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52)
먼치킨 길들이기 52화
“퍽 기이하구나. 옥오지애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진대.”
쉔 티엔은 이제 갓 17살이 된 소녀가 그 흔한 로맨스 하나 꿈꿔 보지 않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에 키네미아는 짧게 답했다.
“저희 아빠가 그 본능 탓에 가셨잖아요.”
선대 리온 대공은 정말이지 나쁜 선례였다.
“음…….”
눈을 옆으로 데구루루 굴린 쉔 티엔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아버지가 치정 싸움의 중심에 섰다가 칼침을 맞았다는데 대꾸해 줄 말이 없었다.
좋은 곳에 가셨을게다? ……갔을까?
“날이 덥구나……. 막 땀이 나네.”
하나 벌써 초가을이었다. 날씨는 이미 추워지고 있었다. 쉔 티엔은 바람이 불자 벗으려던 가운을 다시 챙겨 입었다.
다행히 쉔 티엔의 스트립쇼에 큰 관심이 없는 키네미아는 굳게 호미를 쥔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아빠, 하늘에서 지내는 건 어떠세요? 거기까지 따라간 여자는 없는 거죠? 딸내미는 절대 사랑 따위 하지 않을게요.
고작 남자 때문에 인생 망칠 수는 없잖아.
아빠의 죽음 이후, 눈에 좋은 남자는 몸과 마음과 재산에 나쁘다는 게 절대 진리처럼 키네미아의 가슴에 새겨지고 말았다.
그때, 쉔 티엔이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윽, 소리를 내며 술병을 숨겼다.
“……?”
키네미아가 시선을 돌렸다. 한 인영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장신에 근육으로 둘러싸인 단단한 몸. 표범같이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미남.
그는 키네미아를 발견하자 사르르 표정을 녹였다.
“요정님! 오늘도 인형 같으십니다!”
교단의 끄나풀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로우였다.
“로우! 로우는 오늘도 배우같이 멋있어!”
꺅, 꺅, 로우와 키네미아가 손을 맞잡고 뱅글뱅글 돌았다.
사흘에 한 번꼴로 만나면서 번번이 뭐가 저리 반갑고 좋을까.
이를 못마땅하게 보던 쉔 티엔이 키네미아를 달랑 안아 들었다. 성장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여도 타고난 형질은 이길 수 없었던 자그마한 키네미아가 쉔 티엔의 품에 들렸다.
“둘 다 떨어지거라. 남녀가 유별하거늘.”
으름장을 놓았지만, 키네미아와 로우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렇지만 로우랑은 그런 사이가 아닌걸요. 그렇지?”
“저는 요정님께 그런 음심은 품지 않습니다.”
짝짜꿍을 맞춰 말한 로우가 쉔 티엔에게 경멸에 찬 시선을 보냈다.
“무슨 불순한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불순한 생각이라니!”
“유리구슬처럼 투명한 저희 관계를 어떻게 상상하시는 건지.”
유리, 뭐?! 쉔 티엔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여기서 나만 이상한 사람이야?!”
“이제야 아셨군요.”
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쉔 티엔이 눈을 홉떴다.
“그런데 요정님. 자령초 재배는 아직 성공 못 하신 겁니까?”
“응……. 전부 시들었어…….”
자령초는 레드둠을 치료하기 위해 던전을 몇 개씩 구매해 어렵게 모은 약초였다. 던전 안에서만 채집할 수 있는 희귀 약초였기 때문이다.
던전을 공략할 때 수고해 준 건 역시 흑야 길드였다.
“역시 던전 안에서만 자라나 보군요.”
“그렇다고 던전에서도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령초 재배가 돼야 레드둠 완전 공략이 가능한데 말이지…….’
대공령 안에서야 모두 잡혔다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아직도 레드둠이 기승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제들은 부유층을 우선 순위로 치유했고, 순위가 밀려난 이들은 여전히 위험에 놓여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도 연관된 일이니, 키네미아로서도 치유 포션을 양껏 만들어 판매하고 싶었지만-
‘얘가 계속 문제네…….’
포션을 만들기 위해선 이 자령초라는 희귀 약초가 필요했다.
물심양면 돕는 사람들과 함께 이것저것 시도해 봤으나, 전부 실패.
희귀템이 괜히 희귀템이겠는가. 얻기도 힘들뿐더러 환경이 달라지면 재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희귀한 거지.
힝. 흐늘흐늘해진 키네미아가 다시 호미를 들고 쪼그려 앉았다.
호미로 바닥을 푹 찍자, 고슬고슬 갓 지은 밥처럼 보드라운 흙 사이에 호미 끝이 쿡 박혔다.
“여기에 심으시게요?”
“마지막으로 동대륙 기운이라도 얻어 보라고 여기서 심어 보는 중이야. 한약 냄새 맡으면 좀 건강하게 자랄 맘이 들까 해서.”
보면 농부들이 식물이 잘 자라도록 노래를 틀어 준다거나, 칭찬을 해 준다거나 하지 않던가.
뭐, 거의 믿음에 매달려 보겠다는 마지막 발버둥 같은 것이었다.
그러자 로우가 음, 하고 침음을 흘렸다.
“왜?”
“요정님, 포션 냄새는 약초를 달인 냄새 아닙니까.”
“응응, 그렇지.”
로우가 정말 안타깝다는 투로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자령초 입장에서는 그 냄새가 동료들의 사체 냄새가 되는 게 아닐까요?”
“핫……!”
키네미아가 눈을 떨었다.
그런가? 지금 내가 혜민원이라는 약초들의 도살장 앞에서 자령초를 키우려고 하는 건가?
“자령초에게는 좋은 환경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개를 저은 로우가 키네미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거라니…….”
키네미아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상심하지 마세요.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니잖습니까.”
“응…….”
“잘 말하면 들어 줄 거예요.”
“……과연 그럴까?”
로우보다 어렸지만 살짝 더 찌든 영혼이었던 그녀가 의심스러운 기미를 보였다.
“그럼요.”
로우가 순하게 웃음을 지었다. 눈부셔! 키네미아가 그 미소를 보며 모난 마음을 정화시켰다.
그래, 이제 남은 건 믿음의 영역밖에 없잖아.
“잘 말해 볼게!”
“저도 돕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
한편 그들의 꼬라지를 보던 쉔 티엔이 눈매를 좁혔다. 약초 하나 키우겠다고 뭘 하는 건지.
이제 저 둘은 쪼그려 앉아서 ‘자령초야, 미안해.’ 하고 속삭이는 중이었다.
‘저 상놈은 매번 애한테 별무소용한 거나 가르치고 있으니.’
키네미아가 약초에게 사과를 하며 두 손으로 호미를 잡고 흔드니 팔에 달린 팔찌가 달랑거렸다.
검은 달처럼 생긴 펜던트가 손목에서 팔로 내려가자 쉔 티엔이 흘깃 눈길을 주었다.
‘저걸 아직도 차고 다니는군…….’
5년 전, 갑작스레 마탑으로 돌아간 그 싱 카칸보다 미친놈이 준 팔찌라고 했던가. 그놈은 키네미아를 쫄래쫄래 쫓아다니며 깽판을 부리고 다니던 것과 달리, 지금껏 연락 한 번이 없었다.
마탑에 전령을 보내도 에이얀은 잘 지낸다는 마탑주의 답신만 돌아왔다고.
‘그럴 놈이 아닌데……. 하긴, 마탑으로 돌아간 것도 의외긴 했지.’
키네미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웃었지만, 씁쓸한 기색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잘됐지. 곁에 둬 봤자 득 될 놈은 아니니.’
고개를 내저은 쉔 티엔이 자령초를 사이에 두고 꼼지락거리는 둘에게로 다가갔다. 키네미아에게 이상한 것 좀 가르치지 말라고 할 셈이었다. 저게 뭐라고 풀떼기에게 사과를 하나.
“아가, 풀은 그런다고 안 자란다.”
자랄 리가 있나. 풀은 풀이다. 물과 흙, 태양과 온도가 중요한 거지.
그런데 그때, 키네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것 보세요. 새싹이 난 것 같아요, 오라버니.”
“뭐?!”
“여기요. 1mm 정도.”
키네미아가 도라지 같은 자령초 뿌리의 머리 부분을 가리켰다. 뭔가 잇몸 사이에 사랑니가 살짝 보이는 것처럼 움튼 싹이 보이는 것도 같고…….
……진짜라고?!
“역시 자령초도 요정님의 진심을 알아주는 겁니다.”
“던전 태생이라 그런가?”
“뭔가 달라도 다른 거겠죠.”
둘이 재차 짝짜꿍을 맞추는 사이 쉔 티엔이 입을 벙긋거렸다.
거짓말!
거짓이다!
진심을 알아준다니, 그런 바보 같은 풀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건 상놈의 삿된 술수다. 신의 술을 찾기 위해 수많은 풀떼기를 키워 본 자신이었다. 아무리 서대륙이라 해도 이럴 수는……!
“오라버니도 해 보실래요?”
“사부님께서도 해 보십시오. 더 클지도 모르잖습니까.”
순진무구한 둘의 눈빛이 쉔 티엔을 향했다. 술과 연초와 속세에 찌든 최연장자가 순백의 미소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 이 몸을 농락하려 들지 마라! 어찌 풀떼기가 인간의 마음을 알겠느냐!”
“그럼 저희끼리 하겠습니다.”
로우가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한 번 더 권해 보기는커녕 키네미아와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속닥거렸다.
그에 쉔 티엔은 언짢은 표정으로 입을 샐쭉 틀어 올렸다.
그런다고 내가 할 줄 알고?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자령초야, 미안하구나.”
쉔 티엔이 키네미아 옆에 앉아서 ‘자령초야, 미안해.’를 중얼거렸다.
자령초를 집중해서 보던 키네미아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잘 안 자라네.”
“하루 한 번일 수도 있잖습니까.”
“처음부터 자랐다는 게 착각이었겠지!”
가운을 펄럭이며 쉔 티엔이 벌떡 일어섰다. 이 몸을 이런 바보 놀음에 끼어들게 만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