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129
0129 / 0343 ———————————————-
화산지회
태월하의 말은 일순간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시할 정도의 말이다. 하지만 그와 직접 생사를 걸고 대결을 벌인 나로써는 그 말의 의미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두 종남 검사(劍士)가 반검(半劍)을 들고 마주보는 침묵이 지속되었다.
나는 그가 나를 경동시키려는 게 아닌지 살폈다. 지금까지의 대결은 보기드문 백중세. 내 마음을 흩트려서 승리하려 해도 이상한 건 아니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월하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 백 년 전… 나는 종남파 일대제자로써 천겁령과 싸웠다.”
태월하는 먼 옛날의 일을 회상하듯 운무짙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후회와 애상이 깃들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던 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 각지의 뛰어난 무재(武材)들이 사문의 성패를 걸고 마도들과 결전을 벌였지. 그 흐름은 영명한 구파라 해도 피할 수 없었다. 종남파는 다행히 천겁혈신 위천무의 직접공격은 받지 않았지만, 그 휘하부대때문에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 ……”
태월하는 다른 자들과는 다르게 ‘그’라 칭하지 않았다. 태연하게 명호 전체를 불렀다. 아마 직접 맞닥뜨린 적이 없어서 공포가 덜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위천무의 신위는 여러 번 목격했을 텐데 저렇게 말할 수 있는 배짱이 대단했다.
” 내 동기와 선배, 후배를 합쳐서 50여 명… 그 모든 자가 대전이 시작된지 3년만에 일곱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 지옥도에서 살아나온 건 순전히 종남파에 암암리에 전해지는 유운검법 검정중원 덕분이었지.”
” 전해졌다고!!”
나는 나도 모르게 경호성을 터뜨렸다.
나는 홀로 터득한 후에야 그것이 검정중원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터득하기 전에는 단지 신비에 싸여있는 무공인 줄 알았다. 설마 암암리에 전승되고 있었다니!
태월하가 흐릿하게 웃었다.
” 종남파의 내공은 구파 중에서 상위에 속하지만 검법과 무공자체는 구파 절정고수 수준에서 좀 떨어지는 편이다. 그런 종남파가 크게 흔들림 없이 현상유지를 할 수 있는 것은 숨겨진 힘이 저변에 존재하기 때문…
그래, 나도 ‘최종전력’으로 키워졌었다.”
구파의 비사가 흘러나왔다. 다른 구파와는 달리 종남파는 겉으로 내보이는 힘과 진짜 전력을 구별해서 키우는 편이었다. 일정수준 이상의 무재는 장로나 장문인으로 내보이고, 그를 뛰어넘는 인재가 나오면 종남파 무공에 숨겨진 진수(珍髓)를 전한 것이다.
그래서 태월하는 천겁령과의 싸움에서 출정할 때 이미 나 정도의 수준이었을 것이다. 아마 암부(暗部)로써 어둠에서 싸웠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천무삼성등의 그림자가 되어서 싸운 인물이다.
태월하는 예리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 너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있었다. 종남파 백 년 이래 최고의 귀재. 그 성취속도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바람에 내부에서도 얘기가 많이 오갔다. 섣불리 종남파 수호부대 검군(劍君)의 수장으로 키우자는 말도 있었지.
하지만 그건 내가 반대를 했고, 그래서 네가 천무학관으로 오게 된 것이다.”
태월하의 겉모습은 율령자의 하나일 뿐이지만, 실질적인 배분은 종남파 최고어른이자 최강의 고수다. 그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장문에 필적하는 게 분명했다. 나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신기해졌다.
” 어째서?”
” … 이런 이유다.”
태월하는 고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검을 들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절반으로 부러져 있었다.
” 지난 백 년간 나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천무삼성에 필적하는 수준이 되려 했으나, 결국은 검존(劍尊)을 한 수 앞선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것이 종남파 무공에 존재하는 한계다.”
” 한계라니…”
” 종남파의 무공은 내외상조(內外相助). 육합귀진신공 모두를 고루 익혀서 3가지 이상을 합일하지 못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천무삼성을 추월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그런 내공을 터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세월이 지나면서 내공의 진척이 느려지는 것까지 생각하면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다. 종남파의 내공은 구파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심후하지만, 그 탓에 검법도 내공의 성취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인간이 태어나서 보고받은대로 내공을 쌓는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네가 검군(劍君) 오인방의 수장이 되었다면 종남파는 향후 이십년간 최고의 성세를 누릴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네 재능에 기대를 걸었다. 내가 느꼈던 한계를 부숴줄 만한 인재는 너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를 천무학관에 넣은 것이다.”
” ……”
검군은 총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아마 그들 하나하나가 최절정고수일 것이다. 나는 그의 말에 고요히 대답했다.
” 고마운 일이군. 허나 무슨 수로 내가 한계를 부술 수 있다는 것이오?”
태월하는 반검을 치켜들며 말했다.
내 말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나는 네게 걸었던 기대를 버리도록 하겠다.
그리고 보여주겠다.”
그의 눈이 벼락불처럼 번뜩였다.
” 종남의 어둠이란 이름으로 짊어졌던 백 년의 궁구(窮求)를!!”
구웅
나는 주변 대기의 압력이 달라진 걸 느끼고 긴장했다. 태월하가 발출해내는 기세는 지금까지와 확실히 다르다. 전력을 다하는 정도가 아니다. 무언가 엄청난 것이 날아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태월하의 코와 입에서 마치 빛과 같은 숨결이 토해졌다. 반개한 눈에서 광채가 흘러나오고 전신이 오색의 강기로 뒤덮였다. 아마 태월하는 내가 익힌 것과는 달리 칠음진기(七陰眞氣), 태을신공(太乙神功), 태진강기(泰眞罡氣)를 중심으로 연마한 것 같았다.
동시에 검에서 기세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그의 단전이 거대한 흐름에 섞였다. 그의 상중하단전이 관통하듯이 힘을 모았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그만 격동하고 말았다.
” ……!!”
천지를 꿰뚫는 중심!
상중하의 조화!
무(武)에서 이상적인 경지로 꼽는 것이다.
설마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볼 줄은 몰랐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태월하는 지난 세월동안 자신을 연마하기 위해서 별도의 검기를 연마하지 않고, 저 [중심]을 만드는 데 전력을 쏟았다는 사실을. 태월하 앞에서는 천하의 무신마라고 해도 내공을 앞세울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태월하가 검을 허공으로 던졌다.
육의육신류(六意六神流)
궁기식(窮祈式)
” 무상(無常).”
그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나는 전신이 벼락같은 깨달음의 희열에 떨리는 것을 느꼈다. 태월하의 공격은 내가 인식할 수도 없을 정도의 찰나에 이루어졌다. 태월하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수천 개의 검이 허공에 떠오르고, 어느 순간 내 전신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의념(意念)만으로 만들어진 무기(無氣)이자 무기(無機)의 폭우.
이 앞에서 생물체는 절대로 살아날 수 없다.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상대방의 절대의지에 저항해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죽음을 선고하는 듯한 압도적인 악의(惡意) 앞에 전신이 찌그러든다.
나는, 죽은 건가.
이제야 죽은 건가.
그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해 눈을 감아버렸다.
눈 앞의 상황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그것이 [오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