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01)
EP.202)꽃 아이라 # 3
202 – 교실의 꽃 아이라 # 3
세라자데가 들이닥쳤던 이후 평화로웠던 티파티가 발칵 뒤집어졌다.
“정말 무례한 계집이로군요? 멋대로 티타임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서 그런 도발을 하고 가다니…!”
평소 격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 미르나가 인상을 찌푸리고 부들부들 떨 정도면, 세라자데의 방문이 얼마나 큰 파급이었는지 잘 알겠지.
“야, 아이라. 한 마디 쏘아주기라도 해줬어야지. 왜 바보 같이 가만히 있었어? 이러니까 우리가 진 것 같잖아…!”
엘가도 무척 화를 냈다.
아이라가 세라자데에게 한 마디 쏘아주지 않았던 게 불만인 듯하다. 엘가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만 하지.
하지만 아이라는 나름 여유가 있었다.
“다들 진정하는 게 좋겠구나. 세라자데, 그 탕녀의 목적은 이렇게 분란을 내려는 거야. 잔잔한 호수 위에 돌을 던져보고. 그 파문을 즐기려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 아이라가 쥐고 있는 찻잔에 담긴 홍차는 미세하게 파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내가 아니라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의 작은 파란(波瀾).
아이라도 나름대로 분노를 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래도 아이라가 세라자데의 앞에서 크게 일거리를 키우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이라가 염동력의 포스 그립으로 세라자데의 목덜미를 움켜잡기라도 했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정말 끔찍해서 상상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찰랑, 찰랑.
다만 저 별 것 아닐 수 있는 파문이 유난히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야, 태오.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녀서 세라자데가 너한테 꼬리를 치는 거냐? 네가 평소 얼마나 흐트러지게 다녔으면 이런 일이 발생 하냐고.”
티파티 강의가 끝나고 잠깐의 공강 시간. 엘가가 나를 아무도 보지 않는 구석으로 끌고 가서 잔뜩 성질을 부려댔다.
“너, 그냥 여자라면 아무나 다 좋다 이거야? 걔는, 걔는 아무리 그래도 심하잖아!”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 엘가는 내가 세라자데에게 추파를 던졌고, 그것 때문에 세라자데가 내게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타국의 여제를 유혹하려고 한다니. 아무리 엘가라도 그것은 심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긴,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자칫 정치적이고 국가적인 사태가….
“걔는 어린애처럼 가슴이 작잖아! 님프나 다를 바가 없다고. 너 이 자식, 여자면 그냥 다 좋다 이거야?”
“…….”
가슴이 문제였구나.
“엘가 님, 엘가 님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세라자데 님을 유혹하거나 추파를 던지거나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 진짜로?”
엘가는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와 엘가 사이의 신뢰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었지만 나름 이해는 하는 게, 엘가의 앞에서 나는 하렘을 만들고 아이들을 잔뜩 낳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히 얘기했던 적이 있었으니….
그래도 맹세코 세라자데에게는 그런 계획을 세운 적이 없었다. 오면 막지 않겠지만. 먼저 손을 뻗을 정도로 여유롭지 않단 말이야.
아무튼.
엘가를 설득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내 진심이 닿은 건지 어느 정도 오해는 풀린 듯하다.
미르나에게는 또 어떻게 말하지?
아이라에게는?
연거푸 해명을 할 생각을 하니 조금 눈앞이 캄캄해 진다. 세라자데가 노렸던 것도 이것이겠지. 굳이 해명을 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작전이 절반 먹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원래 사람이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잖아.
다만 세라자데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아이라가 내게 보내는 신뢰는 생각 이상으로 깊다는 것이었다. 별 다른 해명이 필요 없을지도 모를 일.
실제로 아이라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샤워를 하고 편안한 잠옷으로 갈아입기까지 내게 어떠한 해명도 요구하지 않았다.
스르르 눈을 감는 아이라를 보며 다사다난의 하루가 이렇게 끝이나는군-이라 살짝 방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태오야.”
감겨 있는 줄 알았던 아이라의 눈이 어느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너도 혹시 그렇게 생각하니?”
“무엇을 말입니까?”
“네가 나 이외의 다른 여왕이나 지도자들의 아래에 있었다면.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이런 질문을 해오다니.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자신감 넘치는 아이라 님 답지 않으시네요.”
내가 알고 있었던 아이라라면 “당연히 내가 다른 누구보다 사람을 잘 부릴 줄 알고 대해줄 줄 안다.”라고 자신만만해하는 게 어울릴 텐데.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아이라는 어딘가 조금 불안해 보였다.
마치, 그녀가 지니고 있었던 속성 혹은 관성이나 견고한 틀이라고 하는 것에 살짝 금이 가서 깨지는 것처럼 보였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라도 인간.
얼마 전에 갓 성년이 되어 왕관을 머리에 짊어진 인간일 뿐이었으니. 때로 불안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정상이 아닐까?
어쩌면 아이라는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사건들로 독니에 물린 것처럼 감각이 얼얼했던 마네킹 같은 사람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지긋이-.
그런 와중에도 아이라의 올곧은 두 눈동자는 깜빡임 하나 없이 나를 마주하고 있어서, 나는 시선을 어디다 두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졌다.
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이토록 타인의 눈을 바라보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걸까.
저 눈에 나는 어떻게 비치고 있을지 몰라서 어쩐지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고, 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태오야.”
잠깐의 어색한 침묵을 깨고 아이라가 나를 불렀다. 예전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아이라는 이렇게 나의 이름 부르기를 좋아한다.
“너는 처음 봤을 때부터 다른 사람과 달랐지. 명예를 바라지도 않고. 높은 직위나 돈을 바라지도 않았어.”
“제가요?”
“그래. 그래서 나는 가끔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었거든. 대체 무엇이 너를 그렇게 내게 충성하도록 만드는지 말이야.”
“그야-. 당연히 아이라 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이미 보답을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저 같은 노예 출신을 가까이 기용해주시는 것만으로도….”
내가 말을 끝내지 못한 것은.
“━━─.”
아이라가 마치 얇은 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작고 희미한 웃음소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그래, 여왕을 섬기는 것. 그것 자체도 하나의 답례가 될 수 있지. 네가 할 만한 대답이었지만. 반쪽짜리로구나.”
하으음-하고 커다랗게 입을 벌린 뒤에 하품하는 아이라. 곧 그녀의 눈이 스르르 감긴다. 졸린 모양이다.
“아이라 님.”
“왜 부르니?”
“요새 너무 잠이 많으신 게 아니신지 걱정이 됩니다.”
“걱정할 것 없어. 이제 물러가 봐도 좋아.”
스르르.
아이라의 눈은 아주 완전히 닫혀버렸다. 곧 그녀로부터 새근새근 숨소리가 나기 시작하는데. 벌써 아주 깊은 잠에 빠져버린 게 확실했다.
잘도 자네.
진짜 벌써 자나?
“아이라 님.”
나는 시험 삼아 아이라의 이름을 불러봤다. 하지만 그녀의 숨결은 고른 소리로 새근새근 일정하게 들려올 뿐이다.
완전히 잠들었군.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매일 답변하기 어렵고 곤란한 질문이나 하고 말이야.
괘씸하군.
나는 손가락을 들어 올린 다음에 이불 바깥으로 살짝 빠져나와있는 아이라의 발등을 슥 문질러봤다.
새근, 새근.
하지만 아이라의 반응은 없다. 너무 깊게 잠들어 있어서 자신이 만져지는지 어떤 지도 모르는 것 같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인가.
나의 손가락은 그녀의 발등을 지나서 하얗고 부드러운 발바닥을 스윽 스쳐지나가기까지 하는데….
“━─.”
아이라는 작게 앓는 소리를 내더니 이불 안으로 자신의 발을 쏙 집어넣었다. 그 모습이 꼭 더듬이를 집어넣은 달팽이 같다. 간지러움은 느끼나?
새근, 새근.
다만 잠은 깨질 않는다.
대단하네.
이 정도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겠어.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실화냐? 아이라에 대해서 침착한 사고가 발동한 적은 무척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가슴이 몹시도 두근거렸다.
그래서 나는 잠들어 있는 아이라가 과연 어느 정도의 자극까지 깨지 않는 건지 순수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그런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이불 바깥으로 유일하게 빠져나와 있는 얼굴이다. 제법 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볼살.
검지 하나를 펴고 그것을 쿡 찌르자-.
움찔.
아이라의 반듯한 미간이 좁혀지면서 “으므으-.”하고 괴상한 소리를 냈기 때문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안 깼나?
새근, 새근.
그런 와중에도 아이라의 잠은 깨질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마치 나의 마음에서 뾰족한 뿔이 불쑥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이거 혹시 잘하면….
그리하여 조금 더 용기를 얻어 손을 뻗으려던 찰나였다. 아이라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언니…. 결혼 축하….”
* * *
세라자데가 도발을 했던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라는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의 의견을 따라 사람들 앞에 나섰다.
━여왕이 예배를 드린다고?
일요일에는 대성전의 예배에 참가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월요일에는 전투학 개론 강의에서 자신의 마법을 사람들에게 시연해 보여주기까지 했다.
“이런 식으로 메모라이즈 해둔 염동제어술식 마법과 1위계의 발광마법을 혼합 응용하면 프로미넌스 플라즈마가 되는 거지.”
아이라의 드높은 마법 실력은 존경받아 마땅한 것.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대단하다…!
그 화려한 솜씨에 사람들이 몰려서 왕왕 소리를 질러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순조롭게 강의가 진행되고 있구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엘가가 팔짱을 끼고 미간을 좁혔다.
“쟤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거 처음 보네. 세라자데에게 지기 싫긴 한 가보다.”
“그러게요. 이대로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정말 콘테스트 퀸으로 뽑히는 것도 따 놓은 당상이겠습니다.”
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즈음.
“그러고 보면….”
엘가가 어딘가 탐탁지 않은 것처럼 말꼬리를 잡아 끌었다.
“그러고 보면?”
“그러고 보면, 아이라 쟤는 원래 저런 애였던 것 같기도 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관심 받기 좋아하는 애였지. 진짜 동화속의 공주 같은 애였어. 모두가 좋아하는….”
“그야, 진짜 공주였으니까요. 당연한 얘기를 하시네요.”
지릿.
엘가가 나를 노려봤다. 꿀밤을 얻어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내가 입을 다물어버리니 엘가는 못 이기겠다는 느낌으로 후-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저 모습을 보니까 그때 생각이 나네. 그래. 쟤는 원래 저런 애였지. 왜 그렇게 됐는지 아니까, 조금 불쌍하기도 하고 말이야.”
사촌은 사촌인가.
엘가는 나름대로 아이라에 대해 측은지심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하긴, 가족들을 전부 잃은 아이라를 보면 불쌍하긴 하지.
“그래서, 대체 아이라의 가족들이 왜 다 그렇게 갔는지 너는 아는 거 없냐?”
“글쎄요.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아는 놈이 있다고 했었나. 검은 로브를 입은 길잡이의 모습이 눈앞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엘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인 모를 병이라고 했지만. 아마 그건 타란테라의 피에 흐르는 저주나 마법 같은 게 틀림없어. 어째선지 아이라 혼자만은 멀쩡한 것 같지만….”
“저주라….”
아이라도 가족들의 죽음을 저주나 원한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나. 역시 사람 생각이라는 건 다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근데, 그럼 그 저주라는 것에서 어째서 아이라만이 멀쩡한 걸까.
단순히 이곳이 소설 속 세상이었다면 ‘그래야만 이야기가 진행되니까.’라는 억지력을 부여할 수 있겠지만. 세계라는 것은 그렇게 엉성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분명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단순히 우연으로 벌어진 일이라도 원인이 있다.
분명 아이라에게도 이유가….
━어엇-?!
━어-!
그때 누군가의 당황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휘청.
그런 나의 눈에는 모두에게 둘러싸여 있던 아이라의 까만 머리칼이, 그래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기우뚱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쓰러지는 것처럼 천천히 지면에 닿는데-.
나는 마치 나의 세상 전부가 기우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만 눈앞이 아찔해지고 만다.
“야, 아이라-! 다들, 비켜-! 야, 태오, 뭐하고 있━─.”
“사제들에게 연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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