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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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일
그런 기억이 있다.
[ 보통 인간이라면 주먹을 쥐기도 전에 미쳐버리거나 생각하기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소리조차 없이 정적만이 흐르는 것을 삼 년씩이나 유지하는 것은 제정신으로 할 일이 아니었다.그러나 나는 이미 이런 경험이 지독하게 많았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열 배의 시간속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劍)에 대한 일심으로 수련하던 경험에 비하면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비록 터무니없이 많은 노력이 든다고 할지라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저 묵묵히 반복할 뿐이다.
한 번 두 번, 백 번 천 번 정도로는 질리지 않는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에 내가 질릴 정도라고 한다면 그건 수천억, 수조번이나 반복하는 경우겠지.]
뭔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괴이(怪異).
그 사이에 축적된 나라는 인간의 광기.
그것이 무의식에서 떠올라서 혼잡하게 어그러진다.
내공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내공을 회복하고 진원진기를 회복하는 데 힘을 쏟을 수도 있었지만, 겨우 두 손을 쥐는데 어마어마한 시간을 소비하는데 그런 건 꿈도 꿀 수가 없는 일이다.
우선은 차근차근, 전신을 움직여서 한 걸음을 내딛는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고요한 광기(狂氣)가 느껴진다…
그 광기가 내 정신을 잡아먹을 듯이 치솟아 오른다.
나는 이 괴이한 기억을 바라보면서 끝없는 고통이 나락에서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볼 수 없는 나락의 끝, 거기에 나란 인간이 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세포단위로 분해되어서 – 피죽처럼 변해서 널부러져 있는 것이다.
죽어 있는 나 자신은 웃고 있다. 피죽처럼 되어 있어도 행복하다.
그래. 나는 무의 극한을 보았어.
인간성같은 거, 알 게 뭐야?
정말 알 게 뭐냐.
빌어먹을.
고민은 해도 신경 쓸만한 건 아니라고.
이윽고 내 몸은 해골이 되고, 가루가 되어서 흩날렸다. 흔적이라곤 남지 않았다.
원래부터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내공과 진원을 회복하면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내공을 한올한올, 평소에는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적은 단위를 움직이다보니 알게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껏 쌓아왔던 육합귀진신공 사이의 충돌이었다.
충돌이라고는 하지만 평소에는 거의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미미한 차이였다. 그러나 내공이 다섯 개나 있다보니 사이사이의 불협화음이 증폭되어서, 그대로라면 50여년 이내에 산공(散功)당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이미 내공에 큰 구애를 받는 경지는 아니었지만, 한 번 산공당하면 지금처럼 진원진기를 손상하고 단전을 크게 다쳤을 때보다 더욱 큰 부작용이 찾아온다. 그때는 평생이 걸려도 전성기의 공력을 절반도 회복하지 못할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내공을 더욱 더 정순하게 다듬기 시작했다. 일백여 년 이상 수련했음에도 깨닫지 못했을 정도로 조그마한 차이를 메우고 또 메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다섯 개의 커다란 덩어리가 꽉 차 있었다면, 이제는 틈조차 없을 정도로 그릇을 넓히고 덩어리를 융화시켜버릴 생각이었다. 지금껏 받아들이지 못했던 태진강기조차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그릇을 만들어야 했다.
” 힘내자.”
어느 새 짧지만 말도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나는 그 기억과 나락과 끝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아아.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원념과 무념(武念)이 실체를 이룬 것이구나.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지금까지와 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과 쾌락이 동시에 덮쳐 왔다. 쌓여가는 열흘의 하루에서 느껴가는 성취감은, 마약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쾌락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권태와 욕정, 그리고 고통….
그 모든 것이 무의식을 붕괴시키면서 늘어진 풍선처럼 터질 것 같다.
내 의식은 부숴진다. 모든 것과 함께 부숴진다.
아무 가치도 없이 터져버리고 만다.
795년에 이르는 원념과 무념. 그리고 폐쇄당한 욕정과 갈망…
그리고 고통.
그 광기는 소란스럽지도 시끄럽지도 공포스럽지도 사납지도 않다. 심해를 떠도는 괴어처럼 유유히 무의식을 헤엄치면서, 고요하게 [무념]이라는 이름의 광기를 쌓아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하자 기분이 탁 풀려서 미친듯이 실실 웃었다.
히. 히. 히. 히. 히.
아. 하. 하. 하. 하. 하.
내 안에는, 이런 괴물이 살고 있었다.
유천영이라고 하는 괴물의 안에는 또 다른 괴물이 살고 있었다.
나에게 죽어 저승에 간 자들이여, 이것을 보라.
내 안의 괴물이 이만큼이나 커져있다.
충분히 너희들의 원념을 달래줄 만 하지 않은 것인가.
” 으흐흐흐흐.”
그렇게 실실 웃다가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다. 내게 죽어나간 자들의 원념과 고통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 으흐.. 흐흐허허허…. 미안해. 미안해….”
억울하고 분한 이유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무의 한계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무념의 광기에 중독된 채로는, 무(武)의 신(神)이란 놈이 한계를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전혀 그렇게 생각할 이유 따위는 없는데도,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고 싶지 않아.
분명히 몇천번, 몇만번이고 반복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텐데도, 지고 싶지 않아.
차라리 이 세상이 거짓이었으면 좋겠다. 영원히 반복해도 좋으니까, 내게 단 한 번의 완성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신이나 기적따윈 어찌되어도 좋으니,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그렇게 포기할 수 없는 내 자신에 절망해서 다시 한 번 피눈물을 흘렸다.
그 무수한 무념을 품은 채로 – 나는 흐리멍텅하게 걸어나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도, 나는 걸어가는 것 만큼은 할 수 있다. 아무 생각이 없어도 무의 극한에 대한 갈망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나 자신이다.
수백만 개의 시선이 거울처럼 비쳐서 나를 꿰뚫어보듯이 쳐다보는 것 같다. 그것 하나하나가 내 자신이라는 느낌이 든다. 전신이 발가벗겨진 느낌때문에 이를 악문다. 수치심은 중요하지 않지만, 왠지 그들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무의식에서도 나락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의 끝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그는 낡은 삿갓을 쓴 채, 투명하고 아무것도 벨 수 없는 검을 안은 채 보리수나무 밑에 걸터앉아 있었다. 삿갓이 크고 옷이 펄렁거려서 그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단지 그에게서 한도끝도 없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 生死若爲論欲會箇生死
顚人說夢春 ]
그 열 다섯 글자가 끝이었다.
왠지 삿갓 아래의 얼굴이 맑게 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자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길고 긴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 잠은 너무나 깊어서, 설령 바로 지금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순간 –
내 머릿속에서 무상무의결이 구슬 꿰듯이 관통해서 이해가 되었다.
” 아!”
一粒粟中藏世界(한알의 조 알갱이 속에 세계가 감춰져 있고)
半升金當內煮山川(반 되 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는다)
극히 작은 공간 속에 감춰져 있는 세계 – 그것은 그저 인간의 상상력과 의기(意氣)를 뜻할 뿐이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 모든 게 존재할 수가 있다. 의념을 다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이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여겨야 한다.
즉 현실감각을 초월해야 한다.
그리고 제일 빠른 길은 바로 꿈(夢)과 다름없었다. 이 무의식의 세계에서 무념의 광기를 버텨내기 위해 씨름하는 도중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의기를 체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뜻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존재하지 않는 검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종래에는 하늘을 찢어버리거나, 번개의 신을 불러올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절대경지에 이제 완전히 한 발을 걸치게 된 전율이 일어났다.
饒究經得八萬劫(당신이 설사 팔만 겁을 지내왔더라도)
難免一朝落空亡(하루아침에 공망에 떨어지는 것을 면할 수 없다)
이것은 내가 거쳐왔던 경험과 신념을 마냥 믿고 있다면, 지금부터의 무학단계에서 크게 좌절할 것이라는 경고나 다름 없었다. 이 세계에서 무념의 광기를 지켜보는 도중에 그 무서움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없었다.
모로 가도 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 그 삐걱거림이 심해진다면, 결국 목적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순간에 원구처럼 서로 뒤섞이고 녹여가던 온갖 검학(劍學), 검술(劍術)들이 실에 꿰듯이 연결되어서 크게 타원형을 이루었다. 그리고 마침내 종남파 검법을 크게 관통하는 하나의 이치를 발견해 낼 수 있었다.
비록 아직까지 내 수준이 부족해서 발현할 수는 없지만, 이 이치를 진정으로 깨달을 때 – 나는 비뢰도와 겨루어도 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정신을 갈무리하면서 천천히 무의식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 ……”
빠져나왔을 때는 채 1초도 지나지 않았다. 태월하의 미세한 움직임은 그대로였다. 내가 무념의 광기를 느끼고 발악한 것은 체감상 십여 년에 이르렀지만, 원래 세상에서는 눈 깜박일 시간밖에 흐르지 않은 것이다.
나는 깨달음을 내면에 점착시키면서 천천히 손을 뻗었다.
태월하의 시선이 닿이는 순간, 나는 십여 개에 이르는 모습없는 검을 허공에 띄워냈다. 그 모습을 본 태월하가 혼이 나갈 정도로 놀라면서 외쳤다.
” 터득했는가!”
” 그렇소.”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물었다.
” 무상무의결은 – 혹시 사부가 지은 것이오?”
” 아니. 이건 그저… 으음.”
태월하는 멋쩍어하면서 대답해 주었다.
” 세간에 떠도는 팔선전(八仙傳)에 나오는 절구일 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종남파 창립 이래로 입에서 입으로, 이 경지를 설명할 때는 매번 이 절구가 쓰였다. 참고로 검선(劍仙) 여동빈(呂洞賓)의 이야기일세.”
” 그렇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또 다른 경지에 발을 올리게 되자,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들이 모두 달라 보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마침내 내가 깨달은 종남검 최종오의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 그러하면, 천둔(天遁)이라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