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15)
먼치킨 길들이기 115화
* * *
에이얀은 구 형태의 어둠으로 시선을 돌렸다. 셀테어는 저 안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셀테어를 잡아 두기 위해 힘을 제어하던 그의 관자놀이 옆으로 식은땀이 방울져 떨어졌다.
‘저항인가.’
제 힘이라 말하던 것이 허언은 아닌 모양이었다.
에이얀은 가슴께를 어루만졌다.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초조한 긴장감에 버릇처럼 팔찌를 매만지면서도 쉬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언제까지 힘을 제어할 수 있을지.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는 키네미아가 이렇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괜찮을지.
모든 게 무사히 끝나도 달라지는 건 없을지.
그 찰나의 흔들림 속에서-
“……?”
어둠을 찢고 비늘이 잔뜩 뒤덮인 팔이 빠져나왔다.
에이얀은 곧장 셀테어의 팔을 잘라 냈다. 그러나 제 몸을 가둔 어둠의 간섭이 사라진 셀테어는 찰나의 기회를 허비하지 않고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다.
* * *
키네미아는 손에 잡힌 유리 조각을 휘둘렀다.
“갸아아아악!”
유리 조각에 목을 베인 분신이 키네미아에게서 떨어졌다.
됐다. 키네미아가 눈을 빛냈다.
‘서북쪽, 1미터.’
그녀는 심장이 있던 곳을 가늠해 엎드린 채 몸을 움직였다.
‘단 한 번이면 돼.’
그때 겨우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에 무언가의 신형이 떠올랐다.
킁.
그것은 코를 찡긋 움직이며 키네미아의 냄새를 맡았다. 분명 눈가리개를 한 사람의 윤곽이었다.
‘셀테어?’
키네미아가 그에게서 피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셀테어가 어떻게 여기에?’
설마……. 온몸의 핏기가 빠져나간 듯했다.
셀테어를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가빠지자, 셀테어의 손이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그 순간이었다.
챙!
갑작스레 생성된 얇은 결계에 부딪친 용의 팔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끄아아악!”
셀테어의 괴성이 귀를 찢을 듯 달려들었다.
“……!”
바닥으로 떨어진 셀테어의 손이 휘적거리며 키네미아의 발을 붙잡아 왔다.
키네미아는 발에 차이는 손길에 뒷걸음질 치며 벗어났다.
이후로는 온통 소리뿐이었다.
우득, 우드득, 비틀리고 터지는 소리.
셀테어의 몸이 다시 재생되면서 끓어오르는 거품 소리.
그와 함께 지독한 피 냄새까지 퍼지니, 눈으로 보는 것보다 강렬한 압박감과 공포감이 심장을 죄어 왔다.
한데 그때, 돌연 짙게 깔려 있던 어둠이 좌우로 흔들렸다.
“……에이얀?”
에이얀이라는 확신이 들자 홀린 듯 멈춰 서 있던 키네미아가 유리 조각을 다시 꽉 쥐었다.
어느새 압박감과 공포감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갑작스레 어둠이 가시고 눈앞에 붉은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네미아는 곧장 유리 조각을 머리 위로 높게 들어 올렸다.
챙그랑-!
셀테어의 심장이 산산이 부서졌다.
* * *
9층의 사막. 벤자민이 구현한 수많은 빛의 화살이 쏟아지던 순간이었다.
화르륵, 허공에 불이 타오르며 탑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1. 키네미아 리온 : 9,999,999,999점‘키네미아 리온’에 의해 수련의 탑 해방 완료.]
“어떻게 대공녀께서 10층에…….”
“이게 대체…….”
벤자민과 울프만이 설명을 바라듯 쉔 티엔과 로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둘도 마찬가지였다. 담뱃대를 든 쉔 티엔은 혼이 나간 듯 입을 벌린 채였고, 로우는 잘 모르겠지만 역시 요정님이라며 어색하게 박수를 치는 중이었다.
한편 9층에서 대기하던 참가자들도 믿을 수 없는 상황과 무시무시한 점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탑이 해방? 해방됐다고?”
“키네미아 리온?”
이해할 수 없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지만, 딱 하나만큼은 명확했다.
“탑의 주인이 쓰러졌다!”
9층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 * *
“하아, 하아……. 후우-”
키네미아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어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결 밝아진 미궁의 중심은 붉은 카펫이 깔린 작은 밀실이었다.
손에 들린 깨진 유리 조각을 보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셀테어도, 분신도 보이지 않았다.
‘……죽어서 사라졌나.’
스르륵. 다 끝났다는 생각에 힘이 풀려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아 숨을 고르던 때였다. 상단에 화르륵 불이 타올랐다.
[1. 키네미아 리온 : 9,999,999,999점‘키네미아 리온’에 의해 수련의 탑 해방 완료.]
‘저건 대체 뭐야.’
내가 1등이라도 됐다는 건가? 키네미아가 멍하니 탑의 메시지에 시선을 고정한 사이였다.
뒤에서 타박타박,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손 까딱할 힘도 없어 그가 다가오길 기다리는데, 발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좀처럼 다가서질 않았다.
“에이얀.”
키네미아는 지쳐 늘어진 어깨로 그를 돌아보았다. 두 팔을 편 채 부축해 달라는 신호를 보내자 그에게서 설핏 안심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키네미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에이얀이 미간을 좁혔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피가 흥건한 제 무릎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쳤어?”
그에 키네미아가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걱정해야 할 사람이 누군데……. 걱정을 받아야 할 사람이 도리어 제 무릎의 상처가 세상에서 제일 걱정스럽다는 듯 보고 있는 상황이라니.
그래도 걱정해 주는 모습이 좋아서 차마 투덜거리지는 못하고, 키네미아는 조심스레 제 무릎의 피를 닦아 내는 에이얀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잠잠하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새카만 눈동자를 마주치자 기묘한 감각이 들끓듯 차올랐다.
“그야 난 네가 뭘 가졌든,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으니까.”
에이얀이 한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감정의 이름은 무엇이라 불러야 좋을까.
찌르르, 온몸에 전기가 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두방망이질 쳤다.
지금 당장 에이얀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내가 네게서 무엇을 느꼈는지.
네가 기뻐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나는 너와 같은 감정을 가진 것 같다고.
키네미아가 일어서려는 에이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 있잖아.”
“응?”
에이얀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또 어디 아파?”
“아니!”
“상처는 내려가면 연금술사가 봐줄 거야. 조금만 참아.”
“아니, 잠깐만.”
막상 하려니까 제대로 못 하겠는데! 키네미아는 봇물처럼 아무렇게나 터지려는 말을 고르고 골라, 처음부터 정리하기 위해서 화두를 띄웠다.
“에이얀, 이제 솔직히 말해 봐.”
에이얀이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 왔다.
“5년 동안 사라졌던 게 이것 때문이었어? 네가 특별해서?”
에이얀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투로 되물었다.
“그렇다고 하면?”
아. 침묵 속에서 키네미아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거리를 두듯 냉랭한 대꾸에 다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키네미아는 큼, 목을 가다듬고 말을 돌리듯 물었다.
“그, 그럼 어떻게 다시 마탑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거야?”
이 질문을 꺼내면서 그녀는 몇 가지 대답을 떠올렸다.
내가 보고 싶어서 열심히 수련했다든지…….
상상만 해도 창피하긴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의 입에선 전혀 상상하지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꼭 들어야겠어?”
“응?”
미간을 찌푸린 에이얀이 입을 가렸다.
뭐지. 왜 그렇게 되묻는 거지? 묘한 예감에 키네미아가 마른 입술을 축였다.
“응, 꼭 들어야겠어.”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뭔데.”
재촉하듯 묻자 입술을 깨물던 에이얀이 말했다.
“계약을 걸었어. 부득이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계약 마법? 키네미아가 와락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도 계약이 어그러지고 있으니 보수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키네미아가 무심코 주먹을 말아 쥐었다.
“……뭘 걸었어?”
에이얀은 입을 다물었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미아, 잠시만. 먼저 내 얘기 좀 들어 줘.”
“대답부터 해. 뭘 걸었는데.”
그 대답을 알 것 같아서, 키네미아의 입꼬리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들떠 있던 마음이 다시 나락으로 처박히는 기분이었다.
“죽는 거야?”
키네미아가 눈을 내리깔았다.
까마귀가 날아가던 그날. 보고 싶었다고 수없이 속삭이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탑 밖으로 나오고 싶었던 이유라면 짚이는 것은 한 가지뿐.
“……나 때문에?”
“…….”
돌아오지 않는 대꾸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휘발됐다.
과거, 신전에서 나부끼던 리온의 깃발이 머리를 세게 치는 것 같았다.
자는 것처럼 보였던 관 속의 엄마.
소나기처럼 울던 아빠.
손가락 끝까지 빼곡하게 화가 치밀어올랐다.
“지금껏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하고?”
아무것도 몰랐다. 숨이 가빠지고 눈앞이 캄캄하던 그 순간이 내내 옆을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울컥,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울먹이는 목소리가 부지불식간에 내뱉어졌다.
“네가 말한 사랑이 이런 거야?”
무심코 튀어나온 말에 키네미아가 제 입을 틀어막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