제자라는 거잖아요!”
“응. 그런데?”
우르슐라는 티우의 말에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 대무녀님은 에테르나로 마스터 나이트가 되신 분이신데 그 제자인 선배가 왜 나이트레이에……?”
에테르나는 반월형의 곡도 두 자루를 이용하는 쌍검술로, 밀림이 많은 남부에서 유명한 검술이었다.
달의 사원은 바로 그 에테르나가 시작된 곳.
8대 가문에 비견되는 검림의 4대 문파 중 하나였다.
“우르슐라 선배가 그렇게 대단한 분의 제자였다고?”
“……자긴 리베리 가주님과 친하면서 이제 와서 그런 점에 놀란다고?”
미호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우르슐라가 티우의 질문에 답했다.
“말했다시피 여기 있다 보면 죽을 맛이라 도망간 거야.”
“초승달 군도의 무녀라면 단순하게 따져도 8대 가문의 직계에 해당하잖아요? 남부에서는 선망을 받는 자리일 텐데…….”
“그래도 나랑 안 맞으면 의미가 없지. 매년 밀려드는 마수를 썰다 보면 반쯤 득도해 버린다고.”
검림은 암부기사의 요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우르슐라의 목표와는 정반대인 음지에서 고생하는 길이었다.
때문에 우르슐라는 억지를 써서 검림이 아닌 나이트레이에 들어간 것.
티우는 그 점에 주목했다.
‘그런 억지가 통했다고?’
남부에 무녀가 되겠다는 사람은 얼마든지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녀가 싫다는 우르슐라가 검림이 아닌 나이트레이에 간다는 특혜까지 인정받으며 무녀직을 유지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72위보다 훨씬 더 강할지도…….’
우르슐라 본인의 능력에 대해 놀란 티우와는 달리 펠릭스와 미호는 그녀의 배경 때문에 신중해졌다.
검림의 4대 문파는 혈연이 아니기에 소속원 개개인에게 공식적인 직위나 작위는 따로 없다.
하지만 8대 가문과 동등한 선상에 놓이는 세력이었고, 그중에서도 무녀라면 상당히 높은 위치였다.
‘가문에 폐가 되지 않으려면 말조심해야겠군.’
‘처신 잘하자.’
펠릭스와 미호는 자연스레 말이 줄어들었다.
개중에서도 미호는 완전히 겁을 집어먹었다.
암부기사에 관한 괴담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물며 그 수장급인 4대 문파라면 어떻겠는가.
‘혓바닥 잘못 놀렸다간 독이 들어간 홍차나 코로 매운탕을 먹는 수가…….’
일설에 의하면 생선가시까지 싹싹 긁어서 코에 쑤셔 넣는다는 말도 있었다.
“참고로 내가 달의 무녀라는 건 비밀로 해줘. 학교에서도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공표되면 시끄러워질 테니까.”
“랭킹은 더 안 올리시게요?”
“하이 랭커만 해놔도 여유로운데 굳이 순위 몇 개 더 올리겠다고 고생할 필요는 없지.”
그러는 동안에도 노아는 당면한 과제에 대한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해양 마수라…….”
“수중전은 지상전과는 전혀 달라. 경험이 없다면 골치 좀 아플걸?”
“난 해본 적 없는데. 너흰 있냐?”
“극한환경 전투법은 다음 학기에 들으려고 했지.”
“수상전이라면 조금? 그런데 해양 마수면 물속에서 올 거 아냐.”
일행 중에서 수중전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은 시간이라도 이래저래 연습해 봐. 진짜 하나도 모르는 것보단 훨씬 나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모르고 갔으면 골치 아플 뻔했네요.”
그러는 동안 완성된 요리가 하나씩 테이블 위에 놓였다.
수중전에 관한 토론을 하며 해산물을 학살하고 있자니 곧 우르슐라를 찾아온 인물이 있었다.
“우르슐라 님! 한참이나 찾았잖아요!”
“오, 이번엔 두 시간 만에 찾았네? 못 보던 사이에 많이 늘었구나, 무이무이.”
“엣헴! 그야 저도 이젠 무녀의 전속 시녀가 되었으니…… 가 아니라 다들 탑 소드 준비로 바쁜데 도망가시면 어떡해요!”
무이무이라 불린 소녀는 뛰어왔는지 헉헉거리면서도 우르슐라의 옷자락부터 붙잡았다.
아무래도 하바나에는 말없이 도망 나온 모양이었다.
“어허, 여기 손님들 계신 거 안 보여? 나는 어디까지나 초승달 군도의 무녀로서 손님들을 맞이하러 나온 거라고.”
“어차피 또 거지 애들 데려다 밥이나 먹이고 계신 거…… 어? 대영웅이다.”
“이 멤버로 앉아 있는데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게 나라니. 드디어 내 시대가 온 건가……?”
“기사가 엄청 뜨긴 했지.”
“앗,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르슐라 님의 전속 시녀 무이무이라고 합니다!”
무이무이는 꾸벅! 하고 배꼽인사를 했다.
척 보기에도 어린아이 같았으나 노아의 눈에 무이무이는 적어도 검기상인을 이룬 것으로 보였다.
즉, 저 나이에 이미 나이트레이의 최하위권보다 강하다는 뜻.
4대 문파라는 것이 빈말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보다 큰일 났어요, 무녀님!”
“왜? 대무녀님이 직접 찾으러 나오시기라도 했어?”
“어라? 어떻게 아셨어요?”
우르슐라는 순식간에 나라 잃은 표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