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58
대무녀가 직접 하바나까지 나왔다는 소식에 우르슐라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항구로 향했다.
우르슐라가 멋대로 나온 거라곤 해도 이게 그렇게까지 몸서리칠 일인가 싶었던 노아는 뒤따르던 무이무이에게 슬쩍 질문했다.
“대무녀님이 그렇게 무서우신 분이신가요?”
“음…… 제가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무서운 편이시긴 하죠. 마스터 나이트라는 점을 제외하고 배분상으로도 까마득한 분이시니까요.”
옆에 있던 펠릭스가 무이무이의 말을 거들었다.
“현 대무녀께선 네 할아버님과 나이트레이 동기시다.”
“……선배는 도대체 무슨 깡으로 여길 나오신 거예요?”
“살다 보면 조져질 걸 알면서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란다, 노아야.”
“그래서 술 마시고 계셨어요?”
“하지만 스승님은 술 못 마시게 하는걸!”
“아, 하긴 전에 빼돌린 술도 팔려고 그러시는 줄 알았더니 혼자 다 드셨었죠.”
로젤리아가 청소 중 발견한 아슬란의 술을 우르슐라가 다 빼돌렸던 일도 있었다.
노아에게 우르슐라가 술을 좋아한다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대무녀가 아니라 완전 대마녀가 따로 없다니까? 무이무이를 보낸 것도 그거야. 잔말 말고 알아서 내 앞에 나타나라는 거. 제 발로 도축장에 끌려가는 가축의 기분을 이제야 알 것 같아.”
“일단 선배가 혼나도 싸다는 건 확실히 알겠네요.”
그들이 향한 곳은 항구 가까이에 위치한 한 대형 호텔이었다.
탑 소드 진행을 위해 통째로 대관한 이 호텔은 참가자들의 숙소 겸 진행 측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었다.
“우르슐라.”
“윽, 카밀라. 너까지 왔어?”
본부에 도착한 우르슐라를 발견하고 말을 걸어온 인물이 있었다.
카밀라라고 불린 여성은 상당히 예스러운 방식으로 머리를 틀어 올린 금발 여성이었다.
무이무이와 비슷한, 하지만 더 높은 직책인 듯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복장.
게다가 무이무이와 같은 시녀복을 입은 인물 하나를 대동하고 있었다.
‘이쪽도 초승달 군도의 무녀인가?’
“대무녀님께선 진행과 관련해 테오도르 님과 회의 중이시다. 얌전히 반성하면서 기다리도록. 그런데 이분들은?”
“얘들은 내 학교 후배들 겸, 탑 소드 참가자. 인사해, 이쪽은 나랑 무녀 동기인 카밀라라고 해.”
“지금은 수무녀다. 엄연히 네 상관이니 예의를 지키도록.”
“예이. 알겠습니다요, 나으리.”
하라는 반성은 안 하고 장난기 가득한 우르슐라의 모습에 카밀라는 표정을 구겼다.
“장난치지 말라고 했지? 넌 항상 그런 게 문제야. 내가 수무녀가 된 것도 다 네가 갑자기 나이트레이로 도망쳐서…….”
무심코 급발진하던 카밀라는 노아 일행과 눈을 마주치더니 아차 하곤 입을 다물었다.
“못 본 걸로 할까요?”
“그, 그래주면 고맙겠구나.”
합의는 빠르게 이루어졌고 노아는 입맛을 다셨다.
‘우르슐라 선배는 못 본 척해주면 용돈도 넉넉히 찔러주셨는데.’
그러는 사이에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벌컥!
“그러니까 이제 와서 황제의 집행관 따위를 다시 하겠냐! ……어머? 집 나간 고양이가 다시 돌아왔네!”
테오도르와 함께 나온 것은 고작해야 무이무이 또래로 보이는 자그마한 아이였다.
그러나 우르슐라는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범을 마주친 것처럼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제자분이 많이 말썽이신가 봅니다?”
“뭐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자네는 참 대단하단 말이야.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낳은 쌍둥이가 벌써 재능을 뽐내고 있으니.”
“저는 고작 두 명만 가르친 거니까요. 어디 수많은 제자들을 돌봐야 하는 코코아 님만 하겠습니까.”
초승달 군도의 대무녀 코코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스터 나이트로 군림해 온 전설의 기사는 놀라울 정도로 어려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음? 너희들은?”
이어서 아이의 시선이 뒤에 있던 노아 일행에게로 닿았다.
테오도르는 코코아에게 노아 일행을 소개했다.
“올해의 나이트레이 측 참가자들입니다. 제자분께는 후배 되는 아이들이죠.”
“흐응.”
코코아는 흥미롭다는 듯이 일행을 살펴보다가 우르슐라에게 물었다.
“혹시라도 후배라고 뭘 챙겨주고 그런 건 아니겠지? 예를 들어 경기 내용을 미리 알려줬다거나?”
뜨끔!
우르슐라는 코코아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마스터 나이트 앞에서 거짓말은 안 통한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해야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뿐.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명확했다.
“아이고 두야.”
코코아가 이마를 감싸 쥐는 가운데 테오도르가 빠르게 사태를 수습했다.
“경기 내용을 최대한 빠르게 공지하는 편이 좋겠군요. 편파 혜택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이참에 쟤 그냥 방출할까?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싸부!”
우르슐라는 재빨리 코코아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장신인 그녀가 훨씬 작은 코코아에게 매달린 모습은 꽤나 웃긴 모습이었지만 노아는 웃을 수 없었다.
-네가 빈센트의 손자 놈이로구나?
코코아가 노아를 알아봤다.
* * *
노아의 할아버지 빈센트 리히테나워는 광휘제의 부탁을 받아 무명검술서의 내용을 연구하기 위해 은거했다.
황명에 의해 은거의 이유는 불문에 부쳐졌으나, 딱히 절대적인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사항은 아니었다.
덕분에 가족이나 친지들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었고,
또 그중에서도 일부는 이유 또한 알고 있었으며,
손에 꼽을 수 있는 몇 사람은 노아의 존재까지 알고 있었다.
“왔느냐.”
전음을 통해 따로 만나자는 이야기를 들은 노아는 적당히 시간을 내서 코코아를 찾았다.
달의 사원에서 소유하고 있는 무역회사의 사무실.
코코아는 그곳에서 카밀라와 함께 노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친우분이라 들었습니다. 저도 궁금한 게 많으니 할 이야기가 있다는데 빠질 순 없죠.”
“후후, 성격까지 빼다 박았군. 앉거라. 이야기가 길어질지도 모르니.”
수무녀라는 카밀라가 시종처럼 서 있는 와중에 먼저 앉으려니 어색할 법도 했지만, 노아는 사양하지 않았다.
코코아는 그 모습을 보며 노아에게 카밀라를 소개했다.
“이 아이는 내 후계자다. 너와 관련된 이야기 몇 개가 대외비기는 하지만 들을 자격이 있어. 아니, 정확히는 들어둬야 하지.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이니.”
“대무녀님!”
죽는다는 말에 카밀라가 기겁했지만 코코아는 손을 휘휘 저었다.
“시끄럽다. 내 나이쯤 되면 언제 어디서 뭐 하다 죽든 그냥 자연사야. 그렇다면 조직의 수장으로서 죽은 다음을 대비해 둬야지. 아무튼 이건 우리 집안일이고.”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화제를 돌렸다.
“리히테나워가의 사람들은 만나보았느냐?”
“아직입니다.”
할아버지가 8대 가문 중 하나인 리히테나워 가문 출신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최근 일이었다.
노아는 아직 그쪽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만나면 가족으로 대해야 하는지 아닌지도 애매했고.
“뭐 그럴 게다. 그 녀석들은 빈센트가 은거할 때부터 봉문에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곧 만나게 될 거야. 빈센트가 너를 내려보냈으니 활동을 재개할 거다.”
“저에 대해 잘 아시나 봅니다?”
“잘 알다마다. 네놈 어릴 때 내가 기저귀도 갈아줬다.”
“예?”
“그땐 나도 집행관 일을 하고 있었거든.”
노아는 대무녀 또한 집행관직을 수행했던 게 기저귀와 무슨 상관인지 의문에 빠졌다.
할아버지가 8대 가문의 높으신 분이었다고 해도 대무녀 또한 검림 4대 문파의 높으신 분이 아닌가?
그녀가 남의 집 애 기저귀나 갈고 있을 짬은 아니었다.
“그래봐야 한 번이었지만 말이다. 빈센트 놈이 나한테 너를 맡겨놓고 자리를 비운 차에 네가 갑자기 울어재낀 거였거든.”
“아, 예…….”
“기저귀를 가는 건 처음이라 고생 좀 했지. 아마 이 세상에서 검기로 엉덩이를 닦여본 아기는 네가 처음일 거다.”
혼자 추억에 잠겨 떠드는 모습을 보며 노아는 그제야 눈앞의 인물이 할아버지와 같은 연령대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럼 제가 할머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죽인다.
“누님으로 정정하겠습니다.”
웃으면서 뿜어내는 살기에 숨이 멎을 뻔했다.
코코아는 이미 눈알을 부라리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경지였다.
“험험, 미혼인 아가씨를 할머니라고 불러서야 쓰나.”
“…….”
할 말은 많았지만 목숨은 귀중하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다음부터 이어질 말은 극비사항이니 혹시라도 어디 가서 떠들지 말도록.”
꿀꺽!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되겠다는 생각에 노아뿐만 아니라 카밀라 또한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며칠 전 광휘제는 제국에 있는 모든 마스터 나이트에게 극비 명령을 내렸다. 자세한 내용은 설명할 수 없다만 아마 나를 비롯한 마스터 나이트들은 한동안 바빠질 거야.”
“그 말씀은…….”
“그래. 빈센트 놈에게도 뭔가 전해졌겠지. 초승달 군도에 처박혀 있는 나까지 불러낼 정도니 말이야.”
노아는 이전 테오도르와 이야기를 마친 코코아가 집행관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며 나왔던 걸 떠올렸다.
‘은퇴한 집행관까지 다시 불러들이는 건가?’
황제의 집행관은 오로지 황실의 명만을 따르는 일종의 어사와 같은 직책이었다.
제국은 너무 거대해 모든 기사들을 하나의 체계로 묶을 수 없을 정도였고, 그에 따라 일개 가문이 국가 규모의 병력을 소유한 경우도 존재했다.
집행관은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확고한 충성심과 강력한 무력이 필수적이었다.
즉, 마스터 나이트거나 그에 준하는 실력자만 오를 수 있는 최고위 관직인 것.
“내가 자리를 비울 경우 카밀라 네가 달의 사원 총책임자가 된다. 앞으로 자리를 비울 일이 많아질지도 모르니 너는 알고 있어야지.”
“그럼 저는요?”
카밀라야 그렇다 쳐도 노아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이유는 뭔가?
노아가 빈센트와 연관이 있긴 했지만 극비 사항을 알려줄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애매했다.
“초승달 군도의 대무녀에게는 무명검술서의 계승자에게 전해야 할 약속이 있다.”
“약속이요?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당연하지. 이건 빈센트 놈이 아니라 무명검술서의 주인과 한 약속이니까. 설마 아직도 네 검술을 빈센트가 혼자 뚝딱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집안이라는 리히테나워 가문은 8대 가문의 일익.
8대 가문의 검술은 모두 같은 ‘정도’로 분류될 만큼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오랜 시간 갈고닦인 검술에서 보이는 필연적인 특징들.
‘하지만 내 검술은 아냐.’
리히테나워가의 검술이었다면 광휘제가 따로 할아버지에게 이 검술을 완성하라고 시킬 이유도 없었다.
“빈센트 녀석은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검술을 완성하겠다고 약속하곤 그대로 틀어박혀 버렸지. 나는 초승달 군도를 버려두고 떠날 수 없었기에 다른 걸 약속한 거고.”
“도대체 무명검술서의 주인이라는 게 누구기에……?”
마스터 나이트들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일 정도라면 그 본인도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코코아는 아직 노아에게 약속의 내용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
“궁금하면 탑 소드 정도는 우승하고 와라. 이런 대회도 우승하지 못하는 녀석에게는 아직 이른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