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53)
EP.254)속의 새 # 9
254 – 새장 속의 새 # 9
절그럭, 철컹.
오팔의 몸에 걸쳐져 있었던 부속품과 금속 파츠들이 하나 둘 떨어져 바닥을 뒹군다. 나르미가 보였던 금술, 시폭의 위력이 나름대로 크게 먹혀 들어간 탓이리라.
“마법 방호의 도료 째로 날리다니. 과연 훌륭하구나.”
쿨럭.
멀쩡해 보였던 오팔의 가면 사이로 울컥 피가 뿜어졌다. 호흡기 너머 들려오는 숨소리도 송곳으로 유리를 긁는 것처럼 불편했다.
“용왕의 자손아, 금단의 주술에 손을 댄 건 너희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지만 이해해. 두려웠던 거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대비해두고 싶었던 것이겠지.”
파직, 철그렁-.
요정 검사의 몸을 가두고 있었던 쇳덩이들이 하나씩 떨어진다.
오팔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더니 스스로 자신의 몸에 걸쳐져 있던 기계장치들을 끄집어 내렸다.
곧 그의 앙상하고도 창백한 몸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위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알 수 없는 글자들도 보인다.
“호흡기가 고장났나. 당분간은 필터를 교체할 수도 없겠어. 쉽지 않아. 오싹한 상황이다. 이렇게 궁지에 몰린 건 오랜만이야.”
후흐흐흐-하고 불길하게 웃는 오팔.
그 여동생인 스텔라가 소리친다.
“필터가 얼마 남지 않은 거야. 이대로 몰아붙이기만 하면 돼!”
그녀의 말대로 전투가 속행된 지 대략 10분은 훨씬 지났다. 슬슬 오팔의 가면에 부착되어 있는 필터라는 것이 한계를 보이고 있을 터.
“─그러나 부족해. 기교도 각오도 그 무엇 하나 만족스러운 것 없이 모자라. 너희들은 아직 나와 같은 무대에 오를 자격이 없다.”
한계가 보이고 있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오팔의 기색은 전혀 누그러지질 않았다. 오히려 기름을 얹은 불꽃처럼 그로부터 뿜어지는 박력이 더욱 거세진다.
“가짜. 가짜. 지금의 전부 가짜들뿐이야. 모래로 얼키설키 만들어진 성 위에 살고 있다는 걸 모르는 머저리들 뿐.”
뭇 용사들과 영웅이라는 자들이 그러하듯, 위기의 순간에서 더욱 의지를 거세게 만드는 능력이 그에게 있어도 이상하진 않다.
뭐가 됐든 우리에게 있어서는 상황이 좋지 않아 보였다. 이대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재빠르게 다음 마법의 영창을 준비했다.
강력하고 커다란 것으로.
장기전은 절대 안 돼. 한 방으로 끝낼 생각을 하는 게 좋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구상해둔 마법이 하나 있긴 하지.
슥.
그때 오팔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이렇게 된 것. 알 속에 웅크려 있는 시간도 이제 끝이다. 나는 세상의 껍질을 깨부수고 다시 한 번 비상해 세상을 깨울 것이다.”
그 동작은 마치 허리춤의 검집에서 검을 뽑아들려는 사람 같았다. 그 모습에 먼저 반응한 것은 스텔라다.
“모두들 엎드려-!”
그녀의 말에 나도 나르미도 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요정비검, 0식 무형.
촤아아아아아-!
동시에 우리들의 머리 위로 날카롭고 강렬한 바람 같은 것이 스쳐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만약 이대로 엎드리지 않았다면 내 몸이 반토막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쭉 돋는다.
더욱 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디 갔지? 어디로 갔어!”
스텔라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분개하듯 소리쳤다. 그녀의 눈은 어느새 이 자리를 벗어난 오팔을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머지않아 스텔라의 날카로운 감이 바닥에서 오팔의 흔적을 발견했다. 뚝, 뚝하고 떨어진 기름과 푸른 용액들의 방울이 뻗어있는 곳은 우리들이 왔던 방향 쪽이다.
“지상으로, 지상으로 올라간 게 분명해!”
나 역시 스텔라의 말에 동의했다.
필터도 얼마 남지 않은 오팔이 지상으로 올라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제 정신이 아닌 듯 보였던 그가 선행을 베풀 일은 절대 없을 터.
이 위는 인구 수 만을 훌쩍 넘어서는 모나크 시티일 텐데. 그곳에 오팔의 존재가 공공연하게 노출된다면 그 혼란은 걷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 역시 그의 뒤를 쫓아야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크으읏….”
앓는 소리와 함께 나르미 드레이코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르미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배가 아파…. 그 엘프 자식이 언니 배를 후려 갈겨서…, 급하게 움직이는 건 무리인 것 같아. 나는 여기에 두고 가도 괜찮으니까 어서 엘프를 막아…! 뒤따라 갈 테니까…!”
나르미를 이 혼란스러운 곳에 두고 가라니.
━잉잉야잉.
━으아악! 이, 이 녀석 좀 떼어내 줘! 저리 가, 이 끔찍한 괴물 새끼야!
━크르릉!
아직도 곳곳에는 실험체들과 병사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이런 곳에 나르미를 혼자 두고 갔다간 어떤 일에 휘말릴지 모른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
내 질문에 나르미는 붉게 핏방울이 흘러내리는 입가를 손바닥으로 슥 닦아냈다.
“여기서는 내가 가장 위협적인 사람이지.”
그렇게 말하는 나르미의 표정은 어딘가 초연하면서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어서 먼저 가 봐!”
* * *
나와 스텔라는 오팔의 뒤를 쫓아 연구동을 역행했다.
흔적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곳곳에 날카로운 자상의 시체들이 바깥쪽을 향해 널브러져 있었으니까.
“닥치는 대로 베고 갔어. 방금 지나간 모양이야.”
스텔라는 죽어가는 병사의 목과 그 베인 상처를 보며 담담히 평가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이렇게나 냉정할 수 있다니.
나는 지독한 피 냄새에 눈앞이 아찔아찔해서 눈을 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눈을 돌려봐도 같은 참상이 이어지고 있을 뿐.
비록 반인륜적이고 비인도적인 실험을 강행해오고 있던 연구원과 엘프 병사들이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숨이 끊어진 것을 보니 조금 불쌍하기도 하고 그런다.
“이쪽이야!”
그때 스텔라가 앞서서 달렸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 지상으로 향한다. 지하 2층, 1층으로 올라갈수록 현장은 이미 아비규환.
━그아아악-!
━이, 이놈들은 뭐야! 어디서 나타났지!?
━물리지 마! 물리면 이놈들이랑 똑같이 되는 것 같아!
연구실을 빠져나온 실험체들이 벨호크의 시종들을 급습하여 난장판을 피우고 있다. 그런 와중에 스텔라의 눈은 오팔의 흔적을 놓치지 않았다.
“저기, 저쪽!”
스텔라가 가리키는 곳에는 검은 말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빛의 아래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 위에 타고 있는 것은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는 남자 오팔이다.
“저택을 빠져나갈 생각인가 봐! 우리도 가자!”
나와 스텔라 역시 오팔을 뒤쫓기 위해 마굿간을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는 말들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을 뿐.
우리가 뒤쫓을 것을 예상해 말들을 전부 베어낸 게 아닐까.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젠장, 용의주도 하구만!
“어쩌지!? 이대로 있다간 오팔을 아주 놓칠 텐데!”
스텔라가 당황스러운 것처럼 발을 굴렀다. 당황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쯤이면 필터인지 산소통인지 하는 게 다 떨어졌을 시간 아닙니까? 대체 왜 이렇게 쌩쌩히 움직이는 겁니까?”
“잘 모르겠어. 그냥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걸 수도 있고….”
썩어도 준치라 이건가.
어쩔 수 없다.
“스텔라 교수, 제 허리를 붙잡도록 하세요!”
“뭐?”
“얼른!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다급한 재촉에 스텔라가 나의 허리를 와락 붙잡았다. 나는 재빨리 주문을 영창 해 밤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퍼덕, 퍼덕, 파다닥-.
“새!?”
깜짝 놀란 것처럼 몸을 떠는 스텔라 벨호크. 그녀의 말대로 새였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새 무리가 나타나 하늘을 가득 채운 것이다.
━지지배!
녀석들은 이내 나의 어깨와 등을 붙잡고는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다. 나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고, 스텔라는 정말 깜짝 놀란 것처럼 소리쳤다.
“날고 있어!”
“두 명 무게는 처음이라 조절이 안 되니까 혀 깨물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새를 통해 하늘을 날다니….”
스텔라는 신기한 것처럼 말했다만.
일찍이 요승 바사고의 환상 속에서 새를 이용해 하늘을 날았던 것은 스텔라가 먼저 했었다. 정확히는 에피소드 보스 헤드 헌터라고 하는 게 좋겠지.
그래서 새를 길들이는 마법을 소유하고 있는 나도 혹시 해볼 수 있을까 싶어 한 두 번 정도 몰래 연습해봤었는데. 항상 실패했었다.
펄럭, 펄럭-!
그렇지만 지금은 순조롭게 몸이 떠오르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극한의 집중력이 발휘되는 법이라던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벨호크 가문에서 새들을 잔뜩 길러 다행이구만. 주변에 새가 많아 다행이야.
화아아아-.
마침내 탄력을 받은 날개 짓에 의해 정원 가득한 나무들보다 높이 떠올라 하늘로 솟구칠 수 있었다.
하늘에 높이 박혀있는 달과 구름하나 없이 맑은 밤. 쏟아지는 별빛 아래 하늘을 날고 있으니 이런 상황임에도 약간 감상에 젖게 된다.
그것은 스텔라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그녀의 눈은 별빛 가득한 하늘과 그 아래로 지평선처럼 빛나고 있는 야경을 감상하기 바빴다.
“이것이 자유로운 새들의 경치로구나.”
“그렇겠죠.”
“이제야 확실히 알겠어. 내 계획이 지나치게 짧고 근시안적이었다는 걸…. 나는 오팔이 이렇게 달아나기까지 할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
“왜 갑자기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해요.”
당장 스텔라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둘러댄 감도 있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앞날을 예언하는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나도 항상 예기치 못한 일들로 항상 난항을 겪었다. 그런 지식도 없는 평범한 인간들로서는 헤매고 망설이는 것이 더욱 당연할 터.
“반성이라면 나중에 들어 드릴 테니까, 일단 지금은 스텔라 교수님께서 할 수 있는 걸 하세요. 오팔은 지금 어느 쪽으로 향했습니까?”
내 밤눈은 어두운 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높은 하늘을 날고 있으면 모든 사물이 개미처럼 작게 보일 뿐.
하지만 스텔라는 엘프답게 시력이 좋을 테니 분명 이 자그마한 곳에서도 오팔을 찾을 수 있을 터.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 허리를 꽉 붙든 스텔라는 다시금 마음 굳게 잡은 건지 발 아래로 까마득히 보이는 벨호크 가문의 정원을 이리저리 살폈다.
솔직히 이 어둑어둑한 달빛 아래에서 사람을 찾는 게 쉬워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스텔라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어둠 속 사냥감의 목덜미를 정확히 노려 조준할 정도로 잔혹한 헤드 헌터가 될 분기점도 있었으니까.
“스텔라 교수라면 할 수 있어요. 오팔이 시내로 나가 큰 문제를 벌이기 전에. 이 벨호크 정원에서 끝내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나의 비기를 먹이면 놈이라도 쓰러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지금의 내게는 있다. 우리들이 열심히 만든 기회를 날려버릴 수는 없지.
“저기, 저쪽, 저쪽에 있어!”
그때 스텔라가 허공의 어느 구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은 정원의 입구 쪽. 말이나 오팔의 몸은 보이질 않았지만 스텔라가 거짓을 말했을 리는 없을 터.
벌써 정원 입구라니. 늦었나-.
그런 생각으로 숨을 들이킬 즈음, 나는 정원의 앞에 주르륵 늘어진 불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횃불 같았다.
그리고 그 횃불 사이로 보이는 것은 금빛 갑옷에 붉은 망토를 걸친 병사들로, 앙그마르에서 그 위용을 모르는 자들은 아무도 없을 터.
나는 참을 수 없는 기쁨에 소리쳤다.
“리오네스의 지원군이 도착한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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